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하영웅전설 』의 등장 인물 중에 앤드류 포크라는 녀석이 있다. 양 웬리가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이제르론 요새를 희생 없이 뺏어낸 후 당분간은 전쟁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앤드류 포크라는 녀석이 느닷없이 이제르론 요새를 기점으로 침공 계획을 세운다. 제국군을 이끄는 라인하르트는 후방으로 물러나고, 점령지를 넓혀가던 동맹군은 물자 부족으로 곤란을 겪는다. 점령지에 줄 물자는 고사하고 군인들에게 줄 것조차 모자라는 상황이 온 거다.
일찌기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현장 지휘관들이 대책을 요구했지만 앤드류 포크는 지휘관들이 무능하다며 남 탓을 한다. 결국 뷰코크 중장이 작정하고 갈궈버리자 갑자기 쓰러져버리고, 이내 화상 회의 화면에 등장한 군의관은 자기가 하자는대로 안 하고,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발작해버리는 전환 장애라고 설명한다. 흔히 히스테리라 부르는 증상이다.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4년만에 중령을 단 뒤 스물여섯에 준장 계급을 단 사람이 저렇게 무능할 수 있겠냐 싶겠지만 의외로 저 따위 인사가 많다, 군에는. 무능한 것들이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스물여섯에 장군이 되는 게 말이 되냐는 사람도 있던데 전시니까, 뭐. 우리나라도 한국 전쟁 때 장군들 나이가 한~ 참 젊었다고.
아무튼. 난데없이 무슨 얘기냐 하면, 내가 저 앤드류 포크 같은, 땡깡 부리는 머저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부쩍 잦아졌다. ㅂㅇㅈ氏를 비롯해 ㅂㅎㅈ 같은 애들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생각했다. ㅂㅇㅈ氏 같은 경우는 기본 업무조차 제대로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죄다 떠넘기면서 동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말 그대로의 월급 도둑이고, ㅂㅎㅈ 같은 애들 역시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예의조차 없는 개싸가지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적어도 저런 것들보다는 낫다고, 저런 것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서 그저 예의로, 또는 듣기 좋으라고,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거기에 취해서 내가 특별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건방 떠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3자의 시각에서 나를 보니, 사회성은 형편없지, 고집은 세지, 딱히 눈에 드러나는 일도 없는데 만날 바빠 보이지, 정말 형편없는 인간인 거다.
혐오해 마지 않던 월급 도둑놈들이나 나나, 결국은 똑같은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가 말도 못하게 싫어졌다. 그렇게 나 자신이 한심할 수가 없더라. 그렇게 자신에 대한 혐오는 눈덩이 불어나듯 점점 커졌고 결국 약의 힘을 빌어야 하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자존감이 바닥을 친 거다.
요즘은 그래도 약 덕분에 저런 생각이 좀 덜하긴 한데, 약을 끊으면 어떻게 될지 걱정도 되고. 하필 이런 시기에 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리를 옮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모른척 하고 있는 거고.
자존감을 좀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여행 다니면서 눈과 마음을 좀 정화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돌아다닐 수 없으니 달리 할 일이 없다. 그나마 하루에 대여섯 시간 게임하는 게 유일한 낙인데...
저녁에 먹는 약에 수면제가 들어있어서 먹고 나면 금방 잠이 든다. 희한한 게, 기존에는 잠이 들어도 깊게 잠드는 시간은 극히 짧고, 금방 얕은 수면으로 넘어갔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는데 약 덕분인지 잠든 후 한동안은 깊은 잠을 잔다. 이게 스마트 밴드로 측정이 되어 눈에 띌 정도로 알게 되니까 재미있더라. 계속 이렇게 약에 의지해서 자야하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2021년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상태다. 자신을 좀 더 아껴가며 좋아해줘야겠다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아서 어렵다. 기분 좋게 올 해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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