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의 한일전이라는 이유로, 일본에 진 적이 없는 홍명보의 한일전이라는 이유로, 최근 부진했던 A 대표팀의 경기라는 이유로,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이 큰 경기였음.
20시 경기니까 19시까지는 입장해야 한다 생각해서 일찌감치 출발. 지하철 안에서 대표팀 저지 입은 나를 힐끗힐끗 보는 사람들이 여럿. 종합운동장 역에 내리자 저지 입은 사람들이 한, 둘 보이기 시작. 게이트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이 바글바글!
지하철 역 안은 반짝이 머리띠와 비 옷 파는 상인들로 북새통. 단속 좀 할 것이지 아주 난리도 아님. 역 밖으로 나가자 비가 제법 오고 있었음. 무시하고 그냥 감. 축구장까지는 꽤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야구장 지나니 바로. 매표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천막 쳐놓고 거기서 표 파는 거 봄. 참 열악하다 싶더라.
역시나 암표상 설침. 3만원짜리 표 1.5만원에 주겠다고 호객질. 경찰들도 많던데 대체 왜 암표상들 안 잡아가는지 모르겠음. 암표 파는 짓거리는 분명한 경범죄인데. 아무튼 N석 입장권 2만원 주고 구입. 비지정석이라서 빨리 들어가고픈데 일행들은 내 맘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 -ㅁ-
N석은 표를 산 천막 있는, 그러니까 오륜기 마크 붙은 반대 쪽이라 꽤 먼 거리를 걸어 감. 경기장 들어가기 전 가방 검사하는데 페트 맥주 압수 당하는 듯. 밖에서 술 안 사가길 잘했다고 생각했으나...
아무튼... 들어가서 N석 2층 한복판 명당 자리 찜! 잠실 종합 운동장 의자는 등받이 없는 네모 반듯 플라스틱. 가지고 간 물티슈로 대충 닦아내고, 일행과 술 사러 감. 뭔 줄이 꽤 길기에 뭔가 하고 봤더니만... 매점 이용하는 줄이었음. 매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간이 부스 차려놓고 젊은 처자 둘이서 파는데 맥주를 일일이 종이 컵에 따라 팔다보니 진도가 엄청 안 나감.
결국 줄 서 있는 동안 킥오프. 그나마 다행인 건 시작하자마자 사서 들어갈 수 있었음. 처자 도와서 종이 컵에 술 따랐는데 이게 나름 기술을 요하는 일이더라는. -_ㅡ;;;
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복 입은 애들이 둘 와서 플랑 카드 걷어내기 시작. 뭐라고 쓰여 있기에 저러나? 하고 궁금해하는데 붉은 티셔츠 입은 사람이 뛰어오면서 안전 요원이 걷은 플랑 카드를 다시 내리기 시작. 사람들이 와~ 하고 함성 지르며 응원함. 안전 요원이 와서 뭐라 하자 붉은 티셔츠 입은 총각이 멱살잡이 시전!
붉은 악마 회원들 여럿이 합류하고 다툼이 격해지면서 험한 말이 오감. 급기야 다른 진행 요원이 어디에선가 뛰어 옴. 무전기도 없고 경무장하지 않은 걸로 봐서 그 사람은 안전 요원이 아니라 진행 요원인 듯. 난처한 웃음 지으며 양 쪽을 말리느라 고생하던데 안스러웠음. 아무튼 플랑 카드는 다시 내걸림.
하프 타임에 붉은 티셔츠 입은 사람이 잔뜩 쳐진 어깨로 나타나 플랑 카드를 걷음. 그리고... 후반 내내 단 한 번의 북소리도 울리지 않았음. 리딩이 없기에 동시다발적인 응원이 불가능한 상황. 울트라 니폰 ×색히들의 응원 소리가 그 큰 경기장에 가득. 결국 답답함을 못 이긴 일부 소수가 응원을 시작하고 돌림 노래처럼 한 박자씩 뒤늦게 따라하기 시작. 나름 커다란 목소리를 가졌기에 여러 차례 선창하며 응원함.
아쉬운 패배.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플랑 카드 얘기만 하고 후반전 응원 보이콧 얘기는 안 하더니... 오늘 보니까 보이콧 기사 나오기 시작.
개인적으로는 잘한 일이라 생각함. 붉은 악마는 축구 협회로부터 돈을 받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조직이 아님을 알아야 함.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임. 그런 사람들의 열정을 깔아뭉개는 녀석들이 축구 협회 놈들임. 일본 국가가 울려퍼질 때 욱일승천기가 펼쳐졌고 이는 관중들이 먼저 발견. 우~ 하는 야유가 이어졌고 바로 접었다는 기사와 달리 꽤 오래 펼쳐져 있었음. 그리고 일본의 결승골이 터졌을 때에는 여기저기서 홍염이 타오르기 시작. 그런 걸 그냥 놔두고 붉은 악마의 플랑 카드만 논란의 중심에 놓다니, 이게 뭔 짓인가 싶음.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음. 난 붉은 악마의 응원 보이콧을 적극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욕 먹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함.
잠실 종합 운동장은 보수를 거쳤다고 하나 여러 가지로 A 매치에 적합하지 않은 경기장이라 생각함. 화장실은 그럭저럭이었지만 매점을 비롯한 다른 부가 시설이 너무 형편없음. 더구나 엄청나게 넓은 트랙 때문에 그닥 쾌적한 관람이 불가능. 의자도 불편함. 뭐, 다른 거 다 떠나서 포항 스틸야드의 시야에 익숙한 나이기에 잠실은 당최 적응이... ㅠ_ㅠ
어제 아쉽게 졌지만... 홍명보 감독을 지지하고 적극 응원함. 모든 경기에서 다 이길 수는 없음. 히딩크도 월드컵 전 내리 0 : 5 로 깨지면서 사퇴 압력을 받았지만 그렇게 강팀과 계속 연습 경기한 덕분에 훌륭한 성적을 냈음. 홍명보 감독님과 선수들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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