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기다리던 K 리그 개막인가. 포항 홈 팬들에게는 아쉽겠지만 내게는 다행스럽게도 수원 원정이 올 시즌 포항의 첫 경기다. 휴일만 골라 쉬는 선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휴일에 근무 빼는 게 쉽지 않은데 진작부터 이 날 축구 보러 간다, 축구 보러 간다 떠든 덕분인지 휴가 써서 출근 안 하고 축구 보러 갈 수 있었다.
무거운 몸 일으켜 아침에 공 좀 차다가 인사하고 집에 왔고, 대충 씻은 뒤 준비를 해서 밖으로 나갔다. 험멜 간지 유니폼 입었으면 좋았을 것을, 마킹 덜렁거리는 아테미 구린 유니폼 입고 ㄱㄱ. 집에서 ××까지 30분을 버스 탔고 내려서 같이 가기로 한 선배 만나 다시 버스를 한 시간 정도 탔다. 도중에 수원 팬들만 몇 명 더 타더라. ㅋ
경기장 도착하니 온통 수원 팬. 그 사이를 유유히 걸어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군것질 거리 좀 사려고 한 거였는데 딱히 맘에 드는 군것질 거리가 없어서 그냥 입장권 샀다. 수원은 올 시즌부터 초대권을 없애 무료 표를 배포하지 않겠다 했는데 그 덕분인지 파리처럼 귀찮게 달라붙던 암표상들이 싹 사라졌다. 잠실 야구장 관리하는 냥반들은 보고 좀 배워라. -ㅅ-
아무튼... 입장권은 14,000원. 원정석은 S석이다. 홈 팀 서포터 석이나 일반석은 삼성 카드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이 있지만 원정석은 없다. 뭐, 진작에 삼성 카드 없애버렸으니 나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
경기장을 크게 한 바퀴 빙~ 돌아 원정석으로 들어가니 가방 검사를 한다. 가방 스윽~ 보여주고 입장. 안으로 갔는데... 응? 뭔 노란색 펜스가 둘러져 있다. 이게 뭐지? 아~ 홈 개막전이라고 원정팀 서포터들이랑 일반 팬들 싸움 붙을까봐 막아 놨고나~
그렇게 생각하고 펜스 건너 쪽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가는데 우람한 덩치의 아저씨가 오더니 여기가 원정석 맞단다. 응? 펜스로 막아놨는데요? 했더니 아니란다. 맞단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어 알아보니... 골대 뒤를 일반석으로 바꾸고 원정 팀 서포터들은 골대 기준 왼 쪽으로 밀어낸 거다.
허... 허... 허...
이게 무슨 패륜이나 할 짓이란 말인가? 인천이야 경기장 구조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 치자. 그나마 인천은 원정석이 오히려 전광판 잘 보이니 참을만 하다. 서포터들이 전세 낸 건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건데 사전 통보도 없이 이 따위로 해도 되나? 이 날 수원 월드컵 경기장은 매진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저기 빈 자리가 꽤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원정 서포터를 한 쪽으로 밀어내는 짓을 하다니... 어이가 없더라. 이건 정말 패륜들이나 할 짓 아닌가?
포항에서 올라온 서포터들이 늦게 도착했는데 장년층 아저씨들이 담당자들에게 항의하며 넘어가려 했다. 이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고 약간의 몸싸움도 있었다. 다 큰 어른들이 자리 때문에 싸움질하는 꼴이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수원이 해도 너무 한다 싶었기에 은근히 응원했다.
(그렇게 티격태격 해놓고 나중에는 음료수도 나눠주고 와서 한 잔 하라며 술도 권하더라. ㅋㅋㅋ 역시 아저씨들이란... -ㅁ-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어떤 처자 팬. 나가면서 보안 담당자들한테 꼬박꼬박 수고하셨다면서 인사 하더라. 몹시도 귀여운 목소리로. 뉘 집 처자인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바르게 잘 컸다. ㅋ)
전광판 하나도 안 보인다. 씨앙~ -_ㅡ;;;
경기장 앞에서 팔던 만 원 짜리 순살 치킨의 위엄. 치킨의 성지(?)에서 이 따위 걸 팔다니... ㅂㄷㅂㄷ
경기장 2층을 통천으로 덮었다. 괜히 비워놔서 휑~ 해 보이느니, 이렇게 하는 게 훨씬 낫다.
몸 푸는 슈퍼 골리 신화용. 슈틸리케 감독은 신화용 한 번 써 보시라니까.
연습하기 전에 모여서 전의를 다지는 포항 선수들. 오랜만에 봐서 더 반갑다. ㅋ
방송국에서 나왔다. 중계는 안 하고 하이라이트만 달랑 담아갔다. 이래놓고 월드컵 때만 되면 축구 사랑 운운하는 양아치들. A 매치와 K 리그 중계권을 묶어서 팔아야 한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포항 팬들은 모리츠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공만 잡았다 하면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경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라자르에 대해 크게 기대하기 시작했다. 수원 수비 세 명이 달라붙었는데도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며 공을 지켜내다가 파울을 얻어낸 거다. 우리도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포워드를 갖게 됐다며 다들 좋아하더라.
경기 끝나고 와서 보니 언론에서는 모리츠를 띄우면서 한 편으로는 이들이 아직 포항 축구에 녹아들지 못했다고 썼던데 현장에서는 라자르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개인기가 좋아 보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상대 수비가 최소 둘 이상 붙는데도 공을 지켜내더라. 조금만 더 다듬어진다면 훌륭한 공격 자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라자르와 모리츠 모두가 공중 볼 다툼에서 우위를 점한 덕분에 세트 피스 상황에서 득점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졌다.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짧고 빠른 패스는 거의 볼 수 없었다. 황지수 선수의 몸이 꽤 무거워보였고 이명주 역할을 하게 될 거라던 손준호 선수 역시 경기 전체를 조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다가... 전반 막판에 오범석이 퇴장을 당했다. 포항의 세트 피스 상황에서 포항 선수 유니폼을 잡아 당겼는데 다가가서 항의하던 배슬기의 얼굴을 오범석이 밀어버렸다. 이것만으로도 퇴장감인데 하필 이 날 심판이 김성호. 저 엉망진창 주심은 두 선수를 불러 모두에게 경고를 주었다. 배슬기가 억울해했지만 김성호에게 통할 리 만무. 다시 경기가 진행되었는데 오범석이 또 유니폼을 잡아당겼고 바로 경고 한 장 더 받아 퇴장 당했다.
이 장면은 K 리그 1 라운드 통틀어 네×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것이었는데 누가 봐도 유니폼 지익~ 늘어나는 게 보일 정도였기에 퇴장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만, 그 전에 배슬기의 얼굴을 밀어버린 오범석의 행동을 분명히 김성호 심판이 봤을텐데 바로 퇴장 조치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 심판 까는 기사가 하나 올라왔던데 댓글 대부분이 오범석 퇴장을 옹호하는 걸로 착각해 오범석 퇴장은 당연하는 식이더라. 그게 아니다. 이 날은 심판 그 자체가 문제였다. 정말 지독히도 못 보더라. 경기 맥을 끊지 않고 플레이 타임을 늘리는 게 파울을 못 본 척 하고 거친 경기를 유도하라는 건 아니지 않나? K 리그 최악의 심판이라 생각한다, 김성호는. 저 문제 심판을 또 포항 경기에 배정한 엿맹도 ㅄ이고.
아무튼... 그렇게 후반으로 이어졌고 손준호의 엄청난 골이 터졌다. 정확히 골대 모서리로 향하는, 누구라도 막을 수 없는 골이었다. 손준호는 포항 서포터들 앞으로 다가와 자신의 등번호를 가리키며 셀러브레이션을 했다. 인원에 비해 다소 얌전하게 응원하던 서포터 석 팬들은 난리가 났고.
그러다 후반에 김원일이 퇴장 당해 두 팀 모두 열 명이 싸우는 경기가 진행되었고... 수원이 막판에 동점 골 넣으려고 열심히 몰아붙였지만 결국 포항이 이겼다.
김승대는 벤치에 있다가 후반에 교체로 들어왔는데 라인 브레이킹이 더 늘었다. 뒤에서 들어오는 볼과 함께 움직여 오프 사이드 트랩을 절묘하게 깨면서 공격 찬스를 만드는데 정말이지 놀랍더라. 이명주 같은 패스를 뿌려줄 수 있는 미드필더 한 명만 있다면 매 경기 득점까지도 기대할 정도로 움직임이 훌륭했다. 농구의 백 도어 플레이 보는 것 같아 골로 연결되지 않아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김승대 선수에 대한 기대가 크다. ㅋ
그리고... 험멜에서 만든 2015년 유니폼의 일반 판매가 시작되었다. 마킹 모두를 포함해서 11만원이다. 3월 9일부터 주문을 받고 있는데 3주 정도 걸린단다.
난 패키지 권을 질렀기에 이미 한 벌은 확보한 상태였는데 그건 소장용으로 모셔두고 한 벌은 경기장에 입고 다니는 용도, 한 벌은 평소 막 입고 다니는 용도로 하려고 두 벌을 주문했다. 머그 컵도 같이 주문했더니 쇼핑몰 측에서 연락이 왔더라. 머그 컵은 재고가 있고 유니폼은 주문 제작이라 시간이 걸리는데 어떻게 보내면 되겠냐고. 그래서 급한 거 아니니 같이 보내도 된다니까 꽤나 좋아하시더라. ㅋㅋㅋ
아무튼, 첫 단추는 잘 꿰었다. ACL에 나가지 못함이 아쉽지만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힘내서 별 하나 추가해줬으면 한다. 특히나 북패 놈들은 확실하게 박살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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