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을 내리 쉬었다. 아버지의 1주기 때문이었다. 나는 종교를 혐오하는 사람이고, 제사 같은 격식도 딱히 차릴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냥 조용히 아버지 묻힌 곳 가서 소주나 나눠 마시고 와야겠다 생각했는데... 고모가 일찌감치부터 아버지한테 다녀오고 싶다는 말을 했다. 고모는 포항에 계시고 아버지는 광주에 계신다. 몸이 불편한 고모가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에 내가 모시고 다녀오기로 했다. 고모 딸, 나한테는 친척 누나가 울산에 사는데 같이 가기로 했다. 그래서 ×× → 포항 → 울산 → 광주 → 순창 → 울산 → 포항 → ××의 강행군이 될 여정이었다. 그러나 누나가 피곤할 거라며 울산에서 버스를 타고 포항에 왔다.
아버지는 지난 해 5월 24일에 돌아가셨다. 음력으로 4월 18일이다. 그런데 고모가 4월 17일이라 하신다. 병원에 이미 돌아가신 상태로 실려오셨기 때문에 실제 숨을 거두신 5월 23일의 음력 날짜를 따지시는 모양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혼자 맥주를 좀 마셨다. 다음 날 ×× ××을 할 예정이었는데... 술을 생각보다 많이 마시는 바람에 결국 못 일어났다. 빈둥거리다 느지막하게 출발. 출발 전에 차가 너무 더러워 세차를 했다.
도로는 막히지 않았고 어지간하면 크루즈 컨트롤 켜고 정속 주행해서 포항에 도착했다.
300㎞ 넘게 밟는 동안 기록한 연비. 중간에 RPM 올리면서 좀 쌔게 달렸는데도 이 정도다. 연비는 진짜... 훌륭하다.
예전에 나 살 때에는 오광장, 오광장, 이렇게 불렀는데 5호 광장이라고 써붙여놨다. 한국은행은 예전대로 그 자리에 있다.
아버지 묻힌 곳에 해병대 티셔츠 새로 올려놓고 싶어 고모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오거리로 갔다. 예전에는 해병대 용품 파는 마크사가 잔뜩이었는데 이번에 가니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쥐새끼 때 운하 어쩌고 하며 꼴값 떨던 우체국 앞 거리를 거쳐 되돌아오다가 남빈동 사거리에서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예전에는 지정 좌석도 없이 그저 아무 자리에나 앉아서 영화를 보던 극장은 롯데 시네마로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 성룡 나오는 영화 두 번 내리 본 기억이 생생하고... '우뢰매' 본답시고 이버지와 갔던 극장인데... 자리는 그대로지만 엄청나게 바뀌었다. 테이프 사러 부지런히 들락날락하던 해변 레코드와 맞은 편의 ×× 레코드(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통신사 대리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다니던, 100원 짜리 넣고 운세 뽑아보면서 돈까스 기다리던 경양식 집도 없어졌고... 그나마 국민은행이랑 롯데리아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엄청나게 반가웠다. 또... SONY와 AIWA 워크맨 팔던 전파상들 중 몇 곳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진짜 반가웠다. 다음에 포항 놀러가면 국민은행에서 돈 뽑아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사먹고 전파상 들러 구경하는 코스로 시간을 보낼 거다.
뭔 얘기하다가 옛날 앨범을 꺼내보게 되었는데, 친척 누나 결혼할 때 찍힌 사진이 있었다. 저 때에는 머리 숱 많았네. -ㅅ- 저 알록달록한 옷 기억난다. 아버지가 사주신 옷인데 뒤집어 입을 수 있는 옷인데다 양 쪽 디자인 모두 맘에 들어서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사진 속 디자인을 좋아해서 저 쪽만 늘 까맣게 때가 타 있던 기억도...
아버지한테 인사하고... 담양으로 넘어갔다. 누나가 맛집 검색해서 갔는데 입구에 이렇게 물 나오는 곳이 있다.
화단에 예쁘게 꽃도 심어져 있고.
굉장히 훌륭하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식당.
메타세콰이어 길에 처음 갔을 때에는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길가에 세워진 1톤 트럭에서 오뎅 팔고. 이후 찾아가니 차 못 다니게 막아놓고 바이크와 자전거를 대여해주고 있었다.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간 건데... 자전거나 바이크 대여해주는 곳이 다 없어졌다. 그리고 바로 뒤에 엄청난 쇼핑 & 상가 & 펜션이 생겼다. 그리고... 입장료를 받는다. 일몰 후에 들어가서 따로 돈은 안 냈는데... 저기 돈 받는 건 좀 에러인 것 같다. 참고로 코스가 꽤 기니 감안하고 걷기를...
쿠×에서 예약했으면 좋았으련만... 숙박 업소랍시고 얼마 전 해킹 당해 탈탈 털린 여기 ×때로 알아본 펜션 갔더니... 구리다. 코딱지만한 브라운관 텔레비전도 그렇고. 그래도 사장님 친절하고 있을 건 다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정품 파리채도 있었다. ㅋ
다음 날 찾아간 담양 죽녹원의 화장실. 이른 아침에 가서 사람들 없을 때라 정말 좋았다. 등산복 입은 사람들에 단체 관광객 몰리기 시작하며 아무리 좋은 경치도 그저 지옥이 된다. 조용하고 한적하게 즐겨야 하는 곳인데 그게 불가능해진다.
어찌나 사람들이 지나다녔는지 반들반들하다. 20대 지나가라고 만든 곳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뱃살이 문제가 아니라 가슴이 낀다. 나는 30대 지나는 곳도 배보다 가슴이 먼저 끼더라. 내가 엄청난 미드의 소유자가 아닌데도 그렇다.
대나무로 만든 해먹?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 누워 흔들리고 있자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거기서 바라본 하늘.
담양에서 하루 자고 남원으로 넘어갔다. 광한루는 참 좋은 곳일 것 같긴 한데... 주말이라 사람 많은 게 문제. 시끄럽고 복잡하다. 비 오는 평일에 조용히 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인데, 주말 화창한 날이여서 엉망. 다행히도 맞은 편은 좀 한적한 편이었다.
여러 꽃들이 잔뜩. 꽃이 예뻐 보이는 걸 보니 늙긴 늙은 모양이다.
물레방아 따라 흐르는 물을 꽃으로 대신했다. 기똥차다.
그렇게 남원 들렀다가 울산으로 향했다. 누나가 밥 사준다고 언양으로 가자고 해서 그리 갔다. 언양하면 불고기가 유명. 가게가 얼마나 큰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우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누나랑 매형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아 적당히 배 부르다 하고 말았다. 양 껏 먹었으면 난리 났지. 그래도 좋았다.
언양에서 누나와 헤어지고, 고모를 모시고 포항으로. 고모 집 앞에 차 세워두고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 만나서 한 잔 먹었다. 가볍게 먹으려고 했는데 어찌 하다보니 정신 놓고 달려서 꽤 많이 마셨다. 다음 날 낮까지 자다가 느지막히 올라왔다. 개 피곤. 그 피곤이 며칠 째 풀리지 않아 지금까지 힘들다. 그래도 아버지 보고 와서 개운하다. 다음에 광주 갈 때에는 울타리랑 자갈, 자잘한 조화 챙겨서 아버지 계신 곳을 좀 더 예쁘게 꾸며야겠다.
요 밑↓에 하♥트 클릭, 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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