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  행 』

2023, 1박 2일 순창 여행(금산 여관/순창 유과/창림동 두부 마을/한정당/채계산 출렁다리/향가 터널)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3. 9. 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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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을 읽기 힘든 세상입니다. 누군가는 스마트 폰의 영향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대세가 영상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저도 인터넷에서 길게 쓰여진 글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500 페이지가 넘는 책이 수천, 수만 권씩 팔리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잘 쓴 글은 길고 짧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증빙일 겁니다.

읽기 편한 글을 만들기 위해 쪼개어 쓸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번 여행은 흐름이 있었던지라 자르기가 애매했습니다. 그래서, 통으로 올립니다. 사진이 훨씬 많아 글은 그닥 많지 않습니다만, 여유롭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출발

여섯 시도 안 되어 눈이 떠졌다. 손은 자연스럽게 컴퓨터의 전원 버튼으로 향했고, 의자 등받이를 잔뜩 뒤로 눕힌 채 빈둥거리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

한 달 넘게 쿵쾅거린 끝에 미용실로 다시 태어난 1층에서 머리를 깎은 후 출발할 계획이었다. 미용실에 간다라... 일본에 살면서부터 이발기를 구입해서 직접 머리를 밀었다. 그게 벌써 5년이나 되었으니, 미용실에 가는 건 5년 만인 거다. 이게 뭐라고, 살짝 긴장이 됐다. 네일베에서 열시부터라고 나와 있기에 3분 쯤 지나 내려갔더니 열시 반부터라고 쓰여 있다. 다시 집으로 올라와 샤워를 마치고 짐을 챙겨 차에 갖다 둔 뒤 다시 미용실로 향했다.

옆과 뒤를 아예 하~ 얗게 밀어버리고 싶었는데, 너무 얌전하게 깎으셨다. 그래도 생각보다 흉하지(?) 않아서 만족스럽다.

 

차에 올라 출발하면서 시계를 보니 열한 시. 고속도로는 꽤 한적했기에 시속 100㎞로 정속 주행을 했고 그렇게 달려 금산 여관 옆의 공영 주차장에 도착한 게 13시 20분이었다.

빈 자리가 하나 뿐이었는데 하필 내 바로 앞에 들어간 차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처음 간 길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겠지만 다행히 지난 해에 다녀갔던 덕분에 근처의 다른 공영 주차장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그리 향했다.

 

2022 순창 여행: 금산 여관

 

2022 순창 여행: 금산 여관

'순창 게스트하우스'로 검색을 했더니 가장 먼저 나온 곳. 요즘 세상에 여관이라는 상호로 장사를 하다니, 뭔가 심상치 않다! 다녀온 분들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니 여긴 무조건 가봐야겠다 싶더

pohangsteelers.tistory.com

 


순창 → 광주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버지와 소주 한 잔 하는 것이었다. 2016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년에 최소 두 번은 아버지를 찾았지만 차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외진 곳에 있는지라 택시를 이용하면 돈이 너무 많이 깨지고, 대리 운전은 잡힐 거라는 기대 자체가 안 된다.

그래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숙소인 금산 여관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순창에서부터 아버지가 계신 ○○○○까지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거다. 차가 없이 살던 시절에는 대중 교통 외의 선택지가 없으니까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오랜만에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보니 염통이 살짝 쫄깃해졌다. 뭐, 남의 나라에서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만 잘 터지면 손전화를 이용해서 어디든 갈 수 있을 터.

 

챙긴답시고 꺼내어놓고 그대로 두고 오는 바람에 편의점에서 마스크를 사야 했다. 터미널에 들어가니 매표소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신다. 대부분의 매표소에는 아주머니가 일하고 계셨기에 조금 생소했다. 문화동 간다고 하니까 "광주 문화동?" 하고 되물으신 뒤 곧 버스가 온다고 하셨다. 표 한 장을 달라 하고 손전화를 내밀었더니 자연스럽게 카드 단말기에 올려 놓으신다. 삼성 페이 따위에 당황하지 않는 어르신이다. ㅋㅋㅋ

 

 

화장실에 다녀와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대로 1번 플랫폼 앞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표가 보이지 않는다. '어?! 분명히 가방에 넣었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는 그 짧은 사이에 빠진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당황해서 가방을 뒤적거리며 표를 찾기 시작했다. 그 와 중에 다시 표 사러 가면 기억하고 무료로 그냥 출력해주실까, 아니면 다시 돈을 받으실까, 어느 쪽일지 생각했다. 그런데 몇 걸음 앞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종이 표를 들고 오신다. 마침 밖에 나와 계시던 표 파는 할아버지께 뭐라 하시며 표를 건네신다. '내 꺼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쪽으로 향했더니 표 파는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시고는 표를 건네주신다. 화장실 다녀올 때 빠진 모양이다. 그걸 어르신께서 주워 주셨고. 허리를 90도로 숙여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인류애가 마구 차오른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지. 크으~

 

 

버스는 여기저기 멈췄다 가기를 반복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금과에 멈췄다. 아버지가 나고 자란 곳. 정작 나는 서너 번 와본 게 전부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고향이라 반가웠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리는 지점을 지나칠까 걱정되어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 대신 바깥 소음 듣는 쪽을 선택했다. 뒤에 앉은 아저씨가 "흐아아암~" 하고 큰 소리로 하품을 한다. 체감 상 한 30번은 한 것 같다. 터미널에서 몽글몽글 차올랐던 인류애가 급속도로 방전되기 시작했다.

 

《 아~ 수평이 맞지 않아서 불편한데... 😑 》

 

《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 담양 터미널에도 들린다. 》

 

광주 문화동은 간이 터미널이라 제대로 된 터미널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외 버스에서 내린 뒤 길을 건너 편의점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트가 보여서 그리 들어갔다. 굳이 편의점을 찾은 건 얼음 컵 때문이었다. 마트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각진 얼음을 넣은 플라스틱 컵을 팔고 있었다. 소주 두 병, 안주로 먹을 육포 하나, 아버지 드릴 오징어 땅콩 작은 걸로 한 봉지, 콜라 하나, 얼음 컵. 그렇게 사들고 나왔다가 잔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마트에 들어갔다. 1회용 종이 소주 잔이 있냐니까 플라스틱으로 된 것 밖에 없다며 찾아준다. 마저 사들고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518번 버스를 타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향했다.

 

 

예~ 전에 차를 가지고 갔을 때, 차박할 생각으로 이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를 샀었더랬다. 아버지 앞에 주저 앉아 소주를 마시며 푸념을 늘어놓다가 차에서 웅크리고 잔 뒤 다음 날 돌아왔었다. 그 뒤로 오랜만에 아버지 앞에서 일 잔 하는 거다.

 

 

 

다녀간 지 얼마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풀밭으로 변해 있었다. 관리를 담당하는 공원 쪽에서는 조문객이 두고 간 음식이나 추모 물품 등을 치우는 정도만 하고, 풀을 뽑는 건 그만 뒀다.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난 분들이라 사람들 발길이 드물다 보니 대부분의 자리가 울창한 잡초에 둘러 쌓여 있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세상 떠난 이를 잊기에 5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다.

동생이라는 ㄴ이 광주에 산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뵐 수 있다기에 광주에 모신 건데, 정작 저 사람 같지 않은 ㄴ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달랑 한 번 찾아온 게 전부였다. 장지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불던 건 결국 연기였던가.

 

 

《 호다닥 풀을 뽑아내고 가지고 간 과자와 콜라를 올려둔 후 소주 한 잔 올렸다. 》

 

돌아가시기 전에 술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거짓말이라 생각한다. 끊을 분이 아니다, 아버지는. 사들고 간 소주 한 병은 내 꺼, 한 병은 아버지 드릴 꺼. 번갈아가며 마시다가 고모한테 전화를 했다. 아버지를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분은 고모 뿐이니까. 그렇게 고모와 주절주절 아버지와 관련된 추억을 떠들어대다보니 소주 한 병이 금방 비었다.

 


 

광주 → 순창

 

 

슬슬 돌아가야겠다 싶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꽤 기다린 끝에 버스가 도착할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여성 한 분이 오셨다. 버스가 도착했고 그 여성 분이 버스에 타려다가 "시내로 안 가요?" 하더니 그냥 내리시더라. 나는 묻지도 않고 그냥 올라탔을텐데.

그 버스는 그냥 가버렸고 바로 뒤에 다른 버스가 왔다. 회차 지점인 것 같은데 운행을 계속 이어나가기에 '기사님들은 언제 쉬시나~' 싶었는데, 종점이 두 군데니까 쉬는 포인트가 다른 모양이다. 시골이다 보니 대부분의 정거장에는 사람이 없다. 미리 검색했던 버스 시간이 17시 40분이었는데 네일베 지도의 도착 예정 시각이 간당간당해서 조마조마했다. 빨리, 빨리, 하고 조급해하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조급해한다고 버스가 마하로 달릴 것도 아니고, 늦으면 밥 먹으면서 시간 보내고 기다리지, 뭐.

 

 

 

문화동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표 파는 사람은 없고 키오스크만 두 대. 이미 17시 40분이 지났기에 포기하고 가장 빨리 가는 걸로 표부터 구입하려 했는데 18시 10분이라고 나온다. 응? 17시 40분 다음 버스는 19시 30분인가 그랬는데? 뭐지?

......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본 버스 시간은 광주 터미널 기준이었다. 그랬다. 원래는 광주 터미널에서 왔다갔다 할 생각이었으니까. 중간에 문화동 터미널 쪽이 더 가깝다는 걸 알고 계획을 바꾼 거니까.

광주 터미널에서 출발해서 문화동을 찍고 시외로 빠져 나가니까 시간이 다를 수밖에. 결국 맞지도 않는 시간으로 혼자 조급해했던 거다. 😩

 

 

 

 

《 저 오락실은 지금도 영업하고 있을까? 》

 

18시 10분이 되자 버스가 오긴 했는데, 순창 가는 게 아니라 남원으로 가는 거다. 멍 때리며 바라보고 있는데 젊은 청년 한 명이 트렁크를 열어 빈 자리를 확인하더니 자전거를 꾸역꾸역 밀어 넣고 문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이 하나같이 "가방! 가방!" 하고 외친다. 가방을 두고 갔다는 거다. 학생은 바로 버스에 탈 생각이 아니었는지 기사님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나서 가방이 있는 곳으로 와 주섬주섬 챙겨 버스에 올랐다. 방전됐던 인류애가 다시 차오른다. 크으~ 👍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9분 늦게 도착했다. 버스 앞에 세워진 팻말의 지명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기에 기사님께 순창 가는 게 맞는지 확인을 하고 탔다. 내 뒤로 버스에 오르던 아저씨는 "버스가 늦은 거지요?"하고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하더라. 음... 🤔

 

 

순창 터미널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해졌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 길을 안다 생각해서 네일베 지도를 켜지 않고 숙소 쪽으로 향했다.

 

《 국수 가게가 있다고 해서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

 

《 그럴싸한 카페가 있고, 그 옆에 국수 가게가 있었다. 》

 

빈 자리가 애매해서 4인 테이블에 앉았다. 혹시나 주인이 옮겨 앉아 달라고 하면 뻘쭘해하며 옮길 각오를 했는데, 친절한 주인 분께서는 그저 주문만 받고 자리로 돌아가셨다. 친절한 분이고나.

 

 

 

국물이 있는 국수와 비빔 국수를 둘 다 먹어보고 싶어 양이 많은지 여쭈었더니 많다고 하신다. 사장피셜 양이 많다면 도전할 필요가 없다.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비빔 국수만 주문했다. 편육이 살짝 끌리긴 했는데, 일단 먹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버스 타고 돌아오는 동안 술이 좀 깼다 싶어 소주도 일 병 주문했다.

 

《 편육 다섯 점이 서비스로 나왔다. 쫄깃쫄깃. 》

 

《 비빔 국수는... 정말 양이 많았다. 》

혼자 다 먹을 수 있다고 두 개 시켰더라면 반도 못 먹고 포기할 뻔 했다. 하나 만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국물을 따로 주셔서 멸치 국수 국물에 대한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었다. 잔~ 뜩 집어 입에 넣자마자 고소함과 매콤함이 밀려 온다. 국수 못 하는 집은 입에 넣는 순간 '비빔면 끓인 거라 뭐가 달라?'라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는 이 가격이면 날마다 오겠다 싶더라.

국수 한 입 먹고, 소주 일 잔 마시고. 소주 일 잔 마시고, 편육 하나 집어 먹고. 소주 일 잔 마시고, 국물 세 번 떠먹고. 그렇게 하다보니 국수와 소주를 금방 비웠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좋은 주말 되시라는 인사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숙소인 금산 여관으로 향했다.

 


 

금산 여관 & 순창 유과

 

 

《 예전에 오뎅님이 운영하시던 카페 겸 바는 빈티지 옷을 파는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

 

 

 

 

 

이번에 안내받은 방은 108호. 지난 번에 묵은 103호보다 작지만 아늑함은 여전하다. 바닥 타일과 플라스틱 욕조다 똑같고. 정감있다, 진짜.

 

방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는데 고모한테 전화가 왔다.

고모에게는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는데 막내 아들의 사돈이 고모한테 그렇게 잘 한단다.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서 답례품을 보내는 게 매 년 고민인데, 텔레비전에 순창 유과가 나왔단다. 그걸 보는 순간 이거다! 싶어 전화를 하셨단다. 마침 내가 순창에 가 있으니 사서 보내라는 거다.

샤워도 하지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대빵(숙소 주인님이시다)님을 만나 이러저러해서 유과 사러 간다고 했더니 이 시각에는 다 문을 닫았을 거란다. 네일베에서 검색했더니 21시까지 한다고 해서 일단 가보려 한다 했더니 맞은 편에 있는 아폴로 제과를 추천해주신다. 일단 가보기로 했다. 식사할 겸 나가야 한다고 해서 같이 가다가, 길 안내를 받고 헤어졌다.

 

《 대빵님이 소개해주신 곳은 불이 켜져 있었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

 

네일베 지도는 안내를 종료한다며 퇴근해버렸는데 유과를 파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여긴가? 저긴가? 기웃거리다보니 불빛이 나오는 건물이 있어 들어가봤더니 맞다. 하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계세요?" "계세~요오~" 하고 물어도 응답이 없다. 빼~ 꼼~ 들여다보니 야구 중계를 보면서 일 하시느라 바쁘시다. ㅋㅋㅋ

유과를 살 수 있냐니까 잠깐만 기다리라 하신다. 이것저것 섞인 게 있고 유과 두 종류만 든 게 있다고 해서 각각 하나씩 달라 했더니 보자기에 쌓인 걸 가지고 나오신다. 택배로 보낼 수 있겠냐고 하니까 주소를 써달라 하셔서 고모 댁 주소를 써 드렸다. 한 상자에 60,000원이고 택배 비용은 6,000원. 126,000원 냈다.

일일이 연탄 불에 굽는 걸로 유명하단다. 그러고보니 안에서 하시는 작업이 그것인 듯 하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괜찮다 하셔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 여전하다. 》

 

여행 다니면서 이곳저곳의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각양각색이다. 시설도 좋은데 친절하기까지 한 곳도 있고, 삐까번쩍하지만 불친절한 곳도 있다. 허름해서 실패라 생각했지만 의외의 재미가 있었던 곳도 있었고, 그럴싸 해 보였지만 영 아니었던 곳도 있었다. 숙소 예약 어플에서는 별 다섯 개 기준으로 점수를 주게 되어 있는데 내 기준에서 숙소 평가는 둘 중 하나다. 다시 갈 곳, 다시는 안 갈 곳.

금산 여관은 어떠 하냐 하면, 다시 가고도 남을 곳이다. 갈 때마다 즐거웠다. 지난 번에 쓴 글에서는 5만 원이라는 1박 요금이 다소 비싸게 느껴진다고 썼지만, 생각해보면 1인실이니 저 정도는 받아야 한다. 3만 원 정도의 요금을 받는 곳은 2층 침대가 놓여진 도미토리니까 말이지. 게다가, 얼마 전에 썼다시피 20년 가까이 유지했던 내 머리 속의 1박 요금의 기준도 35,000원에서 60,000원으로 올랐기 때문에 비싸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 먹어보라며 싸준 유과 세 개 중 하나를 먹어 봤다. 진~ 짜! 맛있다. 》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유과를 그닥 즐기지 않는 편인데 생각했던 단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 정말 좋더라. 게다가 바삭바삭하고. 술 안주로도 그만이었다. 사들고 간 맥주 네 캔과 함께 먹어 치웠다.

그렇게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대빵님이 밖으로 나오라고 부르신다. 못 이긴 척 나갔더니 대빵님을 포함해 다섯 분이 불을 피워놓고 대화를 나누며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슬그머~ 니 한 자리 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부른다고,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는 이렇게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의 상처가 아무는 느낌. 모르는 사람을 보면 일단 적개심부터 채워넣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 어제의 흔적. ㅋㅋㅋ 》

 

 

 

 

 

 

 

 

 

 

 

《 위에서 보면 이렇게 중앙 정원이 있는 전통 한옥임을 알 수 있다. 》

 

《 옆 집에서 민원이 들어와 큰 돈을 주고 나무를 베어내셨단다. 아깝다... T^T 》

 

 

 

 

 

 

 

 

 

지난 번에 묵었을 때에는 마루에 잠시 앉아 있다가 떠났지만, 이 날은 대빵님이 내려주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아프리카에서 가지고 오신 커피 콩으로 직접 만든 커피는 무척 진했다.

 

《 바오밥 나무 열매란다. 》

바오밥 나무를 실제로 볼 수 있을까? 보고 싶다. 뭐,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지난 해에 금산 여관에서 캄보디아 맥주를 마시며 환갑이 되기 전에 다녀오자고 마음 먹었는데 올해 3월에 다녀왔으니까. ㅋ

 

 

 

《 대빵님이 마루에 누워서 한 숨 자라고 해서 누웠더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

 

 

 

 

식사하고 가라 하셔서, 예쁜, 뭔가 부잣집 같아 보이는 집들을 지나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창림동 두부 마을

 

 

 

 

어제 같이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셨던 분이 계신 곳이었다(솔직히 말하자면, 마스크 쓰고 계실 때에는 몰랐다. 15시면 끝나니까 낮술 먹자고 하셔서 마음이 어찌나 흔들렸는지 모른다. ㅋ). 황태 순두부를 시켰는데 꼬~ 소~ 하고 담백했다. 간 맞춘답시고 새우젓을 넣었는데도 짜지 않더라. 어디에서 주워들은 것 같다. 잘 만든 새우젓은 안 짜다고. 게다가 직접 만드셨다는 고추장이 새콤하니 정말 맛있었다. 대빵님이 고추장에 밥 비비면서 하신 말씀이 "부럽지?"였다. ㅋㅋㅋ   모두부에 김치를 올려 먹으니 그것 또한 일품. 해장이 절로 되더라. 원래 두부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맛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창 가면 무조건 저기서 한 끼 해결하자고 마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옆에 있는 공간을 보여주신다. 와... 이건 정말... 작은 박물관이다. 전국 여기저기에 7080 세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박물관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는데, 어지간한 곳보다 훨~ 씬 낫다. 엄청나다.

 

 

 

 

《 글씨를 써주면 그 주변을 파내어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

 

 

《 와... 그저 감탄 밖에 안 나온다. 진짜 대단하다. 》

 

《 투명 창이 있어서 비 오는 날은 더 기똥찰 것 같다. 》

 

《 크으~ 》

 

《 요즘 사람들은 전화번호부가 왜 영어로 Yellow Book인지 모를... 아니, 전화번호부 자체를 모를랑가? 》

 

《 와, 씨!!! LG 아하 프리!!! 》

꽂혀 있는 워크맨은 파나소닉 제품이지만 본체와 충전지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도크는 LG에서 만든 아하 프리 전용 제품이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졸라 기어코 샀었는데 일주일 만에 기숙사에서 도둑 맞았고, 도둑놈이 판 치는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는 편지 한 장 남겨둔 채 집 나갔더랬다. 😑

 

 

 

 


 

한정당

 

밥을 먹고 나서 근처 카페로 향했다. 고추장 명인이 운영하던 곳인데 후손이 물려 받아 8억인가를 들여 인테리어를 새로 한 뒤 카페를 만들었단다. 안에 들어가보니 돈 들인 티가 난다. 로또 1등 되서 큰 돈 생기면 큰 도시 어딘가에 아파트 사지 말고 이런 집 짓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차를 마시며 노닥거리다가 채계산 출렁다리로 향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루 더 묵을까 고민했기에 채계산은 다음 날 가고 그냥 낮술 마실까, 진지하게 고민했더랬다. 마침 갈아입을 옷도 하루치를 더 챙겨왔기에 하루 더 묵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정말, 정~ 말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이 날 집으로 돌아왔다.)

 


 

채계산 출렁다리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가면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휴일이나 휴가철이 아니라면 여기에 세우지 말고 자그마한 굴다리를 지나 산 바로 앞 주차장에 가면 된다.

 

 

 

 

 

 

 

 

 

 

 

 

 

 

 

 

 

 

 

 

 

 

https://youtu.be/SXiiR1RD_8Q

 

 

 

 

 

 

 

《 흔들림이 느껴지니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리일게다. 》

 


 

향가 터널

 

대빵님이 추천해주셔서 들렸다가 가기로 했다.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이용한 곳이라 한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816725&cid=42856&categoryId=42856 

 

순창 향가터널

[개요] 향가터널은 일제강점기 말 순창과 남원, 담양 지역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일본군이 만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목포와 나주, 송정, 담양, 순창 등 호남의 곡창지대를 관통하던 철도가 이

terms.naver.com

 

 

《 근처에 주차장이 있는데 이 따위로 차를 세워두고 있다. 》

 

 

 

터널 내부는 꽤 시원했다. 대빵님 말로는 예전에 여기에 맥주 챙겨들고 가서 마시고 그랬단다.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 하루 더 묵을까 했지만, 여행력(?)이 방전되어 집이 그리워졌다.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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