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경기 일정이 나오면 성남 원정은 언제인지부터 확인한다. 그 날은 무조건 휴가를 써야 하니까. 올 시즌은 일요일 경기였는데 주말에만 쉬던 선배가 최근 평일에만 쉬면서부터 주말에 쉬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래서 휴가 쓰는 게 쉬웠다. ㅋ
아침에 공 차러 갔다가 집에 와서 씻고 빈둥거리다 축구 보러 가면 되겠다 싶었으나... 새벽에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보느라 해 뜨고 나서 잠이 드는 바람에 공 차러 가지는 못했다. 찔끔 자고 일어나 빈둥거리다가 14시에 야탑 광장에서 선배와 만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쳤는데 다음 버스가 엄청나게 안 오는 바람에 30분 가까이 기다려서 ××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갈아타고 야탑에 내린 뒤 다이소 가서 디퓨저 사고 광장으로 갔다. 날이 어찌나 더운지 그늘에 서 있어도 땀이 줄줄. 지나는 사람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다른 곳은 원정 응원을 가면 그들의 적의를 어느 정도 즐기게 되는데 성남은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안 든다. -ㅅ-
피자 사온 선배와 만난 뒤 황태가보에서 황태 구이 사들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매표소가 닫혀 있어서 물어보니 15시부터 표를 판단다. 4분 남았는데. 선배가 툴툴거리기에 원칙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냐며 근처 차에서 파는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잠시 후 표 사서 원정석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매점 갔더니 문은 열었는데 돈통 열쇠가 없다며 5분 있다 오라 한다. 10여 분 정도 지나자 내려가서 사면 된다고 알려주네. 쫄랑쫄랑 가서 맥주 달라고 했다. 축구장에서나 볼 수 있는 볼비어. 그냥 주기에 어쩐 일로 뚜껑 따라고 안 하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컵에 따라 가야 한단다. 특히나 원정석은 꼭 뚜껑 따서 주라는 지시 받았단다. 던진다면서.
일부 ㅄ들 때문에 참 번거롭다고 궁시렁거렸더니 지난 번에 광저우 애들 왔을 때 죄다 집어 던지고 난리도 아니었단다. -_ㅡ;;; (컵에 맥주 따르면서 후반에는 그냥 주실 거잖아요? 하며 킥킥거렸는데... 역시나 후반전에는 캔 째 들고 올 수 있었다. 경기장에서 뭐 집어던지는 ㅄ들은 제발 좀 꺼져줬음 좋겠다. 일부 ㅄ들 때문에 피곤한 짓을 해야 하잖아. 아오!)
텅 빈 경기장에 선수들이 잠시 나왔기에 양 팔 벌려 환영했더니 손을 흔들어준다. ㅋ 잠시 후 플라비오 피지컬 코치가 와서 연습용 콘을 깔기에 이름 외치려는데 당최 타이밍을 못 잡다가... 나중에 겨우 타이밍을 잡고 "플라비오!" 하고 소리치자 역시나 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ㅋㅋㅋ
그렇게 달랑 둘이서 경기 시작도 전에 맥주 마시며 신내고 있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기가 일요일 오후인데다(17시 경기면 경기 종료 후 포항 내려가면 자정이 된다.) 메르스 여파로 단관 버스가 취소되어 서포팅 리더가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기에 은근히 걱정했는데... 시나브로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은근히 많은 인원이 자리 잡았다. 원정 응원 제법 쫓아다닌 덕분에 낯 익은 분들도 꽤 보인다. ㅋ
선배가 20명 정도 올 것 같다기에 100명은 올 거라고 하며 내기하자 했더니 덥석! 문다. ㅋㅋㅋ 경기 시작 전에 이미 20명 넘었고... 유니폼 입은 사람만 20명 넘나 안 넘나로 다시 내기하자고 했다. 또 이겼다. ㅋㅋㅋ
탄천 종합 운동장은 트랙 때문에 경기장과의 거리가 꽤나 멀어서 경기 내용이 잘 안 보인다. 그나마 스카이 석은 괜찮은 편이지만 골대 뒤 쪽은 역시나 선수들이 잘 안 보인다. 제대로 경기 보는 건 포기하고 소리나 원없이 지르자고 마음 먹었다. 선수들이 나와 몸을 풀었고... 잠시 후 선수 입장이 있었다. 현충일 다음 날이었는지라 묵념을 하고... 선수들 힘 내라고 "We are STEELERS!!!" 를 외쳤다. 아무도 안 따라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호응해주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ㅋㅋㅋ
성남은 시종일관 응원을 하는데 우리는 탐탐도 없고 서포팅 리더도 없어서 제대로 응원이 될 리 만무.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기가 안타까워서 취기를 이용해 몇 번 선창했고... 다른 분들이 함께 소리 질러주어 외롭지 않은(?) 응원이 되었다.
성남은 스카이 석, 골대 뒤 쪽, 일반석 쪽에서 응원이 따로 진행이 되는데 후반전에 스카이 석 쪽에서 치는 북 소리에 맞춰 "포항만을 위해~ 우! 리가 노래해~ 영일만 저 끝까지~ 퍼지게~" 를 부른 게 시작이었다. 이후 일반석 쪽에서 북 치는 소리에 맞춰 우리 응원가를 불러댔더니 금방 북 치는 걸 멈추더라. 우리끼리 웃기다며 킥킥거리고. (미안합니다, 성남 팬 분들.)
결국 고무고무의 두 골이 터져 2 : 0 으로 이겼고... 북없이 '영일만 친구'까지 불렀다. ㅋㅋㅋ
굉장한 미모의 처자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뭔가 파는 것 같던데.
같이 간 선배는 예전에 강릉 갔을 때 서포팅 리더 없이 응원하는 걸 본 후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그 때에는 아저씨들과 함께 술 마시는 분위기였다면 이번에는 그나마 북없이라도 응원을 해서 좀 독특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 북없는 응원에 있어 내가 나름 공헌을 했기에 무척이나 재미있어 하더라. 경기 끝나고 나가는데 우리 앞 쪽에 있던 분들이 "수고했다"며, "하고 싶은 말 다 대신 해줬다"며 인사해서 깔깔거리고.
그냥 가려고 했는데 선수들 보고 가자 해서... 경기장 한 바퀴 빙~ 돌아 선수단 버스 있는 곳에서 기다리다가 선수들 보고... 응원도 하고... 빠져 나가는 버스 향해 엄지를 치켜 들었다. 선팅이 워낙 진해서 내부가 하나도 안 보였는데 그걸 아는지 핸드폰 불빛이 좌우로 흔들리는 걸 보니 고맙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야탑 걸어 나와서 먹자 골목 갔다가 조개찜 먹으러 갔다. 내기에서 이겨서 선배가 냈다. 순하리 있다기에 겸사겸사 마셔봤는데... 저거 위험하다. 달달하다고 막 들이붓다가 패가망신 못 면한다. -ㅅ-
아무튼... 서포팅 리더가 없어서 좀 안타까웠지만... 없는 와중에 나름 재미있게 응원 잘 했다. 대부분의 선창을 내가 해서 더 뿌듯하기도 했고. ㅋㅋㅋ 7월 중에 포항 한 번 가자고 선배랑 약속했는데 슬슬 일정 잡아봐야겠다.
경기 제대로 못 봐서... 네이버에 있는 다시 보기로 경기 좀 제대로 봐야지. 중계 화면 배경으로 우리 악 쓰는 소리 안 들어갔으려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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