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지를 이 동네로 옮긴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축구 보러 자주 가게 되서 좋겠네.'라고 했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스틸야드까지 금방 갈 수 있으니까 시즌 티켓을 살까 고민했더랬다.
시즌 티켓 샀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4일 근무하고 하루 쉬는데 경기 있는 날과 쉬는 날이 겹치지 않으면 홈이든, 원정이든, 보러 갈 수가 없다. 낮 근무를 마치면 18시가 되는지라 포항까지 가는 게 너무 빠듯하고, 다른 지역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올해 첫 직관이 대구와의 원정 경기였을 정도로, 경기 있는 날과 쉬는 날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경기 있는 날마다 휴가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침 21일은 쉬는 날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있는 수원까지는 너무 멀다. 갈까 말까 고민했다. 통행료만 3만 원 정도 나올 거고 기름 값도 만만치 않으니까. 한~ 참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집에만 있으면 후회하겠다 싶어 냅다 출발했다. 집을 나선 게 15시.
평일 낮이라 차는 거의 막히지 않았다. 하지만 30분 밖에 안 됐는데 잠이 온다. 바로 휴게소에 들어갔다. 녹색 몬스터를 한 깡통 샀는데 멜론 맛이 느껴진다. 괜히 샀다. 그냥 마시던 핑크 색 살 걸. 운전하고 가면서도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이러고 있었다.
좀처럼 잠이 달아나지 않아서 다음 휴게소에 또 들렸다.
티맵과 다른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정 시간이 30분 정도 차이 나더라. 티맵은 정체 시간을 예상해서 그걸 포함해서 알려주는 거고, 다른 내비게이션은 곧이 곧대로 도착 예정 시간을 보여주는 거다. 티맵이 확실히 믿을만 하다. 수원 근처에 가니 차가 막히기 시작하더라. 정체 때문에 가는 둥 마는 둥. 게다가 초행 길이라서 미리 차선 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어찌저찌 도착. 주차장에 들어갔다. 출발 전에 혹시나 하고 수원 종합 경기장을 검색해봤는데 안 했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수원 종합 운동장은 미리 주차 예약을 해야 한다. 주차 예약을 하지 않으면 차가 들어갈 수 없다. 인터넷으로 차와 휴대 전화 번호만 입력하면 되니까 간단하긴 하다.
다행히 예약을 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의 아주머니가 돈 받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주차비 안 내도 되냐니까 뭐 보러 왔냐고 물어본다. 축구 보러 왔다니까 1,000원이란다.
https://www.suwonparkingbaseball.or.kr/ ← 여기에 가서 주차 예약을 하면 됩니다. 주차장에 들어가기 전에 자동 인식 시스템이 예약 차량인지 아닌지 판단합니다. 축구는 1,000원이고 야구는 2,000원입니다. 돈을 내고 영수증을 받으면 잘 가지고 있다가 나갈 때 제출하면 됩니다. 분실하거나 하면 주차 요금을 다시 내야 하는데 정액제가 아니라 시간으로 계산한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7월 1일부터 주차 요금이 3,000원으로 오른다는 플랑 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축구도 2,000원으로 오르는지는 모르겠네요. 주차장은 그럭저럭 여유가 있어서 빈 공간 찾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조금 걷는 게 싫어서 이중 주차 하거나 주차 라인이 없는 곳에 세우는 양아치들이 많았습니다.
돈 내고 표를 샀다. 사원증 보여줘도 무료, 유공자증 보여줘도 무료인데 원정석 표는 안 준다. 일반석 표 받은 뒤 표 사려는 사람들과 바꿔도 되는데 귀찮기도 하고 없어 보이기도 해서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냥 무료 표 받아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포터 쪽에 앉았는데 다음부터는 그냥 서포터 자리 바로 옆 일반석으로 가려고 한다. 경기 시작 전에 맥주 좀 마시고 텐션이 잔뜩 올라간 상태에서 소리도 지르고 그럴 거면 서포터 쪽으로 가는 게 맞지만 뻘쭘해서 박수 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가지고. 😑
평일 저녁 경기라서 사람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엄청 많더라. 100명 넘겠던데. 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평일 저녁에 장거리 원정을 온 걸까? ㄷㄷㄷ
응원 리딩하는 사람들, 참 대단하더라. 특히나 북 치는 분. 몇 년 동안 본 사람인데 열정도 대단하고 체력도 엄청나다고 느꼈다. 왼손으로는 북 치고 오른손으로는 자그마한 심벌즈 같은 걸 치는데 동시에 그 동작이 된다는 게, 그걸 박자 맞춰가며 한다는 게 대단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경기 마치고 바로 내려갈 생각이라 술은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매점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못 봤다. 경기는... 답답했다. 좀처럼 공략을 못 하더라. 양 팀 모두 허리를 단단히 조이고 있어서 공격다운 공격이 나오지 않았다. 포항은 뒷 공간으로 때려 넣는 패스를 자주 넣었는데 좀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이수빈 퇴장 이후에는 수적으로 밀려 그렇잖아도 시원찮은 공격이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승우가 확실히 잘 하긴 잘 하더라. 혼자 막 헤집고 다니니까 수비가 몰릴 수밖에 없었다. 첫 실점은 너무 잘 맞은 거라 뭐라 할 말이 없고, 두 번째 실점은 수비와 골키퍼가 공을 미루다가 먹은 거라 너무 아쉬웠다. 경기 끝나기 직전에 한 골 넣긴 했지만... 뭐, 결과로도 내용으로도 질만한 경기였다.
수원은 가변석에 앉은 서포터들과 일반석에 있는 사람들이 응원을 따로 하는 게 신기했다. 치어 리더 동원해서 응원을 아예 따로 하더라. 예~ 전에 성남 서포터들끼리 내분이 일었을 때 서포터 그룹이 세 개로 쪼개져 응원하는 걸 보긴 했는데, 수원 FC의 응원 형태는 확실히 희한하긴 했다.
경기 끝나고 바로 내려왔다. 피곤해서 숨질 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