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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해외여행 』 2019,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여행 #32 회픈 히 호스텔 (Höfn HI Hostel)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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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면 배가 고파질 게 분명했으니 숙소 근처의 슈퍼마켓을 검색한 뒤 경유지로 설정했다. 그런데 가다보니 주유소가 나오기에 차한테도 밥 먹일 겸 그리로 들어갔다. 여기는 카운터에 가서 주유기를 열어 달라고 해야 하는 시스템. 그렇게 아이슬란드에서의 세 번째 주유를 했다.


술 마시면서 안주로 먹을 도리토스 한 봉다리 사고, 물도 두 개 샀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수도물을 그냥 마셔도 된다고 들었지만 사서 먹는 게 맘 편하니까.


굳이 슈퍼마켓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경유지를 삭제하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라고 나온다. 안내대로 가다보니 주택 단지 같은 곳이 등장. 전부 숙박업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붕을 따라 설치된 반짝거리는 조명들이 무척이나 예쁘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나 봤던, 하얀 설원 위에 오렌지 색 조명이 반짝거리는 외딴 집 하나. 그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아이슬란드에 와서야 알았다. 그냥 보기 좋은 풍경이랍시고 억지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거였다.



저런 곳에 살면 어떤 기분일까? 외로울까? 어디에선가 북유럽에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환자가 굉장히 많다고 들었는데. 외로움 때문에 그런 걸까?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한 사람도 수시로 외로움을 느낄 것 같긴 했다. 당장 나 같은 경우도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으니까.


뭐... 외계인한테 납치를 당한다거나 갑자기 머리 속이 이상해져서 순간 이동 능력이 생긴다면 아이슬란드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라서 한국과 왔다갔다 할 때마다 열몇 시간, 스물몇 시간 걸린다고 하면... 어휴~ 무리, 무리, 무리.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 인을 하려고 하는데 아무도 안 보인다. 그런데 동양인 남자가 슥~ 지나가다가 주인은 저 쪽에 있다고 알려준다. 얼마만에 듣는 한국어냐! 목소리도 좋은데 얼굴도 잘 생겼더만.


잘 생긴 총각이 가리킨 쪽으로 가서 기웃거리니 회색 운동복을 입은 아주머니(설마 처자는 아니겠지. -ㅅ-)가 와서 체크 인을 도와준다. 영어로 다다다다~ 쏘아대는데 당최 못 알아듣겠다. 내 실력으로 다 알아듣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간신히 중간 중간에 들리는 단어 하나씩 부여잡고 대충 이런 뜻이려니~ 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설명을 다 들은 후 세탁기를 쓸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가능하다네. 그런데... 그런데... 2,500ISK란다. 허... 허허...




세탁기 돌리고, 건조기 돌리는 데 25,000원인 거다. 하아~ 진짜, 이런 동네에서 어떻게 살지?

일본 여행 다닐 때에도 숙소에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쓴 적이 있는데 일본 같은 경우 세탁기는 비싸봐야 300円이었다. 건조기는 30분에 100円 정도였고. 그런데 여기는 코딱지만한 세제 한 봉다리 주면서 25,000원 달라는 거다. 미쳤다, 진짜.


맘 같아서는 비싸서 안 되겠다 하고 싶지만, 당장 빤쓰와 양말이 하나씩 밖에 남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카드로 결제.


그 뒤로도 뭐라고 뭐라고 한참을 말한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가리키면서 클린 어쩌고 저쩌고 하기에 깨끗하게 쓰라고 잔소리하는 줄 알았다. 일단 방에 짐을 옮겨 놓고 잠시 쉬다가 샤워하러 갔는데 화장실이고 샤워실이고 죄다 잠겨 있더라. 그제서야 아까 클린 어쩌고 한 게 청소한다는 소리였나 싶더라.


방에서 멍 때리고 있자니 바로 옆인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16시가 넘었는데 그제서야 청소하는 모양이었다. 체크 아웃이 보통 열 시나 열한 시일텐데 뭐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청소하는 거지?


아무튼, 잠잠해졌다 싶어 나가보니 문이 열려 있다.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방에서 빨랫감을 정리해서 들고 나갔다. 주방 쪽으로 가다가 호스트와 눈을 마주쳤다. 쪼르르~ 오더니 세탁기 쓰는 걸 도와주더라. 빨래가 끝나면 건조기에 옮겨 말린 뒤 나에게 알려주겠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이게 단순히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하는 게 아니고, 세탁기의 빨래를 건조기로 옮기고, 건조기를 작동시키고, 빨래가 끝나면 그걸 방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였던 것 같다. 그러니 비싸지. 일본도 인력이 들어가면 비싸지는데 아이슬란드는 진짜 넘사벽이다. 일본은 쨉도 안 된다.




휴게실에서 태블릿으로 블로그에 올릴 글을 끄적거리며 맥주를 마셨다. 그 와중에 아시아 계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 리셉션 앞을 어슬렁거리더라. 호스트 찾냐니까 그렇다고 하기에 이 쪽에 있다며 아까의 총각처럼 알려줬다. 호스트한테 가서 '손님 왔어요~' 하고 알려줬다. ㅋ


미바튼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검색해보니 다섯 시간 넘게 가야 하는 걸로 나온다. 환한 시간이 다섯 시간 안 되는데. 하루종일 운전하다 끝날 것 같다. 잠시 후 빨래 다 됐나 봤더니 건조기로 옮겨져 돌아가고 있더라. 호스트가 옮겨 놓은 듯.


맥주 마시며 시간 까먹고 있자니 호스트가 와서 '빨래 다 됐는데 방으로 옮겨줄까?' 하고 물어보더라. 내가 하겠다 하고 직접 빨래를 방으로 가지고 간 뒤 정리를 했다.


혼자 쓰는 방이지만 대부분 싱글 침대 두 개가 기본이었다. 내 기준에 비싼 방이지만 별 수 없었다.


보통은 여행 다닐 때 여러 명이 2층 침대에 나눠 자는 도미토리 룸을 이용한다. 하루에 3~4만원 정도면 충분.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해가 짧아 일찌감치 숙소에 들어갔기에 숙소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길다. 다른 사람과 같이 쓰는 방에서 빈둥거린다는 게 불편해서 될 수 있으면 혼자 쓰는 방을 잡았다.





식당도 넓었지만 별도로 마련된 공용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조용했다.



빙글빙글 돌면서 캐롤이 흘러 나왔던 장식. 집에 이런 거 하나 정도 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텔스닷컴의 한국인 후기를 보니 별로 좋은 얘기가 없던데, 나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방은 작았지만 어차피 혼자 쓸 거라 문제가 되지 않았고, 샤워실과 화장실도 깨끗했다. 무엇보다 식당과 공용 공간이 맘에 들더라. 식당에는 온갖 요리 도구가 다 갖춰져 있었고, 커피와 쿠키는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쿠키 하나 먹어봤는데 훌륭하더라고. ㅋ


방에서 짐 정리를 마친 뒤 빈둥거리다가 잤다.




내가 이용했던 방은 숙소로 들어오는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방.




지금까지 묵었던 모든 숙소 중 가장 맘에 드는 곳이었다. 유난히 떠나기 싫더라니... 미바튼이고 나발이고, 그냥 여기에서 머물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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