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처음 간 건 2014년 4월이었고, 그 뒤로 매 년 갔다. 1년에 두 번 갈 때도 있었고. 혼자 다니는 여행을 선호해서 항상 혼자 다녀버릇 했는데 2015년에 딱 한 번, 엄마와 외삼촌, 외숙모를 모시고 짧게 다녀왔더랬다. 그 때에는 일본어도 아예 못했고 아는 것도 쥐뿔 없을 때라 어리버리했는데도 무척 즐거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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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고모와 친척 누나를 모시고 가게 됐다.
원래는 이번 달 20일 이후에 혼자 다녀올 생각이었다. 포항의 ACL 일본 원정(vs 우라와, 2023.10.26.)에 맞출 계획이었더랬다. 그런데 고모가 일본에 못 가본 게 아쉽다는 말을 자꾸 꺼낸다. 내가 일본에서 유학할 때 오셨어야 했는데 여차저차해서 못 오셨던 거지. 연세도 있으시고 다리도 불편하시니 여행 다닐 엄두를 못 내시는데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혼자서 모시고 다니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친척 누나가 10월 초에 휴가를 길게 받았단다. 그래서 그 기간에 맞춰 일본에 다녀오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건 항공권. 내 기준에 오사카 왕복 항공권의 적정가는 15만 원인데, 이건 코로나 전의 이야기. 코로나 이후 항공권 가격이 많이 오르기도 했고 물가가 오른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왕복 20만 원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본을 찾는 한국인들이 워낙 많으니 어림도 없더라. 항공권 가격은 20만 원이 안 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공항 이용료에 유류 할증료가 더해지니 최종 결제 금액이 훅~ 올라간다.
주로 진에어를 이용하는데 적립된 마일리지 같은 것도 없고, 진마켓 행사 덕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좀 두고보자 싶어 적당히 가격만 알아보고 말았다.
그러다 슬슬 표를 사지 않으면 안 될 즈음이 되었는데 마침 제주 항공에서 찌라시 톡이 왔다. 진에어만 생각하고 있다가 '제주 항공?'하고 들어가봤는데 표 값에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제주 항공은 일본 노선에 준 비즈니스席 개념으로 Biz Lite라는 좌석을 운영하고 있는데 돌아오기로 한 날짜의 가격이 굉장히 쌌다. 다른 시간대나 다른 날짜는 30만 원을 훌~ 쩍 넘어가는데 18만 원이더라고. 일반 좌석은 16.5만 원인데. 좌석 당 1.5만 원 씩 더 주고 편한 자리에, 수화물 30㎏까지 가능하니 이 쪽이 훨~ 씬 낫지 않을까? 싶어 예약을 시도했다.
웹 브라우저의 시크릿 모드를 켜서 가격을 검색하고 있었기에 원래 브라우저로 돌아가 로그인을 하고 예매를 하다보니 Biz Lite는 기내식도 주더라. 뭘 먹을지 고르라고 뜨더만. 친척 누나한테 물어봤더니 비빔밥 먹겠다고 해서 그걸 선택했는데 결제하기 전에 생선 요리와 화이트 와인인가 뭔가가 낫겠다고 메뉴를 바꾸는 거다. 귀찮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니 마우스의 뒤로 버튼을 눌렀는데... 눌렀는데... 눌렀는데... 지금까지 진행한 예약 과정이 초기화되어 첫 화면으로 돌아가버렸다. 젠장...
다시 예약을 하려고 보니 방금 내가 사려고 했던 좌석이 팔린 걸로 뜨면서 가격이 줄줄이 올라가 있다. 돌아오는 편의 Biz Lite는 세 개 남아있어서 냉큼 사려 했던 건데 아홉 자리 남은 걸로 뜨고 가격은 33만 원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결국 그 날 비행기 표 구입을 포기하고, 내가 구입을 시도했던 기록이 지워져서 빈 자리로 돌아오기를, 그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사지 않기를 바라며 자빠져 잤다. 다음 날이 되어 접속했더니 다행히 하루 전에 알아본 가격으로 빈 자리가 떴다. 호다닥 예약을 완료. 갈 때 운임, 올 때 운임, 공항 이용료, 유류 할증료가 줄줄이 붙으니 한 사람 당 40만 원 돈이 들어갔다. 일본을 그~ 렇~ 게 왔다갔다 하면서 가장 비싸게 산 비행기 표다. 예전에 요나고 갈 때에는 5,000원 내고 간 적도 있는데. (물론 공항 이용료와 유류 할증료가 붙어 5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이 나왔던 것 같다.)
항공권 예약이 끝났으니 이제 숙소 차례. 원래는 미야코 시티 텐노지 호텔을 잡으려 했다. 텐노지 역 바~ 로 앞에 있어서 이용하기 편한데다 가격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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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방이 없다. 침대가 세 개 있는 방은 찾기 어려우니 고모와 친척 누나가 방 하나를 쓰고 내가 하나를 쓰면 되겠다 싶어 검색을 해봤지만 당최 맘에 드는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찾다 찾다 맘에 드는 곳을 못 찾아서 리가 로얄과 한큐 호텔을 사이에 두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격은 비슷한데 호텔 수준은 리가 쪽이 낫다. 게다가 리가 로얄을 선택하면 행성 초콜릿을 살 수 있다. 다만, 리가 로얄은 교통이 불편하다. 역까지 좀 걸어야 한다.
어찌 할까 망설이면서 검색을 계속 하던 중, 데라다초 근처에 침대 세 개가 있으면서도 큰 방이 있는 숙소를 찾았다. 여기다 싶어 냉큼 예약을 했다. 예약을 하고 나니 게스트하우스라고 나오더라. 응? 게스트하우스? 설마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공용은 아니겠지?
데라다초는 수도 없이 들락거렸는데 타코야키 가게나 사진관, 스낵 바 정도나 생각나지 게스트하우스는 본 적도 없다. 아무튼, 거기 있다니까, 뭐.
항공권, 숙소까지 예약이 끝났으니 일정 짜고 교통 패스 구입하면 끝. 남의 나라에 가면 평소보다 훨~ 씬 더 걷기 마련인데 고모의 다리가 많이 좋지 않아서 최대한 덜 걷게끔 계획을 짜야 한다.
첫 날은 숙소에 짐 맡겨놓고 난바에 가서 도톤보리 구경을 하고, 저녁에는 하루카스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 정도만 계획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니까 많이 피곤할 것 같아서.
다음 날은 우체국에 가서 계좌 해약부터 하고, 마치고 나면 요도야바시에 가서 아쿠아 라이너 타고 오사카 성에 간 뒤 구경.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점심 무렵에 덴포잔으로 이동해서 대관람차 타고, 산타마리아 타고.
그 다음 날은 교토에 가서 킨카쿠지(금각사) → 에이칸도(영관당) → 키요미즈데라(청수사) 순으로 다닐 건데 택시를 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할텐데 버스는 무리.
돌아오기 전 날에는 신 오사카에서 신칸센을 타고 오카야마에 가서 미관 지구를 보고, 히메지에 들러 코코엔을 보고 올 생각이다. 겸사겸사 에키벤을 경험하면 되겠다 싶고. 히메지에 가서 히메지 성을 안 보는 건 역시나 고모의 다리 상태를 고려해서.
오사카로 가는 거니까 당연히 인생 술집에 가야 하는데 미리 검색해봤더니 여행 기간 내내 쉬는 날이고 오카야마 다녀오는 날이 영업하는 날이더라. 숙소에 돌아가 고모의 컨디션을 보고 같이 가던가, 아니면 친척 누나랑 둘이 가던가.
다음 날은 눈 뜨자마자 짐 챙겨서 돌아오면 된다.
돌아오고 나면 부지런히 ○○으로 넘어가서 자동차 정기 점검을 맡겨야 한다. 바쁘다.
계획을 세우고 나니 JR 패스는 당연히 사야 할 것 같다. 간사이 공항에서 텐노지까지 편하게 가려면 하루카를 타야 하고, 오카야마까지 신칸센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뽕 뽑고 남으니 와이드 에어리어 패스 5일 권을 사면 된다. 10월 1일부터 가격이 오른다기에 9월에 미리 결제까지 마쳤다. ㅋ
도착한 다음 날은 일부러 주유 패스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일정을 짰다. 주유 패스는 1일권만 구입. 간사이 공항에 가서 바우처 보여주고 바꾸면 될 것 같다.
아, 인터넷은 와이파이 도시락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와이파이 도시락을 쓰면서 불편했던 적이 없었던지라 굳이 SIM 카드 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10GB 주는 것도 있던데 2GB 짜리로 구입 완료. 돌아다니면서 인터넷 쓸 일이 있겠나 싶더라고. 뭐, 정 아쉬우면 빅 카메라나 돈키호테 가서 SIM 카드 사던가 해야지.
일본어 다 까먹어서 고생 안 하고 다닐 수 있을랑가 모르겠다. 당장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오늘 저녁 늦게 퇴근하는지라, 퇴근하고 고모 댁까지 가면 새벽이다.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다시 나가야 한다. 으~ 벌써부터 피곤하고만.
며칠 전에 술 먹고 잔뜩 취해서, 숙소에 국제 전화를 걸어 도착이 조금 이를 것 같은데 얼리 체크인이 가능하냐고 물어봤다. 뭐라 뭐라 하는데 못 알아들어서 한 번 더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이야기해주는데 그것도 못 알아들었다. 알아들은 척 하고, "오케~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하고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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