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은 연휴가 지났다. 무려 열흘이나 이어진 휴가. 인천 공항은 미어터졌다 하고, 쉬는 날이 길어 분산될 거라 별로 안 막힐 거라는 고속도로는 예상을 깨고 이번에도 주차장이 되었다 한다. 뭐, 나는 내내 일해서 그저 남 얘기다.
2025년에 또 길고 긴 연휴가 있다는데 그 때 주간 근무하게 될지, 계속 예측 불가능한 근무를 하게 될지 알 수 없으니 기다리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아무튼... 긴 연휴가 끝난 다음 주는 보통 평소보다 조용하기 마련이다. 길게 쉬다가 출근한 사람들이 지쳐 집 밖으로 안 나가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때가 오히려 여행하기 좋은 타이밍. 그래서 제주나 다녀올까 하고 4일 내리 쉬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가려니까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가는 항공권은 2만원도 채 안 되고 돌아오는 건 주말이라 6만원 살짝 못 미치니 왕복 해도 10만원도 안 들지만... 차 빌리고 숙소 예약하고 밥 먹고 뭐 하고 하면... 하는 생각을 하니 만사 귀찮아지는 거다. 축구라도 보게 되면 귀차니즘을 이겨낼텐데 그것도 아니고. 제주 가는 건 귀찮은데 해물 뚝배기는 먹고 싶은 상황. 고민하다가 일단 '해물 뚝배기'로 검색해보기로 했다.
요즘은 블로그에도 광고 주제에 아닌 척 하는 글들이 많아서 미심쩍긴 하지만 일단 제주 아닌 지역으로 뜨는 걸 다 눌러 봤다. 거제도 있고 삼척도 있는데 강릉이 제일 눈에 들어오더라. 거제까지는 네 시간 정도, 삼척까지는 세 시간 조금 넘게. 강릉은 가까울 줄 알았는데 강릉도 세 시간 가까이 걸리니 별 차이 없네. 그래도 눈에 들어왔으니 가볼까 싶어 가볼만한 곳 검색했더니... 어라? 뭔가 낯익다?
생각해보니 강원 FC 경기 본다고 강릉 갔던 게 올 해 4월이었다.
『 도깨비 』는 보지도 않았으니 촬영 장소가 궁금할 리 없고... 경포대나 오죽헌도 진부한 것 같아서 건너 뛰었는데... 거기를 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물 뚝배기는 저기가 제일 나은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알아봤다. 숙소는 지난 번에 묵었던 ing 게스트하우스로 하면 되겠다 싶더라. 깨끗하고 사장님 내외분도 무척이나 친절하셨으니까.
숙소에 차 세워두고 택시 타면 5,000원 정도 나오는 거리에 해물 뚝배기 하는 집이 있다. 거기 가서 밥 먹으면서 소주 일 병 마시고... 슬렁슬렁 숙소까지 걸어가고... 숙소 근처에 꼬막 무침 기똥차게 하는 집 있다니까 거기 가서 포장한 다음에... 숙소 돌아가서 소주 일 병 더 까고... 그리고 퍼질러 자고... 다음 날 일어나서 경포대를 가던, 오죽헌을 가던, 적당히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계획. 음... 나쁘지 않고만.
그러다가... 그냥 지리산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행한다면 오늘 이 생각을 한 머리통을 엄청 쥐어박고 싶어질 게 분명한데. 검색해보니 중산리 근처에는 여전히 게스트하우스가 없다. 그렇다는 건... 일찌감치 출발해서 로타리에서 자야 한다는 얘기. 그리고 다음 날 천왕봉 찍고 내려와서 운전하고 올라와야 한다는 거다. 뭐, 근처 게스트하우스 가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올라와도 되겠고.
지리산에 매 년 가자고 다짐하고 처음 간 게 2010년. 이후 꾸준히 잘 가다가 지난 해에 결국 못 갔다. 그렇게 2016년 건너 뛰고... 올 해에는 가긴 가야겠는데... 하고 있던터라 이번에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중산리에서 로타리 대피소까지 가서 한 잔 먹고 잔 뒤 다음 날 출발, 천왕봉 찍고 장터목 거쳐 중산리로 내려가는 코스를 이용하니까 위 경로의 반대라고 보면 되겠다. 처음에는 중산리에서 로타리까지 세 시간 가까이 걸렸던 거 같은데 나중에는 두 시간도 안 되어 도착해버릴 정도로 익숙해졌더랬지. 아무튼... 위의 그림 보면 알겠지만 결코 쉬운 코스는 아니다.
일단 내일도 시간이 있으니까... 좀 더 고민해보자. 4일 내내 방구석에 처박혀서 『 라스트 오브 어스 』 각 잡고 엔딩 보자는 마음도 조금 있긴 한데... 진득하게 뭔가 오래 하는 게 부족한 내가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일단 강릉, 지리산, 방콕, 이렇게 셋 중 하나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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