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궁은 그동안 여러 번 갔었다. 갈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 지루하거나 하지는 않다. 해설사의 설명도 들을 때마다 새롭고. 비 오는 날 박석 위로 튀는 빗방울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해서 이 날을 노렸다. 비자 발급 때문에 서울 갈 일이 있는데 마침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그 때에 맞춰 경복궁에 간 거다.
비 오는 날의 경복궁에 대한 내용은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해보니 『 1박 2일 』에서 언급된 것이었다. 유홍준 교수님이 문화재청장 재임 시절 경복궁을 관리하는 소장에게 물었더니 폭우가 쏟아질 때 물길이 박석 사이 사이로 빠져나가 흐르는 모습이 환상적이라고 했단다. 해당 방송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20년 넘게 술 먹어서 수전증 있는 사람이 삼각대 없이 연사 찍으면 이렇게 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gif
20년 넘게 술 먹어서 수전증 있는 사람이 삼각대 없이 연사 찍으면 이렇게 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 2.gif
20년 넘게 술 먹어서 수전증 있는 사람이 삼각대 없이 연사 찍으면 이렇게 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 3.gif
들어간 지 얼마 안 지나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옳다구나! 했는데... 금방 그쳐버렸다. ㅠ_ㅠ
교토에 가면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기모노 빌려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참 부러웠는데... 경복궁에도 한복이 넘쳐난다.
한복 입으면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 입장료가 무료.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예약이 힘든 야간 개장 때에나 가끔 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주변에 한복 대여점이 잔뜩 늘어났기 때문인지 최소 ⅓은 한복 입은 사람인 것 같다. 한국 사람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한복 갖춰 입고 돌아다니는 걸 보니 참 예뻐 보인다. 한복 대여점에서 빌려주는 한복이 전통 한복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고, 왜색이 짙은 가짜 한복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옷은 변하는 거니까... 그렇게 따지면 흰 저고리에 까만 치마 입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통은 전통대로 지키되, 개량해서 좀 더 예쁜 모습으로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근정전 위의 잡상. 경복궁 내에서는 여기에 잡상이 가장 많아야 하지 않나? 왜 경회루보다 적지? 늘 물어본다, 물어본다 하면서 까먹...
근정전 꼭대기에 피뢰침 있는 건 처음 봤다(라고 생각했다.). 경회루 위에도 삐죽한 피뢰침이 서 있었다.
가장 사진 찍기 좋다는 곳에서 한~ 참을 기다리며 수십 장 찍어댔다. 무료 해설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되어 자리를 떴다.
기다리고 있으면 해설사 분이 나오신다. 해설사 분이 나올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굵어졌다.
근정전 가까이 가서 설명을 듣고 월대 위로 올라갈 무렵에는
주륵주륵 쏟아진다.
근정전 천장의 용 찍은 뒤,
경회루로 이동. 비 오는 날 경회루에 앉아 바깥 경치 바라보며 소주 일 잔 마시면... 크으~
세 개의 문 중 가장 아래 쪽의 큰 문이 왕 전용 되시겠다.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 방한 시 이 문으로 통과하지 못했(않았?)다고 한다.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이고 나발이고 저기는 조선 왕만 다니는 문이라 이거지. 교토 고쇼에 갔을 때 해설사가 부시 前 미국 대통령이 왔을 때 일왕이 다니는 문으로 들어왔네 어쩌네 하는 해설 했던 게 기억났다.
왕이 암살 위협 때문에 날마다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은 듯. 왕도 사람 할 짓 못 된다.
삼장법사 잡상. 스님 같지 않은데. ㅋ RX10의 무지막지한 줌 덕분에 이런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야호!
이건 손오공 잡상. 이 쪽은 제법 닮은 것 같기도. ㅋ
비 오는 날 박석 위로 튀는 빗방울 찍어보려고 한참을 셔터 눌러댔지만 실패!
미련이 남아 끝까지 셔터를 눌러보지만 맘에 드는 사진은 여전히 건질 수 없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니 비가 더 쏟아진다. 쫄딱 젖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가다가 배 고파서 식당에 들러,
김밥이랑 냉우동 사먹고...
딱히 숙소 얘기 따로 쓸 게 없어서 여기 짧막하게 끄적여본다. '여기어때' 어플로 예약한 숙소인데 20,000원도 안 한다. 엄청 싸다. 딱 가봤더니... 가격에 걸맞는 숙소다. 사진으로 보면 엄청 쨍~ 하고 예뻐 보이긴 하는데... 사진과 같은 구조이긴 한데 사진처럼 화사한 이미지는 아니다. 그렇잖아도 습한데 비까지 와서 눅눅~ 하고... 침대 시트도 저렇게 하~ 얀 느낌이라기보다는 낡은 모텔의 침구 느낌. 에어컨이 가장 문제였는데... 18도로 설정하고 켜놨는데 찬바람 전혀 안 나왔다. 차에서 에어컨 켤 때 A/C 버튼 안 눌러서 나오는 밋밋한 바람 같은 게 나온다. 선풍기 없으면 덥고 습해서 못 잘 뻔했다. 뭐, 가격이 싸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어지간히 지갑이 가볍지 않다면 다시 이용하기가 망설여지는 정도.
다음 날.
숙소에서 나와 걸어서 칠궁으로 이동한다. 바로 옆에 청와대가 있다. 서울 구경 제법 다녔다고 자부하지만 청와대는 처음 와 봤다.
무궁화로 가득한 이 곳은 무궁화 동산.
칠궁은 인터넷으로 예약하지 않으면 관람할 수 없다. 반드시 예약을 하고 미리 여기로 가야 한다.
안내소에서 신분증 확인을 거친 뒤 표찰을 목에 걸고 나서야 칠궁에 들어갈 수 있다.
근처에 아이들이 많았는데 어린이 집이 있어서였나 보다.
칠궁의 이름은 근래 붙여졌다고 한다. 왕을 낳은 일곱 명의 후궁 신주를 모신 왕실 사당이다. 후궁은 왕족이 아니라서 종묘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1725년에 지은 사당인데 여기저기 흩어진 다른 후궁들의 신주까지 모셔놔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① 저경궁: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의 사당. 인빈 김씨는 원종의 어머니이다.
선조가 인빈 김씨를 통해 낳은 셋째 아들이 정원군. 그 정원군의 장남이 능양군. 능양군이 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쫓아내고 왕이 되어 인조. 인조가 왕이 된 다음 아버지인 정원군을 왕으로 추대. 인조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인데 왕 자리 근처에도 못 간 정원군을 왕으로 추대하겠다 하니 대신들이 엄청나게 반대함. 그러나 인조가 꾸역꾸역 우겨서 결국 왕으로 앉힘. 인조에 의해 왕이 된 정원군이 원종.
② 대빈궁: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의 사당. 희빈 장씨는 경종의 어머니이다.
숙종이 이래저래 골치 아픈데, 당파 싸움이 지독할 때라서. 정비인 인경왕후가 딸만 둘 낳고 죽음. 두번째 왕비인 인현왕후는 아들을 못 낳음. 희빈 장씨가 아들을 낳아서 결국 왕이 됨. 그가 경종.
당파 싸움 때문에 엄청 복잡하긴 한데 간단히 줄이자면, 희빈 장씨에 휘둘려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희빈 장씨를 왕비 자리에 앉힘 → 인현왕후 복위시킨 뒤 희빈 장씨한테 독약 내려 죽게 함.
③ 선희궁: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의 사당. 영빈 이씨는 추존 왕 장조의 어머니이다.
정성왕후와 정순왕후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정빈 이씨가 낳은 아들(경의군 이행)이 세자가 됨. 그러나 10살의 어린 나이로 죽고, 영빈 이씨가 낳은 이선(사도세자=장헌세자)이 세자가 됨. 그러나 사도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영조가 뒤주에 가두어 죽임.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정조는 효장 세자의 양자가 되어 왕위를 이었으며, 그에 따라 양부인 효장 세자를 왕으로 추존하여 진종이 됨. 참고로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하여 왕으로 만든 것은 아들인 정조가 아니라 먼 훗날의 고종임.
④ 경우궁: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의 사당. 수빈 박씨는 순조의 어머니이다.
정조가 80살 까지만 살았어도 나라 꼬라지가 조금은 나아졌을텐데...
⑤ 덕안궁: 고종의 후궁인 순헌 귀비 엄씨의 사당. 귀비 엄씨는 영친왕의 어머니이다.
⑥ 육상궁: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사당. 숙빈 최씨는 영조의 어머니이다.
② 대빈궁 참조.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조선 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단연 세종대왕을 꼽았고, 그 후 태평성대를 이룬 임금으로 영조와 정조를 합쳐 영 · 정조 시기라고 배웠는데... 나이 먹으면서 이런저런 책을 읽어보니 영조는 컴플렉스 덩어리에 밴댕이 소갈딱지.
⑦ 연호궁: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의 사당. 정빈 이씨는 추존 왕 진종의 어머니이다.
③ 선희궁 참조.
조명 때문에 잘 안 보이는데 사진 오른쪽 아래 ㄴ 모양의 돌이 하마석.
원래 칠궁은 청와대 관람객에 한해 개방되었다고 한다. 2018년 6월부터 인터넷 예약을 통해 단독 관람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관람 시간은 30분 정도. 사진 촬영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바로 옆에 청와대가 있어서 그 쪽으로는 카메라 들이대면 안 된다.
보통은 해설사를 따라 쫓아가다 뒤처지기도 하는데 칠궁은 보안 담당자가 맨 뒤를 따라다니면서 주의를 주고 그런다.
└ 이 날 청와대 옆에서 어떤 아줌마가 양산을 잔뜩 치켜들자 바로 주의를 주며 양산 접으라고 하더라.
세 채의 사당이 있는데 가운데가 희빈 장씨의 사당. 천원지방에 따라 희빈 장씨의 사당만 기둥이 둥글다고 한다.
└ 사약 받고 폐위되었기에 대우가 형편없을 거라 생각해서 따로 신주가 모셔져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망가진 부분이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다. 그냥 망가진 채로 두는 쪽이 낫지 않을까? 이 쪽이 더 보기 흉하다.
11시에 예약을 하고 10시 40분쯤 무궁화 동산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으니 아저씨 한 분이 와서 안내소로 데리고 간다. 신분증 확인한 뒤 표찰 받고... 안에 화장실 없다고 해서 미리 화장실에 다녀왔다. 자꾸 단체 손님 운운하기에 뭔 소리인가 했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중년 부부 밖에 없기에 이게 웬 떡이냐 했더니만... 출발하고 나서 해설사 설명을 듣기 시작하는데 아줌마 떼들이 나타났다. 젠장!
딱히 아줌마들이 있어 손해를 보거나 한 건 아닌데, 세 명이서 조용히 해설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좋아했건만 떼로 다녀야 했고, 아줌마들 특유의 부산스러움 & 조금의 지식도 자랑하려드는 액션 때문에 타이밍을 잘못 맞췄다고 살포시 후회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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