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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뽀오츠 』/『 축  구 』

욕 먹는 김민재를 보는 것이 불편하다.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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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당신이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빡쌔게 공부해서 소위 좋은 대학에 들어간 뒤 졸업했다고 치자. 바늘 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들다는 취업문을 열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전자에 들어갔다. 가족들 모두 기뻐하고, 부모님은 주위에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다. 친구들의 시기 어린 질투의 시선도 느껴진다.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 하지만, 막상 다녀보니 밖에서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휴가도 맘대로 못 쓰고, 막내이다보니 눈치도 봐야하고, 알려진 것보다 월급도 그닥 많지 않고... 그래도 국내 최고 수준의 회사이니 다른 곳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 했다.
  • 그런데 헤드 헌터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갓 취직한 사회 초년생의 어디를 보고 연락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회사를 옮기지 않겠냐고 묻는다. 나를 원하는 회사는 두 군데. 한 곳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자리한 구×. 연봉은 지금 받는 수준의 1.5배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선진국의 최고 수준 회사라는 것이 장점이다. 영어도 제대로 배울 수 있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다른 한 곳은 중국의 샤×미. 연봉은 지금 받는 것의 10배. 기업 수준은 지금 다니는 삼×전자나 구×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연봉이 엄청나다.
  • 샤×미 쪽에서는 적극적으로 오라고 한다. 날마다 헤드 헌터를 통해 연락이 온다. 반면 구×에서는 왔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하긴 하는데 좀 뜨뜨 미지근하다.
  • 한참을 고민하다가 샤×미에 가기로 했다. 40세만 되면 정리 해고네 뭐네 하는 바람에 평생 직장의 개념 자체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젊을 때 부지런히 벌어야 노후 자금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 주위에서 말들이 많다.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팽개치고 돈만 쫓아 간다면서 뒤에서 까는 거다. 돈만 밝히는 벌레네 뭐네 하는 심한 욕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



  • 이해할 수가 없다. 구×에 간다고 내가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삼×전자에서 다시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해? 큰 기대를 안고 미국으로 건너 갔는데 정작 제대로 된 일은 주지도 않고 잡스런 일만 시켜서 시간만 까먹고 있게 된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보고 결정한 건데, 남 얘기라고 그저 까대는 거다.


  • 어때? 제목에 써놨지만, 축구 선수 김민재를 보고 생각나는대로 끄적거려 봤다. 김민재가 유럽으로 간다고 하자. 성공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먹어가며 고생해야 한다. 그 고생을 이겨내면 EPL에 속한 팀의 주전 선수가 된다는 보장이라도 있으면 꾸역꾸역 참아내겠는데, 그런 보장도 없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다. 그런데 내가 그 고생을 하는 동안, '발전을 위해 도전하라!' 고 부추기던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아무 때나 먹어대며 편하게 잘 산다. 고생은 내가 하고.
  • 갖은 고생 끝에 결국 자리 잡는 데 실패해서 다시 국내로 돌아왔다고 치자. 실패했네 어쩌네 하며 비아냥댈 거 아닌가? 아니라고? 김두현한테 어떻게 했더라? 이동국한테는? 이천수한테는? 안 봐도 뻔하다. 어린 놈이 돈독 올랐다고 막말하면서 도전 어쩌고 하는 것들은 과연 무엇을 포기하고 어떤 도전을 하고 있는가? 이탈리아에서 고생한 안정환을 보라고? 중국에서 오퍼 들어왔는데 거절하고 유럽에 남은 구자철을 보라고? 그 선수들이 대단한 거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욕 먹을 일이 아닌 거다. 100m를 11초에 뛰는 사람이 대단한 거지, 15초에 뛰는 내가 잘못된 게 아니잖아? 잘 하는 사람을 칭찬하면 될 것이지, 잘하는 사람을 기준점으로 삼아 거기 못 미치는 사람에게 욕을 한다고? 네×버에서 댓글로 김민재 까는 것들은 죄다 서울대 나와서 삼×전자, 현×자동차에서 연봉 수억 씩 받아가며 일하고 있나? 그러면서 댓글 처달고 있는 건가?



  • 제발 남 일이라고 함부로 짖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럽에 가서 빅 리그의 중앙 수비수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자기 바람대로 행동하지 않은 선수에게 막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김민재가 중국에서 주는 큰 돈을 포기하고 유럽에 건너 갔다가 제대로 자리도 못 잡고 부상을 입은 채 돌아왔다고 치자. 부상 때문에 국내에서도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다가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고 치자. 도전하라고 떠든 것들이 김민재한테 밥이라도 살 거야? 사업한다고 하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가서 매상 올려줄 거야?
  • 어려도 한참 어린 선수다. 중국 가서 잘해가지고 더 큰 리그로 갈 수도 있는 거지, 왜 못 까서 안달이냐고. 그래, 니들 말마따나 중국이나 중동 간 뒤 기량이 발전해서 유럽 간 선수가 없다. 그건 김민재가 걱정해야 할 일이지, 왜 유럽 안 간다고 까느냐는 거다. 중국 가서 기량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기량이 떨어지면 당연히 대표 팀 선발도 안 될 거다. 그렇잖아도 욕 처먹는 협회와 감독인데, 뭐가 아쉬워서 못하는 선수를 뽑겠냐고.
  • 다치지 말고 잘하라고 응원은 못해줄 망정, 김민짜이, 김민짜이 해가면서 까기 바쁜 것들 보면 참... 네×버가 일베 2중대라는 건 익히 알고 있다만, 댓글 볼 때마다 그저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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