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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절주절 』

정 들었던 집과 이별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6.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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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으로 갔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백령도에 가자!'였다. ×× 시스템에 적응할 자신도 없었거니와 당장 숙소 문제가 해결되는 곳이 백령도였기 때문이다. 전역하면서 다시는 안 밟으리라 다짐했던 백령도 땅을, 스스로 원해서 다시 밟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백령도에서의 숙소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둘이 쓰던 방을 혼자 썼기 때문에 짐이 많더라도 넓게 쓸 수 있었고 세탁기도 있었으며 위성 TV도 나왔기 때문에 불편한 게 거의 없었다. 인터넷이 엄청 느렸지만 백령도니까 감수해야 했다.


현역 때 동기와 같이 썼던 방인데 다시 들어갔을 때에는 혼자 쓸 수 있었다.



차에 꾸역꾸역 싣고 갔던 이불과 옷가지들을 펼쳐 놓으니 제법 사람 사는 집처럼 꾸미는 게 가능했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 저 납작한 건물이 현역 때 회의실 겸 회식 장소 겸 기합 받는 곳이었다. -ㅅ-



백령도 있을 때 쓰던 손전화는 갤럭시 S. 뒤에 아무 숫자도 붙지 않은 그냥 갤럭시 S.



나름 적응해서 그냥저냥 1년 4개월 잘 지내다 갑작스럽게 튕겨 나와야 했을 때의 가장 큰 걱정은 역시나 집이었다. 모아둔 돈은 하나도 없는데 집 값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였으니까. 부동산 몇 군데를 찔러 봤지만 고시원 같은 방이 고작. 백령도에서 쓰던 방 정도를 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선배와 의욕을 잃은 채 걸다가... 큰 길가에 있는 부동산이 눈에 들어와 커피나 한 잔 얻어마실 생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을 구했다. 반지하 방이었지만 창문 반이 지상으로 드러난, 꽤나 큰 방을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30만원으로 구할 수 있었다. 적금 깨서 보증금을 마련하고 부동산에서 알려준 계좌로 입금하면서 사기 당하는 거 아닌가 몹시 불안했다. 그런 큰 돈을 누군가에게 주는 경험이 거의 없었으니까. -ㅅ-


비 오는 날 이사를 했다. 차가 터져나갈 만큼 잔뜩 싣고 있던 짐들을 내려놓았다. 가까이에 있는 홈플러스 가서 이런저런 필요한 것들 사고. 재미있더라. 그렇게 하나, 둘 꾸며 가며 나름 잘 살았다.



싱크대와 세탁기는 기본 옵션. 가스레인지와 세탁기를 중고로 사서 가져다 놓고 썼다.



처음에는 노트북 컴퓨터와 이불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휑한 방이었다.



3G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테더링을 이용해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많이 느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속도도 괜찮고 끊김도 없는 거다. 스타 크래프트도 문제없이 했고 유튜브 동영상도 잘 봤다. 만날 『 1박 2일 』 시즌 1 틀어놓고 뒹굴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때 한 달에 30GB 넘게 썼던 것 같다. 그러다가... KT에서 인터넷 신청하면 TV를 무료로 주는 이벤트를 했다. 작은 사이즈의 TV는 무료, 큰 사이즈는 추가로 돈을 얼마 내야 했다. 이 기회다 싶어 스카이 라이프와 인터넷을 같이 신청하고 LG 텔레비전도 신청해서 TV도 갖추고 살게 되었다.



인터넷 신청하면서 싸게 산 텔레비전. 아직도 사용 중이다. 옆에 보이는 Gold Star 선풍기는 이사하면서 버렸다. 잘 되던 건데...


중고로 사들고 온 세탁기는 고장이 났는데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 결국 홈플러스에서 LG 제품을 새로 샀다. 나중에는 보일러가 말썽이었는데 수리하려고 부른 아저씨가 자꾸 새 보일러 설치하라 하고 집 주인은 그냥 고쳐 쓰겠다 해서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리고... 처음 이사했을 때 집이 서늘해서 무척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서늘한 게 아니라 습한 거였다. 누워서 빈둥거리다 천장 모서리가 시커멓기에 뭔가 싶어 보니 곰팡이였다. 그제서야 옷걸이에 걸린 옷을 보니 벽 쪽으로 향했던 부분이 온통 곰팡이... -_ㅡ;;;   홈플러스에서 물 먹는 하마를 잔뜩 사서 벽을 따라 일렬로 늘어놓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결국 한참 검색해서 제습기를 샀는데...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 무척이나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 집은 습한 것도 불편했지만 주차가 엉망이었다. 주차하기가 어려워서 어지간하면 차를 안 움직이려 했고 집 앞 상가 사람이 자꾸 집 앞에 차를 세워서 엿 먹으로 상가에 차 세웠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무튼... 먹자 골목과 가까워서 술 마시러 다니기에는 참 좋았다. 회사까지 5분 밖에 안 걸리는 점도 무척 좋았고. 시내 한 복판이라 온갖 배달 음식 시켜 먹을 수 있었고 배달 안 되는 음식이라도 직접 나가 사들고 오면 되었기 때문에 편리했다. 터미널까지도 금방이라 ○○ 내려갈 때 차 두고 버스 타고 다녔다.


그러다가... 계약 기간이 다 되었다. 계속 살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2년 동안 짐이 잔뜩 늘었기에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집을 알아보는데... 역시나 비싸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다가... 바로 옆의 △△ 빌라를 보게 되었다. 가격은 1억인데 2,000만원이면 된다는 광고가 판을 치고 있었다. 뭔 소리인가 알아보니 대출 받아 들어가는 거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출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는데 꽤나 큰 금액의 대출을 받기로 마음을 먹으니 예전에는 어림도 없었던 집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동산에 방문해 그 날 두 개의 집을 봤는데... 1억 짜리 집은 자전거를 세워두는 게 가능할 정도의 다용도 실이 마음에 들었고 9,000만원 짜리 집은 커다란 싱크대가 맘에 들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9,000만원 짜리 집으로 낙찰. 준공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집이었기 때문에 입주할 때까지 굉장히 불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사하면서 살림을 잔뜩 늘렸다. 책상도 사고, 책장도 샀다. 청소기랑 냉장고도 새로 샀고, 시간이 좀 흘러서 지르긴 했지만 컴퓨터도 조립해서 맞췄다. 아무튼... 짐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쿠팡에서 아이언 맨 무드 등 사서 벽에 냅다 박아뒀고...



공부하겠다 마음 먹고 책상을 샀지만... 컴퓨터 지르면서 계획은 물거품. ㅋㅋㅋ



선배가 선물로 준 화분 안 죽이고 지금까지 키워온 게 기적. ⊙ㅁ⊙



소파 놓을 공간은 안 나오니까 1인용 빈 백 지른 거였는데...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 단지가 되고 말았다.



시간은 또 야금야금 흘러...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올려달라 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1,000만원 올려 1억 맞춰줄 것을 요구했고... 결국 적금 깨서 1,000만원 올려 재계약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직장을 옮기게 됐다. 내 의사와 무관한 것이었기에 너무 갑작스러웠다. 출퇴근하려면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곳. 기름 값과 통행료를 포함하면 만 원씩 나가는 곳. 그래서 일찌감치 출퇴근은 포기했다. 재계약하고 불과 4개월 만이라... 부동산 중개 수수료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당장이라도 나갈 것 같았는데 집은 통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급한 마음에 직방, 다방에 집을 다 등록했다. 문의도 거의 없고, 집도 안 나가는 분위기.


그런데... 오늘 덥다고 홀딱 벗고 있을 때 젊은 총각이 부동산 직원과 같이 와서 스윽~ 둘러보고 가더니... 집이 마음에 든다고 계약하겠다 했단다. -ㅁ-   별로 꼼꼼히 보는 것 같지도 않고 대충 보는 것 같던데... 거기에다 화장실은 보지도 않았고 수압 같은 건 확인도 안 하던데... 대체 뭘 보고 맘에 들은 거지?


계약금은 통상 보증금의 10%인데 5% 밖에 없다고 양해를 구하기에 계약서에 특약 넣는 조건으로 그렇게 하자 했다. 이제 남은 건 새로 옮긴 직장 근처에 새 집을 구하는 것. 재계약하고 이사하는 거라 양 쪽 부동산에 중개 수수료 내야 하고 이사 비용도 지불해야 해서 대충 계산에서 200만원 가까이 까먹게 되었지만... 지금보다 넓은 집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 이사할 때 처럼 두근거리는 마음도 있다.


옷 방을 행거로 꾸며 지저분했는데 새로 이사갈 집은 붙박이 장 있는 곳으로 알아봐야지. 아무튼... 외진 곳이라 택시 기사들이 가자고 할 때마다 투덜거리고, 대리 기사도 안 잡히고, 술 마실 때마다 번거로웠는데... 눈 많이 왔을 때 걸어서 출근하느라 두 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엄청 고생했는데... 이런저런 추억들이 잔뜩인데... 이 집에서 살 날이 한 달도 안 남았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이사 갈 때까지 임시로 있으려고 구한 숙소에서 출퇴근하니까... 사실상 지금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3, 4일 정도인데...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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