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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2013.07.25. 수원 화성, 융건릉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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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구린 덕분에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책을 좀 읽고 있다. 조선 시대를 다룬 책들을 주로 읽고 있는데 어찌 하다보니 사도세자와 관련된 책을 보게 됐다. 사도세자가 묻힌 곳이 수원 화성에 있다기에 날 잡아 가보기로 마음 먹었고 차일피일 미루다 다녀왔다.
며칠동안 지독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자 말도 못하게 더워졌다. 차를 타면 에어컨을 켜기보다는 창문 여는 걸 선호하는 나인데도 그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집에서 화성 가는 내내 에어컨을 켜고 갔다. 그만큼 더웠다.

 

내비게이션에 '융건릉'이라고 치자 바로 검색이 된다. 고속국도를 이용하면 통행료가 1,800원. 일반국도로 가면 당연히 0원. 그런데 걸리는 시간은 똑같다. 뭐, 몇 년 전에 숫하게 왔다갔다 한 길이라 대충 알 것 같아 일단 국도를 택했다.

 

도착하긴 했는데... 주차장 정문이 어째 휑~ 하다.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차단기도 안 보인다. 뭐지? 일단 들어가서 차를 세웠다. 그런데 돈 내고 들어가라는 사람도 없고 뭔가 밋밋하다.
평일 낮이라 주차장이 널널하기에 나무 그늘 밑에 대충 세워두고 나가봤더니... '주차장 운영자가 선정되지 않아 당분간 무료 주차' 란다. -_ㅡ;;;
소형이 1,000원이었던 거 같은데 돈 굳었다. ㅋㅋㅋ

 

정문을 기준으로 왼 쪽, 오른 쪽에 주차장이 있다. 평일 낮이라 차 댈 곳은 충분하다.

 

분위기 있는 매표소. 어른은 1,000원이다. 표 사자마자 작은 쪽을 부욱~ 뜯어내고 준다.

 

융건릉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마다 빠지지 않는 사진. 매표소 바로 앞, 정문 옆에 있다. 어찌 보면 우리 유산은 우리 자신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것 같다. -ㅅ-

 

융건릉은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과 정조가 묻힌 건릉을 일컫어 부르는 이름이다. 좌우 대칭으로 묘가 꾸려져 있고 그 묘를 빙 둘러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입구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안내관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을 편집하면서 크기를 줄였더니 글자가 잘 안 보인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그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묻힌 곳이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을 써서 남편인 사도세자를 미친 ×으로 몰아간 주역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여자인데 같이 묻었다는 게 참...

 

사도세자는 고종에 의해 '장조'로 추존되었다. 그러나 죽고 나서는 다 부질 없는... 능, 원, 묘 명칭을 모두 거친 유일한 능이라고 한다.
※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의 무덤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http://terms.naver.com/entry.nhn?cid=287&docId=1719712&mobile&categoryId=287).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조선 왕릉 분포도. 궁이나 박물관은 괜찮은데 능은 그닥 흥미가 가지 않아서 가본 것이 거의 없다.

 

규모가 워낙 작아 금방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평일 낮이라 사람도 많지 않고 조용하다.

 

잠깐 걷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 쪽으로 가면 건릉이고 오른 쪽으로 가면 융릉이다. 난 일단 융릉 쪽을 택했다.

 

며칠째 내린 비 때문에 여기저기 모래 주머니로 쌓은 둑이 보인다. 땅도 물길 따라 움푹 패여 있다.

 

울창한 숲. 저 나무들 중 일부는 '정조의 융릉 행차를 지켜봤을테지?' 라 생각하니 뭔가 짠~ 해졌다.

 

이 돌다리(금천교)를 건너 가면 융릉이다.

 

화장실부터 들리기로 한다. 화장실은 악취도 없고 깔끔하다. 다만 남자 화장실이 여자 화장실에서 뻔히 다 보이는 구조라 민망하다. -ㅅ-

 

다리 밑으로 작은 개천이 흐른다. 아마도 여름 장마 덕분이 아닌가 싶다. 비가 제법 왔는데 저 정도니 평소에는 물 구경하기 힘들겠구나 싶더라.

 

융릉 가는 길 왼 쪽에 있는 곤신지. 깊이가 1~2m 라는데 물이 탁해서 안 쪽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물 웅덩이라 생각했는데 잉어도 산다.

 

융릉에 도착했다. 홍살문 사진 역시 융릉 방문자의 블로그마다 빠지지 않는 사진이다.

 

설명이 지나치게 간략한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노론과 소론을 언급하긴 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 노론의 후예들이 여전히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나라이다보니 아무래도 이렇게 밖에는 쓸 수 없었을테지...

 

오랜만에 보는 화창한 날씨. 사진은 구도만 제대로 잡으면 본전은 한다는데 난 당최 사진 찍는 기술이 늘지 않는다. -_ㅡ;;;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아놨다. http://blog.daum.net/ape1567/175 ← 이 블로그에 있는 사진 보니 가까이에서도 찍었던데 어찌 들어갔는지 궁금하다. 사진 속에 울타리가 보이는 걸 보니 뭔가 행사가 있을 때 안으로 들어가서 가까이 본 게 아닌가 싶다.

 

넘어가지 말라는데 넘어가면 안 되지. 결국 멀찌감치 떨어져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근처 수원 공군 비행장에서 쉬지 않고 전투기들이 떴다. 저 엄청난 소음이 사도세자와 정도의 깊은 잠을 깨워놓고 있는 건 아닐까.

 

건물 오른 쪽 다리 일부분이 깨져 있더라. 시멘트로 보수한 듯 보이는 흔적도 있고. 세월의 흐름을 돌인들 이길 수 있으랴만은... 안타까운 맘은 어찌할 수 없다.

 

나가면서 한 장 더 찰칵!

 

초등학생 서넛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걸 보니 어느 학급이 현장 학습이라도 온 모양인데 홍살문 들어갈 때 보니 여자 애들 셋과 남자 애 하나가 뭔가 하고 있더라. 나오면서 애들이 놀았던 곳을 보니 사방치기라도 한 모양이다. 요즘 애들이 이런 놀이를 안다는 게 참 신기했다.
애들이 만날 게임만 하네, 집 밖에 안 나가네, 할 일이 아니다. 학원 작작 보내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흙밭에서 뒹굴게 해야 한다.

 

바로 건릉으로 가려고 했는데 산책로가 건릉으로 이어진다기에 산책로를 통해 가보기로 했다. 난 가장 긴 코스를 이용했는데 안내도에 나와 있는 것처럼 50분이나 걸리지는 않았다. 30분 정도 걸었나?

 

산책로 들어서자마자 이 표지판 보고 움찔! -ㅁ-

 

산책로 들어서자 반대 쪽에서 오는 어르신들이 몇 분 계셨다. 그러나 이내 나 혼자 뿐인 고즈넉한 산책. 나무 그늘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덕에 생각보다 많이 덥지는 않았다. 문제는 벌레... 날파리가 자꾸 꼬이는데 짜증나 숨지는 줄... ㅠ_ㅠ
참다 참다 못 참고 가지고 간 데오드란트를 뿌리는 짓까지 해봤지만 건릉 갈 때까지 집요하게 괴롭혔다. 산책 계획이 있으신 분은 벌레 퇴치제 필수!

 

길도 예쁘고, 길가에 핀 꽃도 예쁘고, 그 꽃에 붙은 나비도 예쁘고,... 연인들끼리 데이트하기에도 좋은 길이다. 다행히 뱀은 만나지 않았다. ㅋ

 

많은 나무들이 병충해 예방/치료 때문에 시커먼 비닐을 감고 있었는데 건릉 가까이에 가자 나무 가득 이끼가 끼어 있었다. 공룡이라도 뛰쳐 나올 것 같은 분위기.

 

산책로는 1년 365일 개방되는 게 아니니 염두에 두고 가는 게 좋겠다.

 

저 멀리 건릉이 보인다.

 

융릉과 데칼코마니!

 

융릉과 구조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똑같다.

 

 

하도 잔디 밟지 말란 소리를 듣고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 잔디 밟으려하면 뭔가 미안해진다. 축구장 잔디 밟는 것도 미안할 정도... -_ㅡ;;;   미안함을 뚫고 멀리 비각까지 가봤다.

 

카메라를 잔뜩 낮춰 찍은 사진. 이런 샷을 종종 시도하는데 기대한만큼 멋진 사진은 아직 못 건졌다.

 

건릉까지 다 보고 나왔다. 날파리 때문에 힘들... T^T

 

사도세자에 관심을 갖게끔 만든 책.

 

 

학교 다닐 때에는 영·정조 시대가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라 배웠다. 영조와 정조는 세종을 잇는 성군이라 배웠다. 그런데 요즘 나는 영조를 선조 다음 가는 머저리라 생각하고 있다.
영조는 선대 임금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었다. 게장과 감은 상극이라 같이 먹으면 안 된다 하였으나 연잉군(훗날의 영조)이 이를 무시하고 진상했고. 부자가 든 약을 쓴 어의가 인삼차를 쓰라는 연잉군의 말에 그러면 기를 다스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 결국 경종은 죽었고 영조는 길고 긴 재위 기간 내내 경종의 독살설에 시달리게 된다. 이게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와 합쳐지면서 수시로 또라이 짓을 하게 되는데 그 또라이 짓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사도세자다.
시도 때도 없이 양위하겠다고 지랄해서 아들내미 괴롭히더니 결국 뒤주에 넣어 죽이고 말았다. 아내인 혜경궁 홍씨도 집 안이 노론 가문인지라 소론 쪽으로 기운 사도세자를 버려 결국 비참한 죽음에 일조한다. 혜경궁 홍씨는 그것도 모자라 《한중록》을 통해 사도세자를 미친 ×으로 몰아갔는데 죽고 나서 사도세자와 같이 묻혔으니 허허~ 참~ -_ㅡ;;;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지라 당시 집권 세력인 노론의 정적이었던 소론과 사도세자 입장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사라지거나 왜곡되었다. 또한 노론의 후예들이 꾸준히 나라를 휘둘러 지금까지 왔기에 아직까지도 그들의 정적에 대한 이야기가 자유롭지 못하다. 나라 팔아먹은 것들의 후예들이 여전히 당당한 이 나라에서, 가진 것 내려놓자 했던 전 대통령의 자살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먼 훗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역대 대통령의 공과가 재평가 될 때 부디 좋은 건 좋다, 나쁜 건 나쁘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나라 팔아먹고 지금까지 득세하고 있는 개새끼들은... 이명박 前 대통령의 사저 논란이나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유보다 가볍다 생각하는 건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끝으로... 옛날 이야기 싫어하는 어린이 없고, 책 읽어주는 거 싫어하는 어린이 없다. 걔들이 대가리 굵어지면서 옛날 이야기 싫어하는 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년도나 외우라고 해대는데 재미있을 리가 있나. 가르치는 사람이 문제다. 과거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나쁘니까 하지 말자, 옛날인데도 이런 걸 했다니 대단하지 않냐? 등으로 잘못은 반복하지 않게, 업적은 되새겨 자긍심을 갖게 해야 하는데 만날 몇 년도에 누가 태어났고 몇 년도에 뭔 일이 터졌고, 외워! 이 지랄... -_ㅡ;;;
그런데 이게 국사 선생들만의 문제냐 하면 그도 아닌 것이... 과거가 까발려지기가 싫은 애들이 있다. 걔들이 적잖은 힘을 가진 나라이다 보니 자기들 치부가 드러나는 옛날 얘기하는 게 달갑지 않은 거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도 지들 배때기 쳐불리기 바쁜 개새끼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저 제 한 몸, 제 가족 영달을 위해 나라와 민족은 어찌 되어도 상관 없다 생각하는 것들이 입만 열면 애국이네 애족이네 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저런 ㅄ 새끼들에게 안 당하려면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살기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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