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02일 화요일 흐림 (사람 앞 날은 진짜 알 수가 없고나)
오범석이 다시 포항 유니폼을 입었다. 강원에서 나간다는 기사를 보고 '혹시 포항으로 돌아오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을 잠깐 하긴 했는데, 정말로 올 줄이야.
두 번 다시 포항 팬들을 아군으로 둘 생각이 없다는 듯이 내팽개치고 나갔는데, 어떤 심정으로 돌아왔을지 궁금하다. 지금은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지지만 스틸 야드에 관중이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오범석을 향해 응원을 보내줄까?
아무튼, 역시 우물에 침 뱉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좋게 넘어갈 일도 굳이 물고 뜯고 덤벼들어서 적을 만들곤 했다. 좀 더 말랑말랑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한다. 뭐, 후회한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제부터라도 잘하는 수밖에 없지만서도.
진짜... 사람 앞 일은 알 수 없다. 2014년에 처음 일본으로 여행을 갈 때만 해도 회사 쉬어가면서 1년 넘게 일본에서 사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지.
한국에 돌아온 지 이제 겨우 두 달. 일본에서의 생활이 엄청 오래 전 일처럼 아득하다. 코딱지만한 방이 71,000円이나 한다며 궁시렁거렸지만 이제는 그 코딱지만한 방이 그립다. 오죽하면 하루카스가 보이는 CCTV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서 보고 있을까. 지지리 궁상이다.
물 청소가 불가능했던 건식 화장실도 그립고, 심지어는 때 맞춰 직접 섬유 유연제를 넣어야 했던 3.8㎏ 짜리 세탁기마저 보고 싶다. 집에서 학교까지 걷던 길도 생각나고, 코난과 오아시스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한국에 와서 좋은 건 짬뽕이나 순대국밥, 치킨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 아, 이건 아니고나. 시골에 살아서 배달 음식을 먹을 수가 없으니. 그래도 일본에서는 아예 못 먹으니까.
굳이 5G 아니더라도 일본보다 빵빵한 손전화 인터넷 속도도 좋고, 차 있는 것도 좋다. 지금 차도 좋지만 역시나 지난 해에 계약했던 차가 빨리 나와야 할텐데. 아무튼, 일본에서 살던 시간이 너무나도 꿈 같아서 믿기지 않는다. 엄청난 속도로 일본어를 잊어가고 있는 것도 믿기지 않고.
비 온다고 해서 운동할 때 입을 옷을 챙겨가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축구를 하게 됐다. 땀 흘리면 안 되는데 너덜너덜해져버려서... 숙소에 들러 옷 갈아입고 다시 들어갈까 하다가 번거로워서 그냥 찝찝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왔다. 주말이나 칼퇴하는 날에 세탁소에 옷 맡겨야겠다.
날마다 퇴근하면서 혹시나 차 나왔다는 메시지가 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온다. 그 기대는 늘 산산이 부서지고. 잊고 사는 게 최고인데 그게 쉽지 않다. 정작 차 살 돈은 10원 한 푼 없으면서 말이지.
이번 달 보험료가 30만원 가까이 나왔기에 뭔 일인가 싶었는데, 지난 달에 안 낸 걸 한꺼번에 낸 모양이다. 게다가 엄마 보험료도 내가 낸다. 내고 싶지 않아서 부험 공단에 민원 남기면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더니 고객 센터로 전화하란다. 칼퇴하는 날 잊지 말고 전화해야겠다. 뭐, 남들처럼 부모가 아파트를 사주네 차를 사주네 하는 건 기대도 안 한다. 내가 드리는 건 당연하고, 내가 받는 건 베푼다 생각하는 게 싫다. 소중한 돈 껴안고 행복하게 사시길.
적 만들지 말자 해놓고 가족을 죄다 적으로 삼고 있다. 뭐, 가족이 힘이 된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나 같은 경우는 짐이니까. 그것도 하나같이. 안 보고 사는 게 속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