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고 나서부터 원정 경기 보러 다녔다. 벌써 10년이 넘었네. 나름의 원칙은 대전 위 쪽. 대전 위로는 웬만하면 쫓아다니자는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2016 시즌에
최진철부임하면서부터 직관이고 나발이고 내던져버렸고, 최순호 체제의 2017, 2018 시즌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올 시즌 같은 경우 지금까지 세 번 직관했네. 수원, 북패, 강원.
인천 원정 경기 있다기에 보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길 것 같지도 않았고, 감독 바뀌기 전에는 그닥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어찌할까 고민이 됐다. 그러다가 일본 가서 공부하기 전에 국내 여행 부지런히 다니자 싶어 일단 가기로.
일찌감치 출발해서 낮에는 땡볕 아래 인천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숙소에서 씻은 뒤 숭의 아레나로 향했다.
심적으로는 스틸야드가 최고라 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 숭의 아레나가 다녀본 모든 경기장 중 최고다. 도원 역 바로 코 앞이라 대중 교통 이용한 접근이 말도 못하게 좋다. 대부분의 경기장이 외진 곳에 있어서 대중 교통으로 다니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생각한다면 굉장한 장점. 거기에다 시야도 좋다. 스틸야드 못지 않게 코 앞에서 뛰는 느낌. 그 덕분에 선수들이 골 넣은 뒤 서포터 바로 앞까지 뛰어와서 스킨쉽을 나누는 것도 가능할 정도다. CU 편의점도 있어서 원정석 매점을 푸대접하는 다른 경기장에 비교가 되고. 아무튼, 오랜만에 숭의 아레나 왔는데 원정석 위치가 바뀌지 않아서 다행이다.
경기 전 몸 푸는 선수들. 선수단에 변화가 워낙 커서 한동안 보지 않았다면 아는 선수가 거의 없어서 당황스러울 거다.
아시안 게임 대표에서 탈락한 강현무 선수. 예선을 하드 캐리했는데. 포항 선수가 그런 게 아니라 송범근보다 강현무가 낫다.
이 날도 강현무 선수가 골과 다름 없는 걸 두 번이나 막아냈다. 이건 먹는다 싶은 걸 막아내더라. 포항의 보물이다.
몸 풀고 있는 교체 선수들. 이근호 선수도 보이고, 이광혁, 배슬기 선수의 모습도 보인다.
이 날 중계는 SPOTV+에서 했다. 중계 자체가 감사하지만 주구장창 풀 샷 잡아대니 TV로 보면 현장의 박진감 같은 건 1도 못 느낀다.
포항의 에이스 김승대. 최고 수준의 라인 브레이킹이 가능한 이 선수에게 패스 찔러줄 선수가 없어서 제대로 활용을 못한다.
포항 팬들에게 무척 욕 먹고 있는 배슬기 선수지만, 개인적으로는 파이팅도 좋고 개그 센스도 맘에 들어 좋아한다.
상대인 인천 선수들. 멤버 구성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매 시즌마다 강등권에서 퍼덕거리고 있으니...
믿음직한 우리 주장, 김광석 선수. 내가 일 낼 줄 알았다. ㅋㅋㅋ
주말이라 포항에서 서포터들이 많이 올라왔다. 인천보다 포항 팬이 더 많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넉넉찮은 살림에 이래저래 고생이 많을 김기동 코치님. 힘든지 많이 늙었다. ㅠ_ㅠ
이 날 경기를 맡은 심판들. 포항 입장에서 아쉬운 판정이 몇 차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한 경기 진행이었다.
코치가 필드에 나가 선수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할 동안,
감독은 벤치에서 기도하거나 아쉬워하거나.
결과는 이미 알려졌다시피 포항의 승리. 후반에만 세 골이 터졌다.
전반은 지루했다. 어쩌다 포항이 이렇게 됐나 싶고... 무엇보다 패스가 엉망진창인 게, 전방으로 향하는 전진 패스가 중간에 끊기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다. 후방에서 돌리는 패스조차 제대로 연결이 안 된다. 이건 아닌데 싶더라.
어김없이 후반에 이광혁 투입. 아예 패턴이 되어 버렸다. 내 생각인데, 전반은 무실점으로 버텨내고 후반에 이광혁 투입해서 측면 무너뜨리는 걸로 승부를 보는 게 유일한 작전 아닌가 싶다. 가용할 수 있는 선수층이 두껍지 않으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속 터진다. 이게 무슨 포항 축구야. 특히나 김승대 선수 제대로 활용 못하는 게 너무 답답하다. 이 날도 김승대가 오프사이드 라인에 걸쳐 있다가 안으로 탁! 발 내딛으며 들어가는 장면이 숫하게 나왔는데 단 한. 번. 도. 제 타이밍에 찔러들어가는 패스가 없었다. 김승대가 아무리 라인을 잘 깬다 한들, 제 때 패스 찔러주는 선수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후방에서 찔러주는 패스 받아 순식간에 골키퍼와 1 : 1 상황 만드는 김승대가 있다지만 전진 패스 자체가 없으니 중앙 공격은 매 번 막힌다. 그러니 사이드만 파게 되고... 사이드 막히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거다. 강상우 오버 래핑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이 날 강상우는 문선민 막느라 바빠 공격 가담이 다소 저조했다.
중앙 공격도 안 되는데 사이드도 막히면 중거리 슛 날려서 수비 끌어내고 해야 하는데 다소 먼 거리에서 슛 날려 골대 안 쪽으로 보낼 수 있는 선수가 강상우 뿐이니... 에휴...
이상기 선수가 후반에 교체로 들어왔는데 들어오자마자 실수 남발. 대체 뭐하는 거야? 하고 짜증이 확! 날 때 골을 넣어버렸다. 욕 하려고 야, 이... 하는데 득점! -ㅅ- 누가 봐도 나가는 공이다 싶었는데 이근호가 투지있게 달려들어 살려낸 게 골로 이어졌다. 이근호, 이상기, 두 선수 모두 맘에 안 든다고 여러 번 씹었던 선수들인데... 미안합니다. ㅠ_ㅠ
그러나... 경기력 자체는 확실히 형편없다. 인천에서 빠른 선수들 투입하니 수비 라인이 엉망진창으로 깨지기 시작. 상대 선수가 한~ 참을 가운데로 치고 들어가는데도 달려드는 수비가 아무도 없다. 죄다 물러나면서 수비하려고 하니 공간이 나온다. 중거리 슛 때려도 되고 침투하는 동료에게 패스하는 데도 여유가 있는 상황. 왜 저래?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더니... 급기야 90분에 실점.
졌을 경우에만 들려고 했던 황선홍 머플러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이광혁의 크로스를 김광석이 헤더, 결승 골이 터졌다. 환장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골.
결과는 포항의 승리였지만... 이런 축구 보려고 피 같은 시간, 돈 들여가며 경기장 오는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에서 이기고 상대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선수들.
말도 못하게 더운 날씨였는데 선수들 정말 많이 뛰었다.
정원진 내보내고 데리고 왔다는 이유로 욕 먹은 이석현 선수. 개인적으로는 무척 잘하는 선수다 싶었는데 북패 가서 영 활약이 없더라니, 포항 와서 잘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날 선발로 나왔는데 의욕적으로 뛰는 게 보이더라. 부상없이 자기 실력만 제대로 보인다면 충분히 활약할 수 있을 거다. 다만... 정원진 보낸 건 확실히 에러. 경남 있을 때 엄청난 활약을 했었는데... 그러고보면 진짜 김종부 감독이 명장인 모양이다.
김지민 선수도 이 날 선발로 나왔다. 후반기에 영입한 이석현, 김지민을 바로 선발로 내놓아야 할 정도로 선수 구성이 약한 걸까? 그렇게 단 기간에 팀 플레이가 완성된다는 건가? 아무튼... 7번 달고 뛴 김지민 선수도 후반에 쥐 나서 쓰러질 정도로 많이 뛰었다. 두 선수 모두, 능력이 있는 선수니까 분명히 잘 될 거라 생각한다. 다만... 지금처럼 롱 볼이나 띄워대는 축구에서는 메시가 와도 헛 방이다.
포항다운 축구하던 몇 년 전이, 화려한 전성기를 이끌던 황선홍 감독님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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