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여행 03 나고야 성/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테바사키
인천공항 제2터미널 예약 주차장
출발하기 전에 걱정되는 것 중 하나는 주차 문제였다. 일곱 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기였으니 공항에 다섯 시 반까지는 도착해야 하는데, 그 시각에 버스가 없다. 하루 전에 출발해 근처에서 자고 택시를 이용해서 아침 일찍 이동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예전에 해봤더니 돈은 돈대로 들고 썩 편하지도 않더라고. 짐이나 없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짐이 있으면 돌아올 때 번거롭고.
공항 주차장을 예약하려 했지만 이용하려는 날짜에는 꽉 찼다고 나와서 출발이 코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도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하루 전에 손전화로 공항 주차장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빈 자리가 있다고 나온다. 냉큼 예약을 시도해서 결국 예약금 10,000원을 내고 빈 자리 하나에 침 발라 놓는 데 성공했다.
퇴근하고 일찍 잘 생각이었는데 계획보다 퇴근도 늦어졌고, 방에서 빈둥거리느라 시간을 까먹는 바람에 22시가 훌쩍 지나서야 잠이 들었다. 세 시에 깨서 멍 때리고 있다가 대충 씻고 짐을 싼 뒤 출발. 100㎞를 달려야 하는데 20㎞ 남짓을 달린 시점에 와이퍼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에 여기저기 헤집어놨던 곳은 다행히 공사가 끝났지만 차선이 안 보이는 건 매 한 가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예약 주차장에 도착했다. 빈 자리는 초록색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 좋았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했는데 천장에 구멍이 났는지 비가 줄줄줄 새기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
《 어디쯤 세워놨는지 알아보기 좋으라고 주위 사진을 찍었... 지만 돌아온 날 차 찾느라 헤맸다 》
인천공항 주차장은 단기, 장기, 예약으로 구분이 됩니다. 단기 주차장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가족이나 손님을 맞이하러 갈 때 주로 이용하게 되는데요. 하루, 이틀,... 일주일 동안 세워놓는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돈이 많다면 말이지요.
단기 주차장은 하루 주차비가 24,000원으로 장기 주차장의 두 배입니다. 제1터미널 기준으로 실외에 있고 지붕은 없습니다. 주차 후 바로 공항 3층으로 갈 수 있습니다.
장기 주차장은 하루 주차비가 12,000원이고, 예약 주차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약 주차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차가 들어가는 시간과 나가는 시간을 지정한 뒤 10,000원의 보증금을 내면 예약이 됩니다. 번호를 입력하기 때문에 입구에서 자동으로 인식을 해서 차단기가 열리고요. 나가기 전에 무인 정산기를 통해 사전 정산을 하면 30분 내에 나갈 수 있습니다.
주차 대행을 하는 YAC들이 차를 함부로 다루거나 심지어 개인 차량처럼 끌고 다닌다는 뉴스를 하도 봐서 맡기고 싶지 않았기에 예약 주차장을 이용했는데 다음에도 이용해야겠다고 마음 먹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26일 다섯 시에 들어가서 29일 열두 시에 나왔는데 딱 36,000원 나왔네요. 보증금 10,000원은 얼마 후 결제가 취소되며 환불됩니다.
제2터미널 예약 주차장의 A 구역은 지붕이 있고 B 구역은 지붕이 없기에 A 구역에 주차를 하고 버스 타는 곳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거의 다 갈 무렵에 버스가 도착해서 부지런히 뛰어 버스에 올라탔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 공항에 도착했고 바로 진에어 카운터로 향했는데 이른 아침에도 바글바글. 혹시라도 비상구 자리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모바일 체크인을 안 한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입구에서 모바일 체크인을 완료하고 줄을 섰다. 오사카 가는 비행기는 3×3 배열의 작은 비행기였는데 나고야로 가는 녀석은 3×4×3 배열로 제법 큰 녀석이었다. 일본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나고야 간다니까 "노잼 도시 아니야?"라고 할 정도로 심심한 동네로 알려져 있는데 비행기는 엄청 큰 녀석을 띄우는 고만.
빵과 커피로 요기 & 포켓 와이파이 수령
포켓 와이파이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제2터미널은 여섯 시부터라서 시간이 남는다. 미리 번호표를 뽑는 게 좋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던지라 번호 표를 뽑은 뒤 근처를 헤매고 다니다가, 파리 크라상에 들어가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빵 두 개에 커피 하나 시켰더니 14,000원이다. 국밥이 두 그릇인데...
적당히 배를 채우고 50분에 포켓 와이파이를 찾는 곳으로 갔더니 이미 나눠주고 있더라. 아까 뽑은 번호표가 6번이었는데 이미 지나간 지 오래라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대기하는 사람이 있는 거도 아니어서 새 번호표를 뽑자마자 불러줬다. 보통은 받자마자 케이스에서 꺼내 켜지는지 확인을 해보는데 이 날은 귀찮아서 바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서 부랴부랴 가입을 마친 뒤 출국장으로 향했다.
교통 약자 전용 출국장
된다, 안 된다, 말이 제각각이라 일단 들이대보기로 했다. 내 앞에 외국인이 한 명 들어가기에 '쟤는 뭐냐?'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보안 요원에게 가로막혔다. 나도 같은 결과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살짝 쫄렸지만 일단 유공자 증을 꺼내 보였더니 별 말 없이 통과시켜 준다. 무뚝뚝한 표정과 던지는 듯한 말투 때문에 친절함은 0.1g도 느낄 수 없었고.
보안 검색 전에 벨트 풀라고 하더라. 귀찮고만. 주머니에 아무 것도 없는데 금속 탐지기에서 소리가 나서 나도 모르는 사이 아다만티움이라도 심어졌나 싶었는데 바지에 박힌 징 같은 것 때문에 나는 거였다. ㅋ
아무도 없을 때 가장 먼저 들어갔기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는데, 보안 검색을 마친 뒤 스윽~ 돌아봤더니 어린 아기를 동반한 분에, 노인 분에, 갑자기 사람이 확 늘었더라. 아무튼, 오래 기다리지 않고 금방 출국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국가 유공자와 유족(유공자 증 소유자)도 교통 약자 전용 출국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면세품 찾고 기다리다 비행기 탑승
롯데 면세점과 신세계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질러놨기에 대기표를 각각 뽑았다. 신세계 쪽이 진행이 빨랐지만 롯데 쪽도 만만치 않게 번호가 줄어들고 있어서 혹시라도 신세계 면세점에서 물건을 받는 동안 롯데에서 번호를 불러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겹치지 않아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들을 받을 수 있었다.새벽이라 문 연 가게도 거의 없어 딱히 할 것도 없으니 바로 탑승구 쪽으로 향했다. 쫄래쫄래 걷다가 갑자기 보조 배터리만 챙기고 C to C 케이블은 두고 온 게 생각났다. 이래서 짐을 미리 싸놨어야 했는데...CU 편의점이 보여 케이블을 사려고 했는데 12,000원이나 한다. 가늘디 가는, 그리고 새카만, 없어 보이는 케이블 주제에.도저히 저 돈 주고는 못 사겠다 싶어 일본에서 사기로 하고 그냥 탑승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면세점에서 받은 것들을 뒤적거리는데... 뒤적거리는데... C to C 케이블이 있다! 인터넷 면세점에서 당기면 쭉쭉 늘어난다는, 돌돌 말려있는 케이블을 질렀던 거다. 사면서도 '집에 C to C 케이블이 수십 개인데 이걸 또 사고 자빠졌네.'라 생각하며 조금 후회를 했더랬는데, 그 때의 나를 칭찬할 수밖에 없게 됐다. ㅋㅋㅋ
시간이 빠듯할 줄 알았는데 출국 심사도 금방 끝나고, 오히려 여유롭다. 탑승구 앞에서 빈둥거리고 있다가 일곱 시가 넘어 비행기에 올라탔다.
인천국제공항 → 나고야 츄부 국제공항
앞 자리의 일본 아주머니께서 무거운 짐을 올리려 하시기에 도와드렸다. 여행 오셨냐, 한국은 어땠냐, 오지랖을 부려볼까 하다가 관뒀다. 살아보니 말할까 말까 망설이게 될 때에는 입 다무는 게 좋더라고.
《 순토 시계가 보여주는 고도는 실제와 크게 차이가 난다 》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제법 흔들렸다. 게다가 나고야에 거의 도착해서 고도를 낮추는 중에는 벼락을 맞는 것도 봤다. 비행기 날개에 낙뢰가 떨어지니까 순식간에 옆으로 쫘~ 악~ 퍼져나가는 게 보이더라. 영상이라도 찍고 있었음 좋았을 텐데.
도착 & 시내로 이동
비행기에서 내려 긴 통로 끝에 도착한 뒤 시계를 보니 아홉 시 반이다. 출발 전에 유도로에서 활주로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도 그렇고, 도착해서 잡아먹는 시간도 그렇고, 이래저래 까먹는 시간이 많아서 그렇지 실제 비행은 한 시간도 안 하는 것 같다. 입국 심사와 세관 통과도 금~ 방 통과.
남들보다 먼저 나갔지만 캐리어가 안 나와서 한참을 기다렸다. 내 앞에 있던 부부가 끌고 있던 아이용 쿠로미 캐리어가 보이기에 내 것도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같은 자리에서 쿠로미 캐리어를 세 번 보고 나서야 내 캐리어가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체크인을 했는데도 짐 나오는 시간은 차이가 나더고만.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메이테이線 표 사는 곳을 물어보니 바로 앞을 가리키며 저기라고 알려준다. 쫄랑쫄랑 가서 줄을 선 뒤 차례가 되어 표를 구입했다. "나고야 역까지 가는 뮤 스카이 티켓을 사고 싶습니다만..."이라고 했더니 키보드를 두드린 후 계산기에 금액을 찍어 보여준다. 1,430円이었던가?
돌아오는 날은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니까, 돌아오는 표를 미리 구입할까 싶어 "나고야 역에서 공항까지 오는 표를 미리 구입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봤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어 눈 밖에 안 보였지만 짜증내고 있는 게 확~ 느껴졌다. 터치 스크린을 팍! 팍! 두드리다가 날 쳐다보더니 나고야 역에서 구입하라고 한다. 알겠다 하고 방금 산 표와 거스름 돈을 받아 옆으로 빠져 나왔다. 대체 어디가 짜증낼 포인트인가 싶어 굉장히 언짢아졌다. 저 염병할 ㄴ 때문에 나고야에 대한 첫 인상은 '불친절'이 자리매김했고, 3박 4일의 짧은 여행 후에도 나고야 땅은 두 번 다시 안 밟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고맙다, 메이테이線의 이름 모를 표팔이 ㄴ아.
메이테이線은 IC 카드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도쿄에서 구입한 스이카나 오사카에서 구입한 이코카에 1,000円 이상이 남아 있다면 그걸로 타도 됩니다. 단, 뮤 스카이는 전 좌석이 지정석이기 때문에 자리 값은 따로 내야 합니다. 이건 자동 발권기를 이용하거나 매표소를 이용해야 하고요.
《 7분에 출발하는 열차였지만 5분이 지연되어 12분에 출발했다 》
공항이 종점이라서 도착한 후 좌석 방향이 바뀌고 간단히 청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타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한글로 안내되어 있는데도 내 앞에 있던 커플 중 여자 사람이 꾸역꾸역 올라타서 실실 쪼개고 있다가 승무원에게 한 마디 듣고 내리더라. 왜 저러는 걸까...
《 왼쪽이 게이트에 넣는 표, 오른쪽이 자리 값을 지불했다는 증거가 되는 종이 쪼가리 》
《 열차 내부 스크린으로 열차 앞에서 보이는 풍경과 속도를 볼 수 있다 》
《 이렇게 표를 끼워두면 검표한다고 말 걸지 않아서 좋다 》
숙소에 짐 맡기고 코코이치방야에서 식사
메이테이線의 역은 JR 나고야 역과 건물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숙소 쪽으로 걸으며 보니 사람이 엄청나다. 도쿄의 시부야나 오사카의 우메다 저리 가라 할 정도. 처음 가는 길이라 조금 헤매긴 했지만 다행히 숙소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숙소 근처에서 코코이치방야의 익숙한 간판이 보여 '첫 끼는 저기서 해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숙소에 가서 "오늘부터 여기에서 묵을 예정인데 짐을 맡겨도 될까요?"라고 물으니 이름을 물어본다. 한국 이름을 듣고 예약 기록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여권을 보여줬다. 예약을 확인하더니 짐을 맡아주고 플라스틱 쪼가리를 나눠줬다.
입구에 우산이 있기에 사용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러라고 한다. 우산 살 돈을 아낄 수 있겠다. ㅋ
《 바로 코코이치방야로 향했다 》
아무도 없었는데 내가 들어간 뒤 두 명이 들어왔다. 손님 없는 가게에 내가 들어가면 꼭 다른 손님들이 들어온다. 자영업자에게 환영 받아야 할 사람이다, 내가. 엣헴~
《 태블릿으로 주문하는 시스템에 생겼다 한국어도 지원을 하니 일본어를 모르는 분도 문제 없다 》
《 이내 도착한 카레와 커피 》
맵기는 언제나처럼 7단계를 선택. 코코이치방야에서 7단계를 선택하면 습~ 습~ 할 정도의 맵기가 된다. 신라면도 맵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3을 넘기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7~10은 고만고만하다. 10단계도 틈새라면 매운 기침보다 안 매운 것 같으니 매운 걸 좋아하는 분들은 7~10단계 사이에서 고르는 걸 추천.
고만고만한 카레인데, 희한하게 맛있다. 한국에서 먹는 카레와는 그 맛이 또 다르고.
느긋하게 먹은 뒤 커피까지 다 마시고 가게 밖으로 나가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진 빗방울 때문에 진해지는 바닥을 보니 빗방울 하나의 크기가 만만치 않다.
건너야 하는 건널목의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있었는데 양반 님이 뛸 수 없다 생각해 다음 신호를 기다리기로 하고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순간부터 쏴아~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워낙 굵으니 몇 방 안 맞아도 홀딱 젖게 됐다.
숙소 1층에 놓여 있던 우산을 하나 뽑아들고 나고야 역으로 향했다.
나고야 성
나고야 역까지는 우산을 쓴 채 걸어갔지만 이미 꽤 젖어서 지하철을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택시를 타버렸다. 나고야 성에 도착하니 2,210円이 나온다. 역시, 무시무시한 일본의 택시비... ㄷㄷㄷ
나고야 성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0円이다. 그리고,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가는 바람에 현장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건데, 나고야 성의 천수각은 올라가볼 수 없다. 2018년에 지진 대비 안전 진단에서 위험 등급을 받아 입장을 시키지 않고 있다 한다.
아, 그리고 나고야 성 역시 오사카 성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의의는 거의 없는, 21세기에 새로 지은 건물 되시겠다. 태평양 전쟁 때 미군이 일본에 엄청난 폭격을 퍼부었는데 당시 쏟아부은 재래식 폭탄의 위력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 못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쏟아 부었다는 거지. 표적이 되기 딱 좋은 천수각이 살아남았을 리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예전 자재를 최대한 살려서 다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못 들어가서 볼 수가 없다.
천수각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손님맞이용 건물을 개방해서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들어가기 전에 짧은 영상을 보게끔 하는데 관람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거다. 큰 짐은 맡기고, 백팩은 앞으로 메라고 한다.
《 일본 땅에는 호랑이가 산 적이 없다 조선에서 잡아갔거나, 조선에서의 모습을 그린 거다 》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나고야 성은 상대적으로 안내가 부실하다. 영어와 일본어로만 안내가 되어 있고, 한글 음성 가이드 같은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뭔가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더라. 말 위에서 산 보듯이 대충 보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비가 내리는 중이었고, 210円을 내면 탈 수 있는 버스는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고민을 하다가... 또 택시 탔다. -ㅅ-
15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한데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기에,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에 가보기로 했다.
일본어로 トヨタ라 쓰니까 토요타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외래어 표기법 상 문장의 첫 머리에 된소리가 올 수 없기 때문에 도요타로 쓰고 있습니다. 이게 좀 이해가 안 돼요. 크리스탈을 그리스탈이라 쓰지는 않는데 왜 카고시마는 가고시마가 되고, 타카마츠는 다카마츠가 되어버리는 것인지...
실을 팔았는지, 옷을 팔았는지, 아무튼 인조 섬유와 관련된 걸로 돈을 번 토요타는 방직 기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중공업에 발을 담그게 됩니다. 그래서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에 가면 기대했던 자동차는 안 보이고 거대한 방직 기계들이 즐비한 곳을 먼저 보게 됩니다.
《 이 때의 섬유 기술은 자동차의 시트를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 한다 》
《 토요타에서 맨 처음 만든 자동차라 한다 》
엔진 블록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보고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스르륵~ 이끌려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처자가 반갑게 웃어주며 일본어로 설명을 하기에 적당히 알아듣고 있었는데, 입고 있는 포항 유니폼을 보더니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갑자기 한국어로 설명을 해주기 시작한다. 세상 능숙하다. 게다가, 나중에 보니 중국어도 하더라. 엄청난 분이다. ㄷㄷㄷ
아무튼, 저 처자께서 한참을 같이 이동하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신 덕에 무척 재미있게 봤다.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 때에는 프레스도 없고 할 줄도 몰라서 나무로 틀을 만들고 철판을 거기 갖다댄 뒤 두드려서 굽혀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칸센 노조미도 그런 식으로 만들고 있단다.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굳이 프레스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 창업자가 한 말들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
토요타에서 만들고 있는 엄청난 수의 자동차를 생각한다면, 전시되어 있는 자동차들은 한~ 참 부족해 보인다. 솔직히 히로시마에서 갔던 마츠다 박물관 쪽이 훨씬 재미있었다.
《 초대형 프레스는 아래에 내려가서 볼 수 있게 해놨다 》
《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봇은, 고장으로 한 차례 공연을 건너뛰었다 》
방직 기계를 보고 나서 자동차 전시관으로 가야 하는데 입구를 못 보고 지나치는 바람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봇이 있는 곳에 가게 되었더랬다. 마침 공연 시간이라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유니폼을 입은 처자가 뒤에서 부시럭~ 부시럭~ 거리더니, 이내 마이크를 잡고 뭐라 뭐라 한다. 못 알아들었는데 영어로 한 번 더 얘기할 때 알아들었다. 문제가 생겨서 공연할 수 없다고. ㅋㅋㅋ 몰려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자동차 관을 보고 나오니 마침 또 공연 시간 이번에는 제대로 연주를 했다 》
유니폼을 입은 처자에게 문제는 해결되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맨 앞에 서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로봇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건 분명 신기한 광경이지만, 놀라 자빠질 정도는 아니다. 그만큼 엄청난 기술에 익숙해졌다.
《 밖으로 나가니 비가 그쳐 있었다 》
《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순환 버스 》
숙소까지 얼마 안 걸린다고 나오기에 걸어서 가기로 했다. 나름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이미 젖어버린 신발에서 찌걱찌걱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이 굉장히 안 좋다.
일본스러운 거리를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맡긴 짐을 찾은 뒤 카드 키를 받아들고 방으로 향했다. 20층이다.
숙소 체크인 & 테바사키
주위에 높은 건물이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전혀 없을 정도로 높았다. 살면서 가장 높은 곳에서 자는 게 아닐까 싶더라. 지진이라도 나면... ㄷㄷㄷ
침대에 널부러지니 만사 귀찮았지만, 필요한 것들을 사러 나가야 했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다시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에 가서 맥주와 안주를 사고, 군것질할 것들도 사서 숙소에 돌아갔다. 욕조에 물을 받아 잠시 앉아 있다가, 샤워를 했다. 씻고 나니 좀 개운하다. 캐리어를 열어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은 뒤 사들고 간 신문지를 신발에 구겨 넣었다.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보며 빈둥거리면서 신문지를 두 번 정도 갈아주고, 잠시 후 드라이어를 꺼내 신발을 말렸다.
나갈까 말까 한 시간 가까이 고민을 하다가, 일단 나가보자 싶어 살~ 짝 덜 마른 운동화를 신은 채 밖으로 나갔다. 숙소 바로 옆에 APA 호텔이 있고 그 아래에 기네스 맥주 바가 영업 중이었는데 APA 호텔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 건너 뛰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APA 호텔은 아무리 싸도 안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고야 명물로 테바사키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기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큰 길에서 보이는 가게가 있었는데 길 건너기가 귀찮아 건너 뛰었고, 그렇게 다시 호텔 쪽으로 향하다 보니 방금 본 것과 같은 체인점의 가게가 또 나오더라. 본점과 별관 같은 건가?
바 쪽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우리나라의 하이볼은 토닉 워터를 이용하지만 일본의 하이볼은 탄산수를 쓴다.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가서 하이볼을 주문해서 마신 뒤 왜 이렇게 써?! 라는 반응을 보이고,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 하이볼을 주문해서 마신 뒤 왜 이렇게 달아?! 라는 반응을 보인다. 나는 하이볼을 처음 마신 게 일본이었기에 그 쪽에 익숙해서, 단 맛이 나는 하이볼은 싫어하는 편이다.
오랜만에 내가 원하는 맛의 하이볼을 마시게 되니 그냥 꿀떡꿀떡 넘어가더라. 두 모금 마셨더니 없다. 그래서 메가 사이즈의 맥주를 주문했다. 꽤 지쳐 있어서 그런지 맥주가 막 넘어가더라. 메가 사이즈의 맥주도 세 모금만에 바닥을 보였다. 다시 점원을 불러 테바사키를 주문하고 하이볼도 메가 사이즈로 달라고 했다. 나한테 엄지를 내민다. 응? 무슨 의미지?
《 매운 단계를 선택할 수 있는데 가장 맵게 달라고 했음에도 매운 맛이 1도 없다 》
한국의 매운 맛은 캡사이신으로 대표되는, 고추에서 추출된 것으로 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 일본은 후추로 매운 맛을 냅니다. 우리는 익숙해져 있어서 잘 모르지만, 사실 한국의 매운 맛은 미각이라기보다 통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먹고 맵다를 외치다가 이내 아프다고 하는 걸 종종 보게 됩니다. 아무튼, 일본에서 맵다는 음식의 상당수는 한국인이 기대한 매운 맛을 내지 못합니다.
《 메가 사이즈의 하이볼도 금방 다 먹어버렸고, 이제 일본 술의 차례 》
똥집과 함께 일본 술을 주문했더니 아까 엄지를 보인 젊은 남자애가 와서는 가게가 생긴 이래 가장 빨리 마시는 사람이라며 농담을 건넨다. ㅋㅋㅋ 그렇게 안주 세 개, 하이볼 두 잔, 맥주 한 잔, 일본 술 1홉을 마시고 5,000円이 조금 안 되는 돈을 지불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낮에 사둔 맥주를 한 캔 마시고, 더 마실까 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그냥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