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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  미 』/『 영  화 』

명량(ROARING CURRENTS , 2014)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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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장르가 SF, 히어로 물이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 영화는 잘 안 보게 된다. 하지만 『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 』보다 『 광해 』를 훨씬 더 재미있게 본 것처럼 무작정 SF나 히어로 물이라고 빨지 않고 한국 영화라 까대지 않는다. 『 명량 』은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타이밍을 놓쳤다. 초반의 타이밍을 놓치는 사이 영화는 대박을 넘어 초~ 대박을 터뜨려버렸다. 결국... 누적 관객 1,500만 명을 넘긴 오늘에서야 영화를 보게 되었다.


왕십리 CGV에서 봤다. IMAX관. 『 명량 』이 IMAX나 3D로 제작되었다면 진짜 끝내줬을텐데 안타깝다. 하지만 IMAX 상영관에 걸맞게 변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잘 봤다.

늘 미리 도착해서 광고 보며 빈둥거려야 하는 게 싫었기에 오늘은 좀 여유를 가지고 출발했다. 차 가지고 가기 싫어서 ×× 집더하기 주차장에 차 세워두고 지하철 탑승. 왕십리에서 내려 헤매다가 광장 나가서 다시 역사로 들어가 CGV로 올라갔다. 지하철 타고 왕십리 간 건 오늘이 두 번째인데 지난 번에도 이랬었다. 나 길 진짜 잘 찾는데... 왕십리만 왔다 하면 헤매네. -ㅅ-


도착해서 자판기로 영화표 뽑고나니 이미 상영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상영 시간 이후에 들어갔음에도 IMAX 상영관은 불이 켜진 채였고 광고가 부지런히 나오고 있었다. 어둡지 않아 어렵잖게 자리 찾아들어갔다. 광고는 거대한 IMAX 스크린의 상하좌우를 비워두고 가운데에서만 조그맣게 나오고 있더라. 아... 일반 영화를 IMAX 상영관에서 틀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고나... 이런 줄 알았으면 그냥 일반 상영관에서 볼 것을... 아...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정작 영화는 화면을 가득 채워 상영되었다. IMAX로 찍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사운드가 워낙 빵빵했기에 거대 스크린의 장점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다.



얼굴에 튄 피와 잔뜩 묻은 화약 검댕이로 우리가 아는 단정한 이순신과 매치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영화는 제목대로 명량대첩을 다루고 있다. 열두 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배를 상대한 전투에서 미미한 손실로 승리를 거둔, 외국인에게는 한국인의 민족 우월성 프로파간다 영화로 비춰지는 게 당연하디 당연한, 21세기를 사는 오늘에도 믿기지 않는, 실로 엄청난 전투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 실제와 다른 내용이 제법 섞여 있기에 거기에 대해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어차피 영화 스토리는 고만고만하고... 볼 사람은 다 봤잖아? -ㅁ-




자, 일단 영화의 배경이 되는 명량대첩이 있기 전, 그러니까 임진왜란 얘기부터 해보자. 이미 명종 때부터 왜구의 침략이 대규모로 진행되긴 했다. 1555년(명종 10년) 5월 11일에는 왜구 수천 명이 70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해남의 달량포를 침입해들어와 절도사와 장흥부사를 살행하고 영암군수를 사로잡는 만행을 저질렀다. 조선 관군의 토벌에 물러나긴 했으나 조선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대비하지 못한 채 무관을 찬밥 대접하다가 1592년 4월에 16만 왜군의 침략을 받게 된다. 당시 조선의 정예군은 8,000명. 열두 척으로 330여 척 상대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16만 명의 적에 8,000의 군인이 들이받는 상황은 놀라움을 넘어 암울하기 짝이 없다.


일본을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지만 위협이 되는 모든 세력을 싸그리 없앤 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틈만 보이면 들고 일어나려고 들썩거리는 상황이었다. 내부 분열을 한 방에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렇다. 외국과의 전쟁이다. 외국과의 긴장 내지는 전쟁 준비를 빌미로 불만이나 반대 세력을 정당하게 쳐내는 거다. 과거의 숫한 사례를 보지 않더라도, 일 저질러놓고 툭 하면 북한이~ 북한이~ 해대는 보수 꼴통 새끼들 보면 알 수 있다.


엄청난 왜군의 파죽지세를 막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조선 왕조 통틀어 최고의 쪼다였던 선조가 임금이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ㅄ은 능력도 없으면서 시기와 질투는 만렙인지라 전쟁 내내 꼴통 짓을 반복한다. 왜군이 한성으로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자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한성을 버리고 도망치지를 않나(서울 버리고 대전으로 튀면서 국군이 서울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말라 거짓 방송해댄, 대한민국 일 등신 문이 국부라 빨아대는 누구와 똑같지 않은가?), 그 와중에 분조(국가적 위기에 왕조의 존속이 어려울지도 모르게 되어 임금과 세자가 국정을 나누어 맡음)해서 민심 수습하느라 바쁜 광해군에 대한 평이 좋아지자 양위(임금 자리를 내놓음)할 맘 전혀 없으면서 양위하겠다고 지랄 염병을 해서 여럿 피곤하게 만든다. 나라 버리고 명나라에 붙자는 말을 임금이라는 작자가 해대서 신하들이 말리기에 바빴다.

일본의 간계에 속아 선조가 이순신을 파직했다 하는데 왜놈들이 작업질 안 했어도 선조는 나보다 잘 나가면 나쁜 놈! 이라는 마인드로 까대기에 나섰을 게 분명하다.



화약을 잔뜩 실은 자폭선에서 목숨 바쳐 이순신을 위해 싸우던 임준영은 실제로 명량대첩에서 전사하지 않았다.


아무튼... 왜군이 한성을 향해 쳐올라오자 조정에서는 이일에게 왜군을 막도록 명한다. 이일은 왜군을 막고자 상주로 내려가는데 이 때 데리고 간 수하 병사가... 60명이다. 오타 아니다. 60명이다. 고작 이 병력으로 왜군 막겠답시고 지방으로 출정하는 중앙 병력이었던 거다. -_ㅡ;;;   결국 상주 도착해서 농민들 모아 농민군을 꾸리지만 800여 명의 농민군은 곡괭이와 낫 들고 나섰다가 죽거나 도망치고 이일도 홀로 도망친다.


앞서 조선의 병력이 8,000명이라 했는데 기록에는 145,000명 정도 되는 걸로 나온다. 그런데 지금의 수도 방위군(갑사 : 서울과 중부 지방 수비군), 국경 경비대(정로위 : 북방 국경 수비군), 장교 떼거리(별시위) 제외하면 23,000명 뿐이었고 그 중에 싸움질 가능한 병력이 8,000명 뿐이었다.

이일을 물리친 왜놈들은 신나서 문경새재를 넘어 북상한다. 조정에서는 신립을 내보내지만 배수진으로 대응한 노 장군도 결국 병력 부족 때문에 패하게 되고 결국 신립 장군은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이름만으로도 여진족을 벌벌 떨게 했던 노 장군도 병력 부족과 화기의 열세를 넘어설 수 없었다.


임금이 ㅄ짓 하면서 나라 말아먹는 데 일조하는 동안 왜놈들은 승승장구했다. 거기 찬물을 끼얹은 건 백성들이었다. 붉은 옷을 입어 홍의장군으로 유명한 곽재우는 의병을 조직해서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 승리를 거두었다. 곽재우는 유격전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나이 60 먹은 고경명은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모아 6,000명의 병력으로 금산 전투에 나섰다가 전사한다. 그러나 이 때 조직된 의병들이 활발히 유격전을 펼쳐 왜놈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조선의 의병들에게 싸울 때마다 패하며 전라도에서 밀리게 된다.


왜놈의 최선봉에 섰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일본 수군이 서해를 타고 올라올 것이니 항복하라는 문서를 평양으로 도망가 있던 선조에게 보내고... 선조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조정 대신들 볶아댄다. 이 와중에 이순신이 한산 앞 바다에서 그 유명한 학익진으로 왜군을 물리친다. 왜놈들은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치고 올라가는 작전이었는데 이순신에 가로막혀 서해를 통한 수군의 전진이 어려워지자 육지를 통한 단독 북진을 택하지만 진주성에서 김시민 장군과 백성들에게 개작살나면서 임금을 사로잡아 조선을 항복시키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형편없는 임금과 준비되지 않은 조정에 애꿎은 백성들만 죽어나간 전쟁이었다. 결국 불리하디 불리한 전쟁을 유리하게 뒤집은 것도 백성들이었고(IMF 불러온 ㅄ을 대신해서 국민들이 금반지 빼가며 희생했더니 찌그러져 있던 ㅄ들이 뒤늦게 떠들어대는 꼴과 겹쳐진다). 임진왜란은 명을 치기 위한 출정이니 길을 내어달라는 왜놈들의 요구로 일어난 전쟁이었고 명의 구원군이 없었다면 나라 망했을 거라고 판단한 임금이 있었기에 강화 협상은 조선과 왜가 아닌 명과 왜 사이에 진행이 된다. 그러나 이 협상은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을 서로 내세우며 힘싸움하는 것에 불과했고 결국 1597년 2월, 왜놈들이 또 쳐들어온다.


임준영의 말 못하는 아내 정氏로 나온 이정현. 데뷔작 『 꽃잎 』의 기억 때문인지 희한하게 잘 어울리더라. -ㅅ-


14만 명의 왜군이 다시 조선으로 물밀듯 들어온 정유년의 두 번째 난리, 정유재란. 어쩌면 임진왜란보다 더욱 더 잔인하고 힘겨운 싸움이었다.


이순신은 ㅄ 쪼다 선조에 의해 관직을 잃고 갖은 고문 끝에 너덜너덜한 상태로 백의종군한 상태. 삼도의 수군을 모두 통제하는 원균은 다대포 앞바다에서 왜놈 수군을 맞이하여 적선 여덟 척을 불태우며 승리, 그러나 원균은 출전을 미룬다는 이유로 도원수(총 사령관) 권율에게 곤장을 맞는다. 쳐맞고 발끈한 원균은 한산도에 있던 수군을 모두 이끌고 발끈 러시를 감행, 부산으로 향했다가 물살에 말려 허겁지겁 가덕도로 도망쳤다가 매복했던 왜놈들에게 400명이 죽고 만다. 부랴부랴 도망쳐서 거제도 인근으로 도망간 게 7월 15일. 그러나 다음 날 새벽, 왜놈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어 조선의 수군은 궤멸된다. 이 때 배설이 명령을 어기고 휘하 배를 이끌고 도망 쳐 간신히 열두 척을 살리게 된다.


영화에서 배설은 시작부터 이순신을 믿지 못하게 딴지를 걸어대다가 결국 하나 뿐인 구선(거북선)에 불을 지른 뒤 홀로 조각배 타고 도망치다 활 맞아 죽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나온다. 원균 수하에 있을 때 휘하의 배를 이끌고 도망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때 배설은 병을 핑계로 들었다. 실제로 이순신 휘하의 수많은 병사들이 전염병 때문에 죽어나간 걸 생각하면 배설이 마냥 거짓말한 걸로 보기도 어렵다. 배설은 군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권율에게 불려가 참수형을 당했으니 장군으로써 당당한 죽음은 아니었지만 영화에서처럼 파렴치한 인물은 아니었다.


쪼다 선조가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내려보낸 게 명량대첩이 있기 불과 한 달 전. 이순신은 송대립과 군관 아홉을 데리고 좌수영으로 돌아간다. 영화에 나온 것과 같이 선조는 수군을 파해 권율에게 합류하라는 지시를 내리지만 이순신이 그 명령을 거부한다. 지형과 바닷물의 흐름을 면밀히 살핀 끝에 열두 척의 배를 배치하고 그 사이를 어선으로 메꾸어 병력이 부족하지 않게끔 했다. 영화에서는 판옥선 열두 척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쪽수에서 밀리지 않는 걸로 보이게 하려고 어선을 동원한 위장을 했던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바닷물에 끌려들어갈 뻔한 대장선을 어민들이 구조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뻥튀기했으나 실제로 백성들이 전투에 참가하여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튼... 배설이 구선에 불지르고 혼자 도망가다 죽은 것과 백성들이 대장선 끌어낸 건 허구.


이순신의 아들 이회로 나온 권율. 실제 이름이 권율이라는 것에 놀라고, 클로즈 업 장면에서 렌즈 보여서 또 놀라고.



왜군의 저격병으로 나온 하루 역의 노민우. 영화에서나 가능한 뻥튀기이지, 조총으로는 저격이 불가능하다.



가장 큰 뻥튀기. 백병전. 조선 수준에 있어 백병전은 가뭄에 콩나는 싸움이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은 왜군에 비해 압도적인 사거리를 가진 포를 이용한 전투가 대부분이었다. 영화에서는 왜군의 조총 세례를 한 번 막아낸 후 포를 쏘아댔지만 실제로는 사거리가 이미 6배 가까이 차이났기에 조총 쏴바야 배 근처에도 안 왔다. 멀찌감치에서 대포로 조지고 거리 가까워지면 활로 노려 쐈던 것이다. 실제 역사에 가까운 장면은 우현에서 포 쏘고 그 동안 좌현에서 준비 마친 뒤 제자리에서 빙글 돌아 좌현에서 쾅! 그 사이 우현은 준비하고 다시 돌아 쾅! 이건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정밀한 조준 사격 역시 사실이다.



330여 척이 모두 전투함은 아니었다. 그러나 열두 척의 판옥선은 순식간에 서른한 척의 왜군 배를 가라앉혀버렸고 이에 놀라 도망가는 왜놈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조류를 이용해 유리한 싸움을 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사진 아래에 썼지만 치열하디 치열했던 백병전은 심한 과장이다. 실제 조선 수군은 장거리에서 정밀한 포사격으로 1차 타격한 뒤 거리가 가까워지면 활로 적 전투병을 사살하는 싸움을 주로 했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왜놈들의 조총이 판옥선에 파바바박! 꽂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12 vs 330으로 몰고 가지만 330여 척 모두가 전투함은 절대 아니었다. 후방에서 따르던 보급함이나 지원함을 제외한 전투함은 130여 척으로 짐작된다 한다. 12 vs 130 이것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ㅅ-


판옥선의 충파, 즉 들이받아 가라앉히는 작전 역시 사실이다. 조선의 배는 요(凹), 철(凸)을 끼워 맞춰 만든 형태라서 왜놈들의 배보다 압도적으로 튼튼했고 실제로 들이받아 가라앉히는 작전은 굉장히 오랜 기간 사용되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해에서 북한 놈들이 도발하면 우리 해군은 배로 들이받는 기동을 했었다. 북한 놈들이 거기 대고 쏴버리는 바람에 애꿎은 우리 군인들이 억울하게 죽은 뒤로 대응 절차를 간소화했지만... 죽지 않아도 될 이들이 죽어간 건 몹시 안타까운 일임이 분명하다.


나에게는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 자신을 따르다 전사한 장군의 아들이, 자신의 배에 올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싸운다. 힘겨운 싸움 끝에 자그마한 토란 하나를 먹으며 아들을 불러 앉혀 무릎에 손을 얹는 저 장면. 눈물 났다.


군에서의 말도 안 되는, 믿기지 않는, 어이없는 사건과 사고로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무려 한 시간을 전쟁 장면에 쏟아부은 영화가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며 승승장구하는 아이러니. 무능력한 지도자와 그 일파들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주둥이로만 애국 타령하고 있는 사이 말라가는 백성들. 여러 번의 반복되는 역사에서도 배움이 없는 위정자들.


3면이 바다라고 그렇게 가르쳐대면서, 북한 때문에 실질적인 섬과 다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공군력 증강에 관심없고 여전히 육군 60만 타령하고 있는 ㅁㅈㄹ들. 단추 하나 눌러 미사일로 초토화되는 전쟁이 다반사임에도 여전히 돌격 앞으로! 하면 와아~ 하고 밀고 올라갈 줄 아는 쪼다 새끼들.


역사로부터 배움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못 배우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고스란히 되새김질하면서도 민족의 우월함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이지스함 보유국이고... 재래식(원자력을 제외하면 다 이렇게 부른다) 잠수함 분야에서 독일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을만큼 최강의 조선 실력을 가진 나라다. 꼴통 새끼가 집권하면서 전범들한테 넙죽넙죽 절해대더니 급기야 병력과 무기 수출 길마저 열려 한다. 중국은 어떠한가? G2로 불릴만큼 덩치를 키운 중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항공모함 보유국이다. 러시아를 포함해 3개 강대국에 낀 우리의 해군력과 공군력은 어떠한가?


일본을 비롯한 외국과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를 물리치는 21세기 이순신을 기다려야 하는가?











술 먹고 써대서 당최 연결도 안 되고 중구난방에다가 엉망진창이다. 이순신은 박정희가 군사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종대왕에 버금 가는 영웅으로 포장한 위인이다. 그러나 그러한 포장이 부족하다 느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무능해빠진 선조와 조정 대신들 덕분에 더 위대해보이기도 하고. 그 대단한 위인을 우리는 어떻게 기리고 있는가? 역사적인 고증은 내팽겨치고 그저 관광객 이끌어들이겠답시고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복원 사업을 가장한 생쑈를 하고 있고, 장군의 긴 칼은 페인트가 칠해진 것도 모른 채 전시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 다수의 장군들이 말도 안 되는 싸움에 두려움을 느껴 싸움을 피하려 들고, 실제로 개전 초기에 대장선을 제외한 나머지 배들은 뒤로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실제다. 향숙이? 로 유명한 박노식이 연기한 김억추의 배는 특히나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지.). 『 은하영웅전설 』에서도 양 웬리는 말도 안 되게 불리한 상황에서 작전을 지휘하며 휘하 장수들이 따라줄지를 걱정했었다. 지휘관이 휘하 병력이 명령에 따를 것인가를 걱정하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양 웬리가 말했었다. 싸움을 이기려면 다수의 병력과 적절한 보급이 필수라고.


이순신의 믿기지 않는 놀라운 업적을 뿌듯해하고 자랑할 것만이 아니라, 다시는 저런 비정상적인 전쟁을 통해 영웅이 태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 진중권 교수님이 『 최종병기 활 』을 언급하셨기에 왜 그 영화와 비교했나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감독. 김한민 감독은 전작인 『 최종병기 활 』에서 애깃살(편전)을 잘 표현해내며 재미와 고증을 동시에 잡았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못 찾겠네. 아무튼... 애깃살과 관련된 얘기도 찾아보면 재미있다.

  • 이순신의 학익진을 모방한 정자(T)진으로 러시아가 자랑하던 발트 함대를 이긴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그가 자신을 넬슨에 비유하자 내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냐 화를 냈고, 이순신에 비교하자 어디 나 따위를 이순신 같은 군신에 비교하냐며 화를 냈다는 이야기는 『 무한도전 』에서 노홍철이 리얼하게 살림으로 인해 더 많이 퍼진 것 같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카더라~ 통신의 일부이다. 더구나 실제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더라도 조선인을 비하하며 깎아내리면서 한 얘기인데 와전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여러 정황상 도고 제독의 이순신 언급은 과장되었거나 지어낸 측면이 없잖아 있어 보인다. 도고 따위가 뭐라 씨부렸거나 말거나, 이순신은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하고도 남을 희대의 명장이었다.

  • 앞서 백병전이 거의 대부분 뻥이라 했다. 류승룡이 맡았던 구루지마는 실제로 전쟁에 참가했던 장수였으나 판옥선에 뛰어들었다가 이순신에 의해 목이 날아가지는 않았다. 바다에 빠진 걸 건져내어 이순신이 목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 한다.

  • 울돌목이 좁다 하니 장비가 장판교 막듯 달랑 배 한 척 간신히 지나다닐만큼 좁은 곳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에 놀랐다. 실제로 폭이 400여 미터 가까운 곳이다. 물살을 이용해 열두 척의 배로 막아낸 것이 왜 놀라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 위에서 의병 얘기도 했었는데... 전쟁 당시 경상도와 전라도의 어민들이 의병으로 활동한 기록이 제법 된다. 이들은 익숙한 지형과 물살을 바탕으로 해상 전투와 유격전 뿐만 아니라 정탐과 보급에 있어 큰 활약을 하였다. 관군이 아니었기에 나라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입고 먹고 마시는 걸 준비하면서까지 싸움에 나섰다. 육지와 바다를 가리지 않고 연안에서 대활약한 이들이야말로 지금의 대한 해병대의 모체다.

  • 영화를 보면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승병이 나온다. 실제로 삼혜와 의능이라는 승장이 웅포 해전에서 크게 활약한 기록이 있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 몸 담고 있는 승려들이 국가의 존폐 위기에서 목숨을 내놓고 신념을 내려놓은 채 처절하게 싸웠기에 오늘의 이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난 무신론자이고 종교를 갖지 않고 있는 사람이지만... 예수쟁이들은 과연 저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사진은 모두 '네이버 영화'에서 퍼왔습니다.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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