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가 홈에서 시드니 FC에서 0 : 1 로 졌다. 아직 야구 개막을 안 한 덕분에 스포츠 채널에서 중계를 해줬는데, 안 보려다가 옛 정을 생각해서 봤다. 전반전 딱 보고 안 봤다. 결과 보니 아니나다를까 졌네. 질 경기 졌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드니는 올 시즌 호주 자국 리그인 A 리그에서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하며 7위에 쳐져 있는 팀이다. 10개 팀 중 7위다. 거기에다 원정 온 거다. 시드니에서 인천 직항이 대략 10시간 30분 걸린다. 공항에서 수속하는 시간이랑 이것저것 따지면 열두 시간 정도 잡아도 부족하겠지. 인천에서 포항까지 또 이동해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이동 시간은 빠듯하게 잡아도 열여섯 시간 정도? 시드니가 우리보다 두 시간 늦으니까 시차는 큰 무리가 없겠지만 이동 시간 자체가 긴데다 계절이 우리와 완전히 거꾸로다. 우리가 호주 원정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처럼 걔네들도 이 쪽으로 넘어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그런 팀을 상대로, 홈에서 졌다. 그것도 형편없는 경기를 한 끝에 말이다.
지난 시즌에 비해 빠져나간 선수들이 너무 많다. 고무고무, 김승대, 김태수, 신진호, 박성호, 조찬호,... 아쉽기 그지 없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그래도 선방(?)한 셈이다. 고무고무 같은 경우는 황선홍의 황태자로 불리우며 매 경기 주전을 보장 받다시피 했지만 출장 시간에 비해 공격 포인트가 형편 없었다. 쓸데없이 공 질질 끌다가 발에 툭! 맞고 공 튕겨보내면서 뺏기는 장면을 수도 없이 봤다. 그래서 고무열 이적 소식은 내게 기쁨이었다. 잘 나갔다고 좋아했다. -ㅅ- 김승대는 아쉽기 짝이 없다. 1선에 두든, 2선에 두든, 엄청난 활약을 할 게 분명한 선수인데... 선수 본인이 남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해서 더 속 쓰린다. 신진호랑 조찬호는 수도권 팀 타령한 지 오래니까 그러려니 하고... 조찬호는 잘 됐으면 하지만 신진호는 시즌 홀랑 말아먹고 군대 가서 그저 그런 선수로 은퇴하길 바란다. 박성호는 뭐... 가을 전어네 뭐네 했지만 한물 간 지 오래지. 황선홍 감독 덕분에 생명 연장한 거고. 아무튼... 김태수와 신진호 선수 정도를 제외하면 수비보다는 공격에 치중하는 선수들이다. 달리 말하면 수비 자원은 지켰다는 거다. 리그 최고의 골키퍼인 신화용과 재계약을 마쳤고 김광석, 배슬기도 건재하다. 최재수를 놓쳤지만 박선용이 그대로 있고 무엇보다도 손준호를 지켜냈다. 미드필드 라인과 수비 라인은 지난 시즌에 비해 큰 변화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시즌 개막하면서부터 내리 수비가 무너지고 있다. 하노이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수비는 확실히 시원찮았다. 그러더니 시즌 개막전에서 광주에 내리 두 골 내주고 질질 끌려가다 광주 선수 한 명이 퇴장 당한 이후 간신히 주도권을 잡았었더랬지. 그리고 어제... 이 따위 축구하는 게 포항 맞나? 싶더라. 2002 월드컵에서 엄청난 수비를 선보인 최진철 감독이 맡은 팀의 수비 맞나? 싶더라.
많은 사람들이 포항의 축구를 짧고 정교한 패스를 기반으로 한 공격 축구로 생각한다. 파리아스 감독 이후 만들어진 포항만의 축구다. 그런데... 포항이 잘 나갈 때를 보면 항상 수비가 탄탄했다. 엄청난 골을 만들어내고 다득점에 성공하며 공격이 주목을 받았지만 그 뒤에는 항상 뚫리지 않는 수비 벽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포항을 보면 수비가 개판이다.
짧게 툭툭 끊어가는 패스를 주고 받다가 슬금슬금 올라와 공격진으로 우르르 압박하는 축구는 사라졌다. 수비에서 쓸데없이 공 돌리며 시간이나 끌다가 뻥뻥 질러대는 축구로 변해버렸다.
드리블에 딱히 재능이 없는 선수가 자꾸 공을 몰아댄다면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다. 미쳤거나 줄 데가 없어서이다. 포항 선수들이 자꾸 공 몰다가 질러대는 이유는 후자일 것이다. 가만히 보면 공격수들 움직임이 확실히 안 좋다. 그나마 라자르가 제일 나아 보이는데 2년째 한 골도 못 넣고 있다고 열심히 까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라자르를 크게 평가하는 이유는 수비를 달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피지컬이 좋아 어지간한 몸싸움에도 넘어지지 않는다. 포항 유니폼을 입고 그런 움직임을 보인 공격수는 최근에 전혀 없었다. 때문에 라자르에 포항 팬이 열광하는 거다, 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라자르가 그렇게 수비 달고 밖으로 나오면 중앙에서 누군가 공 받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런 선수가 전혀 없다. 김승대 빠지니까 공 받아가는 선수가 없는 거다. 그나마 손준호가 뛰는 경기에서는 손준호의 킬 패스가 나오면서 공격의 활로를 뚫었지만 어제 같은 경우는 손준호가 없었다.
손준호는 원래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우쳐 움직이는 선수였는데 이명주 덕분에 각성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김승대의 이적이 더 아쉽다. 패스에 눈 뜬 올 시즌에 김승대와 손준호가 발을 맞춘다면 멋진 장면이 참 많이 나올텐데 말이다. 아무튼, 손준호가 없으니 황지수와 박준희가 중앙에서 공격의 시발점이 되어야 하는데, 그냥 씨바 쫌이 되고 말았다. 박준희는 당최 보이지도 않았고 황지수의 패스는 공격 선수들 근처도 안 가더라. 공격 선수는 돌아나오는데 황지수는 계속 로빙으로 올려대고.
결국 올 시즌은 손준호 원 맨 팀이 되어버린 포항이다. 청소년 팀의 에이스인 문창진도 희한하게 포항에만 오면 아무 활약을 못 하고... 이광혁 역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포항 서포터한테 엿 먹으라며 손가락 세우던 양동현이 유효 슈팅 팡팡 날려주고 있지만... 어지간해야 골을 기대하지, 멀찌감치에서 백날 때려봐야...
발 빠른 재간둥이 심동운이 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오른쪽에서 이광혁이 같이 흔들어주고 중앙에서는 손준호와 문창진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리를 쳐줘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 된다. 강상우와 정원진 뛰는 거 봐도 답답하고... 포항 공격진은 당최 답이 없는 게 지금이다.
만약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만은... 아드리아노 데려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황선홍 감독 있었을 때 아드리아노 사왔다면... 지금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화수분 운운하며 유스 타령하는데... 유스도 유스 나름이지, 한계가 있는 거다. 외부에서 적절한 선수 수급을 해야 하는데 포항은 금전적으로 가장 큰 힘이 되는 포스코가 쥐새끼와 추종자들 때문에 너덜너덜해지면서 돈 없다고 징징거리는 거지 팀이 되었고... 선수 팔아 간신히 버티는 실정이다. 그런 팀이 성적을 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조별 예선 탈락하고 하위 스플릿 떨어지는 꼴을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몇십 년을 응원했던 팀인지라 좀 잘 하지~ 하는 맘도 있다.
얘기가 중구난방인데... 포항은 과거와 달리 패스를 기반으로 한 정교한 축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공격진의 움직임이 둔하고 공격의 시작을 맡아줄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다. 거기에다 수비도 엉망진창이라 수시로 상대에게 뒷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신화용 아니었음 몇 골을 먹어도 더 먹었다.
문제는... 선수 몇 명이 빠져 나가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주력 선수 다 빠져나간 마당에 팀 맡은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최진철 감독에게 시간을 주라 한다. 레모스 때도 그랬지. 비판하는 팬들에게 시간 운운했었다. 레모스가 어찌 되었더라?
부족한 자원으로 팀을 꾸리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최진철 감독은 포항 수비가 왜 이 모양인지 연구해봐야 할 것이다. 수비 라인은 황선홍 감독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경기력은 형편 없어졌다. 왜일까?
시즌은 길고 한, 두 경기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 포항이 공 차는 거 보면... 올 시즌은 어두워도 한~ 참 어둡다. 이렇게 해서는 하위 스플릿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유스 타령 작작하고 선수 영입하던가... 돈 없어서 그게 힘들다면 현실적으로 목표를 낮춰 잡는 게 나을 것이다. 성남으로 옮겨 탄다, 옮겨 탄다 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 포항 응원하고 있었는데.... 하노이와의 경기, 광주와의 경기, 어제 경기 보고 나니... 일찌감치 마음 접는 게 나을 것 같다. 레모스 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하긴... 파리아스 감독 이후로 줄곧 황금기였으니... 내리막 올 때도 됐다.
올 시즌 3류 양아치 팀에 큰 기대하지 말자. 딱 수준에 맞는 경기했고, 질 경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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