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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6년 02월 14일 토요일 맑음 (지난 한 주 간의 질알병)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6.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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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과음하고, 일요일에 누룽지를 먹다가 체하는 바람에 배 붙잡고 끙끙 앓다가, 당직 근무하러 출근했다. 동료한테 바꿔달라 할까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참고 그냥 갔다.

월요일 아침에 퇴근했고, 쪽잠을 잔 뒤 여주에 가서 맥주를 사왔더니 하루가 다 갔다.

 

화요일에 출근했더니 사무실이 난장판이다. 일단 ○팀이 기존 배치와 아예 달라졌는데 아직 진행 중인지 굉장히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우리 팀은... 엉망이었다. 책상과 컴퓨터의 배치가 끝나고 배선 작업까지 마쳤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리는 잡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모니터는 대충 막 던져놓은 것처럼 널부러져 있고, 케이블은 하나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겠어. 내가 해야지. 자리에 앉아 출근 시간만 기록하고 정리를 시작하려 했는데 워크 스테이션이 꺼져 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케이블 뽑다가 애먼 거 뽑는 바람에 꺼진 거겠지. 전원 버튼을 누른 뒤 컴퓨터를 배치하고 전원 선과 마우스, 키보드 따위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팍! 터졌다.

전원 케이블이 없는 거다. 주위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여기서 이성의 끈을 놓쳐 버렸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엄~ 청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코딱지만한 사무실에서 찔끔 옮기는 건데 케이블이 없어질 이유가 있나? 나중에 들어보니 온갖 선들이 얽히고설켜서 엉망진창이었단다. 아니, 그러면 슬슬 풀어서 뽑은 뒤 다시 연결하면 되잖아?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사무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못 한다고? 아니~ 내가 부품 던져주고 컴퓨터를 조립하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본체 옮기고 선 연결하는 게 전부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사무실에 남아있던 세 명과 옆 팀에서 도와주러 온 몇 명이 힘을 합쳐도 설치하지 못한 컴퓨터들을 죄다 설치하고 날 때까지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는 번아웃이 올 정도로 일이 많은 와중에도 동료들이 힘들까봐 사서 일하는데, 저들은 나 혼자도 충분히 하는 일을 못해서 다음 날로 넘긴 건가 싶어 굉장히 화가 났다.

그 와중에 중구난방으로 정리되지 않은 자료가 있어서 하는 김에 깔끔하게 정리하자 싶어 동료가 하던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잘못된 게 있어서 물어봤다가 다 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가서 그러냐며 타박을 들었다. 간신히 부여 잡았던 이성의 끈을 다시 놔버렸다. 나도 모르게 왜 나한테 짜증내냐고 언성을 높여버렸다.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놓고 싫은 티 내면서 까면 되는데, 다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더 힘들었다. 나는 저들 위해서 일 터지면 내가 할게, 내가 한다, 이러고 있는데 저들은 별 것 아닌 것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넘기고 있고나 싶어서, 게다가 도와준다는데 짜증이나 내고 있고나 싶어서, 당장이라도 휴가 쓰고 뛰쳐 나갈까 고민했다.

 

사무실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서 점심 시간에도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고, 저녁 식사를 신청했지만 먹지도 않고 그냥 퇴근했다. 불 붙은 속에 맥주를 들이 부었지만 진화가 되지 않았고, 그렇게 열 받은 상태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 이어졌다. 주위에서 눈치 보는 것도 느껴지고, 상급자가 달래주려고 일부러 자꾸 말 거는 것도 느껴지니 적당히 하고 풀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긴 하는데, 풀려야 풀리는 거지, 맘대로 되냐고, 그게.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민 건 화요일이었고,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그 여파가 있었던 건데 금요일 오후 쯤 되니까 조금 누그러지긴 했다. 좀 참을 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고, 어리석게 행동했다 싶기도 했지만 시간을 되돌려 같은 상황을 맞딱뜨렸다면 못 참고 터졌을 게 분명하다.

 

가만히, 천천히 생각해보니 일 많이 한다고, 상급자들에게 중용되고 있다고, 건방져져서 함부로 날뛴 건가 싶기도 했다. 잘 나갈 때 더 조심해야 됨을 잘 알고 있는데,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기고만장해져서 안하무인으로 날뛰었고나 하는 후회가 든 것도 사실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남은 에너지가 아예 없이 고갈된 상태라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느 정도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면 좀 더 여유롭게 버틸 수 있었을 건데, 자고 일어나서도 충전되지 않을 정도로 탈탈 털려버린 상태에서 실망스러운 일이 터지니까 못 버티고 꼭지가 돌아버린 건가 싶다.

 

이미 저질러버린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사무실 동료들은 '저 ××는 왜 혼자 질알이야?'라 생각하는 것 같다. 화를 내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제 와서 사람들한테 이래서 화가 났다, 저래서 폭발했다, 미주알 고주알 떠드는 건 정말 없어보이는 짓인 것 같고... 그냥 번아웃이 온 상태에서 실망스러운 사무실 상태를 보고 화가 났다 정도로만 얘기하고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명절 연휴 덕분에 회복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거다. 원래는 오늘도 사무실에 갈 생각이었는데 손전화 배터리 교체한답시고 시간을 잡아먹는 바람에 갈까 말까 하다가 결국 못 갔다. 방 구조도 싹 갈아 엎을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못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간 외 근무 좀 하다 온 뒤 안방부터 정리하고 그 다음에 거실을 정리해야겠다. 내일 하루 만에 끝내고 싶지만 안 된다면 월요일에 마무리하는 걸로 해야지. 연휴 동안 사무실에 들락거리긴 할텐데, 최대한 사람들 피해 다니면서 충분히 회복해야겠다. 그리고 다음 주에 출근하면 걱정해줬던 상급자에게 사과해야겠다.

 

내일 모레 50인데, 아직도 이 모양이라는 게 참... 얼마나 더 속이 깊어져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죽을 날이 가까워오는데, 아직도 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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