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에 대해 다룬 소설인데, 여러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이 꽤 두꺼운 데다 두 권으로 되어 있어서 겁부터 먹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술술술 읽히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아무튼... 책 말미에 마이클 클라이튼이 쓴 정말 멋진 글이 있기에 전문을 옮겨 본다. 출판사와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야 함이 옳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옮기는 게 아니기에 걱정하면서 블로그에 올린다. 혹시라도 출판사와 저작권자에게 누가 된다면 당장 내리도록 하겠다.
정치에 물든 과학은 위험하다
마이클 클라이튼 (소설 공포의 제국(State of Fear) 內 부록 1)
가령 어떤 위기가 임박했다고 경고하면서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과학 이론이 등장했다고 상상해보자.
그 이론은 곧 전 세계의 지도적인 과학자, 정치가, 유명인들의 지지를 얻는다. 저명한 자선가들이 자금을 지원하고 명문 대학들이 연구에 몰두한다. 그 위기는 언론에도 자주 보도된다. 대학 강의실과 고등학교 교실에서도 그 과학 이론을 가르친다.
이 이야기는 지구 온난화 이론이 아니라 한 세기 전에 주목을 받았던 다른 이론에 대한 것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그리고 윈스턴 처칠도 그 이론의 지지자였다. 연방 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들 홈스와 루이스 브랜디스도 찬성하여 그쪽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그 이론을 지지했던 유명인사들은 전화기 발명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여성운동가 마거릿 생어, 식물학자 루터 버뱅크, 스탠퍼드 대학 창립자 릴랜드 스탠퍼드, 소설가 H. G. 웰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등등 수백 명을 헤아렸다. 노벨상 수상자들도 그 이론을 옹호했다. 카네기 재단과 록펠러 재단이 연구비를 지원했다. 그 연구 활동을 수행할 목적으로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가 설립되었지만,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존스 홉킨스 등에서도 중요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위기에 대처ㅏ기 위한 법안들이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각 주에서 속속 통과되었다.
국립 과학원, 미국 의학 협회, 국립 연구 위원회 등도 이 같은 노력을 지지했다. 만약 예수가 살아 있다면 그 역시 이러한 노력을 지지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 이론을 둘러싼 연구 활동, 입법 조치, 여론 형성 등의 과정은 전체적으로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 이론에 반대한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보수주의, 현실을 모르는 자, 혹은 단도직입적으로 무식한 자 따위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반대자가 그렇게 드물었다는 사실이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우리는 당시 그토록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단 이 유명한 이론이 사이비 과학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이론에서 주장했던 위기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이론의 명목으로 시행되었던 모든 조치는 윤리적 과오를 넘어 범죄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그로 인하여 결국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은 바로 우생학이다. 우생학의 역사는 너무 끔찍해서-그리고 관련자들에게는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서-지금은 거론되는 일조차 드물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참사가 되풀이도지 않도록 하려면 모든 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자세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우생학 이론은 유전자 풀(gene pool, 어떤 생물 종의 모든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 전체)이 인류를 쇠퇴시킨다는 내용의 위기설을 내세웠다. 우수한 인간들이 열등한 인간들만큼 빠른 속도로 번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열등한 인간들이란 외국인, 이민자, 유대인, 성도착자, 허약자, ‘저능아’ 등이었다. 이 분야에서 최초의 이론을 내놓은 사람은 영국의 저명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이었지만 그의 발상은 본인이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과학자들도 그 생각을 받아들였고, 과학에는 관심도 없지만 20세기 초에 열등한 민족들이-즉 ‘폭증하는 백치들’에 속하며 인류 중 가장 우수한 민족들을 오염시키는 ‘위험천만한 인간 기생충들’이-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던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현상을 중단시키기 위해 우생학자들과 이민 반대론자들이 힘을 합쳤다. 그들의 계획은 저능아들-유대인들은 대부분 저능아라는 것이 중론이었지만 수많은 외국인들과 흑인들도 마찬가지였다-을 가려내어 수용소에 격리하거나 거세함으로써 번식을 막자는 것이었다.
마거릿 생어는 이렇게 말했다. “선량한 이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들을 보살피는 것은 지독한 만행이며…… 그 수가 점점 늘어만 가는 백치들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저주가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이 짐덩어리 같은 인간 쓰레기들’을 돌보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이라고 설파했다.
이 같은 견해는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H. G. 웰스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열등 시민들의 무리’를 성토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우리 사회는 정신박약자들이 번식하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루터 버뱅크는 ‘범죄자들과 약골들이 번식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조지 버나드 쇼는 우생학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운동에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가 깃들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 문필가 로스롭 스토다드의 저서 ≪백인의 세계 지배를 가로막는 유색 인종의 물결≫이다. 그러나 당시 인종차별주의는 숭고한 목적을 이룩하기 위한 노력 중 지극히 사소한 일부분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그 목적은 다름 아닌 미래 인류의 개량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전위적 사고방식이 한 세대에서도 가장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지성인들까지 매혹시켰던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강제 불임시술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29개 주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이며 열성적인 곳이었고, 따라서 강제 불임시술을 시행한 수도 미국 내에서 제일 많았다.
카네기 재단이 우생학 연구를 후원했고, 나중에는 록펠러 재단도 자금을 지원했다. 후자의 경우는 특히 더 열성적이었는데, 우생학 운동의 중심이 독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정신병원 환자들을 가스로 살해하기 시작한 뒤에도 독일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거액을 지원할 정도였다. (당시 재단 측은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쳤지만 2차대전이 발발하기 불과 몇 달 전이었던 1939년까지도 여전히 연구비를 지급하고 있었다.)
1920년대 이후 미국 우생학자들은 이 운동의 주도권을 빼앗아간 독일인들을 시샘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인들은 존경스러울 만큼 진취적이었다. 그들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집에 ‘정신 결함자’들을 데려다놓고 한 명씩 면접한 후 뒷방으로 데려갔다. 그 방은 다름 아닌 가스실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에게 일산화탄소를 마시게 했고, 시신은 관내 화장터에서 처리했다.
이 프로그램은 결국 방대한 강제수용소 네트워크로 확대되었다. 수용소는 주로 철도 부근에 설치되어 ‘부적격자’ 천만 명을 능률적으로 수송하고 학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우생학자들도 전무했고 우생학자였던 사람도 전무했다. 유명인이나 권력자의 전기작가들도 자신의 주인공이 한때나마 그런 사상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길게 거론하지 않았고, 때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우생학은 대학 강의실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어떤 이들은 이 사상이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잔존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 가지 사실이 두드러진다. 첫째,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미국의 대표적 우생학자 찰스 데이븐포트와 해리 러플린의 ‘우생학 기록 보관소’(1910~1940)가 있던 곳)의 설립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의 연구 노력과 변호사들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우생학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는 유전자의 실체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 운동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엄격하게 정의되지 않는 막연한 용어들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저능’이라는 말은 빈곤, 문맹, 간질병 등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정신박약’이나 ‘허약’ 등의 용어도 명확한 정의가 없는 상태였다.
둘째, 우생학 운동은 과학 프로그램의 탈을 쓴 사회개혁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움직인 원동력은 이민자들과 다른 인종과 기타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이나 국가로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마음이었다. 이 부분에서도 막연한 용어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감춰주는 역할을 했다.
셋째, 이것은 가장 참담한 사실이기도 한데, 미국과 독일의 기존 과학계가 지속적인 밥ㄴ론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독일에서는 과학자들이 재빨리 우생학 프로그램에 동참했다. 현대의 독일 연구자들이 1930년대의 나치 문서들을 검토한 적이 있는데, 그들은 당시 과학자들에게 이런저런 연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던 명령서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문서가 아예 불필요했다. 우테 다이히만은 이렇게 밝혔다. “나치 당원이 아닌 과학자를 포함하여 당시 과학자들은 연구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태도를 바꾸거나 국가 시책에 적극 협력했다.” 또한 다이히만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나치의 인종 정책에 능동적인 역할을 자청했으며…… 그들의 연구는 인종차별주의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었고…… 외부의 강압을 받았음을 말해주는 문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독일 과학자들은 새로운 정책에 맞춰 관심 분야를 변경했다. 그리고 변경하지 않는 몇몇 과학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정치화된 과학의 또 다른 사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지만 이 사건 역시 정부의 이데올로기가 과학 연구를 통제하고 무비판적 언론이 잘못된 지식을 전파할 때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는 자화자찬을 일삼는 농부였는데, 그는 ‘비료나 각종 무기물을 사용하지 않고 토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평가되었다. 1928년 그는 춘화처리(春花處理)라는 방법을 발명했다고 주장했다. 종자를 물에 적셔 냉각시키면 농작물의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리센코의 방법은 한 번도 엄격한 실험을 거친 적이 없었고 자신이 그렇게 처리한 종자들의 우수한 형질이 다음 세대로 유전되었다는 그의 주장은 세계의 다른 국가들이 멘델의 유전학을 신봉하고 있을 때 라마르크의 학설로 회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시프 스탈린도 미래가 유전적 한계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암시하는 라마르크 학설에 매료되었고, 또한 농업 생산성의 개선도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리센코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약속했고, 따라서 혁명적 생산 방식을 개발한 영리한 농부를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던 소련 언론의 총아로 떠오를 수 있었다.
리센코는 천재로 묘사되었고, 그는 그 명성을 이용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냈다. 그는 특히 자신의 반대자들을 매도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농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춘화처리법이 실제로 수확량을 증가시킨다는 증거로 내세웠고, 그것은 직접적인 실험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는 국가가 후원하는 열광적 반응을 등에 업고 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리하여 1937년에는 소비에트 최고회의의 일원이 되었다.
그 무렵 리센코와 그의 이론들은 러시아 생물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기근이 찾아와 수백만 명이 죽었고, 그에게 반대했던 수백 명의 소련 과학자가 숙청당하여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총살형을 당했다. 리센코는 유전학을 호되게 공격했고, 결국 1948년 유전학은 ‘부르주아적 사이비 과학’으로 낙인찍혀 금지되고 말았다. 리센코의 이론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그는 30년 동안이나 소련 학계에 군림했던 것이다. 리센코 학설은 1960년대에 막을 내렸지만 러시아 생물학계는 아직도 그 시대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대이론에 사로잡혀 있다. 이번에도 그 이론은 전 세계 정치가들과 과학자들과 유명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굵직굵직한 재단들이 후원하고 있다. 이번에도 명문 대학들이 앞 다투어 연구에 몰두하고, 이번에도 각종 법안이 통과되고, 이번에도 이 이론의 명목으로 사회개혁 프로그램들이 도입되고, 이번에도 몇 안 되는 비판자들은 가혹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번에도 그들이 요구하는 각종 고치는 실제 사실과 다르고 과학적 근거도 희박하다. 이번에도 저마다 다른 속셈을 가진 단체들이 일견 고상해 보이는 운동을 등에 업고 자기들의 잇속만 차리고 있다. 이번에도 그 과정에서 몇몇 개개인이 피해를 입고 있지만 인간 개개인이 겪는 부수적인 결과보다 추상적 대의명분이 더 중요하다는 미명하에 간단히 무시해버린다. 이번에도 ‘지속 가능한 발전’이나 ‘세대 간의 정의(正義)’처럼 애매모호한 용어들, 합의된 정의(定義)좌 없는 용어들이 새로운 위기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나는 지구 온난화도 우생학과 똑같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유사성은 피상적인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각장 자료와 쟁점에 대한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토론이 억압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도적인 학술지들은 확고한 편집 방침을 고수하며 일방적으로 지구 온난화를 편들고 있는데, 그것은 결코 학술지의 본령이 아니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혹을 품은 과학자들도 그것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억압의 한 증거는 지구 온난화를 거리낌 없이 비판하는 학자들 중에 은퇴한 교수들이 유난히 많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들은 더 이상 연구비 지원을 받으려고 전전긍긍하지도 않고, 더 이상 자신의 비판 때문에 동료의 연구비 신청이 좌절될까봐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다. 과학 분야에서 노인의 말은 대개 오류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치 분야에서 노인들은 대개 현명하고 언제나 조심하라고 조언하는 존재들이며 나중에 가서 보면 그들의 말이 옳았을 때가 많다.
인간의 신념이 거쳐 온 과거사 속에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는 어떤 이들이 악마와 계약을 맺고 마녀가 되었다는 믿음 때문에 수천 명의 동료 인간들을 살해했다. 아니,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마법을 이유로 매년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내가 보건데 인류가 일찍이 칼 세이건이 말했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은 하나뿐이다. 그 희망은 바로 과학이다.
그러나 앨스턴 체이스(미국 철학자, 문필가)가 말했듯이 “진실을 찾기 위한 탐색과 정치적 지지를 혼동할 때 지식욕은 권력욕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험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과학과 정치의 결합은 불행한 결합이며, 따라서 불행한 역사를 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역사를 잘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앞에 내놓는 것들은 반드시 불편부당하고 정직한 것이어야 한다.
글을 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 이 글을 읽고 '공포의 제국'이라는 훌륭한 작품을 접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둘째, 지구 온난화가 모두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충분히 들어볼만 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실제로 미국이나 브라질 등에서 바이오 연료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사탕수수나 옥수수가 오히려 식량 자원으로 활용될 때 이산화탄소 발생이나 기타 여러 문제를 덜 일으킨다는 통계도 있다.
셋째, 혈액형 어쩌고를 얘기하기 좋아하는 바보들이 좀 봤음 하는 마음에서다. 대부분 재미 삼아서 하는 얘기라지만, 얘기하다보면 맞다면서 격하게 공감하고는 하는데... 대충 두루뭉술하게 갖다 붙이면 다 자기 얘기 같은 거다. 이거 무슨 효과라고 하던데... 아무튼... 혈액형에 따른 성격 어쩌고 믿는 골 빈 것들은 이 글 속의 우생학에 대한 얘기 좀 보고 생각이라는 걸 한 번 해봤으면 한다. 뇌가 있다면 말이다.
넷째, 러시아의 리센코 얘기를 보며 누군가 생각나지 않는가? 난 황우석이 떠올랐다. 아직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데... 하긴, 물 위를 걷고 앉은뱅이를 서게 한다는 냥반을 추종하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뭐... -ㅅ-
마지막으로... 이명박을 비롯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라는 ××들이 그렇게 즐기는 공포를 조장하여 정상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하는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거다. 과거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으며, 전두환이 그랬고, 이명박이 그러고 있는... 북한 팔아 넘겨 안보 운운하며 국민들에게 공포와 위협을 가해 막가파 식으로 밀어 부치는 머저리들에게 조종 당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건 분명 사실이지만, 그걸 부풀리고 없던 말 만들어내서 그러니까 닥치고 있으라는 식으로 짖어대는 머저리들에게 휘말리면 되겠냐는 말이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보수 찌라시들이 미친 듯 쏟아낸 기사 중 지금 현실이 된 게 뭐가 있는가? 실제로 조선 일보에서는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을 전후해서 공기 부양정을 이용하여 백령도에 북한 병력이 상륙할 수 있다라는 기사를 냈는데... 이러저러할 수도 있다라며 가정해서 쓰는 글을 싣는 게 신문인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 써대는 게 기자인가? 사실 보도보다도 여론 호도를 우선시하는 병신들이 써댄 신문이 아직도 신문 시장에서 1위라는 걸 보면... 아직 멀었다 싶다.
말이 자꾸 늘어지는데... 아무튼, 공포의 제국은 무척이나 좋은 소설이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그러니까... 읽어 보기 바란다. 강력 추천이다. 난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소장할 계획이다.
PS. 고등학교 때 펜팔을 했었는데... 먹고 싸고 노는 거 말고는 당최 관심이 없던 내게... 부산 사는 그 처자는 니케를 얘기했고, 로뎅과 까미유 끌로델을 얘기했다. 뭔 소리인지 전혀 못 알아 들어 답장을 어찌 써야 하나 고민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렇게 똑똑했던 애들이 몇 년 지나면 혈액형 별 성격 따위를 믿게 되는 역진화를 하게 되다니... 알 수가 없다.
예전에도 한 번 썼던 것 같은데... 난 고등 교육 받은 사람들이 개신교에서 하는 얘기를 곧이 곧대로 믿으며 신이 존재한다는 소리하는 거랑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나 행동 패턴이 다르다라는 걸 믿는 거... 당최 이해하지를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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