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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뽀오츠 』/『 축  구 』

안녕, 2014 브라질 월드컵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4.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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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K 리그만 본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소속된 유럽 리그 경기도 가끔 보지만 새벽에 일어나 억지로 챙겨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포항이 수도권 원정 오면 휴가 써서라도 보러 갈 정도로 K 리그를 좋아한다. 남들은 수준 높은 빅 4(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안 보고 K 리그 본다고 희한하게 보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이 더 희한하다. K 리그 수준도 충분히 높다.


내가 이리 말해봤자 선수들이 받는 몸 값의 수준이 다르니 비교가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잘 한다고 여럿이 칭찬하는 선수가 10억 받는 리그와 수천 억 받는 리그는 분명 클래스가 다르겠지. 돈 주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닐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K 리그에는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 내가 메시나 호날두를 좋아한다고 해서 쫓아가 사인 받고 눈 마주치며 수고했다 격려해주는 게 가능할까? 돈만 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 하지만 K 리그 팬이라면 돈 없어도 어렵잖게 할 수 있는 일이다.

…… 가만 생각해보니 K 리그의 장점을 억지로 쥐어짜내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솔직히 털어놓자. 나는 그냥 K 리그가 좋다. 사람이 좋고 싫은 데 이유가 어디 있냐고들 하잖아. 딱 그거다. 그냥 K 리그가 좋다. 수준 높다는 유럽 리그가 싫은 건 아니지만 K 리그가 더 재미있다. 아르엔 로벤의 믿기지 않는 스피드와 엄청난 돌파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신광훈의 못지 않은 돌파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 K 리그 빠돌이이기에 평소 축구 중계에는 관심도 없다가 4년에 한 번 온갖 지랄 염병을 다 떨면서 월드컵 중계 해대는 방송사들 보면 같잖다. K 리그 중계 건수와 비례해서 월드컵 중계하게끔 했으면 한, 두 경기 하고 나가 떨어져야 하는 것들 아닌가? 재미가 있으면 중계하지 말라 해도 중계한다 하는데 축구라면 그저 좋아하는 수컷들 말고, 대한민국 아가씨, 아줌마들이 드라마 밀치고 축구 중계에 열광하게 하는 건 100억 가진 착한 성격의 꽃미남 고아 놔두고 고리타분하고 못생긴 종갓집 장남이랑 사귀게끔 하는 것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이다.



방송사와 월드컵 각설이들 못지 않게 K 리그를 무시한 홍명보 감독이다.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의 대한민국 대표팀에는 2013 K 리그 우승 팀 소속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지난 시즌의 포항은 조직력 하나만으로 다른 팀 다 누르고 우승해버린 위대한 팀이니까 그런가보다. -ㅅ-
해외파를 중용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도 같다. 위에서 말한대로 괜히 엄청난 돈 주고 외국 클럽에서 데려다 쓰겠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 그 해외파 덕분에 제대로 자멸한 홍명보 감독이 아닌가 싶다.


홍명보 감독은 프로 데뷔를 포항에서 했고 J 리그 갔다가 돌아올 때에도 포항을 선택했다. 여러 리그와 팀을 선택했기에 정작 포항에서 뛴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황선홍 감독과 더불어 포항의 레전드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는 분이다. 코 찔찔 흘릴 때부터 포항 경기 보러 다닌 내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져도 깔 수 없는 사람이 홍명보다. 과거의 업적이 현재의 죄악(?)을 덮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레전드니까, 우리 포항을 위해 많은 걸 해낸 분이니까, 절대 까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래서 안 깠다. 하지만 포기했다. 박주영 선발하는 거 보면서 이번 월드컵은 포기했다. 시간 대나 세월호 참사 여파를 떠나서, 선수 선발하는 거 보고 포기했다. 다른 감독이면 마구 까댔을텐데 홍명보라서 안 까고 그저 포기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선수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최악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홍명보의 선택이 실수였음을 입증했다. 리그와 평가전에서 딱히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잔 실수만 부지런히 해댄 정성룡은 두 경기에서 5점을 내줬다. 골키퍼 혼자 다 막기에는 7.32M×2.44M는 너무 큰 공간이지만 김승규였다면, 이범영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날만한 장면이 숫하디 숫했다. 특히나 알제리 전 두 번째 골은 그동안 수도 없이 지적해온 정성룡 골키퍼의 치명적인 단점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로 오는 빠른 크로스는 누구라도 막기 어려운 것이겠지만 정성룡의 경우는 열에 아홉은 실점한다. 골대 비우고 나오지만 제대로 처리를 못하는 거다. 박주영은 어떠 했는가? 수비형 원 톱이라는 조롱 받으며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끝났다. 홍명보 감독은 우리나라 선수 중 박주영을 능가하는 톱이 없다 했지만 김신욱은 그런 평가가 엄청나게 잘못되었음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렇게 믿었던 해외파 선수들의 부진은 어떠했는가? 이청용은 조별 예선 세 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무리한 공 끌기로 상대 역습의 빌미를 자주 제공했고 제2의 박지성이라던 김보경은 교체로 투입되어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필드를 나와야 했다. 무색무취의 선두 주자 지동원도 마찬가지였고 구자철 역시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나마 손흥민과 기성용이 해외파의 자존심을 살렸다고 할까, 이번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인 두 선수는 K 리그 울산 현대의 김신욱과 이근호였다.

허리 싸움에서부터 밀리는데도 홍명보 감독은 세 경기 모두 같은 조합으로 미드필더를 구성했고 벨기에 전에서는 상대가 한 명 퇴장 당하자 수비형 미드필더 대신 공격 자원을 투입하고 기성용에게 공격과 수비 모두를 지휘하게끔 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0 : 1 패. 만약에 타령을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다지만 우리 명주 데려갔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 포항 팬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어째 글이 정리가 안 되고 자꾸 산으로 가는데... 손흥민이 대활약 한 날이면 블로그 방문자가 확~ 늘어난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과 관련해서 쓴 글 때문이다. 벨기에 전 끝나고도 손흥민의 눈물을 보고 손웅정을 검색한 이들이 링크 타고 블로그 왔다 갔는데 늘어난 방문자 보고 월드컵 관련해서 뭐라도 하나 써야겠다 싶어 자다 깬 상태로 주절주절 떠들고 있다.

좋은 경험 운운하고 열심히 잘 뛰어줬네 어쩌네 하는데... 평소 같으면 내가 했을 말이다. 난 어지간해서는 선수들 까대는 거 안 좋아한다. 그네들이 일부러 대충 뛰었을 리도 없고 외국 애들이랑 붙어보니 방구석에 퍼질러 앉아 TV로 보면서 까댈 때와는 크게 다른 어려움도 많았기에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은 아닌 것 같다. 다들 열심히야 뛰어줬겠지만 그게 전부다. 티키타카도, 압박도 없었다. 그저 열심히였다. 달랑 투지만 가지고 레이저 조준기 달린 총 가진 적을 상대로 돌멩이 들고 나선 거다. 퇴장으로 한 명이 나간 팀을 상대로 실점하고 득점하지 못한 건 상대가 열심히 뛴 이유도 있겠지만 전략 자체가 틀려 먹었다는 걸 방증한다.


어찌 되었든 예상대로, 바람대로, 조별 예선 세 경기만에 짐을 싸게 됐다. FIFA 순위 57위니까 32개 나라가 참가하는 토너먼트에 낀 자체가 이미 잘한 거다라고 자위했지만 아시아였으니까 망정이지 유럽이나 남미였으면 어림도 없었겠지. 무려 열 두 경기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없는 아시아니까 다음 월드컵에서 티켓 줄어드는 건 자명한 것 같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월드컵 통해 뭔가 배우고 성장했을까?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시안 게임 때 엄청나게 까이고도 묵묵히 그 멤버 안고 가서 결국 올림픽 동메달 따왔으니 이번 월드컵도 시간만 있었다면 제대로 보여줬을 거라 안타까워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시간이 문제인데... 그 시간이 제대로 주어졌다면 차라리 계속 조광래의 만화 축구로 끌고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월드컵 각설이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뽕 맞고 단체로 정신 못 차려서 빌빌거리다가 이내 현실로 돌아오는 게 한, 두번도 아닌데 4년마다 반복하는 게 신기하다. 호주 같은 경우는 정말 잘 했는데 아쉽디 아쉬운 결과고... 이란이나 일본 경기는 제대로 본 게 없으니 뭐라 못 하겠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별 예선 꼴찌에 걸맞는 경기 보였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분노할 수준의 경기를 했으니 감독 모가지 날리는 건 당연한데, 다음 감독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4년 후가 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축구 협회가 정신 차리고 제대로 일할 가능성이 없으니까.



난 그저 K 리그 클래식 빨리 시작해서 다시 제대로 축구 보고 응원하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팀 코리아 팬들은 하던대로 해외 리그나 빨면서 열광 & 발악할만한 다른 일 찾아보기를 바란다. 어중간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영동대로까지 가서 어떻게든 눈에 띄어 떠보겠다는 일념으로 여기저기 속살 드러내며 소리 꺅꺅 질러댄 성괴들과 그것들 어찌 꼬셔서 한 번 올라타봤으면 했을 수컷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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