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베트남에서 싸우고 오셨다. 해병대에 들어가는 것은 자신이 선택했겠지만 전쟁은 결코 당신의 의지가 아니었을 거다. 국가의 결정으로 머나먼 곳에서 동료가 죽는 걸 보고 갖은 고생을 한 뒤 돌아오셨다.
내가 어릴 때, 거기에서 아홉 명을 죽였다는 얘기도 하셨었고, 허벅지의 피탄 흉터를 보여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좀처럼 참전 경험담을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현충원 안장이 거부됐다. 운전 중 과속과 신호 위반으로 벌금이 여러 차례 나왔는데 그걸 못 내서 노역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에 강간인가 강도인가, 중범죄자가 현충원에 안장됐다는 기사가 나와 이슈가 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심의가 강화되었다고 한다.
이런 결정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서운한 감정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대한민국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한 공보다는, 도로교통법을 어기고 벌금을 납부하지 않은 과를 크게 판단한 것이니까. 공과 과는 모두 사실이고 그것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판단했을테니까.
그런데 백선엽인가 뭔가 하는 작자의 현충원 안장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한다. 나는 당연히 안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전쟁에서의 공이 엄청나다고 하지만 저 사람에게는 간도 특설대에 복무했다는 과가 있다. 월남전 참전과 도로교통법 위반에서 도로교통법 위반의 손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도 특설대의 손을 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알려진 수많은 독립 유공자 외에도 이름 없이 죽어간, 또는 고문으로 한참을 고생한 많은 이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거다. 물론 한국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고. 만약 백선엽이 독립군을 덜 잡았다면, 그래서 우리의 독립이 더 빨라졌다면? 이른 독립의 영향으로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혹은 분단이 되었더라도 전쟁이 없었다면? 역사에 가정은 필요하지 않다지만 만약 저런 가정이 현실이 된다면 백선엽은 독립군 때려잡은 일제 앞잡이 밖에 안 되는 거다.
모~ 든 사람들이 착한 일만 하고 산다거나, 나쁜 일만 하고 사는 건 아닐 게다. 누구나 공이 있고 과가 있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고 백선엽이 그랬다. 베트남에서 월맹군 아홉 명 죽인 것과 한국전에서 엄청난 공적을 세운 것을 어떻게 비교하냐고?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 때려 잡은 것과 도로 교통법 위반을 비교하는 것은 타당한가?
백선엽이 아니었다면 이 나라는 이미 북한의 손에 넘어가 적화 통일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백선엽이 간도 특설대에서 몹쓸 짓을 하지 않아서 우리의 독립이 앞당겨졌다면?' 이라는 가정은 왜 무시 당해야 하는가?
공과 과를 판단하여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식적으로 현충원 안장은 거부되어야 한다. 그게 당연하다. 이걸 가지고 반일 정책의 정부 탓이라는 개소리하는 것들, 부관참시 운운하는 것들이야 말로 21세기의 매국노다.
현충원에는 아직까지도 일제에 부역한 앞잡이들이 자빠져 있다. 다 파내야 한다. 모든 혜택을 말소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혜택을 소급해서 배상 받을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충원에 친일 부역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수치다.
그 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다며 묻으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범죄나 매국은 용서받아 마땅한가? 어쩔 수 없는 범죄나 매국을 거부한 이들은 뭐가 되는 거지?
아버지는 광주의 시립 공원 묘지 한 켠에 자리잡고 계신다. 동생이라는 ㄴ이 광주에 살아서 자주 찾아갈 거라 생각하고 거기에 모신 건데, 염병할 ㄴ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딱 한 번 찾아간 게 전부더라.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가 하얗게 빛바랜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뒤늦게 불효했음을 후회하게 된다. 만약 아버지가 현충원에 들어가셨다면, 적어도 하얀 색이 되어버린 빨간 색 플라스틱 꽃으로 위로 받는 일은 없었을 게다. 아버지의 현충원 안장을 거부했던 이들이라면,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에 콧방귀를 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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