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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0년 05월 30일 토요일 맑음 (이곳의 지박령이 되자!)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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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서 그~ 렇~ 게 졸업 이후의 계획을 물어봤더랬다. 공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졸업 후에는 진학을 할 것인지 취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돌아갈 것인지. 학기가 끝날 무렵 물어보고, 방학 전에 종이를 나눠주며 쓰라 하고. 처음에는 외국인이니까 몰래 잠수 타고 불법 체류자가 될 것을 걱정하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특정 학교에 보내거나 하면 뭔가 받는 게 있지 않을까 싶더라. 뭐, 자세한 건 모르니까.

  • 나는 입학 때부터 줄곧 졸업 후 귀국이라고 얘기했다.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니니까 졸업 후 복직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한국에서 회사에 다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하는 친구는 거의 없었지만 회사 생활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자주 질문을 받았다.
    그 때마다 나는 최악이라고 대답했다. 일본어가 짧아서 뭐가 어떻게 안 좋은지 말하는 건 어렵지만, 동료들 중 멍청이들이 많다고, 월급 도둑놈들이 많다고 했다.

  • 복직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40년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다가, 가장 암울한 곳으로 들어가야 했으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10년 넘게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입사한 지 13년, 전에 했던 것을 포함하면 17년의 경력자지만 갓 입사한 신입 사원과 다를 게 전혀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다.

  • 낯선 곳에 와서 낯선 업무를 배운 지 얼추 두 달. 생소하기만 했던 것들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여기는 정말 좋은 곳이라는 것.
    일단 근무 시스템이 훌륭하다. 2007년에 입사해서 처음 2년인가를 제외하고는 쭈~ 욱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은 근무를 했다. 교대 근무를 하기도 했고, 날마다 출근과 퇴근 시간이 달라지는 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항상 같은 시간에 가서 같은 시간에 오게 되니까 행복하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 게다가 점심 시간과 운동 시간이 한 시간씩 보장이 되니까 회사에 머무는 아홉 시간 중 일곱 시간이 일하는 시간인 거다.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도 자유로워서 일이 도저히 안 된다거나 힘들다 싶으면 수시로 쉬어도 된다.
    업무 내용도 좋다. 예전에 하던 일은 실시간으로 처리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하지 않아도 되니까 한결 마음이 편하다. 물론 내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더해야 하니까 한 사람 몫을 온전히 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니까.

  • 사실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이나 업무 내용 같은 건 적응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이다. 전에 있던 곳은 그야말로 7H AH 77I 집합소. 경력 길고 나이 많은 것들은 전형적인 꼰대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돼.' 가 수두룩~ 했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는 것도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자기가 무슨 대단한 권한이나 되는 걸 베풀어서 누릴 수 있도록 한다고 생각하더라. 밑에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 기본도 못하고 그로 인해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러면서 본인이 챙길 것들은 다 챙기려 든다. 나 같으면 미안한 마음에 하다 못해 청소라도 더 하고 잡다한 일이라도 도맡으려 하겠는데 그런 것도 없다. 개뿔도 모르면서 월급 받아먹기 급급한 거다. 그야말로 월급 도둑놈. 그런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물론 아직 얼마 안 되서 사람들 파악이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달 정도 생활해보니 일단 사무실 내의 최상위 포식자(?)는 꼰대 포스가 1도 없는 분. 권위 의식 같은 것도 없고 불필요한 허례허식 같은 것도 싫어하시는 듯 하다. 말은 다소 거칠지만 상대가 마음 다칠까봐 걱정하는, 전형적인 츤데레 캐릭터. 거기에 팀장도 무척이나 좋은 사람이다. 上에게 깨지고 오면 中은 下들 모아놓고 깨기 마련인데, 팀장은 그런 게 없다. 뭔가 싫은 소리를 들어도 딱 자기까지 듣는 걸로 끝. 그걸 굳이 아랫 사람들에게 옮기지 않는다. 이게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볼수록 참 좋은 사람이고나 싶다. 나도 나이 먹고, 짬 차면,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다들 뭔가 자기만의 특기가 있다. 프로그램을 잘 짜서 동료들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도 있고, 어려운 일을 쉽게 풀어서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다들 확실한 특기가 있다보니 경력이나 나이를 앞세워 무시한다거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분위기다. 그저 저가 제일 잘 났다며 개뿔도 없는 것들이 건방만 떠는 전 파트의 것들과는 다르다.

  • 시스템도 괜찮고, 사람들도 좋고, 그러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지금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는 내 미숙한 실력 말고는 없는 거다. 하루 빨리 근무에 능숙해지고 나만의 특기 같은 게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걸 빨리 해내라고 쥐어짜는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임할 수 있다. 그러니 실수가 줄고.

  • 나불나불 말이 길었는데,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다는 거다. 굉장히 암울할 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정말 좋다.

  • 게다가 숙소도, 룸 메이트도 무척이나 훌륭하다. 밖에 방을 얻었다면 월세에, 가스/수도/전기 요금에, 월 50만원 이상은 꼬박꼬박 깨질텐데 1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충분한 거다. 그런 이유로 바로 돈이 좀 모일 줄 알았지만... 필요한 것들, 사실은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에 버리고 온 것들을 다시 지르고, 월급 많이 들어온다고 부자가 된 기분에 마구 질러대고 이러다보니 두 달 월급 받아서 고스란히 다 까먹었다. 다음 달부터는 좀 덜 쓰고 더 모아야 한다.

  • 지금 상태에서 차만 딱 나와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소소하게 차박 캠핑이나 다니면서 쉬고 그러면. 거기에 코로나 문제가 해결되어 일본에 다녀올 수 있게 되면 더 좋겠고.

  • 일본에 보낸 EMS 다섯 개. 가장 걱정했던 건 주소가 이상했던 S쨩이었는데 잘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니 병원과 모토조노 선생님에게도 잘 갔을 거라 생각한다.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이것저것 보내주고 싶다.

  • 남들은 집 장만하고 애 키우느라 바쁘다는데, 일본 다녀와서 저축한 거 다 까먹고 빚만 생겼다. 게다가 차도 죄다 은행 빚으로 살 생각인지라 10년 정도는 빚 갚으며 살아야 할 팔자가 됐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보낸 시간은 무척이나 행복했고 지금도 그리울 정도로 좋은 기억이니까. 그리고 빚 갚는 것도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연체하는 일 없이 꼬박꼬박 잘 갚으면 되는 거니까, 뭐.

  • 한 군데에서 20년 가까이 버티고 있던 ㅺ도 있는데, 이제와서 5년 지나면 칼 같이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한단다. '진작에 저렇게 되었어야 하는데 왜 이제서야...' 하는 마음도 있고, 지금 있는 곳이 무척 맘에 드니까 '여기에서 오래 버티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는데, 앞으로 일이니까 뭐.

  • 당장은 다른 사람들한테 폐 끼치지 않고 온전히 한 사람 몫 하면서 월급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게 목표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나 일본어 쪽으로도 욕심을 좀 더 내야지.

  • 요즘 일기를 몰아서 읽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던데 오늘 일기는 재미 없겠고만. 누굴 까고 그래야 재미있을텐데. ㅋㅋㅋ

  • 벌써 아홉 시 반이다. 대충 씻고 영릉에 다녀올까 한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세라 돌아다니지 않아야 하는데 밀폐된 공간이 아니니까, 바람 쐴 겸 해서. 다녀오면서 아울렛에 들러 회사에 신고 다닐 운동화 있나 한 번 둘러봐야 되겠고. 오후에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잠시 책 좀 볼까 싶다. 내일은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야 하고.

  • 다음 주가 지나면 동료들 앞에서 브리핑도 해야 하고, 상황 근무도 있고. 상황 근무가 끝나면 휴가 받아서 포항에 다녀와야 한다. 6월도 바쁘게 지나갈 것 같다.

  • 어제인가 그제인가, 외삼촌한테 전화가 왔던데 뭔 일인지 모르겠다. 일단 일시 정지 중이라는 메시지가 가지 않았으니 귀국한 건 알고 있을테지. 어쩌면 의료보험료 때문에 귀국 & 복직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의료보험료를 내고 싶지 않다고 보험 공단에 민원을 넣었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 역시, 전화로 해결해야 한다. 가족이 힘이 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확실히 짐이다. 굳이 마음에 상처 받아가며 가족을 챙길 필요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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