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의 경기가 있었다. 장마가 올라와 아침부터 비가 뿌려지는 날씨. 집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포항에서도 스물여섯 명이나 올라온다 하니 안 갈 수가 없더라. 더구나 서포팅 못한 지 너무 오래됐다. ㅠ_ㅠ
축구장 가서 일 잔 해야 하니까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네×버를 통해 검색해보니 무려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걸로 나온다. ㄷㄷㄷ 빈둥거리고 놀다가 버스 타러 출발. 버스 타고 나가면서 생각해보니 지하철로 쭈욱~ 가기보다는 버스 타는 게 나을 것 같은 거다. 그래서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부천 가는 버스 앞에 서서 어떻게 가는 게 가장 나을지 다시 생각해봤다. 인천 터미널로 가면 인천선으로 부평까지 가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하지만 부평 가는 버스를 타면 바로 1호선 탈 수가 있다. 그런데 부평 가는 건 안양인가 안산인가 거치고 가니까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고... 고민하고 있던 중에 인천 가는 버스가 와서 그냥 탔다. -_ㅡ;;;
50분 걸린다고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한 시간 걸렸다. 비가 와서 10분 정도 늦어지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인천 터미널에 내렸다. 인천 넘어가는 버스 안에서 손전화로 검색해보니 터미널 맞은 편에서 21번 버스 타면 경기장까지 갈 수 있다고 나온다. 예전에는 터미널 쪽에서 버스 타라는 건지, 반대편으로 건너가서 타야 하는 건지 안 나와서 어려웠는데 요즘은 다 나오니까 참 좋다. 세상은 분명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ㅋ
아무튼... 쫄랑쫄랑 걸어 신세계 백화점 맞은 편 버스 정류장에서 21번 버스를 탔다. 적당히 가다가 안내 방송 듣고 도원 가로 공원인가 거기에서 내렸다. 내려서 버스 진행 방향으로 걸어가니 횡단보도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포항 저지 입은 사람들도 둘이나 보이더라.
숭의 아레나 올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정도 있었지만 두 번 다 못 왔다. 첫 번째에는 인천이 무관중 경기 징계 받으면서 경기장 비우고 경기해야 해서 못 갔고, 두 번째는 시간을 잘못 잡아 막히는 도로에서 시간 허비하다가 이대로라면 경기 끝날 때가 되서나 도착하겠다 싶어 중간에 차를 돌렸다. 그래서 이 날이 처음 간 거였다.
처음 본 숭의 아레나는... 멋지더라. 도원역 앞 횡단보도 건너면 ∩ 형태의 경기장에 눈에 확~ 들어온다. 오른쪽에 입장권 판매하는 곳에서 표를 샀다. 원정 입장석이 따로 있다기에 어딘가 싶어 잠시 헤맸는데... 그냥 표 사고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이 원정 입장석이었다. -ㅅ- 원정석은 N석이고 입장은 NG1 게이트 통해서 한다.
∩ 모양의 경기장. 관중석 전경이 밖에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와~ 하고 감탄할만큼 멋진 경기장이다.
경기장 들어가니 포항에서 올라온 원정 팬들과 각자 따로 온 팬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30명이나 되려나 하고 걱정하면서 갔는데 50명은 넘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 방송 타면서 유명해진 포항의 플랑 카드. 자부심이 철철 흘러 넘친다. ㅋ
전광판은 이거 하나. 특이하게 골대 뒤 쪽이 아니라 측면에 설치되어 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경기장이라 그런가 무척이나 깔끔해보였다. 다소 특이한 것이 원정 응원석이 골대 뒤가 아니라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는 것. 다른 경기장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전광판 역시 골대 뒤가 아니라 왼쪽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더라. 대개 홈 서포터들이 볼 수 있게 홈 서포터 석 맞은 편에 주 전광판이 있고 원정석 서포터가 바라보는 쪽에는 보조 전광판이 있거나 아예 없기 마련인데 숭의 아레나는 원정석 쪽 좌측면에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어 원정 서포터들이 보기에 더 좋았다. 경기 중에 보니 벤치도 홈 벤치가 원정석 쪽에 있어서 몸 푸는 선수들이 원정 서포터 코 앞에 있던데 이건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전주성도 그렇고 상암이나 수원의 경우도 원정석 매점은 문을 닫아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맥주라도 사려면 멀리까지 가야 하는데 숭의 아레나는 바로 뒤에 매점이 있어서 편했다. 매점 규모는 크지 않았고 맥주와 음료, 과자 몇 종류 정도와 쥐포, 라면이 전부였는데 어려보이는 남자 한 명이 친절하게 대해주더라. 맥주는 일일이 플라스틱 컵에 따라야 했는데 다른 경기장보다 안전 관련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인천이었다. 경기장 입장할 때 가방 검사도 일일이(꼼꼼하지는 않았다.) 했고 맥주도 컵에 다 따라야 했으며 장내 아나운서가 원정 팬은 원정석에만 있으라고 안내 방송하기도 했다. 다른 건 다른 경기장에서도 겪어 봤는데 원정 팬이 일반석에 있지 말라는 방송은 생소했다. 적잖이 거칠은 인천 사람들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사전 경고로 들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맥주 달라고 했는데 컵에 다 따라야 한다기에 하나만 사들고 자리로 갔다. 목이 말라서 금방 다 마셔버렸고 다시 매점으로 가서 이번에는 두 개 들고 왔다. 그것도 경기 시작 전에 다 마셔버렸다. -_ㅡ;;; 결국 선수 입장할 무렵 화장실부터 가게 됐다. ㅋ
소변기 셋, 대변기 셋의 작은 규모였다. 사람들 몰리면 대책 없겠다 싶더라. 다음 경기 안내 붙여놓은 꼼꼼함은 굳!
원정석 뒤 쪽의 자그마한 매점. 경기장 구조도 그렇고 참 잘 만들어놨구나~ 하고 느꼈다.
저 멀리 보이는 보조 전광판. 경기 내내 저 화면이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경기장이라 그런지 깔끔하다. 접이식 의자도 튼튼하고 깔끔하게 잘 만들어놨다.
지금까지 다녔던 그 어떤 경기장도 스틸야드만은 못했다. 내 팀의 홈 구장이라 더 아끼는 마음도 있겠지만 분명 View는 스틸야드가 甲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털어놓자면 숭의 아레나에 내줘야 할 것 같다. 정말 잘 만들어놨더라. 저 좋은 경기장을 홈으로 쓰면서 꼴찌하고 있으니 안타까웠다. SK 와이번스가 삽질하는 마당에, 이천수가 뛰면서 성적 제대로 낸다면 구름 관중이 몰릴텐데...
전용 구장의 경우 트랙이 없기 때문에 공이 나가더라도 돌아오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스틸야드의 경우 사이드 라인을 벗어난 공은 시멘트 벽 맞고 바로 돌아와버리기 때문에 경기 진행 속도가 다른 경기장에 비할 수 없을만큼 빠르다. 이 때문에 스틸야드 경험이 많지 않은 원정 팀 선수들은 상당히 힘들어 한다. 공 나가고 좀 쉬어야 하는데 이미 던지기 끝난 상황이 이어지니까. 더구나 포항은 몇 안 되는 볼보이들이 포항 유소년 팀 선수들인지라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래서 우리가 밀어부치는 상황에서는 바로 공 던져주는 반면 한 박자 쉬어갈 타이밍이다 싶으면 공을 천천히 돌려주기도 한다. 숭의 아레나는 공이 바로 되돌아온다는 점은 같았지만 볼보이들의 공 돌려주는 타이밍은 엇박이더라.
아무튼... 가기 전에 숭의 아레나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엔하위키에 재미있게 잘 설명되어 있어 링크 건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경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시작된 이후 빗방울이 뿌려지다 말다를 반복했다. 희한한 게, 포항이 계속 밀리는 분위기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역습하기 시작하더니 분위기를 가지고 왔다. 그러다 비 그치니까 또 밀리고. -ㅅ-
보통 비 올 때 사진 찍어도 비는 잘 안 나왔는데... 사진 품질을 형편없이 떨어뜨렸는데도 잘 보인다. ㅋ
경기 결과는 이미 뉴스 통해 봤겠지만 0 : 0 무승부. 다행히 전북도 득점 없이 비기고 전남은 제주에 져서 1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황선홍 감독님도 올 시즌 최악의 경기였다고 평했는데 그만큼 좋지 않은 경기였다. 패스는 번번히 끊겼고 사이드 돌파에 이은 크로스도 정확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슈팅 찬스 한 번 없었다. 강수일을 집중 마크하기로 작정한 모양인지 강수일이 공만 잡았다 하면 강력히 압박하더라. 그 와중에 몇 차례 찬스를 만들긴 했지만 슛 때려야 할 타이밍에 패스하다가 끝나고 말았다.
1위 팀과 꼴찌 팀의 대결이라서 쉽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난 번 파주에서의 경기도 그렇고, 인천만 만났다 하면 고전했던 기억도 그렇고,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거라고 예상은 했다. 경기 보고 나니 오히려 무실점으로 비긴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 후반에 신화용이 골 에어리어를 벗어나 손으로 공을 쳐내는 바람에 경고를 받았는데 우리끼리도 퇴장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할 정도였다.
서포팅 리딩하는 청년이 우리 포항 가면 새벽 네 시라고, 후회 안 남게 응원하자고 하는데 정말 대단하다 싶더라. 포항에서 온 사람들에 비하면 난 양반이니까... 열심히 응원했다. 덕분에 목 다 쉬고. ㅠ_ㅠ
경기 끝나고 인사하러 온 선수들 본 뒤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비가 제법 왔지만 경기 내내 우산 한 번도 안 쓰고 그냥 다 맞았다. 가지고 간 비 옷은 가방 덮는 데 쓰고. ㅋㅋㅋ 길 건너 도원 역으로 가서 바로 지하철 탔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앉아 갈 수 있었다. 손전화 앱으로 확인해보니 자꾸 내려서 급행으로 갈아타라는데 내리면 앉아서 못 갈 거 같아 그냥 버텼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타고 있던 게 급행이었어. ㅋㅋㅋ
간만에 신도림 가서 2호선 갈아 타고... 바글바글한 2호선에서 버티다 선릉에서 내려 또 갈아탔다. 한참 가다가 정신 차려보니 내려야 할 역이라 급하게 하차. 배가 너무 고파 지하철에서 내려 햄버거 세트 두 개 사고... 택시 타러 갔는데... 갔는데... 택시가 한 대도 없다! 이럴 수가! 원래 쭈욱~ 늘어서서 손님 기다리고 있는 곳인데!!!
멍 하니 기다리고 있는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쏴아아~ 로 바뀐다. 안 되겠다 싶어 우산 꺼내 들었다. 그렇게 기다리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위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AK 플라자 쪽에서 택시 타려는데 나중에 온 사람들이 자꾸 앞 쪽으로 가서 잘라 먹는다.
그 와중에 서울 택시만 줄기차게 오고... 버스도 끊어진 마당이라 택시 아니면 갈 방법이 없는데 택시는 안 오고... 배는 고프고... 그냥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햄버거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택시 한 대가 온다. 당연히 서울 차겠지 싶어 번호판 노려보는데 경기!!! 얼른 손 들어 세우고는 냉큼 탔다. 차 안에서 보니 맨 처음 있던 곳에서 나보다 앞 서 택시 기다리던 분, 아직도 계시더라. 음...
주말 밤에나 이런 줄 알았는데 평일에 이런 거 처음 본다 했더니 비 와서 그런 거란다. -_ㅡ;;;
집에 오니 녹초가 되어... 가방 꺼내어 짐 정리하고 우산 펴서 말리고 비 옷도 걸어서 말리고... 배 고파서 얼른 햄버거 꺼내 먹는데... 감자 튀김은 눅눅 그 자체여서 말캉말캉하고... 햄버거도 더럽게 맛없고... 역대 먹어본 KFC 햄버거 중 단연 최악이었다. 그 집 원래 안 그랬는데 뭐지... -ㅅ-
경기 보고 와서 힘들었다. 그래도 간만에 소리 질러 서포팅하고 스트레스 잘 풀었다. 이명주 빠지고 나서 기똥차게 딱딱 맞는 패스는 확실히 줄었다. 특히나 김승대가 라인 깨면서 돌파하는 장면은 한 번도 안 나온다. 안타깝다. 지금까지 해 온 꼬라지를 봐서는 이명주가 국내 복귀하더라도 포항으로는 절대 못 올 거 같으니 대체자를 빨리 찾아야 하는데 문창진은 아직인 것 같고... 패스 마스터가 빨리 나와야 김승대가 득점왕 노릴 수 있을텐데... 안타깝다. 그래도 잘 해나가리라 믿는다. 프론트가 이리도 꼴통 짓 하는데 리그 1위 달리고 있는 거 보면 대단하긴 대단하다. 늘 응원한다.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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