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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12년 02월 21일 화요일 흐림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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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지겹도록 보던 해무가 겨울에 등장했다. 여름만큼은 아니지만 꽤 심하다. 겨울에 해무 보는 건 엄청나게 오랜만인 듯.

이타카에서 『 은하영웅전설 』 전자책으로 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되겠다. 결국 직접 찍는 막노동을 하는 수 밖에 없는 건가? 하루에 40 페이지씩 찍어도 한 권 찍는데 열흘 걸리는데. 40 페이지 찍으려면 두 시간 정도? 그 이상? -_ㅡ;;;   근무장 컴퓨터에 USB 연결 된다고만 하면 남는 시간에 찍어서 저장한 뒤 들고오면 좋을텐데... 일찌감치 포기. 에휴~ -ㅁ-

근무장에 직장 선배가 데려온 길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완전히 사람에 적응해버렸다. 이제는 사람 손 타서 아무렇지 않게 무릎으로 올라오고 애교도 부린다. 정말 작았는데 이제는 덩치가 어마어마하다. 뒤에서 보면 징그러울 정도다.
어디에선가 고양이 눈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는 글을 봤다. 그래서 요즘 고양이 눈을 자주 본다. 음... 모르겠다. 다만 기쁜 눈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예전에 나이 서른이 되면 당연히 결혼해서 애 하나 낳고 집과 차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TV 속 행복한 가정의 전형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서른을 훌쩍 넘겨 버렸다. 만으로 따져도... T^T
아마도 서른을 완성이라 여겼던 것 같다. 열 여섯, 열 일곱 무렵이었으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더 살면 뭔가 완성되어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서른은 완성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언가의 시작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바라는 완성작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채 무작정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뭔가 진행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각양각색의 블럭을 부지런히 쌓아 나가고 있긴 한데 누가 뭐 만들고 있냐 물어보면 대답 못하는 상태...

마흔이라는 나이가 희미하게나마 할자를 포함한 아버지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마흔이 되었을 때 이 글을 보면 그 땐 그나마 젊었지라고 생각할까?

『 스타워즈 』 시리즈 레고를 사서 『 캐리비안의 해적 』에 나오는 블랙펄 호를 만드는 건... 나름 괜찮다. 필요한 블럭이 없어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을런지 모르지만 뭔가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고 거기에 도전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어찌 됐든 배의 모양을 갖춘 완성작이 만들어질테니까. 하지만 나처럼... 만들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데 블럭 놀릴 수 없어 무작정 조립하고 있는 경우라면 좀 답답해진다. 난 대체 뭘 만들고 싶은 걸까? 뭘 만들고 있는 걸까? 나름 정성들여 만들고 있는데 방 어지럽힐 거면 나가 놀라는 타박이나 듣게 되는 건 아닐까?

초등학교 때부터 불면증을 앓아 왔다. 길게 자도 세 시간이다. 깼다가 다시 잠들곤 한다. 그래서 뭔가 정적인 일을 하면 늘 피곤함을 느낀다. 요즘은 일부러라도 많이 자려고 한다. 의도적으로 취침 시간을 늘리고 있다. 그래서 20시 30분이 되면 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상 자려고 누워도 손전화나 전자책 만지작거리다가 한, 두 시간 늦게 자는 일이 다반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만날 자정 넘겨서 자던 예전보다는 많이 자는 것 같다. 그런데도... 몸과 맘이 질질 늘어진다. 육지 나갔다 온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이런다. 그냥 질질 늘어진다. 포항 가서 축구 보고 오면 괜찮아질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일체형 어쩌고 하는 걸 싫어해서 용도별로 들고 다니는 기기들이 많다. 그렇다는 얘기는 짐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같이 들고 다녀야 할 것들이 늘어나니까 말이다. 충전기까지 일일이 다 들고 다니는 건 귀찮아서 손전화는 예비 배터리만 챙겨 나간다. 그래도 닷새 동안 한 칸도 줄지 않더라. 오래 간다 싶어 신기해했는데... 백령도 들어오고 나니 하루 만에 한 칸 남는다. 통화도 안 했고 문자도 하루에 두 건 정도만 오는데 이 모양이다. 주인 닮아가는 모양이다. 백령도에서는 방전이 빠르다.

4년간 고여 있던 곳으로 다시 흘러들어와 1년 넘게 고여 있다. 난 흐르지 않지만 흐르는 물만큼 깨끗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더럽지만 너는 깨끗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깨끗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같이 노력하자고 한다. 그런데 남들은 그저 내가 고여 있으니 더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 그렇다면 흘러가주지! 라고 발끈하고 싶은데... 예전 같았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텐데... 그러기가 힘들다.

지금 생활에 안주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장단점이 있지만 단점 참아내고 장점 즐기면서 고여 있는 거다. 다른 곳으로 흘러가면 흘러가는대로 즐겁고 힘들고 그러겠지. 다만 이리저리 따져보니 지금 당장은 단점보다 장점이 커 보이니까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으려 하는 것 뿐이다.

박경철 원장님이 쓴 책을 잠깐 봤는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글이 보인다. 나한테 하는 말 같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털썩 주저 앉고 싶어진다.

나와 동갑인데 온 몸으로 암이 퍼져 죽은 여자가 죽기 전에 쓴 책을 읽었다. 건성으로 대충 읽는데도 공감되며 마음 가는 내용이 많더라. 예전에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을 봤는데 그 책의 큰 메시지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이 책도 같은 메시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지나간다'.

돌이켜보면 예전에 상당히 힘들어했던 일들, 지금은 그저 그렇다. '지나갔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테지. 요즘 몸과 마음이 질질 늘어지고 퍼지는 것도 지나갈 것이다. 아니, 틀림없이 지나간다. 앞으로 맞딱뜨려야 할 큰 파도에 비하면 지금의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은 작은 파도일런지도 모른다. 다음 달에 상륙하면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들고 와서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날 따뜻해지면... 근무장에서 자야겠다. 새벽에 축구도 보고. 그리고...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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