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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1년 12월 12일 일요일 맑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근황)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1.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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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이틀을 우울하다는 제목으로 글 싸지른 후, 일주일 넘게 일기를 쓰지 않았다. 딱히 끄적거릴만한 일이 없을 때에도 일기를 썼기 때문에 아무 일 없었다는 건 핑계가 되지 않을테고. 그냥... 만사 귀찮았다.

 

우울하다는 감정이 2주 동안 계속되기에 '이건 심각하다.'라 생각했다. 주말 내내 『 디아블로 2: 레저렉션 』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에 출근했더니 그나마 좀 낫더라. 다행이라고, 이대로 나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화요일이 되니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숨 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함이 느껴져서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조퇴할까 하다가 조금만 버텨보자 싶어 꾸역꾸역 버텼다.

답답함도, 짜증도, 우울함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서 급하게 휴가를 냈다.

 

 

2018년에 다녔던 병원. 수요일은 오후 진료만 하는데 예약이 안 된다고 해서 진료 시작에 맞춰 숙소를 나섰다. 여유있게 출발했기 때문에 천천히 갔는데도 20분 일찍 도착했다. 근처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분 일찍 병원에 갔는데... 사람들로 가득해서 깜짝 놀랐다.

얼추 3년 만에 간 건데 내부 인테리어도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그냥 시골 병원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제법 신식 병원처럼 꾸며놨더라. 접수를 하고 구석에 앉아 기다렸다. 로비에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보호자와 같이 온 사람들이 많아서였는지 내가 다섯 번째였다.

 

차례가 되어 선생님과 상담. 예전에 상담해주셨던 여자 선생님이 참 친절하고 좋았는데 안 계신다고 했다. 그만두신 건지, 내가 간 날만 쉬신 건지. 아무튼, 다른 선생님에게 지금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 왼쪽 발목과 양쪽 손목을 플라스틱 집게에 맡기고 알 수 없는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아이패드의 질문에 대답하는 심리 테스트를 하고 약 받아 오는 걸로 끝.

 

오랜만에 평택에 간 건데 뭔가 많이 바뀌었다. 아픈 자신에게 주는 비싼 약이라 생각하고 킹크랩 사오려 했는데 법원 사거리에 있던 가게가 망했다. 내년 1월 오픈 예정이라는 플랑 카드가 붙어 있고 내부는 난장판.

 

숙소로 돌아오면서 전화로 병가를 신청했다. 의사 선생님은 약 먹는 동안에도 회사에 가는 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지만, 회사에만 가면 답답하니까,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까, 병가를 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이내의 병가는 진단서가 필요 없다고 해서 일단 6일만 신청했다. 다음에 병원에 가서 소견서나 진단서를 받아서 내며 될 것 같다.

 

병원에 다녀온 날, 자주 어울려 술 마시던 동료들의 생일이라고 해서 한 잔 마셨다. 적당히 마셨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마셨고, 그 와중에 약까지 먹었다. 술 마시고 약 먹으면 안 되는데 확실히 제 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다음 날부터는 뭐, 그냥 퍼져 있었다. 늘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떠졌고, 침대에서 빈둥거리다가 플스를 켜서 『 디아블로 2: 레저렉션 』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열 시가 되면 라면을 먹고 약을 먹었다. 약 먹고 나면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 되어 잠시 침대에서 멍 때리다가 또 게임을 하고, 그러다 저녁이 되면 약 먹고 잤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을 그렇게 보냈고 오늘은 회사 동료가 같이 밥 먹자고 해서 식사 약속을 잡았다. 오미크론 때문에 난리인지라 밖에서 먹기는 좀 그러니까, 숙소 앞 휴게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먹기로 했는데 한 분에게 사정이 생겼다. 아이가 다니는 체육관에 확진자가 나와서 본인이 고위험군에 속하게 되어 같이 먹기가 곤란하다는 거다. 결국 세 명이 먹기로 했는데 한 분이 돈만 쓰고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두 명이 먹었다.

잘 들어주는 분인지라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역시, 마음 편한 상대에게 속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게 최고의 치료법인 것 같다.

 

수요일까지 휴가인데 인사 이동 시즌이라 그 전에 사무실 가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퍼져 있을 생각. 의사 선생님이 술 마시지 말라고 해서 밥 먹을 때에도 소주 한 잔 안 마셨는데, 숙소에 들어오니 맥주가 간절하다. 내년부터 술 안 마시겠다고 선언한 바, 남은 12월에는 좀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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