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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  미 』/『 BOOK 』

은하영웅전설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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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초등학교로 바뀌었고, 그게 옳지만 내가 졸업한 건 국민학교라는 멍청한 생각을 버리기가 힘들다) 6학년 때 국민은행에 통장을 만들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아버지께서 거래하던 주 은행이 국민은행이었다. 아버지께서 통장 만들면서 세종대왕을 모셔 주셨고 그 상태로 몇 달이 지났다. 아버지께서 수시로 몇 만원 씩 넣어주셨지만 나도 모르게 다시 빼가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일해서 번 돈 100,000원을 통장에 넣었다(일해서 번 돈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첫 알바인 신문 배달을 시작한 게 중학교 3학년 때라는 걸 떠올린다면 아마도 명절에 받은 돈이 아니었나 싶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절대 깨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하지만... 6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통장에 남은 돈을 홀랑 다 인출했다. 이문열이 평역한 삼국지 때문이었다. 한 권짜리 삼국지를 보다가 열 권짜리 삼국지를 보니 눈이 돌아갔다. 사고 싶다 했더니 아버지께서 니 돈으로 사라고 하셨다. 당시 권 당 6,000원이 채 안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른 책도 같이 사느라 통장에 있던 돈을 몽땅 다 찾아 썼다(안××이 쓴 『 용의 날 』인가? 조자룡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샀다가 쌍욕을 퍼부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지금도 안××이 쓴 책을 보면 쌍욕부터 하고 본다. -ㅅ-).


이제 와 생각해보면 활자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게 만든 건 부모님 덕분이었다. 내 주위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책장에 있는 책을 싹 다 뽑아낸 뒤 권 수(순서)대로, 제목대로, 작가 이름대로 정리하는 건 수시로 있는 일이었고, 장애물에 부딪히면 바퀴가 부풀어오르는 자동차(당시 꽤 고가였지만 난 시리즈 별로 다 가지고 있었다)가 달리던 길이 책으로 만든 길이었다.

덕분에 중학교 때 중간 내지는 중간보다 쳐지는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무시 당하지는 않았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 잘 하는 애들이 싸움 잘 하는 애들과 함께 먹어주던 시기인데 난 공부와 싸움 모두에서 어중간함에도 불구하고 휘둘리지 않았다. 그게 책 많이 읽어서 '공부는 잘하지 못해도 무식하지는 않다'는 주위의 평가 때문이 아닐까(라고 혼자 착각) 한다.


아무튼... 중학교에 다닐 때 도서 대여점이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걸어서 20분 조금 넘게 걸리는 시장에 '깨비책방'이 있었다. 거기서 『 은하영웅전설 』을 처음 봤다. 표지도 별로였고, 제목도 그저 그랬지만 이상하게 끌렸고, 아무렇지 않게 빌려 왔는데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나보다 먼저 빌려 보던 사람이 있어서 6권 이후 7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주말마다 8, 9, 10권을 들고 있으면서 7권 반납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_ㅡ;;;

아무튼... 그렇게 재미있게, 신나게, 즐겁게 본 책이 정식 라이센스를 얻지 못한 해적판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을지서적『 은하영웅전설 』은 외전까지 열 네 권을 전부 세 번에 걸쳐 샀었다. 책방에서 빌려 본 뒤 이건 소장할 가치가 있겠다 싶어서 신문 배달을 통해 모은 돈으로 질렀는데... 라면 먹으면서 보느라 국물 튀는 바람에 소장용으로 다시 한 번 풀 세트를 질렀다. 처음에 살 때는 한 꺼번에 다 샀고, 이후 다시 지를 때에는 포항에 있는 포×문고와 학×사를 통해 풀 세트를 갖췄다. 그렇게 힘들게 다시 갖춘 풀 세트였지만 명언 찾아 베낀답시고 수시로 들춰 본 덕분에 이내 너덜너덜해졌다. 결국 동네 책 방에 말도 안 되는 헐 값에 중고로 팔고, 새 책으로 또 사들였다. 을지서적 『 은하영웅전설 』만 세 번째였다.

마지막으로 갖춘 풀 세트는 책 펼친 자국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했는데... 개인적인 가정사 때문에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후 서울문화사에서 『 은하영웅전설 』이 다시 나왔다. 당연히 질러야 했거늘... 당시에는 술에 빠져 있을 때라... 10 만원 벌면 9.9 만원이 술 값으로 빠져 나갈 때였다. -ㅅ-   몰아서 지르지 못하고 찔끔찔끔 질렀는데... 본 편 3권 대신 외전 3권이 와버렸다. 덕분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 은하영웅전설 』은 외전 3권이 둘이고, 본 편 3권이 없다. ㅠ_ㅠ   부산 보수동 책방에서 찾아보려 하는데... 워낙 멀어서 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와중에... 이타카에서 『 은하영웅전설 』 재출간 소식이 전해졌다.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았지만 20011년 하반기 출시 운운하기에 포기하고 있었다(이런 식의 낚시질은 그 동안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낚시질이 아니었다. 정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표지 디자인을 문제 삼았지만...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격? 100억을 한다 해도 샀을 거다. 나에게는 무.조.건. 사.야.하.는. 『 은하영웅전설 』일 뿐이었다.
표지 디자인 때문에 일정이 엎어졌고... 자주 이타카의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없던 나는 이타카 트위터를 팔로잉했다. 그런데... 당최 글이 안 올라 온다. 이타카 홈페이지에 가도 온통 광고투성... -ㅅ-   이거 뭔가? 또 이 딴 식으로 끝나는 건가? 또 설레발이야? 라고 포기할 무렵... 드디어 출간 소식이 트위터에 떴다!!!



애초 15만원이라고 알려졌지만, '그래 스물 넷'의 10% 할인된 가격도 17 만원이 넘는다.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러나... 나에게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170 만원이라고 해도 질렀을 거다. 그만큼 내게 『 은하영웅전설 』은 특별하다.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도 이런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 은하영웅전설 』은 내게 있어서 단순한 소설 이상이다. 가치관이 불확실하고 내가 생각한 정의가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혼란스러움에 빠져 있을 때,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옳지 않은 것인지 알려준 것이 바로 『 은하영웅전설 』이다. 『 삼국지 』나 『 수호지 』를 비롯한 훌륭한 책도 많지만 내게 있어서 『 은하영웅전설 』만큼 큰 감동과 깨달음, 재미와 즐거움, 감동과 눈물을 준 작품은 지금까지도 전무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엄청난 대박을 기록하며 기네스 북에 이름 올린 일본 작가네 어쩌네 할 때도 난 다나카 요시키 선생님을 떠올렸고... 온다 리쿠의 싸인을 받으면서도 다나카 요시키 선생님에 대해 아느냐고 묻고 싶었으며... 오쿠다 히데오의 수필 속에 다나카 요시키 선생님이 나오면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혼자 두근두근했었다.



어떤 이에게는 흰 종이에 찍힌 까만 잉크에 그칠런지 모르지만... 내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소중한 작품이 『 은하영웅전설 』이다. 이타카를 비롯해 재출간을 위해 노력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 평생의 소원, 포항 스틸러스 저지를 입고 온 가족이 축구장 가는 것과 더불어... 아들과 함께 『 은하영웅전설 』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모든 분들께 몸과 마음을 바쳐 감사한다. 3 대에 복 터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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