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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2022 일본 여행 ⑤ 아폴로 시네마 텐노지 (일본에서 영화 본 이야기 feat. 은하영웅전설)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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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할 때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 날씨의 아이 』가 개봉했는데 한국으로 갈 날이 멀었으니 일본에서 봐야겠다 싶더라. 제대로 알아들을 자신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그림만이라도 보자'는 생각으로 근처 극장에 갔더랬다.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회원 가입을 했고.

다행히 그럭저럭 알아들어서 재미있게 보고 나온 기억이 있다. 여행 3일째인 이 날은 아무 계획도 없었기에 일찌감치 숙소에 갔다가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유학할 때보다 형편 없어진 일본어 실력 때문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경험이라 생각하고.

 


예약한 영화는 『 은하영웅전설 』 극장판

구글 지도에는 아직도 일본이 집으로 설정되어 있다.

은하영웅전설 』은 다나카 요시키가 쓴 SF 대하 소설이다. 본편 열 권, 외전 네 권의 구성. 황제가 다스리는 은하제국과 민주주의를 채택한 자유행성동맹, 경제 공동체인 페잔의 세 세력이 아웅다웅하는 이야기인데, 우주 전쟁 이야기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정치 소설(?)이다. '밥을 먹었다'로 충분할텐데 '토지에 스며든 농부의 피땀이 태양과 물을 만나 맺어진 결실이 조용히 배를 채워왔다' ← 이런 식으로 써놔서 요즘 읽기에는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고 말을 질질 늘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 삼국지 』를 뛰어넘는 명작이라 생각한다.

OVA와 극장판이 여러 편 만들어졌고 최근에 다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한국에 DVD로 나오면 다행일까, 극장에 걸릴 가능성이 없는지라 일본에 있을 때 한 번 보자 싶었던 거다.

 

 

일본에 있었을 때에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던 풍경인데, 3년 만에 봤다. 그리웠던 장소에 가니 뭔가 몽글몽글한 기분이다.

 

여행 다니면서 세 끼 다 챙겨먹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배 고프면 적당한 식당에서 배를 채운다. 이 날은 텐노지 역 안에 있는 551 호라이에 가서 교자랑 부타망(돼지 고기 만두. 다른 지역은 니쿠망(니쿠는 고기, 망은 만두를 줄인 말)이라 부르는데 오사카에서는 부타(돼지)망이라 부른다.)을 사서 숙소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 역 쪽으로 걷다 보니 갑자기 카레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 종종 들렸던 카레 가게가 있었거든.

텐노지 역 출구 바로 앞에 있던 드럭 스토어는 펫샵으로 바뀌어 있었다. 좀처럼 변화가 없었기에 뭔가 바뀌면 바로 눈치챌 수 있다. 종종종 걸어 코코이치방야에 도착!

 

 

학교 다닐 때 종종 이용했던 가게다. 일본 카레가 정말 먹고 싶었는데 잘 됐다.

 

종류가 워낙 많아 제법 고민을 해야 했다. 매운 단계는 7단계로 주문.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한국의 카레와는 맛이 확실히 다르다. ㅇㅇ에 살 때 일본 카레가 먹고 싶어서 왕복 두 시간을 운전해서 코코이치방야에 갔다 왔는데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이 아니었다. 한국화 되었더라. 집 근처에 있는 일본 카레 전문점에서 먹은 것도 내가 기억하는 맛이 아니었다.

한 입 딱 떠넣는 순간 이거다! 싶더라. 정신없이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카레는 철저하게 일본화되어 대부분의 가정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카레를 만들어 먹는다. 굉장히 흔한 음식인데 한국의 맛과 달라서 먹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밥을 먹고 나와 드럭 스토어에서 마스크랑 로션을 구입했다. 숙소에 들어가서 잠깐 뒹굴거리다가 18시 50분에 다시 나왔다. 이쪽인가 저쪽인가 한 번 헤맨 뒤 극장을 제대로 찾아가서 예매한 표를 발급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우리 세대에게는 성경과도 같은 수준이라 할 수 있는 『 슬램덩크 』도 극장에서의 상영을 앞두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은 11월 11일에 개봉. 하루 차이로 못 본다. 한국 개봉은 2023년이라더라. 😭

 

빈둥거리며 굿즈를 보고 있다가 시계를 보니 19시 43분이더라. 19시 45분 영화였기에 상영관에 들어가야 했는데 어디인지 모르겠더라고. 돈 세고 있는 직원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가 표를 보여주고 상영관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알려줬다.

 

어? 상영관은 맞게 찾아갔는데 입구가 막혀 있다. 들어갈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왜지?

 

아직 상영 시간이 안 됐는데? 왜 벌써 막아놨지? 옆으로 살짝 비집고 들어갈까? 하지 말라는 짓은 안 하는 게 좋은데... 고민하다가 다시 직원에게 갔다. 들어갈 수 없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어라? 영화 시작 전에 입장이 마감이라고? 어떻게 방법이 없냐고 물었더니 상영 중이라서 어쩔 수 없단다. 하아...

입구의 직원이 도도독~ 뜯어가게끔 표 아래쪽에 점선이 있는데 그걸 뜯지도 않은 채 그냥 나와야 했다. 그래, 바보 짓을 했으니 어쩔 수 없지. 한숨을 내쉬며 학교 다닐 때 가끔 가던 바로 향했다.

 

 

수업을 마치면 15시가 채 안 되는데 그 시각에 문 열고 술 파는 몇 안 되는 가게라 가끔 갔더랬다.

 

맥주 큰 걸로 하나 시켜서 빈 테이블에 앉아 홀짝거렸다. 그러면서 손전화를 봤는데...

 

19시 23분인 거다. 어라? 아까 시계를 봤을 때에는 43분이었는데? 어떻게 시간이 거꾸로 가? 이게 무슨 일이지? 잽싸게 다시 손전화를 보니 55분이다. 이게 뭐야? 왜 다르지?

… 시계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졌더랬다. 급하게 충전해서 다시 켠건데 GPS를 제대로 잡지 못해 시간이 엉뚱하게 설정된 거였다. 하아, 진짜... 염병할 순토 카일라시. 엉망진창이고만.

부리나케 맥주를 들이키고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아까 그 극장 직원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꼬. 다음 시간에 해당하는 표를 들고 가서 지금 들어갈 수 없냐고 물어본 거잖아. 바보 짓을 했다, 정말.

 

다시 극장에 가니 여직원이 서 있기에 표를 보여주고 들어갔다. 여행 때마다 바보 짓으로 블로그에 올릴 만한 글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ㅋ

 

의자는 넓고 푹신했다. 마흔두 개의 좌석이 준비되어 있는데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이 영화를 봤다.

 

상영 전에 광고하는 것도 우리와 똑같았다. 다만 지역 광고가 대부분이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

 

손전화 꺼라, 앞 좌석 발로 차지 마라, 시끄럽게 떠들지 마라, 조심할 사항을 알려주는 것도 우리나라와 똑같았다. 영화를 촬영하면 불법이라 잡혀 간다고 겁 주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촬영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한글로도 나오더라.

 

영화는 본편 4권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요제프 2세가 납치되어 자유행성동맹으로 향하고, 율리안은 페잔으로 부임하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 반에 반도 못 알아들었다. 이렇게 일본어 실력이 줄었고나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21시가 넘었다. 밖에서 혼자 마실까 하다가 궁상스러울 것 같아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태블릿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고 잤다.

 

 

 

▶◀ 이태원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몸과 마음을 다친 분들의 쾌유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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