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 쪽은 2012년 07월 24일 발표된 올림픽 대표팀 명단이고, 오른 쪽은 2014년 05월 29일 발표된 월드컵 대표팀 명단이다. 두 팀 모두 감독은 홍명보였고 코치는 김태영, 박건하, 김봉수였다. 차이라면 올림픽 대표팀에는 이케다 세이고 코치가 있었고 월드컵 대표팀에는 안톤 두 샤트니에 코치가 있었다는 정도?
올림픽 대표팀 열여덟 명 중 무려 열두 명이 월드컵 대표팀에 다시 뽑혔다. 비율로 따지면 무려 67%나 된다. 홍정호와 한국영은 원래 올림픽 대표팀 명단에 들어야 했지만 부상 때문에 빠진 거니까 그들을 포함하면 78%가 되어 버린다.
결과는 크게 달랐다. 올림픽 대표팀은 동메달을 따며 개선했지만 월드컵 대표팀은 1무 2패로 조별 예선 탈락한 뒤 공항에서 엿 쳐먹었다. 잘 나가던 홍명보 감독은 협회의 재신임 발표 후 더 커진 축구 팬들의 성화로 결국 그만둬야 했고 화려한 시절이 초라한 시절로 급락하는 더러운 경험을 해야 했다.
이 당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 '의리 축구'였다. 인맥을 이용한 선발이라는 거다. 올림픽 대표팀의 성과는 칭찬할만 하지만 올림픽과 월드컵은 대회의 성격이나 상대의 수준이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대표팀 출신의 내 새끼들을 고스란히 기용했고... 많은 사람들의 우려대로 결과는 개판이었다.
황선홍 감독은 친구인 홍명보 감독의 몰락을 몹시 안타까워 했다. 그런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황선홍 감독이 홍명보 감독의 뒤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홍명보 감독의 축구가 의리 축구라면 황선홍 감독의 축구는 믿음의 축구다.
황선홍 감독은 일찌감치부터 국가대표 대형 공격수로 각광 받으며 대표팀에 불려 다녔다. 축구 팬들의 맘에 들만한 성과를 거두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격수가 되었지만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모든 걸 말아먹었다. 특히나 볼리비아와의 경기.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지만 계속되는 찬스를 날려먹은 때문에 전 국민에게 현존하는 모든 한글 욕을 먹어야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에는 염병할 짱깨 새끼들 때문에 부상 당해 본선에 나서지 못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 공격수다운 모습을 보이며 그동안 욕했던 이들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그래서일까? 황선홍 감독은 유난히 공격수들의 침묵에 관대하다. 수 경기 동안 득점에 성공하지 못해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더라도 꾸준히 기용하고 욕은 내가 먹을테니 너는 골만 넣으라며 든든한 벽이 되어준다. 그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은 선수가 황선홍 감독의 선수 시절 등번호인 18을 달고 있는 고무열이다.
이러한 믿음에 응답해서 골로 보답을 하면 참 좋을텐데 안타깝게도 올 시즌 포항 공격수들은 감독의 믿음에 조금도 부합하지 못한다. 고무열은 과감해야 할 장면에서 소심하게 패스하고, 패스할 타이밍에 드리블 치다 뺏긴다. 박성호는 경기에 나서면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특별한 스킬을 장착하고 있다.
오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심동운이 고향 팀 등에 칼 꽂는 신영준스러운 플레이를 각오한 건지 전반부터 무척이나 활기차게 뛰어다녔고... 몇 차례의 찬스가 오기도 했다. 그러나 후반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주구장창 공격 당하다 끝났다. 김광석, 배슬기의 멋진 수비가 아니었다면 질 경기였다. 특히나... 그렇잖아도 몰리던 경기에서 아예 그라운드 반을 내준 듯 경기한 게 박성호 투입부터였다. 티아고가 나가고 박성호가 들어온 뒤 포항의 공격은 실종됐다.
간혹 공을 잡아 길게 때려 넣었지만 제대로 된 패스는 전혀 없었다. 김승대를 대신해 모리츠가 들어왔지만 경기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김태수와 황지수를 맞바꾸며 굳히기에 들어가는 듯한 인상까지 받게 되었다.
황선홍 감독은 상대가 전방에서 압박을 해 불가피하게 롱 볼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힘 싸움으로 전개되어 공격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했다. 공감한다. 전남은 상당히 강하게 부딪쳐오며 잘게 써는 패스 자체를 봉쇄했다. 후반에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박성호를 넣었을 거다. 그런데 박성호가 들어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는 제대로 된 공격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계속 끌려 다녔다. 김승대와 문창진이 상대 높이에 밀려 이른 시간 교체했다고 했는데 낮게 깔려 들어가는 패스가 높이와 무슨 상관인가? 결과적으로 주구장창 띄워대는 축구 했다는 걸 인정하는 셈 아닌가? 주구장창 띄워대는 축구는 언제부터였는가? 박성호 투입 직후 아니었는가?
본인이 그렇게 하도록 의도해놓고 바라는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월드컵 전에 축구 팬들이 홍명보 깔 때 몇십 년 동안 공만 찬 사람인데 우리보다 많이 아니까 저러는 거 아니겠냐고 쉴드 치는 이들이 꽤나 있었다. 결과는? 동네 조기 축구회에서 슬렁슬렁 공 차는 배 나온 아저씨가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조별 예선 전패 안 하면 다행이라고.
황선홍 감독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여러 경험을 한 좋은 축구인이지만, 축구를 전공하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정된 선수로 선발을 꾸리고 교체를 해서 경기를 바꿔 나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매 번 같을 필요까지 있을까?
늘 같은 선수를, 같은 용도로, 같은 곳에 배치하고 있다. 이기든, 비기든, 지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답답하다. 최효진을 공격수로 배치해서 해트트릭을 이끌어냈던 파리아스 前 감독 같은 용병술을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상대가 이렇게 나올 거라 예상한대로 흘러가지는 말아야 한다는 거다.
더구나 고무열이나 박성호 투입 이후 흐름이 이 쪽으로 넘어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구장창 기용하는 건 선수와 팀을 위한 길이 아니다.
오늘의 경기는 몹시 실망스럽다. 다가오는 4일, 홈에서의 수원戰이 기대되지 않는 이유다. 기를 쓰고 뛰는 수비 선수들에 비해 공격 선수들의 활약이 심히 불만족스러운데도 불구하고 황선홍 감독이 추구하는 믿음의 축구는 계속되고 있다.
황선홍 감독은 왜 노병준을 믿지 않고 내팽개쳤는가? 황선홍 감독은 왜 황진성을 믿지 않고 내팽개쳤는가? 나는 노병준과 황진성이 고무열과 박성호보다 못하다는 의견에 병아리 눈꼽만큼도 동감하지 않는다. 노병준과 황진성이 있었다면 고무열과 박성호가 있는 지금의 포항보다 최소 3승 이상은 더 거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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