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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뽀오츠 』/『 스틸러스 』

올 시즌은 망했다 1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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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철이 그만두고 나갔다. 2016 시즌 포항과 관련한 뉴스 중 최고의 희소식이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위권에서 싸우는 것에 익숙한 선수들도 아니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팀을 장악하기 어려웠다.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 선수단을 깨우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혼자 털고 나가는 것 같아서 주변 분들에게 미안하다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저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선수들이 왜 자신감을 잃었을까? 최진철은 경기가 끝나고 감독 인터뷰 할 때마다 선수들을 질책했다. 본인이 원하는 축구가 제대로 나왔다고 인터뷰 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은 것은 누구 탓인가?


황선홍 감독 시절의 포항은 화수분이었다. 고무열은 개인적으로 황선홍 감독이 지나치게 아낀 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빼겠다. 이명주는... 대단했다. 영남대 나와 갓 프로에 뛰어든 선수가 어찌 저렇게 잘할까 싶더라. 2014 시즌 전반기는 정말 최고였다. 김승대는... 찔끔찔끔 출전할 때에는 크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명주의 킬 패스를 줄타기 하며 받아먹는 스킬이 생긴 이후부터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광훈은 아쉽게도 큰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동생인 이광혁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활약을 여러 번 선보였다. 포항 출신의 유스는 아니지만 양동현이나 심동운이 황선홍 감독 밑에서 배웠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졌으리라 생각한다.


라커룸의 화이트 보드에 『 우리는 포항이다 』를 가장 먼저 쓴 뒤 선수들을 지도했던 황선홍 감독. 경기 후 인터뷰마다 언론을 통해 선수들을 질책한 최진철. 선수들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겠는가? 팀 장악에 실패한 것이 선수 탓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건 순전히 감독의 능력이다. 이제 와서 책임을 진다고? 시즌 개막 전부터 죽쒔던 최진철이다. 이미 완성된 축구를 하고 있어 크게 손댈 부분이 없다고 하더니, 최고의 패싱 축구를 하던 팀을 지독한 수비 축구하는 팀으로 바꿔놓았다. 꾸역승 아니었다면 진작에 쫓겨나도 무방했다. 혼자 털고 나가는 게 미안하다면 김인수와 박진섭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 다 데리고 나갔어야지, 왜 김인수에게 임시로 팀을 맡긴다고 한 거지? 플라비우 피지컬 코치 있을 때 포항이 체력 문제로 기사 난 적 있던가? 후반에 체력 떨어져 진 적 있던가? 멀쩡한 피지컬 코치 바꾸더니 매 경기마다 선수들 체력 탓이다. 그게 누구 잘못이냐?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다. 선수들이 틀에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더라. 그러다보니 내 스타일 대로 하지 못하고 선수들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물론 나도 선수들을 잘 이해시키지 못했다.


대체 해보고 싶은 게 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주고 떠났으면 좋았을 거다. 간결한 패스로 상대 라인 밀어올리며 공격, 또 공격하던 팀을... 한 골 넣으면 죄다 하프 라인 밑으로 내려와 수비만 하는 팀으로 만들어놓고, 뭘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건가? 부임 이후 동계 훈련을 거쳤고, 약속의 땅이라는 가평에도 다녀왔다. 1년 가까이 팀을 맡으면서 대체 뭘 했기에 해보고 싶은 것을 못했다는 거지? 선수들이 틀에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더라고? 예전에 쳐맞고 쌍욕 듣던 시절에나 감독이 하라는대로 움직이는 기계 같은 선수였지, 요즘은 선수들도 자기 생각 가지고 움직인다. 선수들이 납득할 수 없는 지시를 하는데 감독 얘기라고 고분고분해야 할까? 하라는대로 했더니 경기력은 엉망진창인데도? 대체 얼마나 뻔뻔하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변화를 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매경기 같은 멤버로 경기를 치르다보니 로테이션이 이뤄지지 않았다. 체력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경쟁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도 내 운이었다.


하아... 지금까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최진철은 절대 스스로 물러나고 싶어 물러난 게 아니다. 등 떠밀려 마지 못해 나간 거다. 만약 인천과의 경기에서 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편 들어주는 팬들이 여전히 떠들어댔다면... 사퇴는 없었을 거다. 본인의 소신은 중요하다. 그러나 꺽을 줄도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결과도 엉망이고, 경기력도 개판이며, 팬들도 모두 등 돌리는데 나 혼자 독야청청? 변화를 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고? 엄연히 수비로 등록된 이재원을 공격으로 내보낸 게 몇 경기더라? 오죽하면 레모스와 비교 당하면서 알렉산드로와 이재원을 동일시하기까지 했을까. 약 30여 명의 등록 선수 모두가 당장 1군에서 뛸 실력은 아닐지 모르지만 최소한의 로테이션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단 말인가? 열한 명 빼면 바꿔 넣을만한 선수가 없을 정도로? 허...



단언컨대 수비축구를 요구한 적은 없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대로 경기가 풀려갔는데 이것이 밖으로 왜곡되는 것이 아팠다.


난 이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보는 눈이 몇 개고 듣는 귀가 몇 개인데 대놓고 수비 축구하라 하겠는가? 그런데... 선수들한테 무조건 공격해, 공격만이 살 길이야! 해놓고 하지만 한 골이라도 먹으면 남은 시즌 몽땅 벤치 신세질 줄 알아라! 라고 한다면... 선수들이 공격 앞으로!!! 할까?   광주와의 경기에서 전반 이른 시간에 선제 골 넣은 뒤 모든 선수가 하프 라인 밑으로 내려와 수비하다 경기 끝냈다. 광주 남기일 감독의 인터뷰, 지금 다시 봐도 창피하기 짝이 없다. 오죽했으면 선배 감독 들으라고 그런 인터뷰를 했을까. 포항이 언제부터 수비 축구, 침대 축구 소리 들어야 했냐는 말이다. 본인은 그렇게 하라고 안 했는데 선수들이 그렇게 했다면... 거기서 오는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뭔 전술이 있고 전략이 있고 경기 뒤집을만한 선수 교체가 있었냐고. 쯧...



하지만 돈 주고도 못살 경험을 쌓은 것 같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면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최진철이 돈 주고 못 살 경험을 하는 동안 전통의 명가 포항은 하위 스플릿이 확정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강등권에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는 지금 당장 전북 감독 자리를 줘도 똑~ 같은 모습을 보일 것 같다. 날 잡아서 신광훈 선수 인터뷰 한 번 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대선배니까 말도 가려야 할 것이고 이래저래 눈치 안 볼 수 없는 상황이니 적당히 포장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지만, 입대 전의 황선홍 축구와 입대 후의 최진철 축구를 다 겪어본 신광훈 선수니까... 누구보다 최진철 축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손준호의 부상이 안타깝긴 하지만... 최진철의 형편없는 성적이 손준호 때문이라면, 그건 포항이 원 맨 팀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 밖에 안 된다. 한 사람이 팀을 좌지우지 할 정도 밖에 가르치지 못한다면 감독 능력이 없는 거지. 고무열, 이명주, 김승대는 데뷔하자마자 엄청나게 잘했던 걸로 기억하는 ×××들이 많은데, 황선홍 감독이 꾸준히 경기에 내보내며 키워 쓴 선수들이다. 최진철에게 그런 선수가 있는가?


KTX 덕분에 다니기가 수월해지긴 했지만 포항은 여전히 교통이 불편한 지방 도시다. 수도권 팀을 선호하는 게 요즘 선수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은 '포항이라면' 또는 '포항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입단을 바라는 선수가 많았다. 그런데... 최진철은 파리아스 감독과 황선홍 감독이 만들어놓은 그런 분위기를 1년도 안 되어 깨고 말았다. 수원이 같이 몰락해 그나마 티가 덜 나겠지만 수도권 팀과 포항에서 모두 오퍼가 들어온다면 포항을 선택하는 선수가 몇이나 될까? 올림픽 대표팀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문창진은 계속 포항에 남아 있고 싶어할까? 해외 진출은 차치하고, 타 팀에서 이적 제의 오면 포항에 남겠다고 할까?



시즌 개막 전 ACL 경기 치르는 거 보고 이미 최악의 사태를 예상했다. 내 예상이 틀려 '수십 년 축구 봤는데도 형편 없구나' 하고 괴로워하는 쪽이 차라리 나았을텐데... 최진철은 경기 없는 날에도 포항 유니폼을 즐겨 입던 내가, 포항 유니폼을 들고 입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시 옷걸이에 걸어놓고 다른 옷 입고 나가게 만들어버렸다. 그냥 내 생각이지만... 최진철은 여러 가지로 억울한 감정일 것 같다. 본인 탓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걸 내려놓은 마당이니 외부에서 완전한 제3자의 눈으로 다시 한 번 보기 바란다. 황선홍 감독의 포항과 최진철의 포항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과연 선수들이 좀 더 고분고분하게 따랐다면, 시간이 좀 더 주어졌다면, 상위 스플릿에 진출해서 ACL 티켓을 놓고 싸우고 있었을까?   어림도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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