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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바일 』

017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고나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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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다니는 전화기를 처음 쓴 건 1998년이었다. 한국통신이 016, 한솔 텔레콤이 018, LG 텔레콤이 019로 PCS 서비스를 시작했던 게 저 때. PCS 서비스는 ㎓ 주파수를 사용했는데 직진성이 강해서 잘 안 터졌다. 직진성이 강한 거랑 잘 터지는 거랑 무슨 관계냐고? 전파는 직진을 하는데 장애물에 가로 막히면 돌아가는 게 아니라 뚫고 가려 한다. 뚫어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장애물 건너 쪽은 해당 전파를 받을 수 없는 거지. 그래서 상대적으로 낮은 주파수를 쓰던 SK 텔레콤이 한국 지형에 강하다면서 자기네가 더 잘 터진다고 광고를 했더랬다. 산악 지형이 많은 한국에서는 SK 텔레콤이 쓰고 있던 주파수가 유리하다는 거지. 실제로 SK 텔레콤이 빵빵 터지는 곳에서 PCS는 먹통이기 일수였고. 그래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여전히 SK 텔레콤이 잘 터진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아무튼. 당시 20만원 주고 산 현대 걸리버를 쓰면서 016으로 손전화를 개통했고, 1년 넘게 썼다. 언제 SK 텔레콤으로 넘어갔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일단 군대 가기 전에 SK 텔레콤 썼던 건 확실하다. 011-9×××-7077 번호를 썼는데 나름 골드 번호라 생각하고 잘 썼더랬다.


그러다가 개인 사정으로 쓰던 전화를 해지하고, 신규로 다시 가입을 했다. 여전히 011로 시작하는 번호였고.



시간이 흘러 스마트 폰의 시대가 되었고, 정보통신부 장관이 특정 번호와 기업의 연관성을 끊겠다며 느닷없이 손전화 번호 앞 대가리를 하나로 통합해버렸다. 011이라는 번호의 가치에 큰 투자를 했던 SK 텔레콤은 닭 쫓던 개가 되어버렸고. 당시 010 통합을 주도했던 정보통신부 장관이 KT 출신이라는 게 두고두고 회자됐다.




011 번호를 계속 쓰고 싶었기에 두 회선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엄마한테 스마트 폰을 사드리면서 엄마의 017 번호를 가지고 왔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017은 신세기 이동통신의 식별 번호였고, 이후 SK 텔레콤에 넘어갔더랬다. 지금이야 통화 무제한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통화 시간이 길면 그만큼 줄줄줄 돈이 나갔다. 그런데 017 같은 경우 가족으로 묶으면 무제한 통화가 가능했더랬다. 그래서 가족 명의로 017을 개통한 뒤 여자 친구에게 줘서 낮이고 밤이고 통화하던 사람들이 꽤 있었더랬다. 017의 신규 가입이 끊어진 이후에도 저 요금제에 프리미엄을 붙여 명의를 넘겨 파는 사람도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하고.


얘기가 샜는데, 내 011보다는 엄마의 017이 더 오래 됐었다. 맘 같아서는 011, 017을 유지하면서 010을 쓰고 싶었지만 단순히 번호를 유지할 목적으로 세 개의 회선을 가지고 있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011은 해지를 하고, 엄마의 017 번호를 내 명의로 옮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쓰는 중이다.


LG의 롤리팝 폰으로 가입이 되어 있는데 그 롤리팝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착신 전환을 걸어 010으로 쓰고 있으니까. 저렇게 쓰면 불편한 게 꽤 많다. 일단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당연히 010-××××-××××으로 간다. 문자 메시지 전송 전화 번호를 바꿀 수 없게 된 지 꽤 됐으니까. 그럼 상대편으로부터 누구냐고 답장이 온다. 당연하지. 017 번호가 아니니까. 그래서 017이랑 010 다 쓴다고 다시 말해야 하는 거다.

017 번호로 카톡 가입은 가능하지만, 문자 메시지는 못 받을 때가 맞다. 손전화에서 직접 보내는 건 거의 100% 오는 것 같은데 컴퓨터나 자동화 된 시스템으로 보내면 안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증 문자 같은 걸 못 받을 때도 있고, 한~ 참 있다가 줄줄이 몰려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다른 통신사의 식별 번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고, SK 텔레콤에서 011, 017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내년 6월을 마지막으로 없어진단다. 관련 뉴스를 보니 수십 년 써온 번호를 유지하겠다는데 왜 없애냐는 사람과, 그런 사람들을 특권 의식에 물든 꼰대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아웅다웅이더라.


난 왜 한 달에 13,500원씩 꼬박꼬박 내면서 017 번호를 쓰고 있는 걸까?


생각해봤는데, 관심 받고 싶어서 말고는 딱히 이유가 없는 것 같다. 회사의 비상 연락망을 보면 죄다 010이다. 유일하게, 정말 딱 한 명, 나만 017이다. 010 번호도 있지만 회사라던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늘 017 번호를 가르쳐줬거든. 그러면 사람들이 이 번호 맞냐고 물어보고, 아직도 이 번호 쓸 수 있냐고 물어보고. 그냥, 그게 전부인 것 같다. 무슨 번호의 자부심이 남다르네 어쩌네 하는 것도 나와는 먼 얘기고, 오래 써왔기 때문에 몇 년 간 연락이 끊긴 사람과 연락이 될까봐 따위도 전혀 관계가 없다. 그저, 내가 관종이라서, 손전화 식별 번호 따위로 관심을 받는 게 즐거워서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달에 13,500원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될 수 있으면 오래 쓰고 싶었는데, 이제는 1년 짜리 시한부 번호가 됐네. 010으로 갈아타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딱히 끌리는 게 없다. 단말기 무료 제공 하네 어쩌네 하던데, 그렇게 전환하면서 무료로 기기를 받으면 또 2년 의무 사용 같은 게 걸릴 게 뻔하고. 당분간은 기사 올라오는 거 보면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오래 썼던 011을 해지하고 엄마의 017 번호를 가져올 때부터 이미 언젠가는 없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없어진다니까 아쉽긴 하다.




011 SK 텔레콤

012 한국 이동통신 - 삐삐

013

014

015 서울 이동통신, 나래 이동통신 등 - 삐삐

016 한국 통신 (現 KT)

017 신세기 이동통신 - SK 텔레콤에 병합

018 한솔 텔레콤

019 LG 텔레콤


012와 015는 삐삐 번호였는데 012는 서울에서, 015는 지방에서 주로 썼던 걸로 기억한다. 013은 특수 번호로, 삐삐 비스무리한 단말기로 주식 정보 같은 걸 보내주고 하는 기기에서 썼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직접 쓴 적은 없어서 확실하지 않다. 014는, 뭐... 4에 대한 선호도가 바닥인 우리나라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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