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게스트하우스'로 검색을 했더니 가장 먼저 나온 곳. 요즘 세상에 여관이라는 상호로 장사를 하다니, 뭔가 심상치 않다! 다녀온 분들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니 여긴 무조건 가봐야겠다 싶더라. 곧바로 예약.
블로그(https://blog.naver.com/tinyss99)에 가면 위쪽 또는 왼쪽에 '금산 예약 하기'가 있다. 거길 누르면 월 단위로 올라오는 글을 볼 수 있다. 댓글을 남겨 예약이 가능할 경우 입금하면 된다. 1인실 기준, 평일 5만 원이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가 평일 1박에 35,000원 정도인 것을 떠올린다면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1박에 35,000원 이하로 받는 곳은 대부분 2층 침대로 되어 있는 도미토리. 하지만 금산 여관은 1인실이 50,000원이니까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는 판단은 섣부른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뒤져보면 혼자 자라고 5만 원 아래로 받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화장실 딸린 방을 혼자 쓰면서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자는 비용으로는 과하지 않습니다, 분명. (2023.09.14. 추가)
티맵에서 검색하니 바로 나온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공영 주차장으로 목적지를 옮겨 설정하는 게 안 되더라. 네일베 지도를 켜서 금산 여관을 찾은 후 바로 옆에 있다는 공영 주차장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용궐산에서 차로 30분이 채 안 걸린다.
공영 주차장은 별도의 통제가 없는 무료 주차장. 차가 제법 많았는데 딱 한 자리 비었기에 잽싸게 거기 세웠다. 자리가 없을 때도 있지만 수시로 차가 들락날락해서 한, 두 자리 정도는 금방 나는 듯. 꼭 저기가 아니라도 근처에 다른 공영 주차장이 있으니 거기 세워도 된다. 금산 여관 근처의 가마솥 식당을 검색한 후 거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선택하면 된다.
차에서 내리니 자그마한 골목길 안쪽으로 금산여관이라는 낡은 간판이 보인다. 오~ 낡은 철문을 살포시 열고 들어갔는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도 없다. 일단 사진부터 찍자. ㅋ
위 사진에 보이는 곳이 카페인데 저기도 문이 잠겨 있었다. 식사하고 온다는 메모가 있더라. 아! 나도 밥 먹어야지? 딱히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뭐라도 먹어야겠더라. 일단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생각으로 지도 앱을 열었다. 조금 걸어가면 GS25가 하나 있다.
골목길에 감탄하며 편의점을 향해 걷고 있는데 오른쪽으로 제법 큰 식당이 보였다. 메뉴를 보니 추어탕과 곰탕. 들어갔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바쁘게 일하고 계셨다. 단체 손님이라도 오는 모양이다. 한 명이라고, 식사 되냐고 물어봤더니 구석으로 안내를 해준다. 단체 손님이 온다는 것 때문에 그냥 나갈까 싶기도 했지만 달리 식당을 찾아 헤매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앉았다. 곰탕을 주문.
내가 아는 곰탕은 맑은 국물인데, 빨간 양념이 들어간 걸쭉한 국이 나왔다. 이게 곰탕? 맛을 보니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되겠더라. 후추만 조금 뿌리고 파를 다 때려 넣은 뒤 곧바로 밥을 말았다. 부지런히 배를 채우고 있는데 등산복 입은 할저씨, 할줌마들이 바글바글 몰려온다. 잔을 채우네 마네, 한 마디 하네 마네, 난리다. 하아... 이번 달은 뭔 마가 꼈나. 울릉도에서도 할저씨, 할줌마들 지긋지긋하게 봤다 싶었는데 여기서 또...
밥을 먹고 나서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안주로 먹을 마른 오징어도 하나 사고. 왔던 길을 고스란히 다시 걸어 털레털레 금산 여관으로 돌아갔다.
기웃거리고 있자니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다. 예약했다니까 바로 내 이름을 말하시더라. 이 날 나 밖에 없었나보다. ㅋ 침대와 온돌 중 어디가 좋냐고 물으시기에 맨 바닥이 좋다고 했다. 103호 방을 안내 받았다.
파~ 란 플라스틱 욕조. 촌스럽기 짝이 없는 바닥 타일. 하나, 하나가 전부 추억이다. 낡고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정겹게 다가왔다. 맘에 들었다.
온수 사용 방법과 보일러 작동 방법을 전해 들은 뒤 공용 공간으로 향했다. 사장님은 장기 투숙(?) 중인 오뎅님과 함께 식사하고 오겠다 하신다. 그동안 잘 좀 봐달란다. ㅋㅋㅋ 처음 보는 게스트한테 맡겨놓고 자리 비우는 쿨함이라니.
텔레비전 위에 롱노즈가 놓여 있고, 뺀찌 어디 뒀냐고 찾던 것도 생각났다. ㅋㅋㅋ
사들고 간 맥주를 냉장고에 넣고 한 캔만 땄다. 가지고 간 미야베 미유키의 『 비탄의 문 2 』를 꺼내 읽기 시작. 예~ 전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고 꼴값 떤다 생각했더랬다. 저럴 거면 집에서 볼 것이지, 여행 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생각한 거지. 하지만 이제는 여행가서 책 보는 맛을 알게 됐다.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등이 있어 책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여행지에서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거든.
한창 책을 읽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저녁 메뉴 뭐라 뭐라 하던데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저녁으로 뭐 먹을 건지 사장님이 알려달랬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돼. 다음 전화는 예약하는 방법을 묻는 전화였다. 네일베에서 검색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마지막 전화는 나이 지긋해보이는 아줌마였는데 숙박료를 물어보더라. 나도 손님이라고 했는데도 그래서 너는 얼마 내고 갔냐고 끝까지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 한다. ㅋㅋㅋ 여기는 다 비싸다며 전화 너머로 투덜거리는 게 들리더라. 나한테 그런 말을 한다 한들.
나중에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안 받으면 손전화로 전환된단다. 그냥 둘 것을, 괜한 오지랖으로 일을 방해한 건 아닌가 모르겠다. 안 받고 무시하기에는 벨소리가 너무 우렁찼다고. ㅋ
혼자 사들고 간 맥주를 홀짝거리며 책을 읽었다. 사들고 간 다섯 캔 중 네 캔을 다 마시고 마지막 캔을 ⅓쯤 비웠을 때, 장기 투숙 중이라는 오뎅님이 커피 한 잔 하겠냐고 물어본다. 냉큼 그러겠다 하고 읽던 책을 덮어둔 채 카페로 향했다.
자그마한 카페지만 분위기가 제법 괜찮았다. 게다가 듣는 사람이 되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나도 모르게 내 얘기를 줄줄줄 꺼내어 놓을 정도로 오뎅님이 잘 들어주시기도 했고.
오뎅님은 3주 전에 와서 카페를 떠맡게 됐단다. 마침 원래 카페 주인이 온다기에 기다렸다. 라스푸틴 코스프레라도 한 것 같은 분이 등장. 괴이한 인물이었다는 라스푸틴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원래의 카페 주인이라는 분은 무척이나 눈빛이 선했고 말하는 것도 모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잔잔했다. 돌아온 뒤 유튜브에서 '금산 여관'으로 검색해봤더니 방송에 꽤 여러 번 소개되었더라. 직접 뵌 분들이 방송에서 나왔다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근래) 직접 뵌 분이 방송에 등장한 건 마츠다 부장님 뿐이었는데 말이지.
맥주를 네 캔 이상 마신 상태에서 병맥주도 세 개를 마셨더니 술기운이 올라온다. 들어가보겠다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바닥이 뜨~ 끈~ 뜨~ 끈~ 하니까 정말 좋다. 샤워하고 자야겠다 싶어 온수기를 작동시켰고, 알려주신대로 15분이 지나 뜨거운 물을 틀었는데 미지근하다.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아 덜덜 떨며 대충 씻었다. 그마저도 추억이다. ㅋ
아침에 일어나 사진을 찍고 툇마루에 앉아 잠시 멍 때리고 있다가 슬슬 가야겠다 싶어 자리를 떴다. 먼저 가지 말고 기다리라 하셨는데 용마루길 갔다가 아버지한테 들린 뒤 집에 가려면 좀 서둘러야겠다 싶더라.
검색해보니 금산 여관에서 아버지 묘까지는 차로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그동안 광주 쪽으로 가서 맘에 들지 않는 모텔에서 자느라 힘들었는데, 앞으로는 금산 여관에서 자고 다음 날 아버지한테 들리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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