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중간 관리자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나쁜 사람은 아니다. 사람 자체는 참 좋은 사람이다. 권위 의식 같은 것도 없고, 친절하면서 털털해서 격의없이 다가갈 수 있고 가벼운 농담을 던지는 것도 전혀 꺼려지지 않는 분이다. 문제는, 일을 못한다. 어느 정도껏 해야 하는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못한다. 매 주 파워포인트 서, 너 장을 만들어 보고하는 게 주 임무인데, 그 일을 한 지 1년이 넘었는데, 글자 정렬조차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건 써본 적이 없어서, 배우기 어려워서 등의 핑계가 통할 일이 아니다. 하루에 30분씩만 배웠어도 지금쯤은 파워포인트의 모든 기능을 다 쓸 수 있게 되었을 게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이라는 자각이 없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도와줘'가 아니라 '해 줘'가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이것 좀 해 줘.' 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할 때에는 그냥 허허~ 하고 말았다. 나와는 다른 부서에서 만난 적도 있거니와,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이 모양이라는 건 해도 너무하는 거다. 저렇게 자기 일을 자기가 하지 않고 남들에게 해달라고 떠맡기는 바람에 그나마 도와주던 사람들이 죄다 손절했고, 급기야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신입 사원만이 상대를 해주고 있다. 중간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을 신입 사원이 하고 있으니 제대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상급자들이 나에게 경력과 나이를 들먹이며 아랫 사람들 이끌고 조율하기를 바라는 것만큼, 아랫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만이 나를 통해 위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즉, 나는 중간에 낀, 애매한 위치라는 거다. 그동안 많은 동료들로부터 엄청난 불만을 들었고, 그 불만에 모두 공감하는 바였기에 언젠가는 중간 관리자에게 이런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몇십 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내 한 마디로 바뀐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게 가능할 리도 없고.
역시나 조금의 친분이 있는 더 상급 관리자에게 동료들의 불만이 크다라는 의견을 몇 차례 전달했지만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밥솥의 밥이 끓고 있는데, 당장이라도 넘칠 지경인데, 뚜껑이 들썩거리는데, 돌로 눌러놓거나 불을 줄이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거다. 결국, 오늘 터졌다.
중간 관리자에게 갖는 불만은 본인 일을 떠넘긴다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얼버무린다는 것도 있었다. 사무실의 동료들 모두에게 확실하게 전달되어야 하고 그들로부터 의견을 들어서 조율할 필요가 있는 일인데 옆에 스윽~ 와서 우물우물하고는 가버린다. 그러고는 나중에 자기가 분명히 얘기하지 않았냐며 언성을 높인다. 오늘 또 그런 식으로 일을 하기에, 언제 그랬냐고 따졌다. 조근조근 말하려고 했는데, 전혀 어렵지 않은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딴 소리하기에 결국 언성이 높아져버렸다.
결국 상급 관리자한테 불려가서, 따로 둘이 있을 때 얘기하던가 할 것이지 사무실에서 언성 높이냐며 한 소리 들었다. 이건 내 개인의 불만이 아니라 사무실 동료들 대부분의 불만이다, 그러게 내가 몇 번이나 불만이 크다고 했지 않느냐, 지금까지 방치하다가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 맘 같아서는 거기서도 언성 높이며 덤벼 들고 싶었지만... 일단 손 앞으로 모아쥐고 죄송하다고 했다. 직장 생활하려면 성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을 나이 정도는 됐으니까.
따로 사과하라는데, 내가 잘못했다는 마음이 들어야 사과를 하지. 오히려 난 제대로 퍼붓지 못하고 어설프게 끝내서 아쉬운 마당에.
점심 시간이 지나고 커피 내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중간 관리자가 다가와서 미안하다며 어색하게 웃고 지나갔다. 부랴부랴 제가 죄송하다고 하긴 했는데...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경력이나 나이가 나보다 한참 위인 분인데 사무실에서 한~ 참 아랫 사람한테 타박 당했으니 창피하기도 할테고 언짢을텐데 먼저 사과하는 게 쉽지 않겠지.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확~ 들었다. 하지만 일하는 거 보면 또 짜증이 나고.
운동 시간에 산책하러 나갔더니 더워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 올 해 들어 가장 더웠단다. 실외 온도는 31℃ 라고 표시되고 있었다. 날씨도 날씨지만, 머리 속은 더 뜨거웠다.
일 잘하면 좋지만, 적당히 해도 괜찮다. 월급 도둑 소리만 안 들으면 된다. 하지만 월급 도둑질하는 게 너무 눈에 보이면 그 때부터 거리를 둔다. 꼴보기 싫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리 된다. 그런데 월급 도둑놈 주제에 열심히 하는 척 하고 힘든 척 하면 사람 취급을 안 한다. 찌질이가 저런 케이스다. 자기 할 일만 딱! 딱! 해주면 좋으련만. 짜증나는 하루였다. 문제는, 이게 깔끔하게 마무리된 게 아니라서 앞으로도 큰 소리 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말이 너무 많았다. 닥치고 살아야겠다. 떠들어봐야 좋은 소리 못 듣고 나만 ㅄ 되기 좋다. 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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