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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뽀오츠 』/『 축  구 』

2010 남아공 월드컵 : B조 1경기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0.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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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ㅋㅋㅋ

지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이미 토고를 상대로 2 : 0 의 승리를 거두었기에 원정 첫 승은 아니었지만, 안방 호랑이라는 오명을 씻어내기에 충분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제대로 이겼다.

 

 

세계인의 축제, 축구 팬이라면 미칠 수 밖에 없는 월드컵에서 난데없이 농구 얘기를 꺼내 보겠다. 농구 만화의 교과서라고 불리우는 『 슬램 덩크 』 18권과 19권(완전판 기준)에는 '풍전'이라는 팀이 나온다.

이들은 노 선생님에게 배운 런 앤 건(말 그대로 달리고 쏘는 거다. 수비보다는 공격을 우선시하며, '먹히면 그 이상 넣는다!' 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공격 일변도로 경기를 풀어 나간다.)을 장착한다. 그리고, 에이스 킬러라는 별명을 가진 남훈을 주축으로 달리고 던져 넣는 경기를 한다.

우승을 하지 못하자 학교는 노 선생님을 쫓아내고 젊은 새 감독을 데리고 온다. 새로 부임한 김 감독은 런 앤 건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첫 날부터 선수들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고, 선수들은 새로 온 감독이 뭐라고 하든 런 앤 건으로 우승하여 노 선생님을 다시 불러오자라고 다짐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에이스 킬러 남훈의 고의성 짙은 파울로 북산의 스코어러 서태웅이 눈 부상을 당하면서 북산은 큰 점수차로 뒤지게 된다. 하지만, 후반 들어 송태섭을 비롯한 다섯 선수 전원이 각성하면서 역전하게 된다.

풍전은... 역전 당한 상태에서도 끝까지 런 앤 건을 놓지 않는다. 끝까지 그들의 농구인 런 앤 건을 한다. 끝까지, 끝까지 그들만의 농구를 한다.

 

 

그리스를 보면서 풍전이 생각났다. 정말이지 지독하리만큼 자신들의 축구를 했다. 수비 뒷 공간으로 줄기차게 공을 띄워댔다.

만화 속에서의 풍전은 이상과 꿈을 향한 고집으로 멋지게 그려지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의 그리스는 '전략 및 전술 없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를 의식해서인지 색다른 선수 조합을 들고 나왔지만, 그들의 뻥 축구는 여전했고... 이에 철저히 대비한 우리 수비진에 번번이 틀어 막히면서 결국 두 골을 내준 채 지고 말았다.


 

 

한 달이나 됐나? 두 달 됐나? 아무튼... LG 뭐시기 연구소인가 하는 천연 잔디 구장에서 공을 찬 적이 있다. 이란 애들이 팀을 이뤄 우리와 함께 경기를 했는데... 와~ 얘네들 다리가 길어서 겅중겅중 뛰는데다가 키와 덩치는 큰데 느리지도 않아서 막느라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가 그리스에 비해 하드웨어적으로 우수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선취 골을 넣은 이정수의 단단함이나 달려드는 상대를 오히려 튕겨버리는 차두리 같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가 하드웨어로는 그리스에 밀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두 골 차의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왜일까?

 

 

 

뭘 왜일까냐! 우리가 잘 했으니까 이긴 거지. ㅋㅋㅋ

정말이지... 기똥차게 잘했다. 전반 초반에는 우리 공격진이 수비 라인을 너무 아래 쪽으로 끌고 내려온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 실제로 그리스는 공격수들이 하프 라인을 넘어 수비를 시작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하프 라인 아래에서 수비에 가담했다.

왜 저렇게 수비 라인을 아래 쪽으로 내려 잡은 거지? 라는 의구심은 이내 사라졌다. 우리는 그들의 뻥 축구에 대비한 거다.

자기 진영에서 뻥~ 질러서 우리 뒷 공간을 노리지 않는다. 하프 라인을 넘어와서 센터 서클 약간 지난 지점부터 이들의 뻥 축구가 시작된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뻥~ 하고 지르기 전에 차단하려고 수비 라인을 아래로 내린 거다. 이건 철저한 준비의 승리이자, 열 한 명 모두의 승리다.


 

 

기성용이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고 수비 쪽에 치우친 것도 그러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스의 수비가 탄탄하다고 미리 걱정했지만, 조용형과 이정수가 막아낸 우리 수비 쪽이 훨씬 탄탄했다. 더구나 이정수는 골의 움직임을 미리 예상하고 기다리다가 볼을 처리하는 똑똑한 모습을 보였다.

 

선제골은 난데없이 터졌다. 정말 순식간에 터졌다. 박주영이 앞에서 수비를 끌어준 게 큰 역할을 했다. 마크가 없는 상태에서 여유롭게 골을 넣었다.

득점 이후 그리스의 적극적인 반격이 시작되면서 우리가 밀리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뻥뻥 질러대는 축구는 우리 수비에 의해 철저히 커트 당했다. 그나마 실점 이후 약 15분 정도는 어느 정도 공격 개시가 가능했지만, 이후부터는 아예 넘어오는 것 자체를 막아내며 공격의 시작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이청용이 상대 수비에게 엉덩이를 차이며 중심을 잃은 건 명백한 파울이었는데, 마이클 헤스터 주심은 이를 불지 않았다. 재수 없는 놈... -_ㅡ;;;

박주영의 단독 찬스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칩 샷을 했다면 영락없는 골이었는데... 그래도 골키퍼 속이려고 때린 슛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운이 안 따랐을 뿐...

염기훈의 지나친 자신감은 좀 안스러웠다. 드리블할 때마다 계속 걸리는데도 주구장창 드리블로 시간 끌며 경기를 질질 늘어지게 하더니, 결국 포기했는지 후반에는 드리블을 거의 안 하더라. 확 바꿔 버리지! 라고 생각했는데 후반에 그래도 잘 뛰어줬으니, 뭐...


 

 

그리스 녀석들이 진영 선택할 때 뜨끔했다. 그림자 방향을 보니 정성룡이 해를 보고 골문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뻥 축구 때문에 공이 뜨자 그렇잖아도 공중 볼 처리에 미숙한 정성룡이 위험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큰 실수없이 무실점으로 잘 막아줬다. 슈퍼 세이브도 한 차례 했고. 무실점은 정성룡의 공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조용형이정수의 안정된 수비 덕이다.

 

차두리는 꽤 불안했는데, 희한하게도 걷어내는 볼마다 상대 수비 뒷 공간으로 이어져 상대를 뜨끔하게 만들었다(의도하고 찬 공은 절대 아니라고 확신한다). 적극적으로 오버 래핑했고, 수비도 잘해줬다. 개인적으로 수원에서 뛰다가 은퇴한 박건하 선수는 참 대단하다 싶다. 이 선수, 원래 공격수였는데 수비수로 변신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 그 전에 김주성 선수도 있었고. 아무튼... 공격수로 데뷔했다가 안정적인 수비수가 된 차두리 선수, 브라보~

 

이영표는... 말할 필요 있나? 정말 최고다. 헛다리 짚기는 거의 선보이지 않았지만, 상대 예상을 뒤엎는 방향 전환만으로도 그리스 선수들을 농락했다. 위험한 지역에서도 안정적으로 상대를 가지고 놀았고, 위기 상황에서 어린 선수들 다독이며 진정시키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2002년 당시 이영표 같은 선수 둘만 더 있으면 당장이라도 우승하겠다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정말 똑똑하게 공 차는 선수다. 같은 팀에 있다면 안심하고 뒤를 맡길 수 있는, 멋진 선수다.

 

김남일, 이승렬, 김재성은 교체로 들어와 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뭐라 평가하기는 좀 그렇고... 박지성은 자신이 아시아 시장에 유니폼 팔기 위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간 선수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수비 하나 달고 가는데, 하나가 더 붙기에 '뺏기겠네~' 라고 생각했는데... 그 상태에서 골을 성공시켜버렸다. 세상에나... 수비 둘을 달고 가면서 볼 뺏기지 않고 툭~ 차서 골을 넣다니... 정말 세계적인 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감탄했다.

 

이청용은 눈에 띄는 활약은 선보이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으로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흘러나온 볼을 오른 발 인사이드로 정확하게 때리는 모습, 인상적이었다. 골은 골대를 향한 마지막 패스라는 말이 있다. 남아공 선수의 2010 월드컵 첫 골처럼 제대로 임팩트 된 강한 슈팅도 물론 멋지지만, 강하고 멋진 슛은 2점 주는 거 아니다. 어찌 됐든 골대로 들어가야 하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사각으로 정확하게 때린 이청용의 슛은, 골키퍼에게 막히긴 했지만 정말 멋있었다.

 

기성용은 수비에 치중하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훌륭한 프리킥을 보여주었고 아울러 눈에 띄지 않는 활약을 해줬다. 박주영 역시 골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자기보다 훨씬 큰 선수들을 상대로 공중 볼을 따내고, 찬스를 만들며, 수비를 끌고 다니는 등 제대로 활약했다. 공격수는 골로 말하는 게 사실이지만, 박주영처럼 플레이 해준다면 미드필더 등 다른 선수들이 득점할 확률이 크게 올라간다. 박주영은 골을 넣지 못했지만 대활약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오늘의 수훈 선수라고 생각하는 김정우 선수.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정말 잘 뛰어주었다. 그리스가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한 것은 김정우의 플레이 때문이었다. 골을 넣은 이정수도, 10점이 아깝지 않은 대활약의 박지성도 대단했지만... 난 오늘 최고의 플레이어는 김정우라고 생각한다.


 

오토 레하겔 감독의 머리 속에서는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을지도... ㅋㅋㅋ

 

 

 

아무튼... 승점 3점을 챙기며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이제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가 남았다. 지금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의 경기가 치뤄지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녀석들... 잘한다, 진짜. 좀 나쁜 생각이긴 하지만...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치고 박아서 힘 쫙 빠졌으면 좋겠다. 아니면 주축 선수 몇이 부상이라도 당하거나... -ㅅ-

 

 

 

우리 선수들, 정말 잘해줬다. 박수를 보낸다. 잘했다, 정말~

 

 

 

대~ 한! 민!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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