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경로 - 실제 경로
신주쿠 교엔에서 나와 다음으로 갈 곳은 도쿄 디즈니 랜드. 나는 테마 파크 가는 걸 나름 좋아한다.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말 그대로 현실성이 확연히 떨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에 뭔가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요란한 어트랙션 이용하면서 안 무서운 척 하는 것도 나름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 사람과 연애질을 하지 않(못?)게 되면서 테마 파크 갈 일이 없게 됐다.
오사카에 여러 번 다녀왔지만 아직까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혼자 갈만한 장소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마도 도쿄에 혼자 갔다면 디즈니 랜드 역시 일정에서 빠졌을 거다. 하지만... 일행이 있다! ㅋㅋㅋ
문 열리자마자 뛰쳐들어가서 하루종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아쉬움이 남는다던데, 도착하면 저녁이 될 것 같아 출발 전부터 저녁에만 이용할 수 있는 애프터 6 이용권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한국에서 미리 티켓을 구입하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지고 있는 신용 카드가 번번히 결제에 실패하는 바람에 현지에서 표를 사야 했다.
선배는 신주쿠 교엔에서부터 이미 배가 고프다고, 오뎅이나 핫바 같은 거 팔면 먹고 가자고 했는데 그런 걸 사먹을 만한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식당에 들르는 건 시간을 너무 뺏기는 일이라 안 될 것 같고, 길거리 음식 같은 거 팔면 그걸 먹기로 하고 계속 걸었는데 전철 타기 전까지 뭔가 먹을거리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그냥 전철에 올라탔다.
여행 전에 미리 도쿄 지역 지하철 안내를 해주는 앱을 설치해서 여행 다니며 나름 잘 써먹었는데 마이하마 역은 아무리 검색을 해도 찾지 못하더라. 나중에 시부사와, 츠쿠시노 역도 못 찾은 걸 보면 도쿄 딱 중심 지역만 안내하던가 메트로 도쿄에 포함되는 구간만 안내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도쿄 지하철 앱이 먹통이라 구글 지도 이용했는데 어렵지 않게 잘 찾아갔다.
마이하마 역에서 내리니 사람이 바글바글. 놀만큼 놀고 가는 사람과 나처럼 18시 이후에 이용하고자 가는 사람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도쿄 디즈니 랜드는 디즈니 랜드와 디즈니 씨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의 입장권으로는 둘 중 한 곳 밖에 못 들어간다. 1일 이용권을 구입한 뒤 오전에는 디즈니 랜드에 가고 오후에는 디즈니 씨에 간다는 건 불가능한 계획인 거다. 애프터 6 이용권도 마찬가지다. 어트랙션의 스릴 같은 건 디즈니 씨 쪽이 나은 편이라 했지만 퍼레이드 같은 건 디즈니 랜드 쪽이 낫다는 글이 많았기에 그닥 망설이지 않고 디즈니 랜드를 선택했다. 어차피 나는 사진이 목적이었고 선배는 사람 구경이 목적이었으니까. ㅋ
달리는 모노레일의 창문 모양도 미키 마우스 모양.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 보니 내부의 손잡이도 미키 마우스 모양이더라.
생각보다 표 구매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금방 표를 사긴 했는데... 했는데... 뭔가 엄청난 인파가 보여서 스윽~ 봤더니... 나처럼 애프터 6 입장권을 구입한 사람들이 줄 선 거였다. 아직 18시가 되지 않아 입장할 수 없었기에 미리 줄을 선 거였다. 디즈니 랜드가 자랑하는 LED 발광(?) 퍼레이드가 18시부터였으니 저기 줄 서 있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은 오픈 되자마자 미친 듯 달려 들어갈 것이 뻔했다. 퍼레이드 때문에 오긴 했지만 그렇게 와아아아~ 하고 들어갈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기에 근처의 굿즈 판매하는 곳으로 가서 어슬렁거리며 구경했다. 뭔가 조잡해보여서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입장권마다 디자인이 다른데 둘 중 뭘 하겠냐고 묻자 선배가 잽싸게 미키 마우스를 가지고 가서 나는 구피 입장권을 가졌다. 맘에 든다.
팔고 있는 상품들이 어째 조잡한 느낌이었다. 진짜 맞나? 싶을 정도로. 거기에다 딱히 구매욕을 자극하는 상품도 없었다.
선배는의 폐가 암을 향해 한 반짝 더 나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뇌에 분명히 전달했고... 뇌는 이를 받아들여 사지에 명령을 내렸다. 냉큼 흡연 구역을 찾으라고. 일본어 모른다며 어지간한 건 모두 나에게 맡기는 선배였지만 흡연 구역 찾을 때 만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간절하면 뭐든 하게 되어 있다. ㅋㅋㅋ
어딘가로 갔다 오더니 저쪽 뭐라 뭐라 하는데 모르겠다며 포기하려는 선배. 밥도 안 먹이고 쫄쫄 굶겨놨는데 담배는 피울 수 있도록 해야겠다 싶어 카메라로 멀리 있는 곳을 당겨서 보니...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곳이 있다. 저기다! 싶어 선배를 그 쪽으로 안내했다. 선배는 스마트 폰 바라보면서 담배를 여유있게 피웠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멍 때리고 앉아 있었다.
충분히 다 피울 시간인데 안 오기에 벌떡 일어나 입구 쪽을 향해 서 있었다. 곧 선배가 도착했는데... 했는데... 눈이 완전히 풀어졌다. 맛이 갔다. 배 고픈 상태에서 니코틴이 들어가자 힘겹게 붙들고 있던 정신줄을 놓아버린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건 18시는 진작에 지났기에 일단 들어갔다. 입구에서 가방 검사도 하더라. 들어가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살다 살다 그렇게 사람 많은 거 처음 봤다. 저 멀리 번쩍번쩍 퍼레이드 차량이 지나가고 있어서 서둘러 그리 향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앞을 메우고 있었다. 아무리 줌으로 요리조리 당겨본 들 다른 사람 뒤통수 안 나오게 사진 찍는 건 불가능했다. 어떻게 찍어도 다른 사람 뒤통수가 나온다는 걸 아는 순간 사진 찍는 게 싫어졌다. 그래서 퍼레이드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선배를 보니... 사람이 아니라 좀비가 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산 송장이 으으으으~ 하고 걸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
아, 큰 일이다. 흙이라도 퍼 먹어야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먹을만한 걸 사려고 하는데... 길 가의 팝콘 가게마저도 엄청나게 줄을 서야 했다. 심지어는 비싸기만 비싸고 맛은 1도 없다는 악명 높은 스파게티 가게도 줄을 서야 했다. 초절정 꽃미녀 처자가 윙크라도 날려주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선배에게 안으로 가면 먹을 게 있을 거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먹을 게 있다, 꼬시고 또 꼬셔서 안 쪽으로 들어갔다.
우리보다 먼저 뭔가 구입하고 있는 가게를 발견하고 여긴 무엇을 팔지! 하고 보니... 음료수 파는 곳이었다. 선배가 그거라도 먹어야 한다기에 타피오카 버블 망고 주스를 주문했다. 그냥 주스가 아니라 타피오카가 들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선배는 숨도 안 쉬고 음료를 빨아들였고 조금 나아지는 듯 했지만 아직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았다. 뭔가 제대로 된 씹을 거리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식당을 찾다가 츄러스 파는 곳을 발견했다.
다행히 줄도 길지 않아서 냉큼 그리로 향했고... 내 차례가 되어 메뉴를 보니 '포크 라이스'라는 녀석이 눈에 딱 들어왔다. 츄러스보다는 밥이 들어 있는 게 요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선배에게 물어보니 좋다고 한다. 그걸 두 개 시키고 나는 커피도 하나 시켜서 받아들고 바로 앞의 벤치에 앉았다. 선배에게 포크 라이스를 하나 건네준 뒤 나도 한 입 덥석 물었는데... 물었는데...
ㅆㅂ! 살다 살다 이런 거지 발싸개 같은 맛은 처음이다! 포크 라이스가 뭐냐면 돼지 고기로 밥 싼 거다. 김밥의 김 역할을 약간은 바삭하게 구운 돼지 고기가 대신하는 거고, 안에 밥이 들어있는 거지. 그런 단촐한 구성인데 ¥500이나 받아 처먹는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양도 아니고 가격도 아니다. 맛이... 맛이... 아... 글 쓰는 지금도 빡쳐오른다. ㅆㅂ
맛이... 더~~~ 럽~~~~~~ 게~~~~~~~~~ 없다!!!!!!!!!!!!
밥이 꼬들꼬들한 게 아니라 푹~ 푹~ 퍼지는 맛이라 식감도 뭣 같은데 고기는 어찌나 짜던지. 이딴 걸 한국 돈으로 5,000원 받고 파는 건 그야말로 범죄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추장 푼 물에 지우개 넣고 잔뜩 졸인 뒤 초절정 쫄깃 떡볶이라 해도 이것보다는 양심적일 거라 생각했다. 배고픔에 눈이 돌아간 선배도 한 입 딱 베어물더니 날 바라보는 표정에 원망이 가득했다. 주스 먹이기 전에 먹였다면 덜 원망하면서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커피를 같이 주문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배가 고파서, 그리고 돈이 아까워서 꾸역꾸역 먹긴 했지만 커피로 입을 헹궈야 했다. 선배는 커피 마실 거냐고 했을 때 안 마신다고 하더니 결국 주스 다 마신 빈 컵에 내 커피 덜어가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선배와 나는 우리만 죽을 수 없다 생각했고, 블로그에 말도 못하게 맛있으니 꼭 사먹으라고 글 쓰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쓰려고보니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혹시라도 포크 라이스라는 ¥500 짜리 괴음식물을 맛있게 드신 분은 댓글 부탁드린다. 학교 운동장에서 퍼 온 흙에 소금 뿌려서 줘도 맛있다고 할 게 분명하다.
거지 발싸개 같은 걸 돈 주고 사먹었지만 그 덕분에 선배의 허기는 조금 가셨다. 사람들이 비명을 꽥꽥 질러대는 어트랙션은 엄청난 대기 시간을 필요로 했기에 타는 건 포기했고... 그저 눈요기 할 게 없나 두리번거렸지만 캐릭터 탈 뒤집어 쓴 냥반들도 안 보이고 볼 게 없다. 그래서 할 일 없이 어슬렁거렸다. 사실은 그냥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 돈으로 40,000원이 넘는 본전 생각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가 디즈니 성 근처를 지나는데 사람들이 엄청 앉아 있더라. 뭔가 하는 모양이다~ 라 생각은 했지만 거기 끼고 싶지 않았다. 해가 지면서 추워지기도 했고 맨 바닥에 궁둥이 붙이고 앉아 쇼를 본 뒤 먼 훗날 치질에 걸려 후회하느니 안 보고 만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전 생각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뭔가 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불꽃 놀이가 시작되었다.
적당한 지점에서 다른 사람들 뒤통수 안 나오게 몇 컷 찍고... 선배한테 가는 게 어떻겠냐는 의사를 살포시 내비치니 냅다 가자고 한다. 마음이 통했다. 나이 ×× 넘은 아저씨 둘에게 디즈니 랜드는 무리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ㅅ-
어트랙션 타는 건 출발 전부터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구경할 게 많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무척이나 어두워서 사진 찍기에도 안 좋고 딱히 구경할만한 것도 없었다. 거기에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다 보니 사람 구경이고 뭐고 지쳐서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
마이하마 역으로 돌아가 전철을 탔다. 지쳐서 걷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결국 버스를 이용했다. 숙소 근처의 편의점에 들러 술과 먹을 것을 샀고, 숙소에서 짐과 수건을 받아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후다닥 짐을 정리한 뒤 샤워를 마치고 1층에서 선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는 3일 내내 저녁에는 둘이서 간단히 술을 한 잔 했는데 선배는 이 시간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 나 역시 편안하고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이 날 하루 동안 걸은 거리는 핏빗 알타가 측정한 바로는 “18.27㎞”. ㅋㅋㅋ 3,780 칼로리를 소모했고 26,318 걸음 걸은 걸로 나온다. 이렇게 한 달만 여행하면 홀쭉이가 될 수 있겠는데. 저녁마다 맥주 마셔대서 안 되려나? 아무튼... 첫 날의 강행군이 끝났다. 첫 날은 출발 전에 계획한대로 다 움직였다. 신주쿠 교엔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본 게 아쉽지만.
P.S. 22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아들내미와 오사카 간다는 FireBall Friends 중 한 명인 효섭 군. 미리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네.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안 가봐서 확신할 수 없네만, 도쿄 디즈니 랜드에 다녀온 뒤 하는 말이니 조금은 믿어도 될걸세. 아들내미한테 지랄 지랄 개지랄 하고 성 버럭버럭 내면서 지친 걸레 꼴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할 거다, 임마. ㅋㅋㅋ 어린이 날의 에버랜드나 방학 시즌 주말의 오션월드는 양반이었어...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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