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오니 참 좋다. 공기 좋고 어쩌고를 떠나서, 그냥 이유없이 좋다. ㄱㅅ에 살 때에도 땡~ 하고 퇴근하면 집에 들어가서 거의 나오지 않았으니 도시입네, 시골입네 따질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뭐, 그래도 배달 음식이라던가, 대형 마트라던가, 나름 도시 문명의 이기를 누렸더랬지.
지금 사는 동네는 근처에 극장도 없고, 쇼핑몰은 커녕 가장 큰 마트가 농협 하나로 마트 되시겠다. 음식 배달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텅~ 이 떴었는데 지금은 배달되는 가게가 가뭄에 콩나듯 보인다. 배달 비용이 7,500원이라 엄두도 못 내지만.
친한 동료들과 회식 한 번 할까 싶어도 어림없는 것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운전할 사람이 없다. 오고 가는 게 너무 불편하다. 버스 시간에 맞춰 다녀야 하는 거다. 택시 없냐고? 없다. 잘 안 다닌다.
(っ °Д °;)っ
그런 시골에 살고 있다. 두 달 되어 간다.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의 정류장에 ㅅㅇ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기에 한 번 이용해보기로 했다. 검색을 해봤더니 정류장은 81개, 아무리 짧게 잡아도 두 시간 이상 걸린단다. ㄷㄷㄷ
쉬는 날, 이대로라면 방에서 혼자 빈둥거리다가 낮술 먹고 퍼질 게 분명하다 싶어,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버스를 타고 ㅅㅇ에 다녀오기로 했다. 목표는 얼마 전 새로 생겼다는 초대형 쇼핑몰!
아침에 일어나 허기부터 채웠다. 햇반 두 개를 돌려 김 여섯 봉만으로 먹어치웠다. 뽈~ 록 나온 배를 보니 나 자신이 한심했지만, 배가 고픈 걸 어쩌겠어.
대충 씻고 어떻게 입을지 고민하다가, 두꺼운 아우터를 입으니까 반팔 티셔츠로 충분하겠다 싶어 그리 입고 집을 나섰다.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해보니 6분 22초로 나온다.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6:22, 6:21, 6:20,... 1초씩 줄어들다가 6:17이 되니 호로록~ 6:22가 되어버린다. 종점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계속 저렇게 리셋되는 모양이지.
집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1㎞ 넘게 걸어야 한다.
시골 오브 시골, 깡시골이다. 논인지 밭인지 옆에서 뭐 태우느라 연기가 모락모락 난리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질라게 추웠다. 장갑 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문 닫은 회사. 건물 놀리느니 공짜로 살라고 나한테 빌려주면 좀 좋을꼬.
정류장에 도착했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이 버스, 꽤나 유명한 녀석이었다.
한 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 버스만 타고 가는 게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도전 개념으로 시작되어 이 사람, 저 사람 따라하더니 유튜버들의 컨텐츠 소재가 되어 너도 나도 들이댔더랬지. 《 원지의 하루 》의 원지가 도전해서 성공하는 걸 본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 버스만으로 가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노선이라고 한다. ㅅㅇ에서 ㅂㅇ까지 간 뒤 ㅂㅇ에서 ㅈㅊ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단다. 노선도 길고 운행 시간도 길어서 새벽부터 움직인 사람들이 자리잡고 자기 딱 좋다더만. 어찌나 도전을 했던지, 평소 노인들이 대부분이 버스인지라 젊은 사람이 타면 부산 가냐고 물어볼 정도였단다.
카카오 버스와 전광판을 번갈아가며 보는데 어째 둘이 똑같이 안 나오고 어긋난다.
전광판은 제대로 잘 표시가 되고 있었는데 손전화로 찍으니 저렇게 나온다.
버스가 온다기에 기다리고 있는데, 정류장 근처까지 와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설마, 무정차하고 그냥 가는 건가 싶었는데 운행이 종료된 버스였다. 그럼 도착 예정을 안내하면 안 되잖아? 정류장의 전광판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안내를 하고 있었다. 버스가 휑~ 하니 지나간 이후에도 곧 도착이라며 뒷북을 치더니, 슬그머니 표시가 사라졌다.
(╯‵□′)╯︵┻━┻
한참 더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ㅂㅇ 종점에 머물러 있다고 표시되던 버스가 순간 이동을 하더니 금방 정류장 쪽으로 다가왔다. 텅 비어있을 줄 알았는데 뒤쪽 자리는 이미 한 사람씩 다 자리를 잡고 있다. 비어있는 곳은 타이어 위쪽 뿐이어서 불편하지만 거기에 엉덩이를 붙였다.
버스 타고 가는 도중에 통관 신고를 하라고 카카오 톡이 왔다. 마사미 님이 보내신 선물이 도착했는데 그걸 통관 신고하라고 하는 거다. 물품 비용은 얼마인지, 배송료는 얼마인지 써내라는데 선물 받는 입장에서 알 리가 없잖아? 게다가 뭐가 한 번에 안 되고 자꾸 번거롭게 한다. 툴툴거리며 어찌저찌 해치웠다. 주민등록번호 입력하라는 필드를 눌렀는데 한글 입력 창이 뜨는 건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자동으로 숫자 키패드 떠야 하지 않냐? 21세기에 말이지. 게다가 앞 여섯 자리 다 입력했는데도 뒷 자리로 안 넘어가는 건... 하아...
태블릿 붙잡고 영화나 볼 생각이었는데 딱히 몰입이 안 되서 그냥 멍 때리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벤츠 전시장 앞에서 차가 많이 막히더라. 먹고 살기 힘들다더니, 안 그런 모양이다.
경선 통과도 못했는데 저렇게 걸어놓고 있으면 이미 후보로 확정된 줄 알 거 아님?
전기 버스라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하는데 대형인지라 디젤이라 하더라도 초반 가속이 느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기 버스로 바뀌고 나서는 0㎞에서 20이나 30㎞까지 올리는 게 금방이니까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더라. 대신 급가속으로 여겨질 주행이 많아서 이제 버스에 티맵 켜고 앉아 점수 높이는 짓은 못하겠고나 싶더라.
운전하면서 버스나 택시 기사들 욕을 참 많이 했는데, 막상 버스에 앉아 있다 보니 오죽 답답할까 싶더라. 만날 다니는 길이니까 차선은 물론이고 신호 변경 시스템까지 싸~ 악 꿰고 있을텐데, 빌빌거리며 운전하는 걸 보면 속이 터지는 게 당연하겠지.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위치인데 앞에서 빌빌거리고 있으면 저 ×× 때문에 걸리겠네 싶어 짜증도 날 거고. 운전으로 벌어먹는 사람들이 운전을 뭣 같이 한다고 까댔는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니 열 받을만 하겠더라. 역시, 그 입장이 안 되어 보면 모르는 일이다.
버스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별 생각을 다 한다. 전국에서 가장 긴 노선이 제주의 세 시간짜리라는데, 그 녀석 타면 득도할지도 모를 일이다.
ㅅㅇ 역에 도착했다. 두 시간 하고도 십 몇 분이 더 걸린 것 같다. 징하다, 진짜. 앉아서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별밭까지 가는 방법을 알아보니 전철로 한 정거장이다. 2.4㎞ 정도? 충분히 걸을만 하겠다 싶어 걸어가려 했는데 시계를 보니 열한 시를 살~ 짝 넘어가고 있다. 근처에 있는 회전 초밥 무한 리필 가게의 점심 특선이 열한 시 부터 딱 한 시간인지라, 아침에 먹은 햇반이 여전히 배를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밥 가게로 돌진했다.
네일베에서 저 가게를 검색하면 호평 일색이다. 죄다 좋단다. 칭찬하는 글 말고는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글의 끄트머리에는 어김없이 뭐를 통해 꽁으로 먹었다고 쥐알만 하게 적어놨다. 유튜브 뒷 광고는 말이 참 많았는데 블로그에 저 따위로 협찬 받아서 개소리 지껄이는 것들은 왜 그냥 두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가격을 보는 순간 기대를 접어버렸다. 한 시간 동안 초밥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데 14,900원이다. 저렴한 회전 초밥 가게에 가서 1,000원 짜리 접시만 집어든다고 해도 열다섯 접시 정도의 가격이다. 성인 남자라면 열다섯 접시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어찌 저리 싸냐고? 그래서 흔히 생각하는 초밥의 퀄리티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ㄷㄱ의 무한 리필 가게에서 이미 경험을 했다. 그 때 하필이면 주방 바로 앞 자리로 안내를 받아 초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는데 비닐 장갑 끼고 밥을 대충 주물러 접시에 주루륵~ 깔아 놓으면 그 위에 점 찍듯 와사비 쿡쿡 찍고, 네타(초밥 생선)를 올린다. 각각 전담하는 사람이 있어서 공장처럼 돌아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초밥은? 초밥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젓가락으로 툭~ 치면 네타가 그냥 떨어져버린다. 샤리(초밥의 밥)의 모양은 일정하지 않은데다 마구 흩어지기도 하고, 진짜 엉망이다. 말 그대로 싸니까 먹는 거다. 싸니까 초밥 흉내를 낸 걸 초밥이랍시고 먹는 거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초밥 같은 초밥을 먹고 싶다면 무한 리필은 피해야 한다. 싼 맛에, 초밥 흉내낸 음식을 먹겠다고 한다면 그 때에는 뭐, 나쁘지 않다.
이번에 갔던 곳은 초밥 뿐만 아니라 떡볶이나 군만두 등 다양한 먹거리가 갖춰져 있었고, 사장님도 무척 친절했다. 음식도 맛이 없지는 않았다. ← 기대치를 바닥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평가다.
다 먹고 나오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듯 보이는 분들이 한 쪽에 모여 앉아 뭘 드시고 계시더라. 한국 분들이 아닌 것 같았다. ㄷㄱ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만들던데, ㅅㅇ의 무한 리필 초밥은 글로벌하다.
맛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가격을 생각하고 먹는다면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다만, 네일베에서 검색하면 줄줄이 나오는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기대하지 않고 가서 먹는다면 그냥저냥 괜찮습니다. |
여행하는 기분을 내겠답시고 5,500원에 무제한이라는 맥주도 같이 주문했는데 맹탕이다. 밍밍하다. 300㏄ 잔에 따라주고 두 번째부터는 직접 따라 마셔야 한다. 병 맥주 하나가 5,500원인데 한 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생맥주가 5,500원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배가 터질 것 같아 숨도 못 쉬겠다. 간신히 일어나서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네일베 지도를 보면서 별밭으로 향했다.
문 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사람들로 난리였단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안내가 되어 있다.
서민, 소상공인, 약자, 개혁, 깨끗, 정의,... 저 당과는 병아리 눈꼽만큼도 안 어울리는 단어인데.
└ 저들도 현수막 만들면서 현타 쌔~ 게 오지 않았을까 싶다.
칼바람을 뚫고 도착했다.
이 때다 싶어 냉큼 스타필드에 올라탄 화서역. ㅋ
대충 둘러보고 말았는데, 아직 입점 예정이라는 가게가 많아서 뭔가 썰렁한 분위기였다. 들어오기로 한 가게들이 제대로 들어와야 그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 게다가 쇼핑 뿐만 아니라 다른 놀거리도 많다고 들었는데 오락실 말고는 아무 것도 안 보이더만. 그나마 영풍 문고 있어서 책이랑 문구 본다고 시간을 좀 보냈다.
1층에서 레고 팝업 행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바글거려서 구경 안 하고 그냥 나왔다.
뭔가 타고 노는 것도 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인형 뽑기 몇 대 있고 체감형 게임기 몇 대 있는 게 전부인 오락실 말고는 볼 수 없었다. 대충 둘러보다가 돌아갈 때 또 두 시간 넘게 버스 타야 한다는 걸 생각해서 일찌감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또 두 시간 넘게 버스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왕복 네 시간... 고속 버스 탔으면 부산에 도착했을 시간이다. (#°Д°)
영풍문고에서 사들고 온 아톰. 포항의 예전 마스코트가 아톰이어서 유독 아톰에 집착한다.
찰리 브라운은 노란색 티셔츠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검빨 조합이라 냅다 질렀다.
소심한 대머리라는 게 나와 닮... (°ー°〃)
엄청 얇은 펜. 모눈지에 한자 쓸 때 쓰려고 샀다. 0.38㎜ 펜이 수두룩한데... 😩
검은 색 노트에 쓰려고 금색, 은색 펜도 한 자루씩 질렀다.
시내 버스만 네 시간... 어찌나 피곤하던지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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