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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해외여행 』 2019,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여행 #41 끝나지 않은 시련 ④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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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될 줄 알고도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눈 밭은 예상보다 깊었고, 거기 파묻힌 차는 오른쪽으로 잔뜩 기운 채 움직이지 못했다. 전진 기어와 후진 기어를 번갈아 넣어가며 기를 쓰고 차를 빼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나마 이틀 전에는 아예 안 움직였지만 이 날은 조금이라도 움찔움찔 했다는 게 위안(대체 어디가?)이라면 위안일까.




운전석 쪽 뒷바퀴만 길 위로 올리면 어찌 빠질 것도 같은데 그게 안 되니 환장하겠더라. 타이어 타는 냄새 때문에 잠시 차를 멈췄다. 손과 발로 눈을 치워내고 차를 움직이고. 혼자 쌩 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저 멀리에서 거대한 자동차임에 분명한 불빛이 다가왔다(이런 전개, 얼마 전에 본 적 있다. -_ㅡ;;;).


반갑기는 한데 또 28만원 달라고 할까봐 쫄았다. 다가온 차를 보니 제설 차량. 안에 탄 할아버지가 인사를 한다. 그 와중에 나도 하이~ 하고 인사를 했다.


그 차에 정신이 팔려 몰랐었는데 그 때 반대편, 그러니까 내가 가고자 하는 쪽에도 차가 한 대 멈춰 섰다. 그 차에서 아저씨 한 명이 나오더니 눈 치우는 차의 할아버지와 반갑게 인사를 하더라. 뭐야? 아는 사이야?


혼자 멍~ 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아, 악수. 뭣도 모르고 악수를 하고 하이~ 하고 인사를 했다.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였다. 그 날의 유일한 예약자가 나였는데 올 시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안 오니까 나와봤더니 이런 꼬라지였던 거지. 눈 치우는 할아버지는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와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인사하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눈을 치우고 있었다.




일단 차부터 빼자고 해서 알겠다고 하니 호스트가 제설 차량으로부터 로프를 받아 내 차에 건다. 그리고 금방 차를 빼냈다. 차를 반대 쪽으로 돌리고는 내리더니 아래 쪽에 세워두고 자기 차로 가자고 한다. 이 때 엄청 고민했다. 차 빼줘서 고맙긴 한데 그냥 다른 곳에서 자겠다고 할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신세 지고 내빼는 것 같아 차마 말하지 못했다. 일단 하자는대로 차를 몰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잠시 후 뒤에서 하이 빔을 쏘기에 봤더니 왼쪽으로 꺾어지는 길이 있다. 거기에 차를 세우고, 뒤따라 온 아저씨의 차에 캐리어를 실은 뒤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동안에도 계속 눈을 치우고 있었는데, 이건 뭐... 아까 빠졌던 곳을 통과하더라도 내 차로 갈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다. 캐터필러(무한궤도)를 장착한 차도 빠지겠다 싶더라. 적당한 곳까지 간 뒤 차에서 내리는 아저씨. 일단 따라 내렸다. 근처에 집은 전혀 안 보이는데 저 앞에 다른 차의 불빛이 보인다. 뭐지?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나 어디 으슥한 곳으로 납치되어 장기 털리는 건가?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여기서부터 차가 못 가니까 걸어가야 한단다. 캐리어를 내려 낑낑거리고 가는데, 발 밑이 푹! 푹! 빠진다. 무릎까지는 그냥 들어간다. 하... 이런 곳을... 하...


힘들어보였는지 캐리어를 맡기고 가자고 한다. 그리고는 눈 치우고 있던 제설차에 캐리어를 싣고, 계속 걷는다. 앞 쪽의 불빛은 다른 차의 헤드라이트였다. 그, 왜, 영화 같은 거 보면, 막 야트막한 강도 건너고 하는, 타이어 엄청 큰 지프 있잖아? 그런 차였다.



그러니까... 숙소는 무척이나 외딴 곳에 있는데 눈이 잔뜩 와서 온통 눈 밭이 된 거다. 그런데 숙소를 예약한 사람이 없으니 따로 안 치운 모양이지. 그러다가 내가 예약을 해서, 나 때문에 눈을 치우는 것 같더라. 일단 거대한 바퀴를 달고 있는 차로 적당히 내려온 뒤, 걸어서 좀 더 내려와 눈이 덜 쌓인 곳에서부터는 또 다른 4륜 구동 차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 거지.



그렇게 거대한 차에 올라타서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 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개가 뛰쳐 나온다. 조금 놀라긴 했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전혀 짖지 않고 꼬리를 흔드는 순한 녀석이었다. 게다가 고양이도 있더라.


방을 안내 받고 화장실과 샤워실의 위치가 어디인지 설명을 듣고 나서 입구 쪽에 선 채로 눈을 털고 있자니 아까의 눈 치우는 차가 올라왔다. 캐리어를 받아서 건네주시더니 마저 눈을 치운 뒤 차를 가지고 오겠다며 나가시는 호스트.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이게 뭔가 싶더라. 여전히 무서웠다. 일단 길부터가 어메이징 하잖아. 쉽게 올 수 없는 곳이고. 게다가 내가 거기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묶어놓고 장기 털어가도 알 사람이 없다는 거지.

게다가 어렸을 때 읽은 북유럽 동화도 생각났다. 외딴 숲을 헤매던 나그네가 갑자기 근사한 집을 발견해서 안내해주는대로 옷도 벗어 걸치고, 근사한 요리도 대접 받은 뒤 따뜻한 이불 덮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옷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낙엽 덮고 자고 있었다고. 유명한 일본 소설도 생각났다. 길 잃은 나그네가 근사한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가니, 신발 벗어라, 눈 털어라, 머리에 이거 바르고, 몸에는 이거 발라라, 뭔가 번거로운 절차가 많았지만 고급 식당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시키는대로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들이 요리 재료였다는 거, 그러니까 몸에 바른 건 향신료와 크림 같은 거였고, 뭐 그런 이야기.


방문에 잠금 장치가 없는 걸 보니 더 무서워졌다. 그냥 아까 차 빼줬을 때 돌아갈 것을.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자빠졌냐. 에휴...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급한대로 샤워부터 하고, 캐리어를 열어 옷을 갈아입었다. 잠시 후 호스트가 돌아왔다. 나는 방에서 나가지 않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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