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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12년 02월 26일 일요일 맑음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2.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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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다녀온 뒤 지난 주 내내 라면에 밥 말아 먹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다른 걸 먹자고 생각한 끝에 사들고 온 게 피자다. -_ㅡ;;;   그냥 먹고 싶었다. 핫 소스 잔뜩 뿌려 알싸한 맛 느껴가며 먹고 싶었다. 그런데... 20,000원 가까이 주고 사온 피자가 배탈을 불러 왔다. 피자 먹고 일찍 잔다고 누웠는데 새벽에 배 아파서 화장실 들락날락 하다가 잠 다 깼다. 젠장!

숙소에 있는 것들 대충 꺼내 먹고... 먹을 게 다 떨어졌다. 퇴근해서 장 보러 갔다. 맥주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휴가 다녀온 뒤 한 번도 안 마셨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질렀다. 간만에 한 잔 하니 기분 좋다. -ㅅ-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참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지지리 일도 못하는 냥반이 지가 일 잘한다고 자뻑해서 떠들어대는 거 보면 좀 같잖다. 그런데... 나를 저렇게 생각하는 후배들도 분명 있을 거다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면 소름이 돋는다. 내가 옳다고, 맞다고 떠들어댄 것이 누군가에게는 한 물 간 또는 틀린 얘기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거다.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은근 무섭다. 적어도 회사에서 내가 월급 받는 이유가 되는 일로 남들한테는 지고 싶지 않다.

매 달 열 권 이상 책을 읽었는데 이번 달에는 좀 부진하다. 왜 그런가 봤더니 도서관에서 빌려 본 게 아니라 내 돈 주고 사서 본 책 보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고 전자책 영향도 좀 있는 것 같다. 분발하자며 간만에 '미야베 미유키' 책을 빌려 왔는데... 술술술 읽힌다.

난 속독이 가능하다. 400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은 삽화가 하나도 없더라도 네 시간 이내에 다 읽을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책은 무리다. 소설은 가능하다. 등장 인물이 좀 많아도 관계 없다. 진지하게(?) 읽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빨리 읽는다.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라면 여덟 시간만에 다섯 권도 읽을 수 있다. -ㅅ-
일부러 배운 건 아니다. 부지런히 읽다보니 어느 틈엔가 두 줄, 세 줄씩 한 꺼번에 읽는 게 가능해졌다. 문제는... 이렇게 읽을 경우 그 내용이 머리 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는 거다. 금방 잊혀진다. 한 달 정도 지나서 다시 보면 읽은 거네~ 라고 다시 내려놓게 되지만, 한 해가 지나서 보면 본 거 같은데... 라며 갸웃거리게 된다.

그래서 마음에 와닿은 문장이 있으면 따로 메모하거나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게 됐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책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으니까 휴대 전화에 옮겨 놓는다. 오늘 읽은 『 용은 잠들다 』에서 맘에 드는 구절은

남녀를 불문하고 일반적으로 스물다섯 살을 넘어서면 아줌마, 아저씨, 라고 불려도 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는 일단 발끈하는 표정을 지을 권리는 있다.

사람이란 이따금 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유혹에 이끌려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는 아주 잘 어우러진 형태로 공존한다. 영원히 교차할 일이 없는 철길과도 같다. 우리는 그 양쪽에 바퀴를 얹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가가 무당에게 점을 보건, 현실을 초월해야 할 종교가가 세금을 안 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인텔리전트 빌딩을 지으면서도 심각한 얼굴로 고사를 지낸다. 합리의 레일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냉혈한이 되고, 불합리의 레일로 기울어지면 광신도가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선가 탈선하게 되어 있다.

인간은 말이야, 아니 어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바로 미안합니다, 라고 할 정도로 단순하지는 않아. 나쁜 짓을 저질렀다느 ㄴ것을 깨닫고 나서야 몸보신을 궁리하는 경우도 있지.
               정도다. 고작 100쪽 남짓 읽었는데 네 덩어리나 나왔다. 역시 미미 여사다.

휴가 다녀온 지 열흘 지났을 뿐인데 지친다. 지금까지 힘들다 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 때문에 마음에 지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나 자신이 힘듦의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나를 부담스러워 하(한다고 느끼)고 다른 곳에서는 오라 한다. 당연히 오라는 곳으로 가서 으시대야 할텐데 여러 가지 따지다보면 계속 남아있었음 싶다. 계획한만큼 남아서 (남들이 보기에) 유유자적하다가 적당히 흘러갔음 싶은데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앞으로 어찌 해야 할런지 걱정이 많다. 난로 앞에 갑자기 던져진 고드름처럼 녹아 없어졌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하루종일 안 보이던 고양이가 아침부터 쫓아 다닌다. 잘 모르지만 배 고파서 따라다니는 거, 뻔히 보인다. 밥을 자주 줬기에 아침에 보면 밥 달라고 쫓아다닌 적이 많긴 한데... 오늘은 유난히 애절해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밥 그릇이 텅 비었다. 사료를 찾아보니... 없다.

바람도 많이 불어 날씨도 추운데 같이 일하는 분이 고양이 털 알레르기(일본어 발음인 줄 알았는데 독일어 발음이란다. 표준어다.)가 있어 근무장 구석에 데리고 가지도 못한다. 덜덜덜 떠는 거 보니 안스럽다. 오후에 잠깐 나왔더니 문 앞에 있다가 미친 듯 쫓아온다. 이 추운 날 문 앞에서 언제 나올지 모를 나 따위 기다려줬다는 생각을 하니까 괜히 뭉클했다. 젠장... 고양이 따위에... ㅠ_ㅠ

뭐라도 줘야겠는데 냉장고도 텅 비어 있고... 사람이 먹는 거 그냥 막 주면 안 된다는 글을 봐서 이래저래 고민이 됐다. 맨 밥 줬는데... 어찌나 배 고팠는지 그것도 막 먹는다. 간도 안 된 맨 밥을... 아아...

퇴근 두 시간 정도 남기고 일 있어서 잠깐 나왔더니 계속 울면서 따라온다. ㅠ_ㅠ   뭐라도 줄 거 없을까 하다가 급하게 컵라면 끓여서 안에 있던 건조 오징어(인지 뭔지)를 주니 허겁지겁 먹는다. 면발 좀 줬더니 처음에는 좀 먹다가 이내 무시한다. 라면 싫어하는 녀석이다. ㅋ

퇴근하려고 나오는데도 계속 따라다녀서 가슴 아팠다. 배 고플텐데... 쫄쫄 굶었을텐데... 사람이 주는 사료에 익숙해져서 스스로 먹을 거 마련하지 못할텐데... 걱정이 많이 된다. 술 먹었으니 차 끌고 나가는 건 안 되겠고, 슬슬 걸어서 고양이 사료 사러 가야겠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밥 굶게는 하면 안 되지 않냐... ㅠ_ㅠ

날 더울 때면 길에서도 맥주 마신다. 남들은 목 마르다고 스포츠 음료 같은 거 사 먹는데... 나 같은 경우는 맥주가 땡기는 날이 종종 있다. 그래서 맥주 마시며 걷는 거다. 누군가가 이 걸 보고 길빵이라고 했다. ㅋㅋㅋ

그 표현이 맘에 들어서 그 뒤로 스스로도 길빵한다고 하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이 정신 차려라, 미쳤다 등으로 표현한다. 아니, 콜라 마시는 건 괜찮고 맥주는 안 된다고? 알콜 5%도 안 되는 거 한 캔인데? 라고 했더니... 걸으며 소주 병나발 부는 사람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고 한다. 미친 놈이지, 그건. 이라고 했더니... 남들이 너 보면 그렇게 생각해. 라고 한다. -ㅅ-

음... 남한테 피해 안 주는 미친 놈도 당당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쯤이면 세상이 바라고 조직이 바라는 나이에 걸맞는 삶을 살게 될까 나 자신도 궁금하다. 시나브로 꼰대스러워지고 있고, 그걸 혐오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보다 철없이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계속 이렇게 살면서 꼰대들에게 욕 먹는 삶을 누리고픈 바람이다. 내가 가졌다고 착각한 세상은 결국 나보다 늦게 태어난 누군가의 것임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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