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 한국에 스마트 폰을 가져다 판 지가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지도는 여전히 바닥이다. 소니 모르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소니 로고가 박힌 스마트 폰을 꺼내들면 열에 아홉은 "어? 소니에서 스마트 폰도 나와?" 내지는 "엠피쓰리냐?"라는 반응이 나온다.
음악을 듣는 미디어는 크게 카세트 테이프 → CD → MD → 엠피삼 파일 → 온라인 스트리밍, 뭐 이정도로 변해왔는데 소니는 그 모든 미디어 전용의 플레이어를 꾸준히 시장에 내놓았고 인기 모델도 제법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인지도가 상당하다. 실제로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정식 수입이 안 되던 시절 보따리 장사꾼들을 통해 암암리에 들어온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은 경험이 있을 정도니까 소니 정도는 한국인 대부분이 안다고 봐도 무방할 터. 요즘 젊은 사람들이야 아이유가 광고하는 이어폰, 헤드폰을 비롯해서 소니 제품 많이 쓰기도 하니까 대부분 알고 있고.
하지만 모바일로 한정하면 소니는 LG나 지금은 망해서 없어진 팬텍만큼의 인지도도 없는 회사다. 예전에 엑스페리아 Z2를 쓸 때에도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소니에서 스마트 폰 만든다는 걸 알고 깜딱! 놀랐었드랬지. 그렇다고 자국인 일본에서는 인기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본은 아이폰이 시장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갤럭시 쓰는 사람보다는 많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세울만한 점유율을 가진 것도 아닌 것이다. AEON 몰을 비롯한 여러 쇼핑몰에 가면 온통 아이폰 케이스나 주변 기기고 엑스페리아 관련된 상품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국인 일본에서조차 찬 밥 대접 받는 소니의 스마트 폰을 처음 접한 건 Z2 때였다. 쓰던 손전화가 갤럭시 S3였는데 마침 바꿔야 할 시기였고 무엇보다 보라색이 충격적으로 예뻐서 훅! 질러버렸다. 그리고 약 1년 썼는데... 화면이나 음질 같은 건 모두 대만족. 다른 사람들 다 욕하는 카메라 기능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스마트 폰 주제에 전화는 더럽게 안 터져서 당최 쓸 수가 없었다. 마침 후속 모델인 Z3를 보상 판매한다는 안내가 있었는데 보상이 워낙 형편 없었던지라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소니 하는 꼬라지 보니 망하겠고나, 다른 건 몰라도 모바일 시장에서는 포기 선언하고 철수하겠고나라고 생각했다.
SKT 전용 스마트 폰 팔고 있는 다이렉트 샵에서 들고 온 내용이다. 예전에 Z2 때에도 이런 안내문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는데... 첫 번째, 두 번째 내용은 통화 품질과 관련된 것이고 세 번째 내용은 SKT 전용 앱이 전혀 깔려 있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피해 같은 걸 언급하고 있는 거다. 최근에는 좀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Z2는 통화 품질이 개판이었다. 나는 잘 들리는데 상대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동 중은 물론이고 안테나 빵빵하게 뜬 곳에서 멈춘 상태로 통화해도 저 모양이었다. 전용 앱 없는 건 엄청난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SKT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의 요금제를 사용하는 고객에게 무료로 영화를 다운받거나 실시간으로 보게 해주는데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작품도 수시로 올려주기 때문에 이게 의외로 쏠쏠하다. 그런데... 그 서비스를 꽤 오랫동안 이용할 수 없었다. 거기에다 티머니도 안 되서 대중 교통 이용할 때에도 몹시 불편했다(나중에 되긴 했음).
내 예상을 깨고 소니는 여전히 스마트 폰을 팔고 있지만 점유율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클리앙을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봐도 Z2 때 정점을 찍고 그 뒤로 내리막이 아닌가 싶다. 이후 모델명에 약간의 변형을 줘서 XZ라 이름 붙인 녀석을 주력으로 팔고 있는데 디자인은 전작과 거의 차이가 없고 하드웨어 스펙만 조금씩 높아지는 수준. 특히나 최근의 프리미엄 스마트 폰은 베젤이 거의 보이지 않는 베젤리스 디자인이 대세인데 엑스페리아 XZ는 위, 아래에 대문짝만한 베젤이 떠억~ 하니 자리잡고 있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인기가 없다. 신제품이 나오면 뭐라도 받아먹었을 기자들이 기사를 가장한 광고를 열심히 올려대지만 댓글 보면 호평이 아예 없다. 죄다 씹는 얘기. -_ㅡ;;;
최근 밀고 있는 프리미엄 제품은 엑스페리아 XZ Premium이라는 녀석인데... 디자인만 봐서는 Z2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별 차이가 없다. 그. 런. 데.
Rosso Edition이라 이름 붙인, 시~ 뻘건 녀석이 나왔다. 11월 6일인가 발매한 걸로 알고 있다. 빨간색이라 하면 환장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라... 그냥 보는 순간 눈이 확 뒤집어졌다. 그 전에 아무 관심도 없었는데... 다시는 소니 스마트 폰 안 산다고 다짐했는데... 그랬는데... 그저 몸뚱이 색깔 하나 빨간 걸로 바뀌었을 뿐인데... 정신을 놓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폰 지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디자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디자인에 색깔이 포함되기 때문에... 거기에다 갤럭시 시리즈는 아이언 맨 에디션 빼고는 빨강다운 빨강이 나온 적이 없어서... 그저 저 자태만 봐도 훅 갔다. 그래서 가격을 알아봤다.
SKT 다이렉트 샵에서는 64GB 제품을 799,700원에 팔고 있었다. 거의 80만원이다.
공시 지원금이 20만원이고 다이렉트 샵에서 추가로 3만원 할인해주고 있으니까 23만원 빼면 569,700원 정도 하는 셈. 물론 제 값 주고 사면서 24개월 동안 25% 할인 받는 게 더 낫다. 14,025원씩 24개월 할인 받으면 336,600원이다. 그렇게 계산하면 463,100원이다.
소니 스토어에서는 869,000원이다. 69,300원 더 비싸다.
공기계 일시불로 사서 SKT에 등록하면서 역시나 24개월 할인 선택하면 336,600원 까지니까 532,400원. 만약 나처럼 통신사에 스마트 폰으로 등록 안 하고 휴대용 똑딱이 카메라 겸 엠피삼 플레이어로 쓸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할인이고 뭐고 없는 거니까 80만원 넘는 기기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소니 스토어에서 구입하면 사은품을 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정품 케이스, 지문 방지 필름을 준다. 사은품 가격을 다 더하면 192,000원.
SKT에 등록해서 휴대 전화로 사용할 경우에는 기기 값 - 2년 약정 25% 할인 - 사은품 가격 = 340,400원이 된다. 이렇게 따지면 프리미엄 폰이라지만 중 · 저가의 보급형 스마트 폰 가격에 가까워진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갤럭시 S8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기기 변경을 할 맘이 없고, 만약 구입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카메라 겸 엠피삼 플레이어로 쓸 생각이니까 사은품 가격만큼 돈 벌었다 생각하면 677,000원 주고 사는 셈이 된다.
스스로에게 이걸 지르는 건 참으로 잘한 짓이다라고 납득시켜야 하기에 제품의 주요 특징을 보면서 좀 더 자신을 설득해보기로 했다.
① 슬로우 모션과 예측 촬영이라는 거... 일단 슬로우 모션은 신기해서 몇 번 써보기야 하겠지만 처음 한 달 정도 지나면 아예 안 건드릴 것이고... 예측 촬영은 그나마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어차피 기본 촬영 모드 놓고 찍어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② 4K 디스플레이. 이것 역시 처음에는 쨍~ 한 화면에 우와~ 하겠지만 이내 적응해버릴테니 별 거 없고. ③ 듀얼 글라스 패널 어쩌고 하는 거. 저것도 쌩 폰으로 쓸 때에나 매력이지 케이스 덮어 씌우는 순간 말짱 꽝이 된다. Z2가 엄청 예뻐서 케이스 없이 쌩 폰으로 들고 다니다가 떨어뜨려 흠집 생긴 이후 정이 확! 식었는데...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싶고. 방진과 방수는 Z2 시절까지만 해도 소니만의 장점이었지만 요즘은 대부분이 되는 거니까. ④ 손떨림 보정과 4K 동영상 촬영은 동영상 촬영 거의 안 하는 나한테는 의미 없고. ⑤ 스냅 드래곤 835라면 2017년 11월 기준으로 플래그 십 CPU는 아니다. USB 3.1 역시 지원하는 게 당연한 거고. ⑥ 여러 음원 코덱 지원하는 건 상당히 매력적이다. 더구나 지금 사용하고 있는 X1000 무선 블루투스 헤드폰과 연동해서 쓰면 최고가 될 거라는 걸 아니까... 위에서 언급하는 장점 중에 이게 가장 끌린다. ⑦ 이건, 뭐... 소니에서 하는 얘기니까. 얼마 전에 Z2 배터리 부풀어서 돈 주고 교체 서비스 받은 입장에서 딱히 장점으로 보이지 않는다.
뭐, 이 정도다. 음... 써놓고 나서 보니... 사야할 이유가 아니라 사지 말아야 할 이유에 가깝고만. 만약 저러함에도 불구하고 질러버린다면... 그건 순전히 빨간색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 뿐.
실은... 요즘 금전적으로 상당히 힘든 고난의 행군 시기인지라... 아마도 지르지 못할 게다. 다만... 조만간 일본으로 떠나고자 발버둥치고 있는데... 만약 국내에서 구입한 제품을 일본 통신사에 그대로 가입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때에는 질러버릴 지도 모른다. 지금 쓰고 있는 갤럭시 S8도 USIM 빼서 일본 통신사 가입이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좀 알아보고 NTT 도코모나 소프트뱅크 같은 일본 통신사에 등록해서 사용할 수 있다면 질러버릴지도 모른다.
부디... 가까운 시일 내에 모바일 카테고리에 '결국 질렀다' 따위의 제목으로 직접 찍은 엑스페리아 XZ Premium Rosso Edition 사진이 올라오는 일이 없기를... T^T
※ 최근 쓴 그 어떤 글보다 중구난방 아닌가 싶다. 혼란스러운 정신 상가 반영되었기 때문 아닌가 싶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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