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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해외여행 』 2019,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여행 #38 끝나지 않은 시련 ①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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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에 30만원 가까운 돈을 털어먹은 후유증은 컸다. 그냥 방구석에 처박혀서 숨이나 쉬고 있을 것이지, 쪼다 같이 기어 나가서 화를 불렀다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누워서 이불 차고 있다가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자마자 몰려드는 자괴감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한들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니 적당히 괴로워하고 넘어가자. …… ㅽ 말이 쉽지.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도로 상황을 하루 전부터 10분 간격으로 확인했다. 미바튼은 아이슬란드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1번 도로를 따라 반 시계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 돌아 다시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려면 서 쪽으로 가야 했다. 문제는, 서 쪽으로 가는 유일한 도로가 통제되고 있었다는 것.

레이캬비크는 고사하고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라는 아쿠레이리(Akureyri)까지 가는 것도 무리. 그렇다고 다시 회픈(Höfn)으로 갈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안 되는 것이, 이미 지나온 길 역시 통제된 상태였다.


빨간 색으로 표시되는 길이 모두 통제된 도로다. 동쪽으로 가는 길은 이미 통제된 상태. 즉, 못 돌아간다는 거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제설차가 투입되고, 공무원들이 염화칼슘 뿌리러 나오고, 난리일텐데 이 나라 사람들은 세상 느긋하다.



통제된 도로가 늘어나고 있었다. 하루 전 저녁에 제설로 표시되던 도로가 통제로 바뀌면서 고립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불안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통제되는 도로가 늘어나고 있었다는 거다. 아직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까지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비행기를 못 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말이라도 통하니 아둥바둥 발버둥이라도 쳐볼텐데, 말도 안 통하니 그저 물 속으로 꼬로록~ 가라앉는 수밖에 없는 상황. 최악이다.


오로라 보겠답시고 북부까지 갖은 고생을 해가며 이동했는데, 정작 오로라는 못 봤지, 견인 비용으로 30만원 가까이 털어 먹었지, 신용 카드는 맛탱이가 갔지, 멘탈 역시 가루가 됐지,...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네. 젠장.




아무튼,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숙소에서 하루를 더 묵으면서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릴까? 일단은 출발해볼까? 고민한다고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올리 만무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일단 짐을 꾸려놓고 열 시에 숙소를 나섰다. 걸어서 근처의 인포메이션 센터로 향했다. 입구를 못 찾아서 헤매다가 간신히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헤매는 걸 본 모양인지 여직원이 바로 나오더라. '블뢴뒤오스(Blönduós)까지 가고 싶은데 도로 사정이 좋지 않네요.' 라고 하니까 그렇다면서,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 보고 있었던 도로 상태 사이트를 열어 확인하더라. 일단 이동해서 통제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단다. 하긴, 무슨 수가 있겠어. 차를 타고 날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다포스 근처에 가게가 있으니 거기에서 쉬다가 통제가 풀리면 가는 게 좋겠단다. '지금 당장은 역시 불가능하겠지요?' 라고 물어보니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 그렇다고 대답해준다.


고맙다고 인사한 뒤 밖으로 나와 주유소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 빵과 음료수를 사고 식사 대용으로 먹으려고 다이제스티브도 큰 걸로 하나 샀다. 소중한 식량을 차에 던져 넣은 뒤 다시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천장을 보며 고민, 또 고민. 섯불리 길을 나섰다가 또 어제 꼴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 쉽사리 결정을 못하겠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도 시간은 간다.


체크 아웃해야 할 시간이 다가와 일단은 나가기로 했다. 열쇠를 가지고 리셉션에 가니 아무도 없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북유럽 요정처럼 참한 처자가 나와 키를 받아 준다. 저런 처자가 같이 살자고 하면 아이슬란드에 눌러 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주유소로 가서 기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출발.


출발 직전에 내가 가야 할 길을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파란 색으로 나온다. slippery, '미끄러운' 상태라는 거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법 괜찮았다. 까만 색의 아스팔트가 보이는 게 어디냐. 이 정도만 되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을 하며 30분 넘게 달렸다. 가다 보니 저 멀리에 고다포스가 보였지만 구경이고 나발이고, 그저 미바튼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고다포스를 지나니 저 앞에 차들이 멈춰 있는 게 보인다. 맨 앞에 있는 차는 비상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저기부터 통제된 상태인 모양. 그 차 뒤로 몇 대인가가 더 멈춰 있고, 후사비크(Húsavík) 쪽에서 온 차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오르막이었기에 아래 쪽에서 멈춰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완만한 경사라 차가 밀릴 것 같지는 않기에 적당히 안전 거리를 확보한 상태로 차를 멈췄다. 기다리고 있는 차가 몇 대나 되나 세어 봤더니 대략 열두 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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