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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해외여행 』 2019,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여행 #33 미바튼(Mývatn)으로 가는 길 ① (사진)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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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의 여행 이야기는 전(前) 편으로 이다. 응? 갑자기? 응. 갑자기.




히 호스텔에서 숙박한 게 17일. 자고 나서 미바튼으로 떠나는 날이 18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 23일. '아직 5일이나 남았는데 뭔 여행이 끝나?' 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이 날부터는 여행이 아니라 생존이 됐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후 하루에 찍은 사진이 기본 50장, 많은 날은 100장을 훌쩍 넘어가기도 했는데 이 날부터는 열 장이 채 안 됐다. 사진 찍을 정신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몸은 몸대로 지치고, 멘탈은 멘탈대로 부서지고. '이래서 겨울의 아이슬란드가 비수기로 구분되는고나.' 를 절실히 느낀 기간이었다.



새벽에 여러 차례 깼다. 마사미 님과 나카모토 선생님에게 보통의 장갑과 벙어리 장갑 중 어느 것이 좋은지 여쭤 봐야 하는데 시차(아이슬란드가 한국/일본보다 아홉 시간 늦다.)가 있으니 내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의 일본은 새벽. 새벽에 메시지 보내는 게 실례임을 아니까, 새벽에 깨서 메시지를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라인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유튜브로 『 무한도전 』 을 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슬슬 일어나야겠다 싶어 시계를 보니 이미 여덟 시가 넘었더라. 어슬렁거리며 식당으로 향했다. 컵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전자 레인지에 햇반을 돌렸다. 커피 한 잔 타고.

어제의 잘 생긴 한국인 청년이 혼자 식사 중이었기에 간단하게 몇 마디 나눴다. 경상도에서 왔는지 익숙한 억양. 나도 경상도 사람이면서, 최근에 만난 경상도 사람들은 죄다 무례했기에 은근히 '경상도 사람이 싫다.' 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청년은 몇 마디만 나눠봐도 참 좋은 사람이고나 싶더라.




밥 먹고 나서 방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한 뒤 아홉 시 반이 넘어서야 체크 아웃. 구글 맵은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틀림없이 더 늘어질 거라 예상했다.



열 시가 되어도 아직 어둑어둑하다. 하지만 이 때가 좋을 때였다. 그 땐 몰랐었지.


처음에는 괜찮았다. 경치도 끝내주고. 그저 감탄하면서 와~ 와~


아이슬란드에 와서 처음으로 터널을 통과한 날. 아이슬란드 터널은 기본이 6~7㎞ 짜리. -ㅅ-


































하지만... 이 때가 좋을 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색깔이 흰 색으로 바뀌어버렸다. 눈 때문에 도로 자체가 안 보이는 거다. 양 옆의 노란색 기둥만 보일 뿐, 중앙선이고 뭐고 하나도 안 보인다.



이 사진 바로 위의 사진을 찍은 게 11:31, 이 사진이 12:45. 약 한 시간 차이인데 주변이 완전히 달라졌다.



두 시간 가까이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GLS 승합 차. 고마웠어요. 크흡~



다행히도 앞에 GLS라 쓰여 있는 차 한 대가 가고 있었다. 틀림없이 현지인이 운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뒤만 졸졸졸 따라갔다. 그 차가 속도를 줄이면 나도 줄이고, 그 차가 밟으면 나도 밟고. 시야에서 그 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써서 쫓아갔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그렇게 간 것 같다.


한참을 가다가 그 차가 오른 쪽으로 빠진다. 젠장! 나는 직진인데.



이제는 나 혼자다. 아무도 없다.







그렇게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덜덜 떠는 이유가 빙판길 위를 달리는 차가 떨기 때문인지, 무서워서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운전을 했다. 얼마 후 바로 앞에 로터리가 보이는데 눈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간이 안 가는 장소에 도착했다. 마침 오른쪽에 주유소 겸 가게가 보이기에 그 쪽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커피를 주문해서 들고 나와 다시 시동을 걸고, 한숨을 쉬며 정신을 좀 차렸다.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던 것 같다.


다시 조심해서 도로에 진입. 길이 아예 안 보인다. 앞도 하얗고, 뒤도 하얗고, 옆도 하얗고, 하늘도 하얗다. 길도 하얗고, 그 위를 달리는 내 앞 날도 하얗다. 제기랄!



그 와중에 뒤에서 오는 차가 있어 잽싸게 비켜줬다. 길 가장자리로 붙어 먼저 가라고 비켜주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대체 뭘 믿고 이런 길에서 저렇게 밟아대는 거야?'



최대한 조심해서, 속도 줄여서 운전한다고 하는데도 바람에 차가 휘청거리는 게 느껴진다. 어느 정도냐면, 오른쪽으로 굽은 도로인데 스티어링 휠을 15˚ 정도 왼쪽으로 꺾고 있어야 했다. 거짓말 같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진짜 무서웠다.


운전하는 내내 '나는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길 옆에 쌓인 눈이 길보다 높거나 같은 높이라면 길을 벗어나더라도 그냥저냥 죽지는 않겠다 싶은데, 도로보다 낮으니 빠지면 그 순간 끝이다 싶은 거다. 계속 ㅽㅽㅽ 거리면서 운전했다.


남은 거리는 당최 줄어들지 않는 것 같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그게 안 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절대 이 쪽으로 안 갔을 거라고 계속 궁시렁거렸다. 그 와중에 꽉 채웠던 기름은 달랑 한 칸이 남았고, 경고등까지 들어왔다.





어찌저찌해서 간신히 사고 없이 숙소 근처에 도착. 주유소가 있기에 거기에 들어가서 주유하고, 가게에서 빵 한 봉다리를 샀다. 리셉션으로 가니 아무도 없기에 어슬렁거리며 안 쪽을 잠시 살펴봤다. 나와 같이 들어간 사람이 인터폰을 이용해 호스트와 통화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리셉션의 창문 쪽을 보니 종이 위에 열쇠가 있다. 가만히 보니 내 이름도 있더라. 자기 이름이 쓰여진 종이 위에 놓여진 키를 가지고 가면 되는 듯 했다.


리셉션이 있는 건물이 아니라 옆 건물이더라. 눈 밭을 헤치고 방으로 갔다. 예~ 전에 백령도의 구형 관사를 보는 것 같아 별로 기쁘지 않았다. 게다가 방도 호텔스닷컴에서 본 사진과 전혀 다르다. 실망했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데 감사해야 했다. 원래는 데티포스(Dettifoss)에 갈 계획이었다. 영화 『 프로메테우스 』 의 도입부에 나오는 거대한 폭포가 데티포스. 하지만 갈 수 있는 길이 이미 통제된 상태였다. 유일한 길이 막혔으니 갈 수가 없지. 일단은 숙소에서 좀 쉬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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