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서, 때려 죽이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마음을 좀 다스릴 겸 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어느 산에 올라갔다 올까 생각해보니 당장 떠오르는 게 지리산이더라.
지리산은 2010년에 처음 가본 것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매 년 갔고 2016년을 건너 뛴 후 2017년에 마지막으로 다녀왔다. 코스는 항상 중산리 → 로타리 대피소 → 천왕봉 → 장터목 대피소 → 중산리였고.
대피소에서 하루 자는 일정은 어려울 것 같아 당일치기로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집에서 산청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야겠더라.
일찍 자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고, 네 시에 눈을 떴는데 다시 자면 못 일어날 것 같아서 빈둥거리다가 다섯 시에 주섬주섬 짐을 쌌다. 출발한 게 다섯 시 반.
배가 고프다. 휴게소에 들러 뭐라도 먹고 싶은데 시간이 일러 영업을 안 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계속 지나쳤다. 거창 휴게소 지날 때에도 일곱 시가 채 안 되었기에 그냥 지나쳤고, 함안 휴게소에 갔는데...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동서 화합 어쩌고 하더니 코딱지만 하고.
고픈 배를 부여잡고 계속 달려 산청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없던 지리산 터널이라는 게 생겼더라. 국도 터널 치고는 상당히 길던데 시속 60㎞로 구간 단속을 걸어놨더라. 과속 막는답시고 사방팔방에 구간 단속 걸어놨네. 쯧.
다행히 편의점이 있어서 김밥 세 줄과 몬스터를 하나 샀다. 주차장으로 향했더니 현대화가 됐네. 예전에는 차를 세우면 사람이 돈 받으러 왔었더랬다. 지금은 자동으로 차단기가 올라가고 나중에 나가면서 결제를 해야 차단기가 열린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운 후 방금 산 김밥 두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 후 어슬렁~ 어슬렁~ 출발했다.
《 입구는 바뀌지 않았고만. 》
《 응? 이런 게 있었던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
《 입구를 비롯해 주변이 굉장히 예쁘게 바뀌었다. 깔~ 끔하다. 》
《 여기는 예전 그대로고만. 》
《 칼바위까지 25분 걸렸다. 아직은 체력이 괜찮은 듯. 》
처음 갔을 때, 중산리 탐방 안내소에서 칼바위까지 한 시간 반 걸린다고 했는데 30분 만에 도착해버리는 바람에 산을 엄청 잘 타는 게 아닌가 착각했더랬다.
《 칼바위 한 장 더. ㅋ 》
처음 갔을 때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몇 번 가봤답시고 이제는 익숙해서 그냥저냥 갈만 했다. 40대가 된 후 처음 가는 거니까 돌연사하는 일 없도록 주의하자고 마음 먹었다. 틈나는대로 시계로 심박을 확인했는데 150 밑으로 떨어질 생각을 안 하더라. 계속 움직일 때에는 몰랐는데 쉰답시고 잠깐 멈추면 심장이 미친 듯 쿵쿵거렸다.
《 로타리 대피소까지 두 시간이 채 안 걸렸다. 》
어느 학교인지 모르겠는데 인솔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여러 명 보였다. 학교 전체가 온 건 아닌 것 같고 두 반 정도? 선생님한테 말할 때 다나까를 쓴다던가, 뭔가 굉장히 예의 바르게 보였다. 뭐, 어린 학생들이라 욕을 달고 말하는 건 패시브 스킬이었지만.
《 철쭉인지 진달래인지. 예쁘긴 한데 봐도 무슨 꽃인지 모른다. 아무튼 여기저기 잔뜩 피어 있었다. 》
《 숨은 새 찾기. ㅋㅋㅋ 》
《 굉장히 작은 새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근처를 방황(?)하고 있었다. 먹을 거 달라는 건가? 》
《 천왕샘에서 물이 졸졸졸졸 흐르긴 하는데, 이게 모여서 강이 된다는 걸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
여덟 시 20분에 출발했는데 정오에서 10분 지났을 때 천왕봉을 밟을 수 있었다. 네 시간 쬐~ 끔 덜 걸렸다. 지난 해 5월부터 1년 동안 운동은 아예 안 하면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맥주를 마셔대서 체력이 엉망이 되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는데, 산에 올라보니 생각보다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천왕봉을 앞두고 계단을 오를 때에는 죽는 줄 알았지만.
일행들보다 일찍 올라온 아이들 몇 명이 정상석 부근에 머물러 있었다. 보통은 정상석을 배경으로, 또는 정상석과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 정상석을 비워주기 마련인데 아이들이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사진 찍게 조금만 비켜주실래요?" 라고 했더니 "네~" 하고 대답은 하는데 한, 두 발짝 움직이는 데 그친다. 결국 사람 나오지 않게 정상석 찍는 건 실패. 적당히 찍고 손전화에서 AI 지우기로 지워볼까 했는데, 캄보디아에서 찍은 사진은 기똥차게 지워지더니, 여기서는 제대로 안 되기에 포기했다.
한 쪽 구석에 앉아 하나 남은 김밥을 먹고 소시지로 배를 채우고 있는데 붕~ 붕~ 거리는 소리가 나서 벌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누군가가 드론을 날리고 있더라. 삼각대도 있고 장비가 요란한 걸 보니 전문적으로 찍는 사람인 것 같았다. 관리 공단에 전화해서 허가 받고 날리는 것인지 물어볼까 했는데 전화하면 들릴 거리에 있는지라 조금 있다 해야지~ 하다가 잊어버렸다.
국립공원에서 허가없이 드론을 날리는 것은 불법입니다.
《 예전에는 다 빨간색이었는데 이제는 더 높은 검은 색이 등장했다.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이도 표시 중 최강(?)은 빨간색이었는데 지금은 검은색이 더 어려운 길을 표시하는 색이 되었다. 지리산은 로타리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가는 길이 검은색. 참고로 가야산의 만물상 코스도 검은색이다.
정상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잠깐 바람 맞고 있다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5월 중순이고 무척 더운 날씨였는데도 정상에 멍 때리고 앉아 있자니 꽤 춥더라. 올라갈 때에는 한 손에 손전화 쥐고 올라가면서 틈틈이 사진을 찍었지만 내려갈 때에는 서둘러 내려간답시고 거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기까지 올라와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제 정신인가... 》
내려가면서 계곡 소리도 듣고, 경치도 보고, 그래야 하는데 나는 정상 찍는 게 목표인 사람이라 그런가 내려갈 때에는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서두른 덕분일까? 다시 중산리에 도착하면 17시 쯤 될 거라 생각했는데 15시에 내려갈 수 있었다. 왕복 일곱 시간 걸렸다.
주차비는 4,000원인데 미리 카드 결제를 할 수 있다. 국가 유공자는 50% 할인이 된다기에 물어봤더니 보훈청에 차량 등록이 되어 있어야만 할인이 된단다. 보통은 유공자증 보여주는 걸로 할인을 받는데 여기는 이상하게 해놨네.
카드로 미리 주차비를 결제한 후 차로 돌아가 샤워 티슈로 땀을 좀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대충 정리를 마친 후 출발했는데 내 앞에 있던 포터가 굉장히 꾸물거린다. 차단기가 올라가자 슬금슬금 나가는데 더 이상 가지 않고 사람을 태운다. 그리고 나서도 바로 출발하지 않고 멈춰 있다가 갔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 번호판 인식기가 내 번호를 인식해서 차단기를 열어버렸다는 것.
앞 차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데 차단기는 올라가 있다. '설마 지나가고 있는데 내려오지는 않겠지.'라 생각하고 있는데 멈춰있는 동안 다시 내려가버렸다. Call 버튼을 눌러 요금을 냈는데 차단기가 안 올라간다니까 차 번호를 불러 달란다. 불러줬더니 안 냈단다. 아니라고, 냈다고, 앞 차가 막고 있어서 못 나갔는데 그 사이에 차단기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고, 영수증 가지고 있다고 했더니 한참 있다가 차단기를 열어주더라. 목소리가 개미만 해서 하나도 안 들렸다. 이거, 개선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빌빌거리는 차 때문에 제대로 달리지 못하다가 한~ 참 지나서야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갈 때보다 국도 구간을 오래 달리도록 안내하더라.
휴게소에 잠깐 들러 차에 밥 좀 먹일까 하다가 집 근처 주유소는 얼마인가 확인해봤더니 거기가 더 싸다. 차에 밥 먹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근처에서 순댓국으로 요기. 몸무게를 확인해봤는데, 1도 줄지 않았다. 젠장!
지리산 천왕봉까지 가는 가장 짧은 코스는, 일단 중산리 탐방 안내소까지 갑니다. 주차장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있을텐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거기에서 버스를 탑니다. 돈 내야 합니다. 교통 카드는 안 된다고 들었는데 하도 오래 전에 한 번 타본 게 전부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버스 타고 가서 종점에 내려 거기서부터 올라갑니다. 조금만 오르면 로타리 대피소가 나올 겁니다. 거기에서 천왕봉까지 대략 두 시간 정도 잡으면 됩니다. 참고로, 엄. 청. 나. 게. 빡쌥니다. 천왕봉 찍고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 버스 타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천왕봉까지 여섯 시간? 뭐, 그 정도 걸릴 겁니다.
저는 중산리에서 걸어 올라가 로타리 대피소에서 좀 쉬고, 천왕봉 찍은 뒤 장터목 대피소 방향으로 가서 중산리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일곱 시간 걸렸는데 산행이 서툴거나 체력이 약하다면 자주 쉬어야 하니까 한, 두 시간 정도 더 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은 500㎖ 짜리 네 개 들고 가서 다 마셨습니다. 두 개는 얼려갔는데 날이 더워서 로타리 대피소에 가기 전에 다 녹았더라고요. 링티 두 개 가지고 가서 타 마셨는데 저는 달아서 그냥 물이 더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대피소에서 2ℓ 짜리 물을 파니까 사서 드셔도 되는데 시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3,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처음 지리산에 갔었던 2010년에는 담배도 피울 수 있었고 술도 마실 수 있었습니다만, 담배가 먼저 금지되었고 얼마 후 술도 금지되었습니다. 지금은 담배를 피워도 안 되고, 술 마셔도 안 됩니다. 몰래 하면 그만 아니냐 하시겠지만 산에 불이라도 내면 전 재산을 탈탈 털어도 부족할 겁니다. 술 마시고 구르면 평생 기계에 의존해 호흡해야 할지도 모르니 권하고 싶지 않네요. 몰래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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