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바닥이 차갑다. 남들이 다 춥다고 할 때에도 혼자 덥다고 헐떡거리는, 체내 온도 조절 장치가 고장난 나조차도 춥게 느껴질 정도다. 다행히 나에게는 매직 이불이 있다. 뭘로 만들었고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최강의 따뜻함을 선사하는 이불이다. 겨울의 난지도 캠핑장에서도 저 이불 덮으니 따뜻했었다. 저 이불 덕분에 따뜻하게 잘 잤다. 새벽에 급똥 시그널이 와서 깨긴 했지만.
일곱 시가 조금 넘어서인가? 잠결에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카카오 메이커스에서 파는 153 볼펜을 보게 됐다. 버건디 레드라고 하는, 조금 짙은 빨간 색의 볼펜이다. 내가 볼펜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묵~ 직~ 한 153 볼펜이 없는 건 아니지만(티스토리에서 준 걸 받은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올 해에는 왜 통계 어쩌고 이벤트 안 하지? (;・д・)) 빨강에 혹해서 질러버렸다. 21,000원이었는지 29,000원이었는지. 대체 왜 빨간색에 환장하게 된 걸까?
오전 내내 멍 때리고 있다가 정오 무렵에 밖으로 나갔다. 필요한 것들을 사러 가기 위해서. 홈플러스에 가려고 했는데 야탑 홈플러스까지 30㎞ 조금 넘는다. 겸사겸사 다녀올까 했는데 누나들이 다들 바쁜 것 같아 다음에 가기로 하고, 용인 시청 근처에 이마트가 있기에 거기로 향했다.
커피 시음 행사하는 곳에서 공짜로 한 잔 받아 마셨는데 커피 코너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자니까 이벤트 담당하시는 분이 계속 쳐다본다.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미안한 마음에 그냥 샀을텐데, 이제는 뻔뻔함을 장착한 아저씨.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드립 커피가 있는지 찾아봤다. 마땅히 맘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시음한 걸로 살까?' 라 생각했는데 남양에서 나온 거였다. 남양이 회사 이름 바꿨다던데 커피는 남양 타이틀 달고 나오더라고. 1도 망설이지 않고 안 샀다. 대용량 사려다가 그냥 조금 있는 걸 카트에 넣었다.
미리 목록을 만들어 갔기에 필요한 건 대충 질렀는데 옷걸이와 220V 돼지 코는 살 수 없었다. 옷걸이는 찾으면 어딘가에 있을텐데 집에 100개 가까이 있는 걸 또 돈 주고 산다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참고 살다가 포항 내려갈 때 들고 오기로 했다. 돼지 코는... 우리나라에서 쓰는 플러그에 끼워 일본 등에서 쓸 수 있는 110V 돼지 코는 있는데 220V 돼지 코는 없더라. 직원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계산을 마치고 상자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율 포장대가 사라졌다고 뉴스에서 봤는데 상자는 그대로 있더라. 테이프가 없어졌을 뿐이었다. 상자 아래를 엇갈려 조립한 뒤 지른 것들을 넣고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어묵 파는 곳에서 멈춰 섰다. 일곱 개에 만 원 하는 걸 하나 사서 4층으로 이동.
차를 어디에 세워놨는지 기억하지 못해서 헤매다가 겨우 찾아갔다. 트렁크를 통해 상자를 넣으려고 했는데 차가 잠긴 상태에서 트렁크를 열어서 그런지 요란한 경고 음이 울린다. 당황했다. (;゚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말이 용인이지, 용인과 이천의 사이에 있어서 위치가 참... 게다가 아래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안성이다. 평택까지도 멀지 않다. 위치가 진짜 어중간하다. 게다가 주변은 완전 시골. 그래서 싫으냐고? 천만의 말씀. 나는 시골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ㅋ
집에 와서 사들고 온 걸 대충 풀고, 상자 안에 마구 넣어놨던 것들도 대충 정리를 했다. 제대로 정리하는 건 3단 선반이 오면 할 생각. 대충 정리를 마친 뒤 사들고 온 어묵으로 배를 채웠다.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한 뒤 건조대에 너는데 언더 셔츠 한 벌이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지자마자 들어올렸는데 바닥의 흙이 묻어 까매졌네. 아오, 짜증나. 내 기준에 화장실과 베란다가 무척이나 더러운 상태인데... 청소를 해도 될까 싶다. 먼저 사는 사람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내일은 일어나면 화장실과 베란다 청소를 할 생각이다. 깨끗해서 나쁠 게 있을까 싶으니까.
배가 불러서 잠시 빈둥거리며 쉬다가 맥주를 깐 뒤 사들고 온 닭과 함께 먹었다. 넷플릭스로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 보면서. 벨기에 편 끝나면서 다음 화 예고 나오는데 코로나 때문에 특별편 만든 모양이더라. 그렇지. 누가 오려고 하겠어.
하지만 한국은 코로나에 무척이나 훌륭한 대응을 보인 나라로 외신에 여러 차례 소개되고 있다. 중국 바로 옆에 위치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도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단하긴 하다.
마사미 님과 통화라도 할까 했는데 시간도 좀 늦은 것 같고 그래서 괜찮을까 싶다. 일단 메시지나 보내볼까?
일본어 공부 좀 해야 하는데 말만 앞서네. 내일 쉬고,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만 출근하면 선거 덕분에 또 하루를 쉰다. 대충 업무 파악을 하고 나서 일본어가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면 회사에 책을 들고 가서 공부해야겠다. 7월에 JLPT 본다는 건 절대 무리, 12월에는 보자고 생각했는데 지금처럼 나태하다면 그것마저도 무리일지 모르겠다. 일단 구몬부터 신청해볼까?
한국에서 20년, 일본에서 20년, 이렇게 살았다면 모를까 40년 내내 한국에서 살고 그 중 1년 반 정도만 일본에서 살았으니 한국에 돌아온 후 금방 적응해버리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꿈처럼 느껴져서 뭔가 이상한 약 같은 거 먹고 혼자 환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선반이 오면 대충 정리하고, 일본 우체국에서 산 상자는 버리지 말고 잘 조립해서 침대 발 밑에 두고 써야겠다. 넓은 거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쓰는 공간에 개인 짐을 두고 싶지 않아서 죄다 방에 두니까 굉장히 좁게 느껴진다. 대충 분위기 봐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방 얻어서 나가자 싶었는데 출/퇴근 하기에 편리하기도 하고, 룸 메이트도 좋은 사람 같으니 일단은 버텨보자. 한 달에 30만원만 아낀다고 해도 그게 어디냐.
저녁에는 일본에서 찍은 사진들 보면서 맘에 드는 거 추려내려고 한다. 한참 걸리겠지.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언제 죽을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더 좋은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그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지. 염병할 코로나만 잠잠해지면 쉴 때마다 여행 다니면서 남은 인생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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