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한 사이클도 채 돌지 못하고(환갑도 안 되서) 세상을 떴다. 기술이 점점 발달하고 있으니 멀지 않은 미래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잡스가 청바지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랄 날이 틀림없이 오겠지만... 살아 있는 잡스의 벗겨진 머리와 하얗게 샌 수염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삼성을 까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스티브 아저씨, 잘 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매킨토시라는 녀석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때였다. 친척 형이 매킨토시를 썼었다. 게임 좀 했음 싶은데 만질 줄 몰라 어리버리하고 있다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에 디스켓 집어 넣었는데 빼는 단추가 없어 당황했다. 친척 형이 아이콘을 휴지통 위로 끌고 가자 디스켓이 탁~ 하고 튀어 나왔고 그걸 보며 무척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게 전부다. 난 매킨토시를 산 적도 없고, 쓴 적도 없다. 주위에 매킨토시 쓰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파워 PC 나온다고 했을 때 관심이 좀 있긴 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고, 쌈빡한 디자인의 노트북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보고 금방 포기해버렸다.
아이팟의 대박으로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한 애플이지만 내게는 매킨토시만큼이나 인연이 없었다. 엠피삼 플레이어는 아이리버만 고집했고, 아이리버가 클릭스 이후로 맘에 드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자 삼성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지금은 소니 제품을 쓴다. 모두가 아이팟, 아이팟 할 때에도 난 아이팟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폰. 전 세계 IT 시장을 쥐고 흔들었고 새로운 세상을 불러 온 이 엄청난 기기 역시 난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아이폰의 어마어마함을 모른 채 삼성의 2G 터치 폰인 '햅틱 착' 썼다. 친구 녀석의 아이폰으로 유튜브 동영상 보면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에도 무척이나 욕심이 났다. 하지만 아이폰도, 아이패드도, 너덜너덜한 통장 덕분에 지르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소 무리해서 갤럭시 S를 샀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왜 진작 스마트 폰을 사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잔뜩 밀려 왔다. 삼성의 갤럭시가 태어난 배경에는 분명 아이폰의 커다란 성공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폰이 아니었다면 느려터진데다 개성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못한 햅틱 UI를 아직도 쓰고 있지 않을까? 삼성의 '난 좋은데? 난 좋은데? 싫다, 나쁘다 해도 삼성 꺼 쓸 거 잖아? 난 좋은데?' 정신이 여전하지 않을까?
아이폰이 아니었다면 콧대 높은 대한민국 이동통신사들이 손전화 벨소리 다운로드 수익을 포기했을까? 엠피삼 음원을 벨소리로 설정하게 해달라는 당연한 요구를 묵살하던 그들이었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 같은 거, 상상이나 했을까? 아이폰이 스마트 폰의 과거였는지, 현재인지, 미래일런지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만은 자명하다. 때문에... 난 아이폰을 써 본 적이 없고 아이팟을 써 본 적이 없으며 애플에서 나온 PC를 사용한 적이 없지만...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이순신 장군의 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전적 뒤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조선 수군이 있다. 조선 수군은 배 고프고 힘들면서도 대우가 개차반이었단다. 그래서 모두가 기피했다고 한다. 배 불리 밥 먹어 본 적 없이 고생만 뒈지게 하다가 왜놈들 조총에 맞아 고통 속에 죽어갔지만 이름 한 자 남기지 못했던 이들이 한, 둘이겠는가? 그런 그들은 세상에 자신의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못했다. 모두가 이순신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순신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건 함께 고생했던 조선 수군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군사 정권의 독재 정당화를 위한 무신 영웅화에 따라 이순신을 우러르는 사람도 숫하겠지만, 함께 싸워 간 이름 모를 이를 기리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게다.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다. 그가 애플의 모든 걸 이뤄내지는 않았을 거다. 아이폰의 어마어마한 성공 뒤에는 가혹한 환경에서 혹사 당하다가 자살하고 만 중국의 노동자들이 있고, 형편없는 서비스에 분노하는 사용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스의 죽음을 많은 이들이 애도하는 건, 애플이라는 가라앉는 배의 키를 잡아 세계 최고급 호화 여객선으로 재탄생 시킨 공로를 인정하기 때문일 게다.
Google이나 Yahoo!를 비롯해 Microsoft, DELL, Facebook 등과 관련된 글을 종종 읽게 되는데 우리와 다른 문화 속에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좀 어렵거나 지루하기도 하지만 은근 재미있는 부분도 많다. 백령도 들어오기 전에 읽었던 픽사 이야기에도 잡스가 심심찮게 등장하던데... 그 책 속의 잡스는 쪼잔하고 변덕스러우면서 괴팍한 꼰대였다. 분명 그런 측면의 잡스도 존재할테지. 아무튼, 잡스 이야기도 곧 책으로 나온다니 꼭 읽어보고 싶다.
스티브 잡스가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애플에서 뭔가를 만들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이뤄낸 여러 업적들은 분명 전 세계의 일부를 행복하게 해주었고, 편리하게 해주었으며, 즐겁게 해주었다. 혜택은 고사하고 스티브 잡스가 누군인지도 모른 채 배 곯는 사람들도 어마어마할테지만... 적어도 나는 잡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해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를 느낄만큼 혜택 입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배운 게 없어서 글 솜씨가 개판이다만... 아무튼,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능력 있는 사람을... 너무 일찍 데려갔다. Good bye Steve Jobs. I pray for the repose of his soul. Good bye Steve Jobs. I pray that he will rest in peace.
PS. 장효조 삼성 2군 감독님도... 최동원 KBO 경기 감독관님도... 스티브 잡스도... 내가 근무장에 틀어 박혀 빌빌거리다가 점심 때 잠깐 쉬러 나와 손전화로 뉴스 보다가 세상 떴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올 해... 참 많은 별들이 지상을 떠난다. 하늘에 빈 자리가 많은 모양이다.
나쁜 것들일수록 장수한다는데... 쥐 색히는 얼마나 살려나... -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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