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만 원 넘게 주고 받은 검사의 결과가 나왔다. 난 그저 억울하다, 힘들다는 하소연을 들어줬음 싶은데 책에 있는 그림을 보여주면서 블럭으로 똑같이 만들어보라는 둥, 데칼코마니 그림을 보면서 무엇이 떠오르느냐는 둥, 이상한 것만 시키기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의아했더랬다.
그래도, 비싼 검사니까 내 정신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분석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냥 받았는데 결과가 너무 뻔하다. 일단 지능은 높다고 나왔다. 100명 중 4등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더라.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소싯적에는 멘사 테스트 받아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라고. 중학교 때 'IQ는 높은데 성적이 낮은 이유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탓'이라는 이유로 선생한테 엉덩이가 터지도록 맞은 사람이라고.
그 외에는, 뭐~ 뾰족뾰족하다 정도? 예민하고 날카롭다더라. 그러면서 사업이 어울린다고 했다. 내가?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사업을 해? 그런데 그 이유가, 조직에 적응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란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부당하다 생각하는 일에 대해 반발한다는 거다. 아, 반골 기질이 있다는 말도 했다. 하나 같이 예전부터 엄청 들어왔던 거라 새롭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수십 년 동안 주위 사람에게 들어와 알게 된 나란 사람이 결국 딱 그 수준이고나.' 하고 공감했다는 정도?
아무튼, 비싼 검사를 받은 댓가로 진단서 한 장 건졌다. 의사는 휴직도 가능하다는데, 더 길게 쉴 수도 있다는데, 나도 맘 같아서는 한 달 정도만 쉬었음 좋겠는데, 그럼 당장 가계부에 구멍이 난다. 벌어놓은 것도 없이 빚만 잔뜩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래서 일단 2주만 쉬기로 했다. 정 힘들면 진단서 다시 받아 더 쉬던가 해야지.
딱 14일 쉬는데 오늘이 사흘 째다. 지난 이틀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새벽에 눈이 떠지면 다시 잘 생각을 하지 않고 딴 짓을 해버린다. 그러니 당연히 잠이 부족하고, 오후나 저녁이 되면 졸음이 쏟아진다. 여행이라도 가서 좋은 경치 보면서 다 타버리고 남은 재를 긁어모아 다시 단단하게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월요일에 쉬는 곳이 많아 하루 미뤘다. 내일은 영양, 모레는 태백에 갈 생각이고 속초까지 갈지, 그냥 동탄 찍고 내려올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제주에 다녀올까 싶기도 했는데 그 돈이면 차라리 동해 쪽 천천히 도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본 한국 드라마가 『 대장금 』일 정도로 한국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다. 일단 주인공이 시련을 겪는 장면을 보는 게 답답하고, 아슬아슬하게 끊는 것도 싫다. 그래서 『 시그널 』도 완결된 이후에 보려고 했는데 결국 몇 편 못 보고 그만 뒀다. 꾸준히 보기가 어렵더라.
오늘 아침에 누워서 뒹굴다가 『 악귀 』를 봤다. 좀 더 빠른 전개가 가능할 것 같은데 미적거린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볼까 한다. 극장에 갈까 싶기도 했는데 막상 나가려니 귀찮다.
『 은하영웅전설 』에 앤드류 포크라는 작자가 나온다. 전방 근무 경력은 전혀 없는데 20대에 별을 달 정도로 줄을 제대로 탄 녀석이다. 현장에서 걱정하는 바를 모두 무시하고 말도 안 되는 작전 계획을 들이밀어 수많은 아군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도 잘못을 모른다. 현장의 지휘관이 이를 나무라고 후퇴하겠다 하자 혼자 발악하다가 기절해버린다. 급히 소환된 군의관의 진단은 히스테리. 자기 맘대로 안 되면 질알 발광하는 병이라는 거다. 요즘 내가 앤드류 포크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가 자꾸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한 걸 지적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가위, 바위, 보를 하는데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무조건 이기는 패라고 우겨대면 그걸 납득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 악귀 』 1회를 보니 주인공이 미워하는 사람이 죽어 나자빠자지던데, 내가 귀신 들린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저 세상으로 보내고 싶은 작자가 둘이나 된다. 나는 작은 일에도 욱! 하는 경우가 많으니 내가 귀신 들리면 대한민국 인구 급감에 큰 역할을 하겠지.
밤에는 선선해서 선풍기만 켜도 버틸만 하다. 하지만 오늘부터 다시 더워진다고 한 것 같다. 오늘은 여행 전에 가지고 갈 것들 체크 리스트 새로 만들고, 사진 편집할 때 쓰는 액자도 다시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빈둥거리다보면 또 하루가 훅~ 지나가겠지.
집에서 놀고 있으면 시간이 참 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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