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이 2015 ACL 16강에서 광저우를 만났다. 누가 봐도 광저우가 이길 경기. 구단에 들어가는 돈의 수준 자체가 달랐기에 누구도 성남의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을 거다. 더구나 하루 전에 치러진 경기에서 K 리그 최강이라는 전북이 베이징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고 수원 역시 가시와에 지고 말았다. 같은 시간에 진행된 오사카와의 경기에서도 북패가 탈탈 털렸고. K 리그 세 개 팀 모두가 고전하는 와중에... 성남은 극장 골을 성공시키며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팀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시민 구단 최초로 ACL에서... 아... 설레발은 필패니까 이쯤에서 그만. ㅋㅋㅋ
야탑 롯데리아에서 닭 한 마리 싸들고 탄필드로 갔다. 축구 보러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옆에서 떠드는 걸 보니 죄다 중국 것들. 횡단 보도 건너니 원정 응원석 쪽에 시뻘건 광저우 팬들이 바글바글하다. 아오, 짜증나~ -ㅁ-
그것들을 헤치고 남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 쪽으로 못 간다며 서문으로 가란다. -ㅅ- 좀 더 멀리까지 걸어가 서문 쪽 스카이석으로 들어갔다. 기자석 쪽으로 적당히 자리 잡는 데 성공.
다비드 비야가 김두현과 초대형 뻥튀기를 먹고 있다. ㅋㅋㅋ
몸 푸는 양 팀 선수들
엄청나게 몰려온 광저우 팬들과
썰렁하기 짝이 없는 성남 응원석
전반에 기똥찬 패스로 먼저 골을 넣었지만
황보원의 말도 안 되는 슛으로 동점. 하지만 결승골은 김두현!
경기에 앞서 광저우가 포스터를 이용해 도발해왔다. 광저우 주전 공격수인 히카르도 굴라트가 무너진 성을 보고 있는 포스터를 만들어 뿌린 거다. 그런데 여기에 대응하는 성남이 실로 기똥차다. 무너진 성벽이 아니라 탄탄하게 막고 있는 성을 다시 그려 넣은 포스터를 만든 거다. 무너진 성을 보는 히카르도는 꽤나 당당해보였는데 성남이 다시 만든 포스터에 등장하는 히카르도는 뭔가 체념한 느낌이다. 같은 그림을 썼는데도 이렇게 다른 느낌이 들게 하다니. 대단하다. 부지런히 뛰는 선수들도 대단하지만 프론트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기 좋다.
이 날 경기장에는 13,000명 이상이 들어왔다. 광저우 원정 응원단이 미리 잡은 표가 5,400장인가 그렇다는데 실제로 그만큼 안 왔다고 하니까... 5,000명이라 치면 성남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 찾은 팬들이 8,000명 정도 된다는 얘기다. 이건 2007년에 포항이 성남 원정에서 우승했을 때를 제외하고 탄천에서 처음 보는 숫자다. 아무래도 경기 전에 광저우보다 팬이 적을 것 같다는 기사가 난 덕분 아닌가 싶다.
성남의 팬 층이 얇다, 얇다 하지만... 만 명 정도는 우습게 동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 성적도 괜찮고 프론트들도 똘똘하게 일 잘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성남 홈 팬이 원정 팬보다 적은 씁쓸한 장면은 안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날 심판 녀석은 판정을 참으로 거지 깡깽이 같이 했다. 그랬는데... 막판에 큰 선물 하나 던져줬다. ㅋㅋㅋ 내 뒤에 참으로 혈기 왕성한 총각들이 열심히 응원을 했는데 심판이 성남에 유리한 판정을 할 때마다 콜을 하기에 심판 이름인가? 했는데... 잘 들어보니 포청천이었다. ㅋㅋㅋ "포청천!" "포청천!" "포청천!" 하고 콜을 하는데... 상대가 중국 팀이었기 때문인지 들을 때마다 빵 터졌다.
차마 성남 저지를 입을 수 없어서 포항 저지를 입고 머플러에 성남 저지를 끼워 휘두르고 다녔는데 포항 팬이 왜?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반갑게 맞이해줬다. ㅋ
성남 서포터들은 골대 뒤 쪽, 스카이 석, 일반석, 이렇게 세 군데에 나뉘어 있다. 그래서 응원도 각자 한다. 한 쪽에서 응원을 하면 다른 쪽에서 따라 가긴 하는데 아무래도 한 군데 모여서 같이 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로 약하다. 서포터 그룹 내의 갈등이 원인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한다. 트랙 때문에 골대 뒤 쪽에서 경기 보는 게 영 좋지 않아서 스카이 석으로 올라간 게 황기 청년단이고 일반석 응원도 비슷한 이유라고 하는데.... 거기에 대한 댓글에 '그럼 다른 팀은 보기 편해서 골대 뒤에 몰려 있냐'는 걸 보니 공감이 되기도. 아무튼... 성남 서포터들도 한 군데 모여 응원하고 그랬음 좋겠다.
성남의 홈 구장인 탄천 종합 운동장의 별명은 탄 필드. 야간에 조명이 들어오는데 '천'의 조명이 나간 지 무척 오래 되어 탄 종합 운동장처럼 보인 것이 기인한다. 조명 나가자마자 고치는 게 당연한 거지만 어쩌겠나, 이미 지나간 일이지. 그걸 기똥차게 응용해서 스스로 까는 듯한 별명을 지어낸 것도 참 멋지지 않나 싶다. 저렇게 소소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우리 얘기 좀 하고. 일단 올 해 ACL 나가는 데 실패해서 남의 팀 응원이나 하고 있다만... ACL 못 나가는 대신 리그에서 쭉쭉 치고 나갈 거란 예상과 달리 매 경기 죽 쑤고 있어서 답답하다. 잘 하고 지면 그건 그 나름대로 즐겁게 응원하겠는데... 경기력 자체가 똥망이다.
성남 선수들 뛰는 거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성남 선수들은 일단 정말 열심히 뛴다. 축구를 아는 사람이 봐도, 축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진짜 많이 뛴다, 열심히 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슬렁슬렁 뛰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특히나 포워드 라인에서.
기대가 커서 실망이 큰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포항은 그 정도 기대는 충분히 안고 가야하는 팀이다. 제발 앞으로의 경기에서는 기대에 걸맞는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올 시즌 우승은 기대도 안 한다. ACL 티켓만이라도 확보해서 내년에도 축구 보러 해외 여행 갈 수 있도록 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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