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다녀와서 내리 닷새를 출근하고 이 날은 축구 보려고 휴가를 썼다. 자다 일어나서 대충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출발. 늦을 것 같아 부랴부랴 뛰쳐나갔는데 아니나다를까 정류장 가기 전에 버스가 와버렸다. 그냥 지나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데 기사님이 세워줘서 버스 탑승 성공!
××에 내려 수원 가는 버스 서는 곳으로 가니 ×××-× 버스가 딱 서 있다. 오늘은 버스 운이 좋고나. ㅋㅋㅋ 잽싸게 타서 맨 뒤로 갔다. 노래 들으며 수원 팬과 조우할 것을 대비했는데... 내릴 때까지 버스 타는 수원 팬이 없었다. -ㅅ-
슬렁슬렁 걸어 경기장 도착. 오른쪽으로 가면 원정석이 금방인데 일부러 왼쪽으로 갔다. 경기장 한 바퀴 크게 도는 건 어디를 가도 하는 일. 그렇게 휘~ 돌아 반대 쪽에서 표를 사고 원정석 쪽으로 가는데...
포항 버스가 마악 도착해서 주차 중이었다. 멀찌감치에서 사진 찍고...
가던 길 마저 가서 경기장에 들어갔다. 원정 버스가 도착하기 전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수원 놈들이 희한해져서... 골대 뒤에 못 앉게 막아놓고 보는 사람 기준으로 골대 왼쪽에 쏠려 앉게끔 해놔서... 최대한 중앙에서 보려면 오른쪽 경계로 붙어야 한다. 그러니까 뭔 소리냐면...
┌──┐ ← 골대
□□□□□□□□■■■■■■■■■■■■■■
└ 원정 서포터 자리 └ 일반석
이런 식인 거다. 아무튼... 그래서 최대한 골대 뒤 정중앙으로 붙으려고 그 쪽으로 걸어가는데... 느닷없이 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응? 이게 뭐지?
그라운드에 물 뿌리는 중이었는데 다 뿌렸는지 물을 잠그면서 물총(?) 방향에 신경을 쓰지 못해서 원정석 쪽으로 물이 날아든 거다. 이게 1, 2초 정도만 날아와도 엄청난 양인데 꽤나 오랫동안 뿌려져서 하필 거기 앉아 있던 아저씨 한 명과 아줌마 두 명이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버렸다. 아줌마들은 꺅꺅 비명 지르고, 아저씨는 어떻게든 막으려고 난리. 이내 물을 잠궜지만 세 사람은 홀딱 젖어버렸다. 아저씨가 몹시 짜증내며 물 뿌리던 사람에게 항의하기 시작. 물 뿌리던 분은 나이가 꽤나 있으신 분 같았는데 물 맞은 아저씨가 반말로 "어떻게 할 거냐고!" 하며 언성을 높인다. 죄송하다고, 못 봤다고 사과를 하더니
부리나케 수건 가지러 뛰어가신다. 잠시 후 수건을 전달하고... 물 맞은 아저씨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담당자 오라고 다시 항의. 나중에 보니 여자 분이 와서 담요도 주고 이것저것 챙기면서 화 풀라 하는 것 같더라. 뭐... 축구 보러 갔다가 물 맞아서 홀딱 젖으면 기분 더럽겠지. 누가 봐도 자기보다 연장자인 사람한테 반말하는 건 그닥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당사자가 아니니 이렇다 저렇다 할 일은 아닌 것 같고... 아무튼, 경기 시작 전에 그런 헤프닝이 있었다.
전 날 성남이 전북에 이기지 못하면서 ACL 티켓은 전북, 북패, 포항, 수원으로 결정이 났다. 다만, 리그 2위를 해서 ACL 직행 티켓을 따내느냐, 3위를 해서 플레이오프를 거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플레이오프가 2월에 있기 때문에 다른 팀이 3월의 개막전에 맞춰 준비하는 것에 비하면 시즌을 일찍 시작하는 셈이다. 포항은 이미 그런 적이 있는데... 시작이 한 달 당겨지는 것 뿐이지만 여러 가지로 손해가 큰 모양이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은 먹거리가 부족(닭이라도 팔 것이지. -ㅅ-)해서... 경기 시작 전에 배달의 ×족으로 닭 시켰다. 원정석에 있다 하니까 가서 전화하겠다 하더니 정확히 잘 찾아오셨다. ㅋㅋㅋ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배달의 민× 실행하면 치킨 분야 맨 위에 있는 가게, 맛있더라. 추천.
이 날 경기 전까지는 포항이 수원에 승점 2점을 앞 선 2위였다. 2위 자리가 뒤바뀔 수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 원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포항이 경기를 공격적으로 끌고 나갔다. 시작하자마자 신진호의 패스가 김승대에게 이어지며 좋은 찬스를 가져왔고, 전반 2분에는 강상우가 날린 슛을 정성룡이 자빠지며 막아냈다. 그렇게 초반부터 몰아치더라니, 7분만에 김준수가 골을 만들어냈다. 신진호의 프리킥을 머리로 받아 넣은 것. 그러고보니 김준수는 2년 전 남패를 상대로 데뷔 골(2013년 6월 1일)을 넣었었는데 신진호의 패스를 등으로 받아 넣은 거였다(신진호 슛이 김준수 등 맞고 꺾이면서 들어감. ㅋㅋㅋ).
일찌감치 득점에 성공하고도 몰아치기를 계속. 전반 32분에 강상우에게 좋은 찬스가 있었고 38분에는 특유의 짧은 패스가 이어지며 골 찬스가 나왔지만 강상우가 홈런을 치고 말았다. 뭐, 쉬운 슛은 아니었으니까... 전반 종료 전인 43분에는 김태수가 날린 중거리 슛을 정성룡이 가까스로 쳐냈고 1분 뒤에는 완벽한 골 찬스가 골키퍼에게 막혔다. 선방이라는 걸 기대할 수 없는, 누가 봐도 막을 거 막고 먹을 거 먹는 정성룡이었기에 강상우가 골키퍼한테 냅다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면. 더구나 리바운드 된 볼 역시 재차 슛으로 연결했지만 추가 골을 만들지 못했다. 거기서 또 1분 뒤, 그러니까 전반 45분에는 코너 킥을 김대호가 슛으로 연결, 들어가는가 했는데 홍철이 발을 뻗어 막아냈다. 정성룡은 애먼 데 가 있었고 거의 골이었는데... ㅠ_ㅠ
후반전에도 포항이 부지런히 몰아쳤는데... 6분에 동점 골을 먹었다. 뒤에서 길게 넘어온 공을 염기훈이 가운데로 이어줬고 쇄도하는 권창훈을 놓쳐 실점하고 말았다. 동점 이후 서로 치고 박고 하는 가운데, 후반 13분에 강상우가 확실한 찬스에서 슛을 날렸지만 또 정성룡한테 갖다 줬다. 진짜... 지독하게 골 운이 없는 강상우, 그리고 지독하게 공격수 운이 없는 포항. 모따나 데닐손이었다면 이 날 강상우가 맞이한 찬스 중 두 번 정도는 골 만들었을 거다. 이 장면은 특히나 어이가 없는 게, 정성룡이 사이드 돌파하는 우리 선수가 슛 때릴까 싶어 각 좁힌다고 나갔다가 미처 돌아오지 못해 골대 대부분을 비워두고 한 쪽으로 완전히 치우쳐 있었는데 거기다 갖다 때렸다는 거. -ㅅ-
후반 20분에는 까이오가 훌륭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패널티 킥을 만들어내려 했지만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고... 서로 치고 박고 하다가 흐름이 수원으로 슬~ 쩍 넘어오더라니... 프리킥을 조성진이 어영부영 밀어넣어 경기가 뒤집어졌다. 골을 넣고야 말겠다는 슛이라기보다는 응? 툭~ 하다 들어간 거. -ㅅ-
결국 강상우의 숫한 삽질 때문에 한 골에 그친 포항이 역전 패 당했다. 하도 오랜만에 지니 적응이 안 된다. 그렇게 순위는 뒤집어졌다.
경기 점유율은 수원이 57, 포항이 43으로 수원이 약간 우세했지만 슈팅은 포항이 4개 많았다(수원 7개). 유효 슈팅 역시 포항이 수원의 두 배(포항 6, 수원 3). 코너킥과 프리킥도 우리가 많았다. 그런데... 수원은 유효 슈팅 세 개 중 두 개를 골로 만든 반면, 우리는 여섯 개 중 하나만 골이 되었다. 나머지 다섯 개 대부분이 강상우... -_ㅡ;;; 이 경기 이겨서 2위 확정 짓고 연속 무패 기록도 깨고 그랬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황선홍 감독 나간다고 자꾸 기사 나고 그래서 어수선한 여파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젠장...
갑질하는 수원 월드컵 경기장 관리 재단에 항의하는 수원 서포터들 보니... 뭔가 좀 답답하더라. 전국의 축구장을 그렇게 쫓아다니지만 월드컵 경기장 중에서는 수원만한 곳이 없다. 지금은 전북의 성적이 워낙 좋아서 전주 월드컵 경기장이 장사를 가장 잘하고 있지만 꾸준함으로 본다면 수원만한 곳이 없다. 경기장 꼬박꼬박 찾아주는 팬들과 그런 팬들 불러모으는 팀한테 뭐라도 하나 해줄 생각은 안 하고 갑질이나 하려 드니... 우리에게는 스틸 야드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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