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우라와 레즈를 꺾고 '후지 제록스 슈퍼 컵 2019' 에서 우승했단다. 어느 팀이 우승하던 별 관심이 없는데 기사 말미의 관중 수가 눈길을 끌었다. 공식 집계된 관중이 52,587명이란다. 2월의 토요일 13시 35분 경기를 보러 간 관중이 저렇다는 거다. 놀라운 일일까? K 리그 기준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J 리그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지난 해 세레소와 감바의 오사카 더비 보러 갔다가 엄청 놀랐었다. 그냥 리그 경기일 뿐인데 거의 만석이었던 거다.
K 리그에서는 5만 명 넘는 게 가능할까? 어림도 없다. 북패랑 수원이 나란히 1, 2위 하고 있는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 팀이 갈린다는 상황(2013년의 포항과 자판기처럼)이 되면 66,704석이 꽉 찰랑가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5만 명 넘긴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아무리 K 리그 재밌다고 떠들어봐야, 그건 내 생각이지. 친구 따라 처음 경기장 갔던 사람이 정말 재밌다면서 또 다른 사람 데려 가고 그런 게 반복되고 해야 관중이 꾸준히 늘텐데 그런 게 전혀 없잖아. 더구나 우리나라의 축구 경기장은 접근성도 형편 없어서 한 번 가려면 큰 맘 먹고 가야 한다.
전북의 홈 경기장인 전주 월드컵 경기장. 전주로 들어가는 입구인 호남 제일문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철이 없는 동네라서 이용할 수 있는 대중 교통은 버스 뿐인데, 덕진 쪽이 됐든, 한옥 마을 쪽이 됐든, 버스로 가려면 불편하다. 주차 공간도 턱 없이 부족해서 경기 있는 날은 주변이 온통 차, 차, 차. ★★☆☆☆ (익산에서 전주 가는 버스, 적어도 경기 있는 날만이라도 호남 제일문 앞에 한 번 세워줘라. 에휴.)
경남의 홈 경기장인 창원 축구 센터는 아직 못 가봤다.
울산 문수 경기장은 하도 예전에 한 번 가본 게 전부라서 가물가물하고.
포항 스틸야드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접근성만 놓고 보면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형산강 똥다리를 건너가야 하는데, 경기 있는 날은 작살 난다. 택시 타면 길바닥에 돈 버려야 한다. 공단 쪽 길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 쪽으로 돌아가는 게 훨씬 빠르다. 하지만 주차 공간이 한~ 참 부족하다. 거기에다 먹거리도 별로. ★★☆☆☆
남패의 제주 월드컵 경기장 역시 접근성이 좋지 않다. 일단 제주도에 있어서 축구 보러 제주까지 가는 게 쉽지 않은데다, 제주 사는 사람이라 해도 제주시에서 서귀포 쪽으로 넘어 가는 게 불편하다. 경기 끝나고 쉽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다. 나는 외지인이니까 주로 경기장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 잡아서 경기 보곤 했는데,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라고 해도 거리가 가깝거나 하지는 않다. 여기도 ★★☆☆☆
수원의 홈, 수원 월드컵 경기장도 접근성 꽝. 지하철 다니는 동네인데도 월드컵 경기장은 지하철로 못 간다. 버스 타야 된다. 경기 끝나고 나오면?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로 미어 터진다. 한 번에 원하는 버스 타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생각해보자. 태어나서 처음 축구 경기장에 갔다. 장내 아나운서가 마이크로 쩌렁쩌렁하게 응원 유도하지, 서포터들이 왁왁거리며 단체로 노래 부르지, 사방에 파란 유니폼 입은 사람들 돌아다니지, 신기하거든. 거기에다 치킨이랑 맥주 먹으면서 경기 보면 상당히 재밌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후 집에 가려고 보니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카카오 택시로 택시 잡으려 해보지만 어림도 없어. 그렇다고 경기장 주변에 시간 보낼만한 시설이나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야. 두 시간 동안 술 마시고 벌떡! 벌떡! 일어나느라 체력이 쪼옥~ 빠졌는데, 집까지 가려다 얼마 안 남은 체력이 싹 다 빠져. 그럼 다음에 가자고 했을 때 냉큼 갈까? 아무리 축구가 재밌고 어쩌고 해도 안 갈 걸. 끝나고 돌아올 때 고생한 것 밖에 생각이 안 나니까.
나는 성남 살 때 수원으로 축구 보러 몇 번 갔었는데, 일반 버스 타면 두 시간을 빙~ 빙~ 돌아서 간다. 단 시간에 가려면 환승을 수도 없이 해야 한다. 한여름 아스팔트 위의 얼음 꼴이 되는 거다. 수원 얘기하다 글이 길어졌는데, 수원 월드컵 경기장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곳 대부분이 이 모양이다. ★★☆☆☆
대구 월드컵 경기장도 접근성 개판. 전철로 못 간다. 버스로 가야 한다. 여기도 개고생이다. 그나마 여기는 주차난은 조금 덜 하다. 그게 주차 공간이 넉넉해서 그런 게 아니라 팀의 인기가 없어서 그렇다는 게 문제지만. 새로 지은 경기장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아무튼, 대구 월드컵 경기장은 ★★☆☆☆
강원의 홈인 춘천 송암 스포츠 타운. 여기도 접근성 개판이다. 봐라. 지금까지 여섯 팀 얘기했는데, '경기장 가기 진짜 편하다' 고 할 수 있는 경기장이 전~ 혀 없다. 춘천이 그닥 큰 도시가 아니니까 택시 타도 괜찮긴 한데, 갈 때 얘기지. 경기 끝나고 올 때에는 택시도 안 잡힌다. 한참 서 있어야 한다. 그나마 경기장 앞에 푸드 트럭 여러 종류가 있어서 다양한 먹거리 있는 건 좋더라만은... 여기는 웃긴 게 경기장 내에 매점이 없다. 그래서 경기 보다가 맥주 더 사야겠다 싶으면 표 들고 나가서 경기장 밖의 매점을 이용해야 한다. 그 와중에 아르바이트하는 처자들은 어찌나 교육을 철저히 받았는지, 다른 경기장처럼 봐주고 그런 거 없다. 무조건 캔 뚜껑 따서 종이 컵에 따른 뒤 가지고 가야 한다. 엄~ 청 불편하긴 한데, 교육 받은대로 잘하고 있다 생각한다. 술 처먹고 뭐 집어던지는 벌레 ㅅㄲ들 때문에 여럿이 고생한다. 아무튼, 여기도 ★★☆☆☆ 그나마 춘천이라 별 두 개 줬다. 예전 스키 점프대 경기장은 별 하나도 못 준다.
인천. 숭의 아레나. 현재까지 소개한 모든 경기장 중 최고의 접근성을 갖추고 있다. 도원 역에서 내리면 바로 코 앞이다. 거기에다 전용 경기장이라서 바로 앞에서 선수들이 뛰는 걸 볼 수 있다. 매점도 훌륭하고 화장실도 깔끔하다. 인천은 경기장도 좋고, 이래저래 참 훌륭한데 성적이 개판이라... 올 시즌은 좀 해볼만 할랑가 싶은데, 잘해서 성적 좀 팍팍 내줬음 좋겠다. 아무튼, 숭의 아레나의 접근성은 ★★★★★
상주 시민 운동장도 가본 적이 없으니 뭐라 못 하겠고.
북패 홈 구장인 서울 월드컵 경기장도 접근성은 나쁘지 않다. 지하철로 가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여긴 홈플러스랑 붙어 있어서 다양한 먹거리를 사들고 갈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경기 끝나고 홍대 쪽으로 가서 고주망태가 될 수도 있다. 인구 1,000만 명의 최대 도시 팀 치고는 관중 동원이 영 엉망이지만... 서울이 워낙 크니까. 개인적으로는 서울 연고로 하는 팀이 더 생겨야 한다고 본다. 이랜드가 진작에 올라왔음 재밌게 됐을텐데 만날 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아무튼, 상암의 월드컵 경기장은 ★★★★☆
전남의 홈인 광양 월드컵 경기장도 아~ 주 예전에 한 번 갔던 게 전부라서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렇게 지난 시즌 1부 리그에 속해 있던 팀의 홈 경기장에 대해 끄적거려 봤다. 끝내기 전에 인천 만큼은 아니지만 인천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있는 경기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남의 탄 필드다. 여긴 야탑 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야탑 역에서 경기장 가다 보면 탄천이 나오는데 낮에도, 밤에도, 정말 멋지다. 경기장 시설은 그저 그렇다. 별 볼 일 없다. 하지만 성남 경기는 보고 나서 조금만 걸어 야탑으로 나오면 먹고 마시고 싸고 자는 게 가능하다. 인천은? 도원 역 말고는 별 볼 일 없다. 지하철이 됐든, 버스가 됐든, 이동해야 한다. 성남은 경기장에서 마신 술 좀 깰 겸 천천히 걷다 보면 야탑 먹자 거리다. 지하철 한 정거장만 가면 모텔 수십 개가 모여 있는 모란이다. 이렇게 접근성 좋고 주변에 다른 놀거리 많은 경기장도 드물다. 2부로 떨어졌다가 간신히 올라왔는데, 부디 성적 좀 냈음 좋겠다. 성남 인구도 은근히 많은데, 수원이랑 라이벌 구도 만들어서 매 경기 미어터지는 광경 좀 만들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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