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됐다. 제주에서 빈둥거리다가 동생 전화받고 허둥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 참 빠르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누나(나한테는 고모)와 함께 묘에 다녀온 게 2017년 5월. 고모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올 해에도 같이 아버지한테 다녀왔다. 올 해는 윤년이라서 돌아가신 날을 음력으로 따졌더니 5월 마지막 날이더라.
친척 누나와 같이 가려고 주말에 일정을 맞추다보니 6월 2일에 가서 3일에 돌아오는 일정이 됐다. 나는 6월 1일부터 일찌감치 휴가 썼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거리다가 슬슬 가야겠다 싶어 포항에 있는 고모 댁으로 출발. 중간에 휴게소 들러 밥 먹고 하느라 세 시간 조금 더 걸렸다.
내가 태어났던 곳, 자랐던 곳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지금은 가봐야 예전 모습이 1도 안 남아 있다. 말이 고향이지, 내 기억 속의 공간과 완전히 달라져 있는 거다. 그런 가운데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과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게 고모 댁.
저 방범 창도, 주렁주렁 너저분해 보이는 전깃줄도, 예전 그대로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만나는 친척이 고모였다. 어렸을 때 이 문으로 수만 번을 들락거렸을 거다.
예전과 달라진 게 1도 없는, 내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다.
1년 전에는 완전 주먹만한 새끼였는데... 1년만에 훌쩍 커버렸다.
1층과 2층을 옮겨다니며 살았었다. 1층 살 때에는 2층 전세 주고, 2층 살 때에는 1층 전세 주고 그랬었다.
저 작은 쪽문으로 들어가면 방이 또 나온다. 거기가 내 짐들 던져놓을 곳이다.
변한 게 너무 없다. 포항에서 어릴 때 기억과 달라진 게 없는 유일한 공간이다.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있던 곳. 들어가서 놀만도 한데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다른 친척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명절에 친척들 찾아다니는 일이 없었다. 난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유일하게 보는 친척이 할머니와 고모였다. 할머니는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고모는 무척 따랐다. 다른 친척들한테는 무서운 사람이었던 고모가 나한테는 정말 잘해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게를 했기에 과자 집어먹으러 갔던 게 컸다. 갈 때마다 용돈도 받았고.
여장부 중 여장부 같았던 고모인데... 세월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지 이제는 많이 약해지셨다. 여기저기 아프다 하시고. 고모 만큼은 늙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안타깝다.
휴게소에서 밥 먹고 간 덕분에 배가 고프지 않았다. 물회 먹으러 가자는 걸 싫다 하고 치킨에 맥주 한 잔 하러 갔다. 고모 댁 근처에 가서 축구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간단하게 일 잔 하고... 들어가서 바로 잤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 먹고... 대충 챙겨서 출발. 휴게소 들리면서 천천히 가서 아버지 모셔놓은 곳에 도착했다. 지난 겨울에 다녀간 후 처음 온 거니까 대략 5개월 만인 것 같은데 그 5개월 동안 동생이라는 ×은 역시나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경기도 쪽으로 모시는 건데, 정말 큰 실수했다. 동생이라는 ×이 그나마 자주 찾아뵐 거라 생각했는데. ㅆㅂ
올려두었던 과자와 콜라는 관리인이 치웠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해병대 티셔츠 역시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해병대 스티커와 훈장만 남아 있었고 꽂아둔 조화도 빛이 살짝 옅어져 있었다. 조화를 뽑아내고 새로 사들고 간 조화로 장식했다. 무궁화 조화 사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커와 훈장도 닦아서 다시 장식하고... 아버지 좋아하셨던 과자랑 콜라 올렸다.
사들고 간 소주 한 잔 따라 드리고... 공부하러 멀리 다녀올테니 잘 좀 지켜달라고 기도했다. 가만히 두면 고모가 또 울 것 같아서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하면서 분위기 전환하고... 소주 한 병 다 따라드리고 나왔다. 사진 한 장 찍는다는 걸 깜빡해버렸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입 안이 까끌까끌했다.
근처에 고모 아는 분이 산다고 해서 그리 향했다. 아주 오래 전에 포항에서 같이 살던 분이란다. 수십 년이 지나도 인연이 계속되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 마침 추어탕 끓였으니 와서 밥 먹으라 하셔서... 인사 드리고 밥 얻어 먹었다.
밥 먹고 나서 순천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숙소를 순천에 잡아놨기 때문이다.
요즘은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이래저래 잘 꾸며놔서 참 좋다.
펜션에 도착. 주말이라 하루에 13만원이었는데 이용하는 사이트의 10박에 1박 무료 혜택 이용해서 6만원만 냈다.
그리고 나서 근처 구경 가기로 했다. 일단 순천만 국가 정원부터. 당시 여자 친구, 지금은 남인 사람과 한 번 다녀왔었고 그 후 엄마님 모시고도 한 번 다녀왔었다. 세 번째 방문이라 큰 기대는 안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서문 쪽으로 들어가자마자 나온 기막힌 모과나무에는 아래와 같은 사연이 있다 한다. ㅋ
순천시 별량면 대동마을에서 300년동안 살아온 모과나무를 정원박람회장으로 옮겨 심으려하자, 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박람회 관계자가 지속적인 설득을 위해 마을을 찾았을 때, 우연히 외진 곳에 쓰러져 있는 마을 할머니를 발견해 생명을 구한 일을 계기로 주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정원박람회장으로 옮겨심는 데 동의해 기막힌 모과나무는 이곳에 새 터전을 잡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예전 방문 때에는 없었던 스카이 큐브라는 게 생겼다.
원래 순천 국제 정원 박람회에 맞춰 개통할 예정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박람회가 끝날 때까지 운행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사고 나는 바람에 운행 중단하네 마네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정상적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최소 두 대 이상의 차량이 연결된 형태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작은 차량 하나가 따로 따로 다니는 형태였다. 내부에는 구겨 앉으면 여덟 명까지 탈 수 있을 것 같았고. 다행히 이용하는 사람이 막 몰리거나 하지 않아서 억지로 다른 사람들과 태우려 들지 않았다. 참고로... 갈 때보다 올 때가 더 한산하다. 천~ 천~ 히 달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속도를 낸다. 한참 가서 내린 후 근처를 구경할 수 있다. 왕복 티켓을 구입했다면 다시 타고 돌아오면 된다.
또 포커스 나갔다. 조만간 기필코 카메라 매뉴얼 읽고야 만다. -ㅅ-
볼만큼 봤으니 되돌아가자.
자전거가 붙은 보트도 있더라. 한 가족이 타면 아빠만 죽어나는, 아버지 혹사형 체험 시설 되시겠다. ㅋ
저렴하다 할 수 없는 가격이지만 충분히 타볼만 했다.
고모가 오래 걷는 걸 힘들어 한다. 순천만 국가 정원은 엄청나게 넓기 때문에 젊은 사람도 힘들어 할 곳인데... 고모에게는 무리다. 결국 관람차를 타기로 했다. 관람차는 코스를 돌며 간단한 설명을 해준다. 단, 세계 여러 나라의 정원을 꼼꼼히 보려면 걸어서 봐야 한다. 관람차로는 수박 겉핥기 정도의 관람 밖에 불가능하다.
아직 더 봤음 싶었지만 고모가 힘들어하는데다 순천만에서 해 지는 걸 보고 싶어서 발걸음을 돌렸다.
잽싸게 숙소 쪽으로 돌아왔는데... 해 지는 게 안 보인다. 순천만으로 향하면 될 줄 알았는데 해 지는 걸 보는 분위기가 아니다. 반대 쪽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던 거다. 해 지는 쪽 따라 가는데 도저히 차로 갈 일이 아니다 싶어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사장님께 여쭤보니 너무 늦었단다. 미리 검색했을 때 해 지는 시간이 19시 30분 조금 후로 나오기에 19시 무렵 순천만으로 가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최소 해 지기 한 시간 전에는 순천만 주차장에 도착해야 볼 수 있을까 말까 한단다. 에휴~
저녁에는 근처에 사는 다른 분이 펜션으로 찾아 오셨다. 이 분은 나도 기억이 나는 분이다. 딸은 나와 동갑이고 아들은 동생이랑 동갑이라서 어렸을 때 같이 논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몇십 년 만에 만나 어색하게 인사 드리고... 가지고 오신 고기를 같이 먹었다. 어찌나 푸짐하게 준비해서 오셨는지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어렸을 때 니가 우리 딸 때린 거 기억하냐 하셔서 엄청 쪽 팔렸다. -_ㅡ;;;
다음 날 점심 때 게장 정식 먹고 가라 하셨는데... 고모가 ○○ 들러 친천 누나 내려주고 포항 가서 고모 내려준 뒤 ○○까지 가야 하니까 아침 일찍 나서자고 새벽부터 깨워댔다. 결국 일찌감치 일어나 짐 정리한 뒤 펜션을 나왔다.
펜션에서 나와 전 날 만났던 아주머니 댁에 방문. 밥 얻어먹고... 잠시 앉아서 고모와 아주머니가 옛날 얘기하는 거 듣고 있다가 두 어 시간 가까이 지나 출발했다. ○○ 들러 친척 누나 내려주고. 포항에서 고모 내려드리고. ○○으로 돌아왔다. 누나랑 고모가 타고 있을 때에는 나름 신경 쓴 덕분인지 졸리지 않았는데 혼자 운전하니 좋아하는 노래와 팟 캐스트를 크게 켜놔도 잠이 마구 쏟아졌다. 도저히 졸려서 안 되겠다 싶은데 휴게소가 안 나와서... 몇 번을 볼 꼬집어가며 겨우 휴게소에 도착. 더워서 그냥은 안 되겠고, 에어컨 켠 뒤 차 뒷 좌석으로 가서 누웠다. 살~ 짝 잠이 들려는 찰라에 밖에서 누가 소리 지르는 바람에 깼다. 내 옆에 차 댄 아저씨가 일행 부른다고 소리 지른 거였다. 아오, ㅆㅂ! 그나마 쪽 잠이라도 잔 덕분에 덜 졸린 것 같아 음료수 사서 마시고 캬라멜 씹으면서 올라왔다.
네×버 지도에서 얼마나 운전했나 알아보니 이 날 하루에 운전한 거리만 600㎞ 가까이 된다. 3일 동안 운전한 건 1,300㎞ 정도. ㄷㄷㄷ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구경 못하고 온 게 좀 아쉽다. 다음에 좀 더 여유있게 시간 잡아서 다녀와야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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